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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3화 (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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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장 - 마계 인력 시장

    중학교 2학년 때는 아니지만 그와 근접한 중학교 3학년 때 당신은 사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마왕의 피를 이은 반인반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미약하게나마 이를 증명하는 능력 역시 있다면.

    지난 5년 동안 마왕이 된 자신의 모습을 수십 번, 아니 솔직히 말해 수백 번 정도 상상했다고 해도 과연 그게  비정상적인 행동일까?

    용호는 상상했다.

    마왕이 된 자신. 주지육림 위에 군림하는 자신.

    현실은 남중, 남고, 공대라는 무시무시한 테크 트리를 타고 있음에도 - 그리고 그 테크트리에 조만간 끝판왕급 포스를 가진 군대가 추가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 용호는 상상했다.

    물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상상의 빈도는 줄어들었고, 상상 역시 현실도피성 망상의 성격을 띠었지만 아무튼 상상했다.

    그리고 용호는 마왕이 되었다.

    비록 그 마왕이란 자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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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피 끓는 열일곱 살 때였을 거야. 잠에서 깨어나면 늘씬한 서큐버스가 내 옆에 나신으로 누워 있는 모습을 상상했지.”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니 아름답기 짝이 없는, 초콜릿을 녹여 만든 것 같은 부드럽고 연한 갈색 피부를 가진 은발의 미녀가 바로 옆에 누워 있었으니.

    비록 그 여인이 발가벗지도, 용호 자신과 같은 침대 위에 누워있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야, 야. 야!”

    상시적인 마력 부족에 시달리는 마몬 가의 던전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마력이 공급되는 방.

    가주의 옥좌가 있는 마왕의 방바닥에는 입구에서 옥좌까지를 잇는 낡아 빠진 붉은 카펫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다시 여기저기 헤진 담요라고 부르기 민망한 거적때기가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두 사람.

    하나는 상체를 반쯤 일으켜 세운 용호였고, 다른 하나는 짐승 가죽으로 만든 망토로 전신을 뒤덮은 카타리나였다.

    용호의 다이나믹한 어깨 흔들기에 카타리나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꼼지락 거렸다. 서큐버스와 다크 엘프의 혼혈인 그녀는 아침에 약해도 너무 약했다.

    “으으…….”

    카타리나는 눈을 반쯤 떴다 감았다 하며 신음을 토했다. 그 소리가 워낙에 야릇했던 데다가, 망토 밖으로 살짝 나온 얼굴이 너무 아름다웠던 터라 용호는 순간 숨을 삼켰다.

    하루 동안 완전히 적응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남중, 남고, 공대 테크를 탄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마주하기에는 너무 예쁜 카타리나였다.

    결국 카타리나 깨우기를 포기한 용호는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혼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던전의 집사인 엘리고스는 그나마 일찍 일어나서 물을 뜨러 나갔다.

    ‘그래, 물 뜨러. 항아리에 담을 물을.’

    참으로 열악하기 짝이 없는 던전의 환경에 용호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카타리나와 엘리고스의 말에 따르면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열악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전대 가주가 살아있을 때만 해도 ‘몰락’이란 단어를 붙여야 하긴 했지만 제법 그래도 명문가다운 모양새를 유지했다고 하니 말이다.

    ‘가주님이 자결하신 뒤…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엘리고스가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하나, 던전을 떠나 이직한 사역마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던전의 재산들을 털어갔다.

    둘, 가주가 죽은 이후 던전에 새로이 마력을 공급해줄 이가 없었기에 던전의 시설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역마들과 달리 예속 사역마인 카타리나와 엘리고스는 던전을 떠날 수도 없었으니 생명이 달린 문제였다.

    셋, 새로운 가주- 즉 용호를 찾는 데 걸린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그나마 남은 마력을 아끼고 또 아끼다보니 지금의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다.

    용호는 다시 멍한 얼굴로 마왕의 방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마왕의 방이라고 넓기는 무지하게 넓었다. 아마 이 안에서 축구는 못해도 핸드볼 경기 정도는 우습게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워낙 막장이니 좀만 손대도 티는 나겠네. 더욱이 빚이 없는 게 어디야.’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낸 용호는 허허 웃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 대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하였다.

    일단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곳 마계와 용호가 사는 세상 사이를 잇는 ‘공간의 문’을 여는 데는 막대한 마력이 필요했다.

    카타리나와 엘리고스의 설명에 따르면 ‘이왕 죽을 거 시도는 해보고 죽자!’라는 마음으로 공간의 문을 열었다고 했다.

    만약 용호 자신이 가주가 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정말 죽자 살자 덤벼들든가 아니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거나 했을 게 분명했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거나 연락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중에 상시형 공간의 문을 설치하면 큰 마력 소모 없이도 다녀올 수 있다고 엘리고스가 깨방정을 떨었지만 카타리나의 우울한 표정을 보아하니 과연 그런 날이 올지 의문이었다.

    용호는 깔끔하게 결론을 내렸다.

    마계에서 용호 자신의 집은 이 던전이다. 그러니 이 던전을 사람 살만한 곳으로 환골탈태 시킨다. 공간의 문을 설치할 수 있을 정도의 던전으로 만든다.

    용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 방에서 유일하게 가구로 취급할 수 있을 옥좌로 이동했다. 옥좌에 앉자마자 새로이 태어난 던전의 영혼이 용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좋은 아침입니다.]

    갓 태어난 영혼임을 어필하듯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아침이라 응답한 용호는 손가락을 놀렸다.

    [마몬의 던전]

    [소유주 : 진화의 마왕 천용호]

    [던전 등급 : -]

    [던전 잔여 마력 : 30/300]

    [일일 마력 생산량 : 30]

    비흡연자도 흡연자로 만들 것 같은 초라함이었지만 이번에도 용호는 좌절하지 않았다.

    ‘가주가 없기 때문에 몰락한 던전이야. 이제 가주가 돌아왔으니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용호는 눈을 감았다. 지금 자신이 가진 자원들을 점검해 보았다.

    예속 사역마 엘리고스와 카타리나.

    집사인 엘리고스는 전투에서는 전력 외라 해도 좋았다. 하지만 생활 전반을 책임질 수 있는 기량이 있었다. 본인 말에 따르면 전대 가주 시절에는 집사 겸 요리사 겸 교육 담당으로 활동했다는 모양이다.

    호위기사인 카타리나는 현재 던전이 보유한 유일한 전투 병력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전투력에는 상당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엘리고스의 평가에 따르면 그리 약한 편은 아니라고 하는데 - 더불어 크림슨 오우거가 상당히 강력한 몬스터임을 어필했다 - , 아무래도 첫 날 보여준 모습이 너무 무력하다 보니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사역마는 이 둘로 끝.

    잔여 마력은 30.

    하루에 생산할 수 있는 마력도 30. 일일 생산 마력의 경우엔 용호 스스로가 강해지거나 던전의 등급이 높아지면 생산량이 늘어나는 구조였다.

    물을 담아둘 항아리 하나.

    낡고 붉은 카펫.

    옥좌.

    입고 온 옷가지인 티셔츠와 팬티. 전대 가주가 남겼다는 정장 한 벌. 컴퓨터와 함께 딸려온 책상.

    언제 발현할지 알 수 없는, 일단 물려받았다는 사실만이 확실한 ‘7대 죄악’의 힘.

    그리고 마지막 하나.

    어쩌면 현재 용호가 가진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일지 모를 것.

    용호는 눈을 감았다. ‘진화의 마왕’의 능력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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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2장 - 마계 인력 시장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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