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28살, 약자는 지켜야 하는 거예요
터억!
가방이 떨어지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루이비통’이라 표기된 로고가 보이는 가방을 보다 시선을 위로 올렸다.
“아......”
강자에서 약자로 변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재석도 그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옷 비용은 지불해 드리라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사과를 하신다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경호원은 재석의 앞에 등장해 노숙영을 상대하며 교무실에 진입하기 전 일을 떠올렸다.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네요. 좋은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커요.]
경호 중 오랜만에 온 연락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재석이가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일. 혹여,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제 정체를 밝혀도 좋으니 직접 해결해 주세요.]
미리부터 예상하고 경호원을 준비시켰다.
‘어리지만, 확실히 배울 점이 많은 인물이야.’
노숙영에게 던진 시선을 돌려 재석을 조용히 응시했다. 아빠의 피를 몰빵으로 받은 재석의 모습에 호랑이 새끼는 고양이가 될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기세등등하던 모습이 사라졌다. 무언가 걸리는 부분이라도 있는지 자세를 낮췄다.
“아닙니다. 옷값은 제대로 지불하라 이르셨습니다. 또한...... 아이의 모습은 부모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셨습니다. 성태 군이 아이들을 많이 괴롭히고 다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더욱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리기 전에 잘못된 점을 바로 잡고 그동안 괴롭히고 때린 친구에 사과하길 바라셨습니다.”
한강이 직접 오고 싶었지만, 일이 더욱 크게 확대될 것을 염려해 경호원에게 이번 일을 맡겼다.
경호원은 한강이 전달한 말을 토시 틀리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을 하였다.
“......”
노숙영은 잔뜩 겁을 먹어 어떠한 말도 못했다. 입술을 벌벌 떠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또한, 도련님에게도 사과를 하시길 바랍니다.”
이때 경호원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실렸다.
절대 그냥은 넘어가지 않겠단 의지가 느껴졌다.
“미, 미안합니다.”
‘미안하다’고 말하려던 노숙영은 경호원의 살벌한 시선에 허리까지 숙여 가며 재석에게 존칭을 사용하였다.
“담임 선생님이라 하셨죠. 당신은 교육자로서 실격입니다. 당신의 과거를 숨기고 싶다면 직접 짐을 싸고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험한 꼴을 보시게 될 거라 미리 말씀을 드리지요.”
정중하지만 그 안에는 무시 못할 힘이 들어가 있었다. 교무실에 자리한 사람들 중 일부는 똥물이 튈 거 같아 황급히 교무실을 도망치듯 벗어났다.
“아시겠습니까?”
대답이 없자, 경호원은 되물었다.
“...... 자, 잘못했어요. 저 여기 나가면 갈 데가 없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재석아, 선생님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뒷돈을 주고 겨우 얻은 자리였다. 지금 그만두면 본전도 찾지 못했다.
“전 말입니다. 교육자란 양심을 챙겨야 하는 그런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직접 나가지 않겠다면 공론화하여 더욱 어려운 길을 걷게 해드리죠.”
존대를 하고 있지만, 어떤 누구도 그걸 고스란히 듣지 않았다.
안에 가시가 있음을, 지금 이건 협박임을 아주 잘 안 까닭이다.
“......네.”
강수연은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떨궜다. 어떤 누구도 그녀를 위로해 주지 않았다.
“아이의 옷값에 대해 말씀을 하지 않는다면, 루이비통 평균가로 계산해 드리죠.”
다음은 마무리가 되지 않은 노숙영이었다. 한강의 지시에 따라 모든 걸 깔끔히 정리하기로 하였다.
모든 계산을 깨끗하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았다.
괜한 말이 세상에 퍼지면 서로 좋을 건 없었다.
그건 바라지 않은 선택이다.
“......74만 원.”
경호원의 의도를 알아들은 노숙영은 힘없이 가격을 말했다.
“먼저 74만 원을 드리죠. 다음은...... 잘 알리라 봅니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빛엔 분노의 불길이 타올라 있었다. 당장이라도 뜨거운 열기가 선글라스 밖으로 뚫고 나올 거 같았다.
그걸 느낀 건지 어쩐 건지, 시선을 들지 못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경호원은 지갑에서 현금 뭉치를 꺼내 정확하게 74만 원을 건넸다.
“......”
“나머지를 이행해 주시지요.”
아들로 인해 피해를 본 모든 학생들에게 사과를 할 것을 주문했다.
동시에 몸을 옆으로 비켜 재석의 뒤로 이동했다.
“......도련님인 줄 몰라보고 죄를 지었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아들이 괴롭힌 아이들에게 사과하라 이를게요.”
흑흑.
굴욕도 이런 굴욕도 없었다. 성태는 돌아가는 분위기를 읽고 잔뜩 위축된 모습으로 변했다.
제대로 고개를 올려 기를 펴지 못했다. 교실에선 강자로 군림하던 것과 무척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아주머니, 전 잘 모르지만 우리 아빠는 아주 훌륭한 분이에요. 절대 약자에게 강하게 대하지 않으세요. 저도 아빠의 가르침을 따라 그러지 않고요.”
재석도 화났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못된 사람을 본 충격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하지만 집에서 행동하는 아빠의 모습을 늘 보아왔다. 답은...... ‘정말 강한 자는 절대 화를 내지 않아. 상황을 이용해 내 사람으로 만든다. 그것이 진정한 강자야’ 화를 이겨내고 웃는 것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봐요. 지금의 성태는 무섭지만, 지금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친구들도 성태를 무서워하지 않고 잘 따를 거예요. 아저씨.”
하고픈 말을 모두 끝낸 재석은 고개를 들어 경호원을 응시했다.
“가요.”
교무실에 있던 어른들은 어린 재석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당장 어딘가로 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재석이 등이 돌아갔다. 더는 교무실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곁에 자리한 경호원의 소매를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돌아간다.”
재석의 뜻을 받들어 지시를 내렸다. 교무실을 둘러싼 이들은 지시에 따라 밖으로 빠져나갔다.
***
“정말 죄송합니다. 진즉 회장님의 자녀분이라 말씀을 해주셨다면......”
한강의 집으로 교장과 교감이 찾아왔다.
땀을 뻘뻘 흘리는 두 노인의 모습이 참으로 애처롭다.
“제 아들임을 알았다면 아이들과 달리 특별대우를 해주셨겠지요. 전 그런 건 바라지 않습니다.”
한강이 무리해서 기존에 살던 곳을 잠시 비워두고 조금 떨어진 빌라에서 살고 있던 것은 재석이 위만 보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서다.
아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위로 올라갈 자격이 없다며 한강은 늘 재석에게 세뇌를 시키듯 연일 강조를 하였다.
“......그것이.”
사회는 나이보다 위치를 더욱 우선한다. 40대, 50대인 두 사람은 한강의 앞에서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과 아들이 약속을 지켰다고 하니 공론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초등학교의 문제를 크게 이슈화시킬 생각은 없었다. 잘못된 걸 바로잡을 기회를 주고 싶었다.
“1년은 해당 학교에 다닐 겁니다. 이후엔 본래 가려 하였던 곳으로 전학을 보내겠습니다.”
3년간 조용히 지내게 하고 싶었지만, 한 아이의 실수로 뜻을 접어야 하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됐겠지. 재석의 모습도 확인을 했으니...... 이제 내 아들을 믿자.’
대신 수확은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어떤 아이인지 확실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품에 안고 살아가야 할 소중한 아이지만, 이제는 놓아주려 하였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작게 중얼거리며 자신을 뻔히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가져갔다.
“감사합니다.”
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한강의 의도를 충분히 알아들었다.
“제가 떠난다 하여 제 눈이 멀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건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아들이 다니던 학교이다. 아들의 흔적이 남게 된 이상, 학교의 오물이 깨끗하게 씻겨져 나갈 때까지 신경을 써 볼까 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음이니...... 고인물이 빠지고 새로운 물이 들어올 때...... 그때면 되겠지.’
두 사람은 학교에 오래 머물지 못할 터다. 이번 문제는 모두가 피해를 보지 않은 선에서 조용히 끝내기로 하였다.
***
2011년 가을.
“와, 진짜 예뻐요.”
상습 치역으로 잘 알려진 남원시에 도착을 하였다. 재석은 차량 너머로 보이는 들판을 멍하니 바라봤다.
황금빛으로 물든 벼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이번엔 홍수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야.”
작년과 달리 올해는 다행히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홍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아빠, 저기! 저거 아빠가 그린 거다.”
그때 재석이 손을 뻗어 건물이 들어선 장소로 손가락을 뻗었다.
벼, 낫 등 각종 야채들이 벽에 그려져 있었다. 3.5층 높이로 지어진 건물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단번에 잡아끌었다.
『한리버 그룹, 육성 그룹에 감사를 전합니다.』
길목 사이사이에 현수막이 걸려 잃어버린 보금자리를 되찾아 준 부분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고 있었다.
“이런 게 또 행복이겠지.”
“그런데 이곳에 펜션을 지은 거 정말 괜찮은 거야?”
“매일 도심에 있음 뭐 해. 이런 곳도 놀러와 봐야 재석이한테도 도움이 되지. 그리고 걱정하지 마. 홍수로 인한 피해는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거야.”
정부는 육성과 한리버의 강한 압력에 상습 침수 지역을 조사해 배수 펌프장 및 배수시설을 설치하기로 입을 모았다.
계획된 사업 비용만 1천억 원이 뽑혔다.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을 하는지 보여 주었다.
“정말로?”
“고럼. 내가 거짓말을 할까.”
“그럼, 다행이고.”
이 사업은 먼 미래에 이뤄질 사업 중 하나이다. 실제로 이 사업으로 인해 침수 피해가 대폭 줄어들었다.
엄한 곳에 예산을 사용하지 않고 미리 조치를 취했다면 매년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피해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을 터다.
“아들.”
“웅?”
한강의 부름에 창 너머로 시선을 던졌던 재석의 시선이 옆에 앉아 있는 한강에게 향했다.
“책만이 공부가 아니야. 친구들과 똑같은 교과서를 보며 공부하는 것보다, 너의 눈으로 세상을 직접 보는 것이 교과서보다 더 중요하단다.”
똑같은 교육, 똑같은 생각, 상식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은 부수적인 공부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을 하였다.
한강은 아들이 견식을 넓혀 세상을 지혜롭게 보는 눈을 가지길 원했다.
“똑똑함을 과시하지 말며, 하고픈 말을 잠시 내려두고 사람의 말을 들으려 노력해라.”
그것이 사람의 잠재적 가치를 높여주고 막혀 있던 생각을 열어 시야를 넓게 만들어 준다.
“네!”
아빠의 말은 늘 도움이 되는 아주 좋은 이야기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재석은 한 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머릿속에 몇 번이고 되새겼다.
가을로 뒤덮인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붉은 낙엽을 땅에 떨구어 바닥에 레드카펫을 만들었다.
한강은 아들을 다리 위에 올려 함께 세상을 관찰했다.
윤희는 두 부자(父子)를 행복한 눈으로 바라봤다.
‘매일 지금처럼 지내면 좋겠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을바람의 향을 맡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시간은 흘러......
2014년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