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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229화 (229/237)
  • 229화. 28살, 피는 진했다

    “엄마......”

    으아앙!

    집으로 복귀한 하성태의 울음소리가 주방으로 이어졌다.

    “성태니? 성태야 왜 울어?! 옷은 어디 갔어?!”

    울음 소리에 주방에 있던 여성이 헐레벌떡 나왔다.

    등굣길에 입혔던 옷은 사라지고 난닝구 차림으로 울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여성은 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다.

    “재석이가, 훌쩍. 재석이가 내 옷 버렸어. 으엉.”

    학교에서 보이던 강한 모습과 달리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아이의 모습을 보였다.

    엄마를 찾으며 울먹이는 성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학교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뭐?! 재석이?”

    “걔가 여기 때리고 옷 벗겨서......으앙!”

    급기야 입을 크게 벌려 울기 시작했다.

    “내 이 새끼를......!”

    귀하게 키운 아들이 모진 꼴을 당했다. 여성은 입술을 꽉 깨문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곧 강한 살기가 눈동자에 자리를 잡았다.

    ***

    다음 날 아침.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회사에 도착한 한강의 모습이 무척 밝다.

    “허허, 재석이가 그런 앤 줄 몰랐어.”

    회장실로 들어서며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옷이 좀 더러워졌다고...... 집이 가난하다고...... 거지라 부르며 무시하고 때리는 애를......]

    ‘용서할 수 없었어요’

    환청이 되어 들려와 정신을 때렸다. 고작 초등학생 1학년이 할 법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잘 컸어.”

    아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가장 힘든 게 육아라고 하는데, 단 한 번도 고생을 시킨 적이 없었다.

    “신념이 박힌 아이라......”

    자신이야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나 특별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는 하지만......

    아들의 범상치 않은 모습은 한강을 크게 놀라게 하였다.

    “보통은 넘겠어.”

    자신의 아들이라 높게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하지 않았던가?

    아들의 모습이 딱 그랬다.

    “크큭.”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소리가 더욱 커져 방 안을 때릴 뿐이었다.

    .

    .

    오전 8시 13분.

    “당장 그 새끼 데려와요! 내 아들을 때리고 옷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애새끼 말이에요!”

    분노한 여성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교무실을 때렸다. 표독스러운 얼굴로 눈앞에 서 있는 여성을 강하게 압박했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쩔쩔매며 날 선 시선을 보내는 여성을 진정시키려 노력하였다.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요! 내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당장 그 애새끼를 내 앞으로 끌고 와요!”

    과격한 말에 여성은 곤란한 얼굴로 주변으로 시선을 보냈다. 도움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어떤 누구도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당신, 이 학교에서 잘리고 싶지 않으면 당장 거지새끼를 내 앞으로 끌고 와요. 당장!”

    여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거세게 밀어붙였다.

    하아......

    1학년 3반 담임으로 임명되던 날 느꼈던 기분 좋은 떨림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강수연은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눈물을 부여잡고 교무실을 뛰쳐나가듯 밖으로 향했다.

    드르륵!

    “재석이 왔니?”

    강수연은 참지 못하고 교실로 달려와 재석을 찾았다.

    “부르셨어요.”

    10분 전에 도착해 근처로 몰려든 친구들과 떠들고 있던 재석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석아 잠깐 나 좀 볼까?”

    저도 모르게 아이들의 눈치를 보았다. 교무실에서 느꼈던 트라우마가 뇌 속 깊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네. 선생님.”

    선생을 따라 복도 끝에 자리한 계단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재석아, 선생님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줘.”

    “네.”

    분위기가 어둑한 수연의 얼굴을 해맑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

    수연은 잠시 한강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제 성태를 왜 때렸니? 친구 옷은 왜 버렸고?!”

    교무실에서 느꼈던 감정을 폭발하고 싶었지만, 이제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한 수연은 올라오는 화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도영이가 지나가다 태영이랑 부딪혔어요. 흙이 묻은 손이 성태의 옷에 닿았는데. 성태가 그걸 보고 거지라며 욕하고 도영이를 때렸어요.”

    무슨 일로 자신을 불렀는지 인지한 재석은 어제 있던 일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얼굴엔 조금의 잘못도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보다 옷이 더 중요하다 말해서 버렸어요.”

    오히려 당당하게 수연을 바라봤다.

    “그 말이 정말이야?”

    “네.”

    “......”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수연은 시간이 갈수록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여덟 살이 보일 모습과 표정이 아니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다른 아이들과 너무 다른 모습을 보였다.

    본래 저만한 아이들은 자기 보호 본능을 느껴 울음을 터트리거나 횡설수설하기 마련.

    하지만, 재석은 너무도 태연하고 평온한 모습을 유지했다.

    ‘내 행동이 옳은 선택이 아니란 건 알아. 하지만......’

    수연은 교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성태의 엄마를 떠올렸다. 잠깐 같이 있었는데, 너무도 무서웠다.

    또다시 그런 욕은 먹기 싫었다.

    “재석아, 그래도 친구의 옷을 버리고 때린 일은 나쁜 짓이야.”

    결정을 내렸다.

    그건 재석이 아닌, 성태의 편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도영이와 정확히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른다. 무엇보다 그 사건은 아무 일 없이 끝난 지난 일.

    당장 자신에게 닥친 일에 집중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게다가 성태 어머니는 교장과 알고 지내는 사이야.’

    이것뿐이랴.

    학부모 사이에서도 입김이 상당하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옷을 버린 건, 잘못이라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전 잘못하지 않았어요. 제가 말리지 않았다면 도성인 더 아팠을 거예요.”

    재석은 인정을 하는 부분은 인정을 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갔다.

    “유재석! 그게 뭐 하는 짓이야. 선생님한테.”

    뜻대로 풀리지 않자, 수연은 목에 힘을 주어 재석을 압박했다.

    “왜 제게 화를 내시나요?”

    재석은 정말 모르겠다는 눈으로 수연을 응시했다.

    분명히 아빠는 잘했다며 칭찬을 해주며 약자를 보호하라 말하였다.

    ‘왜? 화나셨지.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재석으로선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죄송한데,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제가 아니라 성태를 혼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어디 말버릇이야.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쳤니?!!”

    저도 모르게 해선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아빠가 그랬어요. 약자는 무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보호하고 도와야 한다 했어요. 그리고 친구를 욕보이는 친구는......”

    따끔하게 혼내라.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하다 생각하는 걸로’ 아빠에게 들은 말을 고스란히 전했다.

    “안 되겠다. 공부도 잘하고 아이들과 잘 지내길래 괜찮은 아이구나 싶었는데, 아니었구나. 나랑 가자. 가서 빌자. 이리 와.”

    말이 통하지 않자, 수연은 강제로 재석의 손목을 잡고 교무실로 끌고 갔다.

    “선생님, 왜 그러는 거예요.”

    끌려가는 와중에 선생에게 이유를 물었다. 무섭다기보다 정말 왜 저러는지 궁금해 계속 물었다.

    “......”

    하지만 어떠한 답도 들을 수 없었다. 수연은 입술을 꾹 물고 걸음을 옮겼다.

    수연의 머릿속은 오로지 현 자리를 지키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떻게 들어온 자리인데, 이대로 잘릴 수 없었다.

    “성태 어머님......”

    교무실에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하성태와 노숙영이 보였다.

    “엄마 쟤야! 쟤!”

    재석을 발견한 성태가 손을 뻗어 지금껏 기다려온 재석을 가리켰다.

    “어쩜, 딱 봐도 자식 교육을 거지같이 한 꼴이 보이네. 보여.”

    아들이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던진 순간, 성태의 엄마인 노숙영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잘못한 것도 모른 채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는 재석의 모습에 노숙영은 자리한 분노를 밖으로 표출했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아주 훌륭한 분이에요.”

    재석의 작은 손이 주먹을 만들었다. 전체적인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분위기로 읽을 수 있었다.

    눈앞에 아줌마가 부모님을 좋지 않게 말하고 있음을. 자신이 저지른 일은 아주 바람직하고 정당한 일이었다. 눈을 치켜떠 노숙영을 노려봤다.

    “저, 저. 무슨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애새끼가 다 있어. 당장 얘 부모 불러요. 당장!”

    굽히지 않고 오히려 눈을 부라리는 꼬라지를 보라. 되먹지 못한 모습에 노숙영은 목에 힘줘 한강의 부모를 부르라 강요를 하였다.

    “저, 태영이 어머니......”

    신호를 줌에도 용서를 청하지 않고 더욱 화를 돋우는 재석의 모습에 수연은 무척 난감했다.

    “재석아, 어른에게 그게 무슨 행동이야.”

    일이 더 커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 사과를 하면 어떻게든 풀릴 거라 생각한 수연은 재석에게 사과를 강요했다.

    “싫어요. 전 잘못한 거 없어요.”

    “재석아.”

    “사과는 저 아줌마가 해야 돼요. 우리 부모님을 욕했어요.”

    옥죄어 올수록 재석은 더욱 강하게 나갔다. 결코 어린아이가 보일 수 없는 기백마저 느껴졌다.

    “아, 뭐 해요. 지금. 부르지 않고. 우리 애가 아끼는 옷을 쓰레기통에 쳐넣고 말이야. 그게 얼마인 줄 알고. 와서 당장 물어내라 하세요. 어서요!”

    교무실은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어떤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아, 쟤 때문에......’

    수연은 재석을 원망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거기까지. 지금부터 이곳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때였다. 어디에서 등장했는지 모를 일단의 무리가 교무실로 난입을 하였다.

    어두운 슈트를 입고 귀에 이어폰을 낀 남자들은 재석과 노숙영, 강수연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 삼촌.”

    노숙영을 노려보던 재석의 눈에 새로운 감정이 생겼다. 그것은 놀라움.

    등교를 할 때도 얼굴을 비추지 않던 경호원 아저씨가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것이다.

    “도련님, 죄송합니다.”

    남자는 재석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른이 보일 법한 자세는 아니었지만, 남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을 하였다.

    “누, 누구......”

    “......”

    “......”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재석과 경호원들 사이의 이야기일 뿐.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강수연을 비롯해 재석을 나무라던 노숙영과 교무실에 있는 교직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모든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이곳은 저희에게 맡기시죠.”

    “......네.”

    재석은 고개를 떨궜다. 부모님이 자신 때문에 욕을 먹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하고 억울하고 미안했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뭣들 해. 도련님을 모셔라.”

    재석의 모습에 온기로 따뜻하던 얼굴엔 한파가 몰아쳤다.

    “우리는 한리버 그룹 경호팀입니다.”

    입술을 꽉 물며, 신분을 밝혔다.

    3년간 숨어 지내기로 했던 이들이 양지로 나와야 했던 이유.

    남자는 노숙영을 노려봤다.

    “......네?!”

    “......”

    “......”

    신분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황당함이 물든 눈으로 남자와 그의 무리들을 응시했다.

    “......아.”

    노숙영은 자신의 아들이 보고 있다는 것도 잊고 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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