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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225화 (225/237)
  • 225화. 27살, 대박 조짐

    파티에는 중국 부호만이 자리한 게 아니었다.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정치 관계자도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고 있었다.

    꽌시를 이루기 위하여 지인을 통해 정치권과 연결하는 모습도 상당수 비쳤다.

    대표적으로 이건호 회장과 이재진이 있었다.

    이재진은 성공리에 승계작업을 마쳤고, 이슈가 터지려 하면 큰 기사를 터트려 방어에 나서고는 하였다.

    “중국인들도 참 호화로운 걸 좋아하는구나. 귀족 문화가 따로 없네.”

    오늘처럼 큰 파티는 처음이었다. 한 명 한 명 옷차림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 처럼 화려하게 치장을 하였다.

    준공식 때만 해도 저렇지 않았는데.

    “뭐, 하긴......”

    한강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윤희도 결코 뒤처지진 않지.”

    [여자의 옷은 자존심이라고. 분명 화려하게 꾸미고 올 거야. 우리 남편 기죽게 할 수 없지.]

    절대 기죽을 일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절대 말리지 마.』

    어쩌겠나?

    여자의 자존심을 운운하니, 살려줘야지.

    “하여튼 여우야. 여우.”

    귀부인들과 만나 거리낌없이 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었다.

    “재석아. 심심하지.”

    한강은 이런 부분에 익숙지 않아 멀찍이 떨어져 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끄덕.

    어린 아들은 아직 이런 곳이 낯설 터다. 하나, 육성의 핏줄과 자신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 이런 곳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썩 내키진 않지만, 필요한 교육이야. 자주 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 어차피 초등학교는......’

    초등학교는 일반 학교로 보낼 참이다. 그곳에서 다른 위치에 사는 아이들의 환경을 맛보고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길 바랐다.

    “유 회장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성룡 씨가 갔다고 풀 죽어 있는 건가요?”

    류이첸이 다가왔다.

    성룡은 스케줄이 잡혀 있어 파티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건 그저 대화를 하기 위한 밑밥에 지나지 않았다.

    “제가 그럴 리 있겠습니까. 잠깐 피곤하던 터라 아들과 쉬고 있었을 뿐입니다.”

    재석에 가져간 시선을 류이첸에게 향했다. 손은 재석의 머리를 만졌다.

    “마침 잘됐는지도 모르겠네. 유 회장님의 부인이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류이첸의 시선이 윤희와 함께 있는 여자에게 향했다.

    “네? 윤희요?”

    한강의 시선은 자연히 그쪽으로 따라 움직였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그곳에 자리해 있었다.

    “누구죠?!”

    그제야 범상치 않은 여성이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귀부인들. 그녀들은 하나같이 30대 여성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경호원들도 그렇고...... 보통이 아닌 건 알겠는데. 누구지?’

    한강의 눈은 답을 원하고 있었다.

    “엄청난 거물이시지요. 어떻게 저리됐는진 모르지만...... 후하이펑 의원님을 아십니까?”

    “후하이펑...... 아니요.”

    전생까지 전부 살았다 하지만, 관심도 가지지 않던 중국의 의원들까지 알 정도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 후?! 후라...... 에이 아니겠지.’

    그러다 연관된 한 사람을 떠올려 봤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강은 가볍게 생각을 지웠다.

    “뭐 당연한 거겠지요. 중국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정도이니. 저분은 후하이펑 의원님의 아내분이고 후하이펑 의원님은 후진타오 주석님의 첫째 아드님이십니다.”

    두둔!

    “......!”

    순간 머릿속에 천둥 번개가 내리치며 뇌를 태워버리는 기분을 맛봤다.

    “중국 주석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니, 그런 대단한 분이 왜 여기에......”

    “사실 후하이펑 의원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

    “유 회장님을 만나고 싶다 하여 자리를 만든 겁니다.”

    “......어쩐지.”

    계획에도 없던 파티를 갑자기 정해서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원인이 지금 자리에서 밝혀졌다. 아주 납득이 갈 만한 이유였다.

    “가야겠죠.”

    무시 못 할 거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할 거라면 무조건 만나야 할 사람이었다.

    “재석아, 경호 아저씨랑......”

    “아드님과 함께 가시죠. 의원님 자녀분도 회장님 아드님과 동년배입니다.”

    “그...... 런가요. 그렇다면.”

    이거 괜히 께름칙하다.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재석아, 아빠랑 저기로 가보자.”

    “네.”

    재석은 제법 의젓했다. 옷을 쫙 빼입어 그런지, 교육을 잘 받은 도련님 티가 확 났다.

    한강은 그런 재석을 한차례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손을 잡고 류이첸의 뒤를 따랐다.

    “의원님 데려왔습니다.”

    거부라 말하기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후하이펑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뭐 당연한 건가. 아버지가 왕이나 다름없는데.’

    충분히 수긍되는 부분.

    “유한강입니다. 류이첸 회장님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들어봐야 오기 전 들은 게 전부지만, 예의상 말에 살을 붙였다.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어찌나 류 회장님의 칭찬이 자자 하던지. 정말 실물이 더 멋진 분이시네요.”

    후하이펑은 한강의 손을 잡으며 호감의 눈빛을 보냈다. 외모부터 목소리까지 완벽한 남자였다.

    “좋은 말만 들어 쑥스럽네요. 재석아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중국어는 모르지만, 인사 정도는 알려 주었기에 재석은 배운 대로 중국어로 인사를 하였다.

    “하하, 안녕. 도련님.”

    예의 있게 인사를 하는 작은 아이의 모습이 참으로 귀엽다. 엄마와 아빠의 우수한 유전자를 몰려 받은 게 외모에서부터 드러났다.

    “올해 몇 살인가요?”

    재석의 나이를 물었다.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올해 한국 나이로 7살입니다.”

    “오, 내 막내딸과 같군요. 메이린.”

    후하이펑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그곳에 붉은 드레스를 입은 작은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주변 눈치를 보던 후메이린의 눈이 아래로 내려갔다. 아이답지 않은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예쁜 따님이 있을 줄이야. 참으로 귀엽습니다.”

    “하하, 회장님의 아드님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런 말은 넣어 주시지요.”

    저 말은 그저 빈말에 지나지 않았다.

    절대 바로 받아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게 하고 어른끼리 대화를 나눠 보도록 하지요.”

    한강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럴까요.”

    ‘내가 목적이 아니었구나, 재석에게 있는 거였어.’

    그런데 왜?!

    의문점이 들었지만, 생각은 길게 이을 수 없었다.

    “재석아, 친구랑 놀고 있어. 아빠는 아저씨들하고 이야기하고 올게.”

    주변에 경호원도 있고, 수행원들도 상당하다. 안전은 보장이 되었다 여기며 함께 있던 사람들과 후하이펑의 뒤를 따랐다.

    “난 후메이린이야, 반가워.”

    입에서 영어가 나왔다. 제법 유창하다. 교육에 얼마나 열을 올리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응.”

    그건 재석도 지지 않았다. 여타 재벌 가문과 다르게 교육열은 약한 축이었지만, 영어 교육에는 열과 성을 다하였다.

    [다른 건 몰라도 영어는 필수야!]

    목소리를 높이던 윤희가 떠오른다.

    “난 유재석.”

    어색한 장소이지만, 사람에 대한 공포심은 없었다. 한강을 닮은 것도 있지만, 환경이 그리 만들었다.

    재석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후메이린과 인사를 하였다.

    “......너 잘생긴 거 아는구나?”

    후메이린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어투로 느낀 점을 필터 없이 입 밖으로 내보냈다.

    “응.”

    그걸 당연시하게 주워 먹는 재석이었다. 재석의 몸에 개그 욕심이 감돌고 있었다.

    “......와.”

    후메이린은 순수하게 감탄을 하였다. 자신을 보고도 표정에 어떤 변화도 없이 당당하게 얘기하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왜?”

    집에서는 볼 수 없던 능글거리는 시선이 후메이린에게 향했다.

    “진짜 대박이다. 너처럼 뻔뻔한 애 처음 봐.”

    “나도 너처럼 예쁜 앤 처음 봐.”

    “그 말이 아니잖아!”

    처음 본 아이지만, 후메이린은 그걸 잊은 채 소리를 꽥 질렀다.

    “그 말 듣고 싶어서 내게 그런 말 꺼낸 거 아니었어?”

    “......너 이상해.”

    “뭐가?!”

    “우리 할아버지 같아.”

    “내가?”

    재석은 작게 충격을 받았다.

    ‘아빠가 이러면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그랬는데...?!’

    한강과 함께 지내며 자연히 받아들인 것들이 무쓸모가 되어 버렸다.

    “응. 말하는 것도 그렇고...... 이상해.”

    “너도 이상해.”

    개그감으로 충만했던 마음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대신 다른 마음이 머릿속을 채웠다.

    “난 안 이상해.”

    “이상해.”

    “이씨. 안 이상하다고.”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싶어 손으로 얼굴을 만져본다. 손에 집히는 건 아무도 없었다.

    “그럼 왜 나한테 안 반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재석은 한마디를 툭 내던졌다.

    “......”

    그 순간 후메이린은 어이없는 눈이 되어 재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작은 입술을 떼어 말했다.

    “......”

    후메이린은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둘은 대화 같지 않은 대화를 하다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오로지 재석만이 여유로운 웃음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

    쉬이이이이이이이.

    중국 일정을 마치고 한국 비행기에 올랐다.

    “의원이 뭐래?”

    잠든 재석을 빤히 바라보다 한강을 바라봤다.

    “별말 없었어.”

    한강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얼굴은 그게 아닌데. 뭔데 그래.”

    윤희가 계속해 물었다.

    에휴......

    계속되는 물음에 한강은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시야로 파란 하늘이 들었다.

    “이번 모임 말이야. 재석이를 보기 위한 파티였더라.”

    슬며시 작은 주제부터 꺼냈다.

    “재석이? 왜?!”

    한국이라면 모를까, 중국에서도 권위 있는 가문에서 왜 재석에게 관심을 보였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쪽 막내딸 봤지?”

    “응.”

    “그쪽 딸과 같은 학교에 보내자는 거야.”

    “뭐어?!”

    남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중국에 대한 악감정은 없지만, 아들을 중국으로 보내기는 싫었다.

    “그래서 보낼 거야?”

    인상을 풀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미쳤어. 절대 싫지. 우리가 뭐 부족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재석이는 어떻게 키울 거라고.”

    휴우......

    크게 안도했다.

    “내가 왜 모국을 두고 중국으로 보내. 뭔 짓을 당하려고.”

    유학을 나쁘게 보는 건 아니다. 자신이야 어쨌든, 어린 아들을 홀로 해외로 보낼 생각은 없었다.

    “맞아. 우리처럼 어릴 때 보내진 말자.”

    혼자 미국에서 생활하던 시기가 많이 외로웠나 보다. 어쩌면 잘못 만난 남자 때문이 아닌 외로움에서 찾아온 비극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강은 윤희를 꼭 안아주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곤히 잠들어 있는 아들에게 향했다.

    자는 모습이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재석아, 건강하게 지금처럼만 자라다오. 엄마와 아빠는 크게 바라는 건 없단다.

    사랑한다 재석아.

    끼리릭, 끼릭.

    세 가족이 잠들어 있는 비행기는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활주로에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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