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27살, 대박 조짐
[한리버 그룹의 예상은 적중했다. 도박이라 말할 수 있는 투자를 감행하며 1조 원이 넘는 수익을 이뤄냈다.]
└ 조아현: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건가요......
└ 이새윤: 진짜 부러운 삶이다...... 어떤 기분일까......
└ 도준석: 갸악!
일본을 도왔다는 소식보다 사람들은 일본에서 벌어들인 ‘돈’에 집중을 하며 부러움을 표시하였다.
“이러다 미운털이 박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기사를 읽은 한강은 김동진 실장 대신 업무를 떠맡고 있는 김소영에게 시선을 던졌다.
“미움보다 선망의 대상으로 취급받고 계십니다.”
김소영은 무뚝뚝한 얼굴로 한강의 생각을 정정해 주었다.
“하하, 그럼 다행이고요.”
직원들과 있을 땐 종종 웃는 모습을 보이는 소영이 자신과 단둘이 있을 때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에 살짝 웃음기가 감돌았다.
“일본 피해에 상당히 많은 이들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지윤이도 일본 측에 3억을 기부했고, 그 외 소속 연예인들도 비슷한 금액대로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알리기 위한 행동도 있고, 진실된 마음으로 선행을 베푸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크고 작은 이유가 하나로 만나 어려움에 빠진 이들에게 도움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분들도 바쁘네요. 국내에 일본에. 돈이 얼마나 있다고.”
“......회장님만큼은 아니지만, 그만한 자금을 움직일 능력은 된다 봅니다.”
오늘따라 무척 딱딱하게 구는 소영이다.
“그래요. 그렇지요. 하하. 이게 말을 잘못했네요.”
확실히 지금 거론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몇십억은 벌어들이는 이들이다.
걱정할 이유 따위 없었다.
“......”
심술궂어 보이는 소영을 슬쩍 응시하다, 한강은 결재판에 적힌 종이에 펜을 가져갔다.
‘한리버’라 적힌 사인이 멋들어지게 결재란에 채워졌다.
“여기요. 그리고 혹여 김 실장님께 부족한 게 있으면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세요.”
결재판을 건넸다.
“네.”
살짝 웃음기가 감도는 소영이다.
‘상사를 굴린다고 토라져 있었군. 참 직원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니까.’
원인을 파악한 한강은 씁쓸하게 웃었다. 소영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이가 동진이었는데, 지금 보니 그의 빈자리가 제법 크게 다가왔다.
‘빨리 끝냈으면 좋겠네.’
한강의 머릿속은 일본도 돈도 아닌 동진으로 채워졌다.
***
한리버 전시관.
“회장님의 재가가 떨어졌습니다. 오늘부터 레고 부서는 특별 부서로 나뉘게 됩니다.”
별다른 사무실도 없이 홀로 있던 직원.
김동진은 전시관장 주아린에게 결재된 종이를 건넸다.
전시관은 유한강의 특별관리를 받고 있는 만큼 최종 결재자로 한강이 껴 있었다.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방향이라......”
종이에 적힌 일부분에 시선을 가져갔다.
“말 그대롭니다. 회장님은 전시관도 예술의 범위를 넓힐 필요를 느끼셨습니다.”
“예술의 범위를 넓힌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게 들리네요.”
“특정 인물로 예술품의 가치가 오르는 게 아닌, 기술적으로 사람들을 활용해 매출을 늘리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물론, 이 의견은 어디까지나 동진의 의견이었지만, 결재가 된 이상 이건 한강의 의지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설계부서와 디자인 부서 등을 한팀으로 묶어 레고를 제작해 판매를 하시겠다는 건가요?”
납득이 가지 않는 눈치이나, 결재가 난 이상 불만을 표시할 명분이 없었다.
그저 위의 지시를 따를 뿐이다.
“그렇습니다. 예전이야 어떻게 활용을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시대가 변하는 만큼 전시관도 변화를 거치는 게 좋다 봅니다.”
“인원은 얼마나 받을 생각이죠?”
“그리 많은 인원은 필요하다 보진 않아요. 디자인, 설계, 조립, 지원 정도를 떠올리면 지금 있는 직원까지 일곱 명은 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무실 크기는요?”
“부서 특성상 좀 넓었음 합니다.”
관람객이 드나드는 곳에서 일일이 작업을 할 수는 없을 터다.
그렇다고 공간을 두 곳이나 쓰는 것도 아직은 시기상조. 그래서 결정한 부분이 넓은 사무실을 활용하자는 게 김동진의 생각이었다.
“실장님은 언제까지 여기에 계실 건가요?”
동진은 전시관으로 파견 나온 상태. 회사에 돌아가지 않고 상주하고 있었다.
“자리가 잡히는 걸 보고 떠날 겁니다.”
“그러시군요. 부서가 생긴 이상 부서장도 뽑아야 할 텐데, 생각해 둔 분은 계시고요?”
“그 부분은 아직 생각해 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있을 때야, 잠시 맡겠지만. 이건 어디까지 잠시겠지요. 혹 추천할 만한 분이 있다면 해주셨음 합니다.”
인사권은 관장에게 있었다지만, 실질적인 주인은 어디까지나 한강이었다.
그의 뜻에 맞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채용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관장에게 추천을 받는 것은 그의 위신을 세워주고자였다.
“한 사람 있기는 한데,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괜찮습니다. 방향을 틀 뿐이지 예술적인 견해가 높으신 분이 책임자 자리에 앉는 게 맞다 봅니다.”
“그렇다면......”
“대신.”
무언가 얘기하려던 주아린은 말을 다 잊지 못하고 입술을 닫았다.
동진이 중간에 끼어든 탓이다.
“관장님의 가족이나 족보로 이어진 관계는 안 됩니다. 회장님은 그런 추천은 바라지 않으십니다.”
한강에게 물어보지 않았지만, 동진은 그 부분을 경계했다. 언젠간 한리버도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가 되겠지만, 작은 기업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들어와 물을 흐리는 건 원하지 않았다.
“...... 그리할게요.”
아무래도 가족 중 한 사람을 추천할 생각이었던 거 같았다. 동진은 그걸 알면서 모른 척 넘겼다.
‘사람 마음이 다 그런 거니까. 그렇다고 내가 너무 나서는 것도 좋진 않지.’
관련된 사람도 아닌 이가 권력만을 믿고 바꾸려는 건 좋지 못하다.
적당히 타협해 중간을 지키는 게 기업이 오래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알겠어요.”
“네, 이야기는 다 끝난 거 같으니, 저는 직원을 만나봐야겠군요.”
말을 끝낸 동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일하게 있는 남자 직원을 만나러 갈 차례였다.
“아, 이 박카스 하나는 제가 챙겨 갑니다.”
***
비전 없이 돈만 많이 주는 부서가 바뀐다고 한다. 듣자 하니 직원도 늘어날 거란 소리도 있었다.
“어떻게 바뀔까?”
매일 심심한 시간을 보내고 타 부서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해 식사는 혼자 한다.
어떤 직책도 없는 사람이 결재를 받으러 가는 것도 고역.
그런 상황에 정상적인 부서가 생기고 함께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긴다는 사실에 괜히 기분이 들떴다.
“언제 나올까?”
조립을 하면서 회장님의 비서실장이라고 했던 사람이 간 방향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언제 오나 세월아 네월아 기다렸다.
“왔다.”
그때 저 먼발치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누가 봐도 있어 보이는 남자가 시야로 들어왔다.
“차형주 씨.”
나온 이는 바로 김동진 비서실장이었다. 유한강 회장의 최측근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 그저 일개 평범한 직원에 지나지 않는 차형주를 불렀다.
“네!”
일하고 있던 차형주를 허리를 쭉 펴고 급히 일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것과 달리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저와 미팅을 할 수 있을까요.”
“아, 네.”
몸이 굳으니 입도 굳었다. 차형주는 김동진이 걷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전 그저 차형주 씨의 생각을 듣고자 자리를 가진 거니까요.”
“......아, 네.”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리버 그룹에 속한 계열사 대표들도 어려워하는 이가 바로 김동진인데.
일개 병졸에 지나지 않는 자가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유한강이 특이한 케이스였을 뿐이다.
“일단 이걸 드시죠. 긴장을 풀기에 적당할 겁니다.”
나오는 길에 들고 온 박카스를 건넸다.
“자, 잘 마시겠습니다.”
벌컥벌컥.
차형주는 단숨에 박카스를 입 안으로 털어냈다. 산소공급을 박카스로 대신하는 모습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며칠 버티지 않고 퇴사를 했다 들었습니다.”
박카스를 다 마시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걸 보고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
끄덕,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걸 볼 때면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일반적인 질문에 지나지 않지만, 안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음...... 그게.”
차형주는 동진의 눈치를 살폈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에휴......
소리 없는 한숨이 몸 안으로 뻗어갔다.
“어떤 말도 좋아요. 솔직하게 얘기해 주세요. 그래야 앞으로 레고 부서를 어떻게 운영할지 정할 수 있습니다.”
전시관에서 레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이는 당연 실무를 보고 있는 차형주였다. 그런 만큼 차형주가 경험하고 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듣고자 하였다.
“제, 제 얘기가요?”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생각을 참고로 하여 부서를 만들겠다니......
제발, 그건 아니라고 막고 싶었다.
“그래요. 전 형주 씨의 이야기를 듣고자 이곳에 있는 겁니다.”
한강과 마주하고 있던 동진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동안 숨겨왔던 리더의 눈빛이 동진의 눈에서 드러났다.
“네...... 그러니까. 또 그만두는구나 했어요. 누군가 비전이라도 제시하면 어떨까 싶기도 했고......”
“그런데 형주 씨는 남아 계시네요. 이유가 있나요?”
그간 채용했던 사람만 수어 명. 모두 짧게 근무하고 그만둔 사람들이다.
정확히 수를 내릴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일일이 세어본 적이 없기에 당장 수를 말하기 어려웠다.
“레고를 좋아하기도 했고,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눅 들어 있던 목소리에 힘이 깃들었다.
호오?
김동진의 눈빛이 빛났다.
수많은 사람을 봐왔다. 그중에서 머릿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특별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눈이 빛난다는 점.
이건 신에 대한 신념이 강한 이들에게 보이는 빛이었다.
그리고 저런 눈빛을 지닌 이들은 늘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굽어봤다.
자신들의 색을 지닌 자들.
‘회장님도 작품 활동을 할 때면 저런 눈빛을 하고 계셨지.’
물론, 유한강 회장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당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한강이기에 비교 대상으로 한강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럼 이 분야에서 형주 씨가 최고라 생각하고 계신가요?”
“네. 다른 건 몰라도 이 분야에선 제가 최고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증명을 하라면 당장 증명을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레고와 함께였다. 집에는 자신이 직접 구상해 만들어 놓은 레고 모형도 있었다.
‘역시 보통은 아니야. 예술가들은 모두 저런 모습을 지녔나.’
김동진의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잘 들었습니다. 이제 특별 부서를 어떻게 만들지 대충 계획이 섰습니다. 당신을 기술팀장으로 채용을 하도록 하지요.”
“네?!”
“월급은 지금보다 오를 겁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저기......”
“레고 분야에서 최고라 하지 않았나요?”
“그건 그렇지만......”
“그럼 하세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이쪽 일도 모르는 사람에게 좋은 자리를 줄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명함입니다. 형주 씨가 생각하는 부서를 만들어 보세요.”
주아린에게 부서장 자리를 추천하라 일렀지만, 중간 실무자는 자신이 정하고 싶었다.
대상은 모두가 퇴사할 때 끝까지 남아 있던 눈앞의 남자. 차형주에게.
“평생을 직원으로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제 눈을 믿습니다. 당신이라면 잘하리라 봐요. 부탁드리죠.”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 해보려 하였지만, 생각을 바뀌었다. 차형주라면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봤다.
그에게 기대를 걸어 보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