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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220화 (220/237)
  • 220화. 27살, 대지진에 배팅한다

    “한리버 유한강 회장 전화입니다.”

    세 시가 되어 가는 상황, 안으로 여성이 들어왔다.

    “유한강이?”

    가이에다 반리의 눈썹이 꿈틀 거렸다. 내키지 않을 때 나오는 반응이었다.

    “오늘 저녁 비행기로 일본에 도착한다 합니다.”

    “그래서?”

    “의원님과 독대를 하길 원한답니다.”

    “허, 웃기는군.”

    가이에다 반리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좋아서 웃는 게 아닌 너무 어이없어 웃음이 바람이 되어 흘러나온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내가 안 본다겠다면?”

    “한리버에 숟가락을 꽂은 의원님들이 의원님을 귀찮게 할 거라 봅니다.”

    숟가락을 꽂았다는 건, 로비를 받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인간이 없어.”

    아무리 일본 정부에서 입김이 강하다 한들, 다수의 의원들을 상대한다는 건 무척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었다.

    “보겠다고 전해.”

    답을 정해놓고 묻는 그를 살짝 노려보다 시선을 돌렸다.

    “네.”

    날이 선 눈빛에도 무표정으로 일관한 남자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등을 돌렸다.

    “저놈도 아들이라고......”

    답답한 가슴을 탁탁 치며 의자를 젖혀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지친 머리에 휴식을 줘야 할 거 같다.

    ***

    “저쪽에서 연락 왔습니다.”

    저녁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도착해 호텔에 투숙 중인 한강에게 수행원이 일본 정부의 소식을 들고 왔다.

    “만나자던가요?”

    “내일 11시에 이쪽으로 오겠다 합니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겠네요.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푹 쉬라 이르세요.”

    수행원이 밖으로 나갔다.

    이제 혼자 남게 되었다.

    “2월 23일이라.....”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한강의 시선은 도호쿠 지역 태평양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본을 두들기고 세계 증시에 큰 영향을 끼칠 대재앙.

    생각대로 일이 풀렸음 좋겠다.

    ‘원전이 터지면 한국에도 결코 좋지 않아.’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였다면 지금만큼 큰 신경은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행히도 일본은 한국에서 가까운 국가 중 하나.

    비행기로 30분이면 닿는 국가가 일본이었다.

    전 역사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불러왔다.

    전원 및 냉각 시스템이 파손되면서 핵연료 용융과 수소 폭발로 이어져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밖으로 누출이 되었다.

    덕분에 주변 바다는 방사능에 노출되어 크게 오염이 되어 한국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자자.”

    그래, 단순히 쓰나미로 피해를 보고 끝났으면......

    이리 나서지 않았을 터였다.

    한강은 졸린 눈을 비비며 침상에 몸을 눕혔다.

    어두워진 방 안엔 째깍째깍 시계 소리만이 들려왔다.

    따라라라.

    홀 안에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이쪽으로.”

    전형적인 일본인 인상을 한 젊은 남성의 뒤를 따라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경호가 상당하네.’

    일본에서 얼마나 힘을 쓰는 양반인지 주변에 자리한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나도 충분히 경호원을 데려오길 잘했어.’

    경호원 수로만 따지면 한강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경호원들은 서로의 존재감을 과시하듯 어깨에 힘을 줘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묵직한 공기가 복도를 채웠다.

    “무슨 일 있으면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럼 다녀오지요.”

    경호원들을 뒤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본의 머리로 유명한 의원님을 뵙게 돼 영광입니다.”

    한강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으며 가볍게 인사를 하였다.

    “한국에서 잘 나가시는 분이 먼 일본까지 넘어와 나를 보자 한 이유가 궁금하군요.”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로 올렸다. 다리를 꼰 자세로 한강을 쳐다봤다.

    눈에는 불만으로 득실하다.

    “일본을 위하여 나아가 우리 한국을 위하여 의원님께 부탁을 드릴 게 있어 독대를 신청했습니다.”

    한강의 얼굴은 평온했다. 내리누르는 압박감조차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겼다.

    어떤 타격도 받지 않았다.

    “우리 일본과 한국에 도움이 될 만한 거라, 과연 그게 뭘까요?”

    솔직히 궁금하지 않았다. 마주하고 싶은 생각조차 없던 자리에 어쩔 수 없이 나왔다.

    마음속은 단 1초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일본이 곧 겪게 될 위기를 최소한의 손실로 극복하는 방법입니다.”

    “......하, 어이없군. 혹시, 유 회장님도 대지진이 발생해 쓰나미가 일본을 덮친다...... 뭐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까?”

    가이에다 반리는 들려온 말에 어이없는 시선을 던졌다.

    ‘역시 시간 낭비였어. 빌어먹을.’

    망할 놈들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돌아가면 한리버로부터 로비를 받아 뒤를 봐주고 있는 놈들을 밝혀내 참교육을 해주리라 각오를 다졌다.

    “네, 맞습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할 얘기는 없을 거 같군요.”

    인상을 팍 쓰며 꼬았던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면 의원님은 크게 후회하게 될 겁니다.”

    반대로 한강이 다리를 꼬았다. 인상을 쓰게 만들 행동임에도 한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후회?”

    문으로 이동하던 걸음이 멈췄다. 얼굴에 깊은 빡침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네, 후회요. 어쩌면 민주당이...... 아니지. 의원님이 총리직에 도전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신기할 정도로 권력욕이 강했다. 최종적으로 앉을 자리는 국가의 모든 걸 맡아 돌볼 수 있는 자리. ‘대통령’에 대한 도전을 최종 목표로 두었다.

    한강은 그 부분을 살며시 긁었다.

    “이제는 되도 않는 소릴 하는군.”

    “전 말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빈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저의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의원님은 일본의 영웅이 될 겁니다.”

    어쩌면 아베 총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가거나, 총리직에 역사보다 늦게 오를지도 모르리라.

    ‘일본의 권력 구도가 바뀌면 더 좋고.’

    아베 신조가 일본의 총리가 되면서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반도체 시장에 적신호를 보낸 인물.

    덕분에 불매 운동으로 번지고 양국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분명 일본이 우리나라에 저지를 죗값은 평생을 가도 갚지 못할 일이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일본은 필요악이요 우군이야.’

    중국과 러시아, 북한을 견제하는 데 일본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가까운 바다에 일본이 없었다면 한국은 지금의 평화를 유지하기 어려웠을지 몰랐다.

    반대로 러시아, 미국, 중국이 있기에 일본이 멋대로 설치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쨌든 한국에 있어 일본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

    “국민을 구한 영웅, 일본 바다를 지킨 정치인. 이 정도 소재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생각지 않습니까?”

    더는 움직이지 않고 빤히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마주 바라봤다.

    눈에서 욕심과 야망을 엿보았다.

    표정은 숨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눈은 진실의 거울.

    구미가 당김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제 말을 아직도 믿지 못한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전 일본의 환율이 지진으로 인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막대한 자금을 선물에 걸지요.”

    일본에 투자한 대부분의 자금을 회수해 상당한 차익을 실현하였다.

    투자하는 돈은 차익에서 가져온 이익금이 될 것이다.

    잃을 일은 절대 없지만, 설사 잃는다 하더라도 손해를 볼 일도 없었다.

    이 돈은 가이에다 반리를 설득하는 데 사용될 아주 좋은 수단이 되리라 봤다.

    “대체 그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궁금하군.”

    드디어 가이에다 반리가 반응을 보였다. 그의 눈에 불편함과 기대가 부딪히는 복잡함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건 모든 조사를 마친 확신에서 나오는 겁니다.”

    “유 회장님처럼 모든 걸 조사하고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거지 될 사람은 없겠군요.”

    설사, 한강의 말이 맞는다 하더라도 맞으면 맞는 대로 문제였다.

    강하게 부정하며 자리를 벗어나려던 가이에다 반리의 이마에 골이 생겼다.

    “의원님껜 어떤 손해도 없을 건데요. 제 말이 맞든 틀리든. 손해 보지 않는 도박을 해보는 정도야 쉽지 않겠습니까?”

    한강의 말이 맞으면 영웅이 될 것이고, 틀리면 이대로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반대로 한강은 실패 시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뿐더러, 대망신을 당하게 된다.

    어찌 보면 일본 입장에선 아주 좋은 일이었다. 한국의 경제를 떠받들고 있는 기업의 손해는 주요 뉴스로 다뤄지게 될 터다.

    “......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랍니까?”

    그가 움직였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모습이다.

    “아주 탁월한 결정이십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3월 15일까지 가동을 멈춰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변인들을 최대한 멀리 대피시켜 주셨음 합니다.”

    일본 국민을 돕는 것 또한 어쩌면 환생자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한강은 이번 일을 확실히 매듭을 짓고자 하였다.

    “그리고......”

    한강의 눈빛이 변했다.

    무언가 바라는 눈빛.

    그의 눈빛에도 욕심이 자리했다.

    ‘망할 해양법이 바뀌지만 않았어도......’

    일본과 국제사회에 어떤 긴밀한 협상이 있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말도 되지 않는 기습적인 국제해양법안 변경은 우릴 것을 빼앗기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이 가난하고 기술도 없던 시절, 기름이 나는 7광구를 발견하게 된다.

    일본은 다가와 모든 걸 지원할 테니 50%씩 지분을 나누자 한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제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28년까지 계약서를 작성하고 두 국가는 함께 7광구 개발에 들어가게 되는데, 바뀐 국제해양법에 따라 일본은 개발을 멈추고 2028년까지 버티게 된다.

    결국......

    ‘단 한 푼도 이득을 취하지 못하고 모든 게 일본으로 넘어가지.’

    아주 씁쓸한 기억이었다.

    “혹여 총리가 되시거나 힘이 생긴다면 7광구 개발을 계약한 대로 이행해 주셨음 합니다.”

    “......?!”

    “대지진이 발생하면 일본은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될 겁니다. 그리된다면 많은 국가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겠지요.”

    “어이가 없군.”

    “어이가 없더라도 뒤로 미루던 개발을 감행하게 되면, 잃어버린 일본의 영광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될 겁니다.”

    물론 한국도 수혜를 받아,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게 될 터다.

    ‘당연한 걸, 당연한 걸로 거래를 하려니 속이 뒤틀리네. 최대한 많은 돈을 투자해 일본의 자금을 털어먹자.’

    동시에 손해 본 기분을 투자로서 메꾸려는 욕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확실히......”

    한국과 개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걸리지만, 이 정도면 시도를 해봐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삐뚤게 보던 시선이 바로 잡혔다.

    “좋습니다. 유한강 회장, 당신과 손을 잡아 보기로 하지요.”

    고개를 끄덕였다.

    정치꾼들은 세계 어디로 가도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철판이 매우 두꺼웠다.

    가이에다 반리는 문으로 향하던 걸음을 돌려 한강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잘 부탁하지.”

    “우리의 거래가 잘 이뤄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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