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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219화 (219/237)

219화. 27살, 대재앙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네요.”

“아무래도 혼자 준비를 하다 보니 그런 듯 보입니다.”

“또 퇴사라도 했나 보네요.”

“그런 걸로 보입니다.”

아무리 튼실하고 돈을 많이 준다 하더라도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면 손을 놓기 마련이다.

솔직히 한리버 전시관에서 레고 쌓기로 미래 비전을 보기엔 쉽지 않았다. 관장까지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리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단순 노무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맞추기만 할 줄 안다면 고학력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업무였다.

“그건 좀 곤란한데요.”

“아무래도 레고 블록을 맞추는 게 끝나면 정리해고가 될 수 있는 위험요소가 강해 끝까지 버티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월급을 보고 입사를 했다가 상세한 업무 내용을 보고 바로 퇴사를 하였다.

“정말 곤란하군요. 그렇다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한강의 생각이 깊어졌다. 빠져나가는 원인을 알고 있다면, 그에 맞는 근무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한강에게 있어 전시관에 해당되는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혹시 실장님이 생각해 둔 건 없으신가요?”

슬며시 동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강은 동진을 빤히 바라봤다.

“음......”

그러자 동진의 얼굴에도 고민의 빛이 떠올랐다.

‘이거 어쩌면 괜찮겠는데. 자연스럽게 힘을 실어 줄 수 있겠어......’

한강은 이번 기회를 이용해 동진에게 힘을 실어주려 하였다. 어처구니없는 안건을 가져와 고집대로 하다 취소를 하겠다는 것보단 이게 훨씬 좋아 보였다.

“당장 방법을 떠올리지 않아도 좋아요. 여유 있게 생각해 보세요.”

은근슬쩍 동진에게 일을 넘겼다.

자신이 생각해 일을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간 동진의 말을 무시하고 일을 진행하면서 상처를 받고 있으리라 봤다.

한강은 이번 일을 동진이 해결하기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방금 한 가지 대안을 떠올렸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동진의 입술이 떨어졌다.

눈빛이 전과 좀 달라 있었다.

“말해 보세요.”

그것을 느낀 한강은 기대 어린 시선으로 동진을 응시했다.

“문제가 있는 건, 회사에서 나서서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 저도 공감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인데...... 전시관 특성에 맞게 회장님께서 직접 디자인을 하여 레고를 만드는 것이 아닌, 특별 부서를 신설해 그들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라 하면 어떨지 싶습니다.”

지금껏 한강 직접 디자인을 하면 레고사에 발주가 들어갔다. 덕분에 현장에 있는 사람은 제작된 레고 블록을 가지고 도면을 보고 껴 맞추기만 하면 되는 아주 단순 업무만을 하였다.

“음, 실장님 말씀은 전문성을 키워 비전을 제시하자 이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건물 규모의 한계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판매를 통해 전시관의 매출을 발생시킨다면 더욱 효과적으로 전시관을 운영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한강의 일 중 하나를 빼오는 행동이다. 김동진의 얼굴에 긴장감이 올라왔다.

‘제법 괜찮은데, 레고는 그저 내 작품 아이디어에 불과해. 아이러니하게도 내 일을 줄이면서 전시관에 어울리는 시스템이 되어 버렸네.’

김동진의 걱정과 달리 한강은 매우 흡족해하고 있었다. 어떤 의견을 낼지 기다렸는데, 기대 이상의 답을 찾아 주었다.

“이야, 기막힌 생각인데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한강은 과장된 몸짓으로 김동진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하였다.

한강은 김동진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기로 하였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의견이 있다면 부담을 가지지 말고 언제든 적극적으로 말해 주세요.”

한강은 김동진을 격려하고 밖으로 내보냈다.

저벅저벅.

밖으로 나온 김동진은.

꽈악.

주먹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옙쓰!”

팔을 ‘ㄴ’으로 꺾어 위아래로 힘껏 내리치며 기합을 토했다.

“됐어. 드디어!”

이번에도 돈을 좇는 방식의 의견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어쩌나 걱정을 하였는데, 의견이 즉각 받아들여졌다.

짜릿함이 주먹을 통해 심장에 머물렀다.

***

2011년 2월 셋째 주.

“뭐라도 발견했나요?”

배 안에서 화면에 뜬 해저 지형을 지켜보는 노구치 랜 곁으로 노지우가 다가왔다.

“이걸 보시죠. 여기 이 지형을.”

“거기가 어쨌는데 그럽니까?”

노구치 랜이 가리킨 화면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그곳에 해저의 지형을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다른 곳에 비해 조판 경계가 매우 울록볼록한 표면이 많습니다. 진짜 이곳에서 지진이라도 발생한다면......”

“상상하기도 힘든 대지진이 발생할지 모르겠군요. 유 회장은 어떻게 이런 장소를......”

이야기를 하다 둘의 표정이 삽시간에 차갑게 굳었다.

긴 시간 축적된 응력은 바다를 크게 출렁이게 만들 터. 그렇다면 이걸 의미하는 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란 소리가 됩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유 회장은 아주 정확한 위치에 우리를 보내 조사를 하게 했다는 것 자체가 말입니다.”

‘정확히 여기다’ 알려준 건 아니었지만, 발생 가능한 장소를 짚어 준 것만도 대단한 것이었다.

“두 분 다 무슨 얘기를 하고 계시기에 그리 심각하십니까?”

제미스 드와이트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기묘한 분위기를 느끼고는 궁금한 시선을 둘에게 던졌다.

“이걸 보면 당신도 이해가 될 겁니다.”

노구치 랜은 자리를 비켜 지금껏 조사한 자료들을 펼쳐 그에게 공개를 하였다.

“......어쩌면...... 정말로 유 회장이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료를 보며 둘의 이야기를 들은 제미스 드와이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너무 허무맹랑한 말에 믿을 수 없었지만, 지금껏 조사한 걸 토대로 비추어 볼 때 유한강 회장이 말한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대폭 올랐다.

“일본 정부에 말해야겠습니다. 원전 가동을 최소한으로 하고 이에 맞는 방비를 지금부터라도 해야 합니다.”

셋은 심각성을 인지했다. 인간은 자연 앞에 무력하다.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재앙은 피해가지 못한다.

모처럼 셋의 의견이 모아졌다. 셋은 육지로 향했다.

***

“아니 이걸 기사로 내보낼 수 없다는 그건 무슨 소립니까!”

한리버 네이컴을 통해 세상에 알리려던 계획에 장벽이 생겼다.

“정부에서 국민들의 혼란을 일으킬지 모르는 정보는 내보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네이컴 일본지부 직원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허......”

노구치 랜은 어이가 없어 직원을 멍하니 바라봤다.

“특히, 노구치 랜 박사님과 관련된 내용은 모두 지우라더군요.”

“......”

이제는 입마저 벌렸다.

이 무슨 어이없는 행동인지, 노구치 랜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일본 정부 누구요.”

“그것까진 저희도 모릅니다. 듣기로 민주당 측에서 연락 온 것만 압니다. 다른 건 모릅니다.”

본사에서 최대한 도움을 주라는 지시가 내려졌지만, 일본 정부의 압력을 한낱 기업이 상대를 한다는 건 무리가 따랐다.

더욱이 인맥이 없는 이곳에서 한국의 힘은 닿지 않았다.

“가이에다 반리 의원인가......”

몇 번이고 부딪혔던 의원 한 명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는 인물이요?”

제미스 드와이트가 물었다.

“알다마다요. 일본인이라면 아주 잘 아는 인물이죠. 민주당에서 힘 좀 쓰는 인물입니다.”

“......”

노구치 랜은 분한 얼굴로 이를 갈았다.

노지우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봤다.

“다른 의원은 모르나요?”

지금 상황은 한국으로 넘어갈 때와 달리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무래도 한리버 유 회장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게 좋으리라 봅니다.”

지금껏 무시했던 유한강 회장에게 부탁을 하는 거 외에 방법 외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셋은 그날 한국으로 넘어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

쉬이이이이이이.

“세 명이 돌아왔다고요?”

한강의 시선이 건너편에 있는 남자에게 향했다.

“네, 다급하게 회장님을 뵙길 청합니다.”

한강의 곁에 서 있는 소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쩌죠. 아무래도 식사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거 같은데.”

미팅이 끝나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한데, 갑자기 들려온 김소영의 보고에 일정을 다음으로 미뤄야 할 걸로 보였다.

“하하, 괜찮습니다. 식사야 언제든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중요한 일 같은데,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자는 두 손을 들어 허공에 흔들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한강은 미안한 얼굴로 그를 문 앞까지 배웅을 하였다.

“조금 불안한데? 셋을 안으로 들이세요.”

“알겠습니다.”

좋지 않은 예감이 강하게 흘렀다.

김소영이 나갔다.

“에휴...... 내가 괜한 일을 벌인 건 아닌지 모르겠어.”

한강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오지랖을 탓했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한강의 시선이 돌아갔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습니다.”

셋을 맞이하며 자리에 앉았다.

“회장님은 어떻게 그런 확신이 가능하셨던 건가요?”

자리에 앉자마자 지금까지 궁금했던 부분을 물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발견을 했나 보네요.”

“......”

“제 얘기는 같아요. 그때와.”

한강의 대답은 매우 짧았다. 그리고 이건 막 방 안으로 들어온 세 인물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참 이걸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지.”

노구치 랜은 관자놀이를 꽉 눌렀다.

당최 이해를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세 분이 전부 한국으로 넘어왔다는 건, 일본에 문제가 생겼다는 거겠죠?”

사실 한강도 보고를 들은 바 있었다. 일본 정부에서 일찍이 공문이 전달됐었다.

그걸 언급하지 않은 건, 저들에게 직접 듣기 위함이 컸다.

“일본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모든 루트를 막아 버렸습니다. 심지어 우리를 만나 주려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어 어쩐 일인가 싶었는데,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도 일본 정부가 무척 싫은 모양이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겠군요.”

곰곰이 생각하던 한강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다, 자세를 고쳤다.

몸을 숙여 테이블 가운데에 자리한 목캔디 하나를 뜯어 입에 넣었다.

탁한 기운이 밖으로 배출되는 기분을 맛봤다.

“할 수 없네요. 제가 직접 일본 정부를 만나 보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만나 주겠죠.”

언론을 막았다 한다. 사람은 만나려 하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직접 나서는 것.

자신의 영향력이라면 일본 정부가 만나주리라 봤다.

‘로비를 한두 푼 한 것도 아니고. 돈값은 하겠지.’

필요를 위해 사용된 검은돈은 기업에 있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수단이다.

최소 돈값은 하리라 봤다.

“제가 일본 정부를 만나는 동안, 세 분은 한국 언론을 통해 세상에 전파하세요. 보고 느낀 걸 조금의 숨김없이 말해 주세요.”

“그러지요.”

“부탁합니다.”

“난 미국에 이 사실을 알리겠소.”

셋은 한강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여 부탁에 응하기로 하였다.

느긋하던 발걸음이 바빠졌다. 셋은 곧장 밖으로 나가 기자들을 모아 회견을 가지기로 하였다.

“오늘 저녁 비행기로 예약해 주세요. 바로 일본으로 넘어갑니다.”

한강도 몸을 일으켰다.

다음 장소는 일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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