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215화 (215/237)

215화. 26살, 시간은 흘러...

뽀드득 뽀드득.

바닥에 쌓인 눈을 밟는 순간 발목 높이까지 쏘옥 들어갔다.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의 발이 매우 조심스럽다.

“어제 몇 시에 들어갔어?”

어제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했는지 피로감에 찌든 중년인이 곁으로 따라붙은 남자에게 시선을 가져갔다.

“말도 마요. 12시에 들어갔어요. 기름 떨어질까 봐 시동도 끄고...... 어휴.”

“나랑 비슷하네.”

일기예보와 다르게 갑자기 쏟아진 폭설은 교통을 마비시켜 많은 이들에게 하얀 지옥을 경험하게 하였다.

오르막을 오르지 못하는 차량이 허다했고 각 지역마다 사고로 사상자가 생기기도 하였다.

“그 얘기 들으셨어요?”

그러다 무언가 생각을 한 남성은 중년인에게 말을 툭 던졌다.

“뭔 얘기?!”

건물 앞에 당도한 중년인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흡연 장소’라 적힌 장소로 이동했다.

“한리버 있잖아요.”

“후웁, 후우. 계속해.”

담배 연기를 뱉으며 남자의 말에 대답을 하였다. 시선은 하늘에 두었다.

“거긴 회장이 갑자기 내린 눈을 보고 두 시간 전에 조기 퇴근시켜서 피해 본 사람이 한 명도 없대요.”

어제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말만 가족을 운운하며 일을 몰아서 시키는 회사 생리에 진절머리가 났다.

동시에 한리버에 다니는 친구와 재직자들이 너무 부러웠다.

“이래서 오너 마인드가 중요해. 휴우...... 하나 피우지.”

“그렇지 않아도 담배 하나 꺼내고 있어요.”

얘기를 하고 보니 답답했는지 손에 든 담배를 던지고 새 담배를 꺼냈다.

회의감이 연기로 변해 밖으로 뱉어졌다. 하지만, 담배를 피워도 썩은 손은 재생되지 않았다. 더욱 썩어 문드러져 갔다.

[(주)한리버 그룹 유한강 회장의 센스와 기지가 어제 드러났다. 최장 여섯 시간 이상 막힌 교통 마비 속에 유일하게 한리버 그룹 계열사만이 지옥에서 벗어났다.]

이와 같은 일은 기사로 다뤄지며 유한강의 평을 몇 단계 높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게 뭐라고 기사가 나는지 원. 안 그래요?”

기사로 다뤄질 만한 것도 아닌 걸 기사로 내보내니 민망함이 얼굴 위로 올라왔다.

“충분히 기사로 다뤄질 만합니다. 회장님이 아니었다면 전 계열사에서 엄청난 피해를 봤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회장님의 옳은 선택으로 직원 중 단 한 명도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한리버의 직원만도 수만 명.

계열사 하나하나가 수천, 수만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리버마저 대응을 하지 못했다면 교통 마비는 더욱 커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거참, 자꾸 그러니 더 민망해집니다.”

콧잔등을 긁어 민망함을 달랬다.

“이러한 부분은 다른 기업들도 배워야 하는 부분이라 봅니다. 회장님 옆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게 많습니다.”

돈만을 중시하는 기업이 아닌, 때에 맞게 중요도를 달리하는 기업이 미래에 맞는 회사이지 않을까 싶다.

따르릉 따르릉.

“그래요. 좋게 봐주어 감사해요. 전화가 와서 얘기는 여기까지 해야겠네요. 여보세요.”

“그럼 저는 이만...”

한강이 수화기를 드는 것에 맞춰 김동진을 회장실을 나갔다.

한강은 나가는 김동진을 바라보며 귀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을 하였다.

“SBC요. 음..... 이쪽에서 상의 후 전화를 드리도록 하지요.”

전화를 내려놓았다.

“음...... 오디션 방송을 사고 싶다라.”

SBC에서 온 연락이었다. 내용은 한리버 인터넷 방송에서 다루고 있는 오디션 방송을 SBC에서 사용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월드플레이 대표에게 전화를 돌려주세요.”

전화를 걸어 유길섭 월드 플레이 대표에게 연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따르릉 따르릉.

신호음이 들렸다.

---네, 회장님.

수화기에 뜬 번호를 확인하고 회장실임을 안 유길섭은 전화벨이 들리자마자 바로 전화를 받았다.

“물어볼 게 있는데, 요즘 오디션 방송 어때요?”

---아주 잘되고 있습니다.

“저번과 비교하면요?!”

---음, 시청자가 많이 떨어지기는 했습니다. 시청자가 다양하지 않은 점이 큰 걸로 보입니다.

초창기 이뤄진 오디션과 달리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으로 보인다.

“그럼 우리가 들고 있는 것보다 넘기는 게 좋겠군요.”

---이 방송을 넘긴다고요? 엔터 사업에 영향이 있는 거 아닌가요?

오디션을 유지하는 이유 중 아주 큰 이유는.

대중들이 원하는 스타를 뽑아, 한리버에서 키우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다른 쪽으로 옮긴다는 건 시스템에 문제 발생함을 이야기하였다.

“아니에요. 많이 해 먹었으니 접는 걸로 하죠. 그리고 이걸 매각해 협업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드네요.”

독점으로 운영을 하는 부분은 이제 재미가 없다. 시청자들은 새로운 걸 원한다.

조금 더 자극적인 걸.

한강은 어렵지 않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SBC와 연락해, 해당 방송을 넘기세요.”

--- 알겠습니다.

한강의 고민 없는 지시는 유길섭의 마음을 비우게 만들었다.

유길섭은 군말 없이 지시에 따르기로 하였다.

***

뻐꾹 뻐꾹 뻐꾹......

시계에서 뻐꾸기가 나와 열한 번 울고 모습을 감췄다.

“유길섭 대표가 도착했습니다.”

나용호 피디가 국장실로 들어와 유길섭 도착 소식을 전했다.

“벌써.”

나칠환 예능 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 모습을 보이는 유길섭을 발견했다.

“나칠환입니다.”

“유길섭입니다.”

둘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어려운 결정을 하셨습니다.”

한리버에서 내놓은 결정에 나칠환은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게 뭐 하는 건지......’

옆에 앉은 나용호를 슬쩍 바라봤다. 매우 기뻐하는 모습이다.

‘이게 마지막이다. 용호야.’

나칠환은 얼마 전 있던 일을 떠올렸다.

[작은 아빠. 딱 한 번만 부탁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

[한리버에 그 오디션 프로 인수해서 우리 방송으로 내보내 봐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덕분에 용호는 대부분의 일을 타인에게 의지해 성장을 해왔다.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다독여 보지만, 그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달라지는 건 없었다.

[좋다. 대신 조건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여기까지.

자신도 나이가 든 만큼, 평생 이 자리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건 자신의 형도 마찬가지.

[이번 사업이 잘되든 못되든 모든 책임은 네가 지고, 이번이 마지막이란 사실이다. 만약 또 이번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면 나는 옷을 벗고 사퇴하겠다. 더는 너를 돕는 이는 없을 거란 거다.]

[......]

다른 때와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건지 당시 용호의 모습은 매우 불안했다.

[좋아요. 그럴게요.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용호는 끝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다시는 부탁을 하지 않기로 각서를 썼다.

“제가 했다기보다 회장님이 하셨을 겁니다. 해당 프로젝트는 회장님이 직접 지휘한 것이었는데, 애착이 남달랐을 겁니다.”

유길섭은 당시 한강의 활약을 떠올렸다. 그의 손을 거친 가수와 배우는 모두 스타가 되었다.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보는 안목도 참으로 남달랐다.

“아무래도 그렇지요. 아직도 그때가 잊혀지지 않아요.”

당시 오디션 콘서트는 엄청난 화제를 낳을 정도로 충격 그 자체였다. 열기도 생각 이상으로 오래갔다.

학생들부터 시작해 성인에 이르기까지 오디션의 성공 테크를 공개 오디션으로 여길 정도로 매우 뜨거웠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이제는 관심이 시들해지고 다른 방향으로 찾아 나서는 이들이 많아졌다.

매일 반복되는 방송에 지친 시청자들도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그런 걸 하겠다니...... 쩝.’

한물간 방송에 눈독을 들이는 조카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지만, 이미 한 약속은 다시 물릴 수 없었다.

“그랬죠. 정말 엄청 났어요. 그런 엄청난 인파는 다시 경험하기 힘들 겁니다.”

세계 최초 인터넷 오디션 방송.

모든 게 역대급으로 이뤄진 만큼 파장도 엄청났다.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 버렸다.

당시 상을 받은 아이들은 각종 음악방송에 출연해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그래서 국장님께 제안을 드릴 게 있습니다.”

유길섭의 눈빛이 단단해졌다. 아련한 추억 속에 젖어 있던 눈은 현실로 돌아와 나칠환을 똑바로 응시했다.

“제안이라, 그게 무엇일까요?”

나칠환의 눈이 궁금증으로 충만해졌다.

여기서 제안할 게 뭐가 있을지 싶었다.

“회장님은 저에게 협업이란 단어를 쓰셨습니다. 그렇다는 건 SBC는 저희와 공동사업을 생각하고 있는 걸로 해석해도 되겠는지요?”

“음, 분명 그랬습니다. 한리버와 함께하면 뭔들 싫겠습니까.”

조카를 생각한다면 한리버가 포함되는 게 좋으리라 봤다. 말이 피디이지 아직 많이 부족한 조카이기에 도움이 절실했다.

“제가 이곳에 오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이걸 진정한 서바이벌 오디션으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전에는 어땠을지 모를 일이나, 서바이벌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었다.

그 부분이 아쉽던 차에 SBC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꺼냈다.

“서바이벌을 살리자, 혹시 이 부분까지 생각한 거라도 있는지요?”

“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인맥과 각 심사위원들의 팔이 안으로 굽지 않게 오로지 참가자의 실력만으로 다룰 수 있는 블라인드 서바이벌 오디션을 개최하였음 합니다. 3차까지는 블라인드로 진행하고 실력이 입증된 참가자들로 4차부터 얼굴을 공개하면서......”

오면서 생각을 제법 많이 했는지 아이디어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이번 건 중립에 놓인 방송사이기에 가능한 방법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단숨에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이 될 거라며 나칠환을 설득했다.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야. 시청자들에게 자극제가 되겠어.’

나칠환은 유길섭의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나 피디는 어떤가?”

나칠환은 조카인 나용호 피디에게 의견을 물었다. 어쨌거나, 해당 담당자는 나 피디기에 그의 결정에 따르기로 하였다.

반대를 한다 하더라도 설득할 참이었지만. 일단 의견을 물어보기로 하였다.

“저도 매우 좋아 보입니다. 적극적으로 밀고 싶어요.”

다행히 나용호도 마음에 든 얼굴이다. 딱 정한 아이템이 없다면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으리라 봤다.

나칠환은 고집으로 똘똘 뭉친 조카가 긍정의 기색을 내비치자 크게 안도를 하였다.

‘형님은 어쩌다 저리 키워서는...... 이번 일로 제발 철이 들어야 할 텐데.’

조카 걱정으로 매일이 고역이었다.

이번 일로 성격이 변해 독립할 수 있는 녀석이 되었음 싶었다.

“저의 아이디어를 좋게 봐주어 고맙습니다.”

유길섭은 둘의 모습과 이름 앞에 있는 ‘나’ 씨에 주목했다. 닮은 두 사람의 관계가 남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심사위원단 중 한 분을 한리버에서 뽑도록 하겠습니다.”

나용호는 심사위원 중 하나를 한리버에서 섭외를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유길섭은 나용호의 말을 좋게 받아들였다. 셋은 좋은 결과에 만족하며 자리를 파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