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26살, 박경주
휙!
아이언이 큰 호선을 그려 허공을 가로질렀다. 작은 체구에서 나왔다고 믿어지지 않는 힘이 골프채에서 느껴졌다.
“호오.”
경주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 감탄이 일었다.
“정말로 공을 가지고 연습한 적이 없는 거야?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고?!”
그중 하얀 모자를 쓴 남자가 경주가 날린 멋진 샷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네...... 신문지 구겨서 하긴 했는데......”
경주는 손에서 느낀 쾌감에 젖어 있다 남자의 물음에 어쩔 줄 몰라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어때요? 프로님.”
역시 하는 얼굴로 한강이 앞으로 나서 슬며시 물었다.
“천잽니다. 겨우 그런 막대기로 연습해 이 정도라니. 자세만 좀 더 조절해 주면 성장이 기대되는 아입니다.”
프로라 불린 남자는 경주의 실력에 반했는지, 눈동자에 욕심을 내비쳤다. 처음에는 한강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름에 응했지만, 지금은 자체가 확 바뀌었다.
좋은 제자를 얻는 건 스승으로서 행운 그 자체.
경주를 자신이 키우겠다는 욕심을 내비쳤다.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이 아이의 후원자가 될 테니, 1:1로 붙어 도움을 주세요.”
“네, 꼭 훌륭한 선수로 키워 보겠습니다. 좋은 제자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는 경주를 얻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경주야,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나랑 약속한 거 알지?”
“네. 꼭 잘할 게요.”
화이팅 넘치는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다.
‘재석이가 친구라 하기에 동갑인 줄 알았는데 일곱 살이라...... 거참......’
재석의 나이는 여섯 살. 경주의 나이는 일곱 살. 한 살 더 많았다.
어쩌다 친구라 말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자기 딴에 머리를 쓴 걸로 보였다.
“그래도 자식 농사는 잘 지은 거겠지.”
다른 재벌가나 부잣집 자녀와 달리 잘 자란 재석에게 참으로 감사했다.
한강은 골프센터에서 나와 회사로 복귀했다.
***
[유한강 한리버 그룹 회장이 KBC 인생 다큐멘터리에 출연 중인 박경주(7) 군의 후원자로 나섰다. 경주 군의 꿈을 이뤄주기 위하여 골프 선생님을 소개해 주는 한편, 모든 지원을 약속했다.]
[쾌적한 환경에서 자랐음 하는 바람에 반지하 단칸방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로 거처를 옮겼다.]
└ 주한성: 좋은 기사만 떠서 너무 좋습니다. 우리나라에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 얼마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앞으로 좋은 모습 부탁드립니다.
└ 조세연: 한강이 너무 좋아 >_< ***♥
한강의 훈훈한 기사가 세상에 퍼졌다. 기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따스한 바람을 맴돌게 만들었다.
“회장님의 후원이 세계를 감동시켰습니다.”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한강의 선행은 국가를 넘는 감동을 전해주었다.
“뭘 또 그러나요. 그냥 제가 내켜서 하는 일인데요.”
“그게 대단하단 겁니다. 절대라고 말할 정도로 회장님과 같은 분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겁니다.”
“쑥스럽네요. 그나저나 중국 일은 어때요?”
계속되는 칭찬에 부끄러워 주제를 바꿨다.
“자동화를 위해 센서 관련 회사를 인수하고, 내년 봄에 완공될 걸로 보입니다.”
긴 공사 기간 끝에 중국에 설치한 물류센터 공사가 끝이 보였다.
“최대한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물류시설이 마무리되면 중국과의 거래가 본격화되고, 아마존과의 경쟁이 되리라 봤다.
“네. 그리 전하겠습니다.”
“리튬은요?”
“내년 5월 내 생산에 들어가리라 봅니다.”
“일이 문제 없이 잘 풀려 좋네요.”
“모두 회장님이 잘 준비한 덕입니다.”
“전 방향만 정했을 뿐인걸요. 나머지는 전부 실장님과 직원들이 잘해준 겁니다.”
공은 공평하게 나눠 먹어야 제맛.
한강은 자신을 향하는 칭찬을 직원들과 나누었다.
“이런 건 혼자 드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먹다 체하면 곤란해요.”
“정말이지, 회장님은 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죠? 그럼 앞으로도 고생해 주세요.”
김동진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한강은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김동진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대화를 끝맺었다.
턱! 문이 열렸다 닫혔다. 김동진이 나갔다.
휴......
한강은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 탑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하아...... 이것도 예술이구나.”
여러 일로 결재할 보고서가 상당히 밀렸다. 한강은 짧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길거리......
“왜 또 지역인데. 인프라도 부족한 곳에 회사를 확장하려 하냐고. 지금 수도권에 일자리 부족한 거 모르나?”
“정말 짜증난다.”
의성군에 한리버 공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은 누군가에겐 반길 기쁜 소식이지만, 수도권에 나고 자란 일부 사람들에겐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수도권만 하더라도 취업 경쟁률이 심한 곳은 1만 명이 넘고 덜한 곳은 50명 미만이다.
그런 상황에 인구도 몇 되지 않는 장소에 회사를 설립한다는 건,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라 단정을 지었다.
“그래서 채용원서 안 넣을 거야? 지금 너네들 사용하고 있는 거 전부 한리버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야.”
둘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화에 끼어들었다.
“또 정의감 납셨네. 따져 보라고, 회사도 인구수 따라가야지. 지금 쥐꼬리만큼 돈 주는 곳이 허다한데, 이게 말이나 되는 거냐고.”
서울만 천만 명에 이르는 인구가 거주한다. 하지만 대학 졸업자가 갈 만한 회사는 무척 적었다.
서울대, 연대, 고대 등만 하더라도 취업에 탈락하기를 반복하며 어렵사리 입사를 한다.
그런 상황에 인구절벽에 시달리는 곳에 회사를 설립한다는 사실이 매우 불만으로 다가왔다.
“야, 그럼 네가 회장해서 화성이든 수원이든 회사를 설립하든가. 어차피 못 들어갈 놈은 뭘 해도 못 들어가.”
둘의 말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자는 피해망상에 빠져 인상을 구기게 만드는 둘에게 일침을 놓고 자리를 피했다.
함께 있다가 좋지 않은 성격에 감염이 될 거 같았다.
세상이 제각기 다른 생각들을 가지며 다툼이 일 때.
“이걸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요.”
홍수 침수지역에 대형 컨테이너 단지가 조성이 되었다. 모든 주민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로 감히 역대급이라 말할 수 있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회장님께선 피해지역 주민들을 보며 매우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한강의 지시로 피해지역을 방문한 한리버 그룹 이사 홍성민은 한강의 뜻을 강하게 어필해 주민들의 환심을 샀다.
“허허, 당연한 일이라......”
홍성민의 ‘당연한’이란 부분에 중년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 당연한 일을 나라에선 해주지 않는데 말입니다.’
너무도 비교되는 국가와 한리버의 움직임에 중년인의 마음은 한리버에 기울 수밖에 없었다.
한리버가 국가를 대신해 줄 수 없지만, 정말 필요한 걸 한리버는 해주었다. 어찌나 감사한지 모른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적극 나서 움직이시는 분이 회장님이십니다.”
중년인의 표정을 보며 그의 심정이 어떨지 가늠해 보았다.
‘참으로 거지 같은 나라야. 나라에 돈이 없다면서 엄한 회전 교차로는 사방 천지에 깔고, 이상한 곳에 돈을 쓰기 바쁘니......’
홍성수는 국가의 느린 대처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대응에 화가 일었다.
침수 피해로 무너진 집들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다.
“조금만 힘내 주세요. 전보다 훨씬 살기 좋은 동네로 변할 겁니다.”
홍성수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은혜는 대대손손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중년인은 높게 높게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 단지로 시선을 옮기며 옅은 미소를 흘렀다.
매년 반복되는 홍수피해가 어쩌면 한리버로 인해 변화를 거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젖었다.
***
2010년 11월, 하늘에 회색 구름이 끼어 태양을 가렸다.
날씨 기온은 영하로 떨어져 사람들의 옷을 단단히 동여매게 하였다.
“난방에는 문제없겠죠?”
추워진 날씨로 고통을 받게 될 침수 피해 주민들을 걱정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욕실은 꾸준히 기름을 채워 난방을 돌리고 있으며 임시 화장실엔 라디에이터를 설치했습니다. 잠자는 공간은 전기장판을 이용해 온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컨테이너 단지엔 임시 공용 화장실부터 시작해 주방, 욕실을 만들어 놓았다.
따스한 이불까지 지원해 주민들이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일은 없었다.
“다행이네요.”
“저희뿐만 아니라 봉사단체에서도 꾸준히 지원을 하고 있으니, 어려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죠?”
“하하......”
홍성민은 그 부분에 확실한 답을 하지 못했다.
너무 좋지 않은 모습들을 봐온 탓에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인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더 보고할 건 없으시죠?”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강은 따라 웃으며 더 보고할 내용이 있는지 물었다.
“없습니다.”
“앞으로도 수고해 주세요.”
홍성민은 고개를 작게 숙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하고 밖으로 퇴장했다.
“눈 오네.”
일기예보는 오늘도 틀렸다. 눈이 오지 않을 거란 일기예보는 믿을 게 되지 못했다. 한강의 시선은 창 너머로 보이는 하얀 눈덩이를 바라봤다.
“빠르게 쌓이네, 직원들을 일찍 퇴근시키는 게 좋겠어.”
눈으로 퇴근길이 불편할 직원들을 위해 조기 퇴근을 하라 지시를 내리기로 하였다.
“저예요. 본사 직원을 포함해 전 계열사에 일러 현장 사무직원 할 거 없이 두 시간 일찍 퇴근하라 이르세요.”
눈길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이야 코앞이라 집이라 괜찮다지만 그렇지 못한 직원들은 악몽을 경험하게 될 터다.
업무 효율을 위해 직원들을 일찍 퇴근시킴으로 내일을 대비하게끔 하였다.
[갑자기 내린 폭설로 전체 도로가 마비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안산까지 가는 데 세 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교통사고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강원 동해안 지역에 많은 눈이 내려 속초시 설악대교로 향하는 도로가 극심한 혼잡......]
직원들이 퇴근하고 두 시간 정도 지난 시점. 퇴근하는 차량 안에서 기상청 소식이 들려왔다.
“일찍 퇴근시키길 잘했네.”
두 시간 정도면 무리 없이 집까지 잘 퇴근했을 터.
자신의 선택에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가까운 청담동 호텔에서 주무세요. 집으로 가지 마시고.”
“아이고, 아닙니다.”
한강이 호텔을 언급하자 기사는 깜짝 놀랐다.
“제 지시에 따라 주세요. 저로 인해 고생을 하시고 다른 직원들과 달리 늦게 퇴근하셨으니 말입니다. 지금 집으로 넘어가려면 귀성길보다 더 힘들 겁니다.”
한강은 기사의 안전도 신경을 써주었다.
기사 한 명 호텔에 재운다 하여 통장 잔고가 빌 일도 없었다.
“매번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저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내일 출근은 10시에 할 거니까, 맞춰서 와 주세요.”
몸이 꽤 노곤할 터.
기사의 졸음운전을 막기 위하여 충분한 수면시간을 보장해 주었다.
“내일 뵙지요.”
한강은 차량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곧 한강의 모습은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에 가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