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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213화 (213/237)
  • 213화. 26살, 미래 골프 선수

    경주는 오늘도 혼자입니다. 할아버지는 폐지를 주우러 갔습니다.

    ---오늘은 뭐 할 거예요?

    [“골프요.”]

    ---골프?

    [“네... 제 꿈이 골프선수가 되는 거예요.”]

    ---골프채 있어요?

    [“아니요. 이걸로 할 거예요.”]

    ---막대기?!

    [“할아버지가 구해주셨어요. 헤헤.”]

    장난감 하나 없는 경주에게 있어 동그란 막대기는 경주의 유일한 장난감이자 꿈입니다.

    ---골프는 배웠어요?

    [“아니요. 그냥 TV에서 하는 거 보고 따라해요.”]

    ---공은요?

    [“그냥 휘두르기만 해요.”]

    휘익!

    경주의 연습이 시작됐습니다. 허공을 가르는 막대기 소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제법 폼이 나네요. 하루에 얼마나 휘둘러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요. 할아버지가 일찍 오시면 그때 끝내기도 해요.”]

    막대기를 휘두르는 경주의 얼굴에 생기가 감돕니다. 벌써 두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 경주는 멈추지 않고 휘두릅니다.

    ---......

    사람들은 멀리서 경주를 바라봅니다.

    [“매일 저래. 저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것어.”]

    [“미친 짓이지.”]

    어르신들은 경주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눈 뜨면 하는 일이 막대기를 휘두르는 일.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전 꼭 골프선수로 성공해서 할아버지한테 살기 좋은 집을 사줄 거예요.”]

    부모님은 경주를 낳고 각자의 길로 떠났습니다.

    소식이 끊긴 지 5년이 지났습니다.

    “......흑흑.”

    TV 화면을 보는 윤희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윤희는 아들을 안고 울었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미안해. 아들. 엄마가 혼내서.”

    아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 않고 혼낸 자신을 반성했다.

    윤희는 아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

    반면 한강은 TV에 나오는 아이의 얼굴을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어떤 반응도 움직임도 없이 TV 화면에 나오는 경주를 봤다.

    “세상에...... 쟤는......”

    ‘가장 어린 나이에 모든 상을 쓸어 담은 선수 박경주......’

    한국 오픈 골프선수권 우승, PGA컵 토너먼트 우승, PGA 투어 크라이슬러 챔피언십 우승, 한국 프로 골프 대상 해외특별상 등을 최연소로 거머쥔 선수가 TV 화면에서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 힘들었다 하더니...... 그랬던가.’

    정말로 깜짝 놀랐다. 랭킹 10위권까지 역사상 가장 빠르게 진입한 대단한 선수의 어린 시절을 보고 있었다.

    “재석이 엄마.”

    “......웅?”

    눈물을 훔치며 한강을 올려봤다. 품 안에는 재석을 안은 상태이다.

    “내일 저 아이를 만나볼까 해.”

    “진짜?”

    “응.”

    “잘해주고 와. 보니까 나중에 크게 될 아이로 보여.”

    어려운 환경임에도 꿈을 놓지 않고 전진하는 모습은 성인도 쉽게 보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야지.”

    ‘만나보자.’

    한강의 결심이 섰다. 한강은 마음이 깊은 아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

    경기도 외곽에 자리한 허름한 주택가. 차량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골목으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내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여깁니다.”

    벽이 갈라지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건물 앞에 멈췄다.

    ‘무슨 건물 관리를......’

    수행원의 말을 들은 한강은 건물 상태를 보는 순간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도저히 사람이 살 법한 건물이 아니었다. 언제 무너져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 그건 건물이었다.

    ‘대단하네. 확실히...... 이런 곳에서 그런 대스타가 나왔으니......’

    경주에 대한 평가가 한 층 더 올라갔다.

    “지하 101호입니다.”

    심지어 지하. 창문이 반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 할아버지와 아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자 수행원 한 명이 앞으로 나서 한강의 걸음을 막았다.

    “가선 안 될 곳을 가는 것도 아니고, 어르신을 뵙는 일이에요. 예의가 아니지요.”

    길을 막은 남성을 나무랐다. 아무리 사회가 자본주의 귀족사회 하더라도 동방예의지국임은 변하지 않는다.

    한강은 사람들을 물리고 걸음을 옮겼다.

    ‘건물주들 진짜......’

    너무도 화가 났다. 건물주라면 책임을 지고 최소한 사람이 살 정도의 관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세는 다 받고 집값은 올리면서 최소한 해야 할 도리를 지키지 않는 건, 건물주로서 실격이다.

    “......”

    초인종 누를 자리가 구멍 나 있다. 안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

    “하다 하다 이렇다고?!”

    깊은 빡침이 머릿속을 괴롭혔다.

    “계세요.”

    초인종을 누를 수가 없어 노크를 하여 사람을 불렀다.

    “누구세요?”

    문을 열고 아이가 나왔다.

    옷이 낡아 중간중간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없으시니?!”

    “조금 있으면 오세요.”

    “아, 그래...... 음. 난 너를 돕기 위해 온 사람이란다. 할아버지가 올 동안 안에서 기다릴 수 있을까?”

    “...... 우리집은 좁은데.”

    아이가 말끝을 흐린다. 얼굴이 붉어진 게 창피한가 보다.

    “아니야. 괜찮아. 아저씨만 잠시 기다릴게.”

    “그러면......”

    경주가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저기엔 곰팡이가 한가득이구나. 먹을 건 없겠고......’

    그렇다고 깨끗한 건 아니었다. 벽지 여기저기 껴있는 곰팡이.

    습기로 젖어 있는 벽지. 천장은 물이 샜는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아저씨가 먹을 것 좀 챙겨 왔단다.”

    자리를 잡고 앉은 한강은 손에 든 과자 상자와 과일을 경주에게 건넸다.

    “와, 과자다! 정말 저 주시는 거예요?”

    “그래. 먹거라.”

    “감사합니다!”

    미래에 프로 골프 선수로 이름을 알리는 아이의 어린 시절은 매우 새롭게 다가왔다.

    “음, 그런데 말이다. TV에서 봤는데......”

    한강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이 되었다. TV에서 보던 막대기가 세워져 있었다.

    “네?”

    TV에 출연하게 되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낯을 크게 가리지 않았다.

    “꿈이 프로 골프 선수가 되는 거라고 들은 거 같은데 말이다.”

    “네! 전 꼭 골프 선수가 돼서 할아버지랑 멋진 집에서 살 거예요!”

    TV에서 들었던 말을 본인의 입에서 직접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꿈을 확실히 키워갈 수 있는 아이가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그래, 넌 가능할 거야.”

    한강은 손을 뻗어 경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도 기특했다.

    ‘어린 시절이 떠오르네. 그때의 난 그래도 부족하지 않게 살았구나.’

    당시에 한강은 자신을 흙수저로 비유를 하였다. 하지만 자신은 결코 흙수저가 아니었다.

    엄마가 있었고, 아빠가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아래로는 동생들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행복이 뭔지를 배우며 살아왔다.

    하지만, 경주는......

    사랑과 거리가 먼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엇나가지 않고 올곧게 자란 경주가 대견스러웠다.

    “헤헤.”

    듣기 좋았는지 과자 상자를 끌어안고 실실 웃었다.

    “집에 누구 왔니?”

    30분 정도 지난 시간, 경주의 할아버지가 도착했다.

    낯선 이의 신발이 있자, 조금은 놀란 목소리로 경주를 불렀다.

    “네, 할아버지. 이 아저씨가 우리를 돕고 싶다고 오셨어요!”

    몇몇 이들이 찾아와 도움의 손길을 보냈는지 경주는 아무렇지 않게 ‘도움’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허, 높으신 분이 여기는 어쩐 일로......”

    한강의 얼굴을 확인한 노인은 크게 놀라 부담이 가득한 얼굴로 변하였다.

    아무리 외곽에 구석진 곳에 산다지만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는 건 있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한리버 그룹 유한강 회장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편하게 대해주세요.”

    “......”

    오랜 시간 정착한 습관과 본능은 노인의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위축되는 그를 보며 한강은 다가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전 그냥 돈 많은 사람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같은 사람으로 대하세요.”

    “......제가 어찌.”

    조선 시대도 아니고, 노인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저는 할아버지와 여기 경주를 돕고자 온 사람에 지나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회장님의 은혜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씁쓸......

    노인의 모습을 보는 한강의 얼굴에 옅은 그림자가 꼈다. 어쩌다 세상이 이리 변했는지 모르겠다.

    “경주가 골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냥 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노인은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일단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두자... 이건 바뀌지 않아. 더 그랬다간 부담을 크게 가질지 몰라.’

    노인의 행동을 못 본 척 넘기기로 하였다.

    “할아버지 저 꼭 골프 할 거예요.”

    “예끼! 골프는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야.”

    노인은 깜짝 놀라 경주를 크게 혼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많은 눈치지만, 경주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서슬 퍼런 할아버지의 시선에 기가 죽고 말았다.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분명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하긴 하지만 꿈은 돈과 무관합니다.”

    한강은 노인의 생각을 고쳐주려 애썼다. 사람의 성향을 단숨에 바꾸는 건 무리.

    적정선에서 타협해 설득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

    “저는 말 그대로 도움을 주고자 온 겁니다. 그리고 경주의 장래에 대해 함께 고민을 하고 실행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

    “할아버님만 괜찮다면 거처를 옮기고, 경주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고 싶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한강의 적극적인 말에 노인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진심이 느껴지는 호의는 살아생전 처음 받아 보았다.

    “경주의 모습이 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경주에게 좋은 선생님을 소개해 주고 프로 골프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겁니다.”

    “우리 경주를 어여삐 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노인의 어깨가 들썩였다. 늘 걱정했다. 자신이 죽으면 경주는 누가 돌봐 줄지 늘 마음이 쓰였는데.

    걱정이 녹아 사라졌다.

    “할아버님께서 허락한 것으로 알고 진행을 하도록 할게요.”

    한강의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경주야 얘기 들었지?”

    “네!”

    경주의 얼굴에 기대로 가득하다. 기분이 좋아 제대로 조절이 되지 않는 모습이다.

    “대신 조건이 있다.”

    한강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다. 경주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 알지만,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 봤다.

    “......뭔데요?”

    “만약 게으르거나 나의 도움을 이용해 나쁜 행동을 한다면, 나는 모든 지원을 끊고 도움을 주지 않을 거다.”

    아이가 얼마나 알아들을지 알 수 없지만, 뜻은 충분히 전달이 되었으리라 봤다.

    “꼭 지킬게요. 절대 하루도 빼놓지 않을 거예요. 정말로요.”

    꿈을 좇아 달려온 경주에게 있어 아주 큰 기회였다. 그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경주는 기회의 끈을 붙잡기 위해 자신을 강하게 어필을 하였다.

    ‘될성부른 사람은 떡잎부터 다르다 했는데, 이걸 보고 하는 말이구나.’

    한강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그래, 믿을게. 잘 해주리라 믿는다. 경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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