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26살, 침수피해 건물 디자인
육성그룹 계열사 중 한 곳, 육성건설로 고급세단이 들어섰다.
수십의 사람들이 차량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갔다.
“이게 뭔가요?”
육성건설 대표실 안으로 들어선 이는 다름 아닌 유한강 한리버 그룹 회장.
육성건설 대표 이대우는 책상 위에 놓인 그림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아주 특이한 구조로 된 건물이었다.
“장인...... 이건호 회장님껜 이야기를 듣지 못한 건가요?”
“듣기야 했지만...... 이건.”
종이와 한강을 번갈아 봤다. 납득이 가지 않는 눈치였다.
“회장님과 이야기가 끝난 겁니다. 이대로 진행해 주세요.”
가성비가 좋지 못한 구조에 망설이는 모습이 실망스럽게 다가온다.
한강은 강압적으로 일을 진행할 것을 주문했다.
“알겠습니다. 이대로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얼굴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이대우는 하고픈 말을 꾹 참았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저건 아니지. 쯧쯧.”
모든 용무를 마친 한강은 대표실을 나서면서 방금 있던 이대우의 행동에 고개를 저었다.
“돈보다 더 중요한 사업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거야. 저 사람은.”
그릇이 작다.
육성건설 대표 자리까지 올라간 게 신기할 정도라 생각했다.
“공사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아서 금방 끝나겠지.”
빌라나 고층 아파트를 짓는 일도 아니었다. 주택보다 건설되는 기간은 무척 짧을 터다.
“침수 피해 주민들이 단기간 머무를 컨테이너는 어떻게 준비가 되고 있나요?”
한강은 컨테이너를 준비해 침수 피해자들이 잠시 머무를 숙소를 준비했다.
“네, 모든 일 중 최우선으로 해주세요. 사람들이 잘 공간은 있어야지요.”
학교나 체육관을 임시 숙소로 사용한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무슨 피난민들도 아니고.
한강은 이번에 상당한 컨테이너를 대량 렌트해 피해지역에 설치할 예정이었다.
기간은 모든 공사가 끝나는 시점까지.
‘이대로 또 모른 척하고 지나간다면 청소하고 재사용하기를 반복하겠지. 그게 무슨 짓이야.’
이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원인을 해소하고 반복된 피해를 막는 게 좋을 터다.
한강은 그 부분에도 신경을 집중했다.
“기업이 이리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정부에서도 나서지 않을 수 없겠지.”
부담을 느끼는 정부든 관련 기관이든, 사람들의 눈치를 봐서라도 다른 날처럼 모른 척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 봤다.
***
뜨거운 여름이 가고 붉은 옷을 입은 가을이 왔다. 사람들의 옷에도 변화가 있었다.
반팔에서 긴팔로 갈아입으며 새로운 환경에 맞춰 적응의 시간을 보냈다.
“판결이 떨어졌습니다. 피해 배상금 200억 원에 영업정지 8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얼마 전 부실시공으로 안전사고를 일으킨 호건건설과 아연토건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힘 있는 이들이 손을 잡으니 판결은 기업에 있어 치명적이라 할 수 있을 판결을 내렸다.
“면허취소는요?”
한강은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은지, 인상을 찌푸렸다.
“여러 사람이 이번 판결에 불만을 품긴 했지만, 아무래도 면허취소는 힘들지 싶습니다.”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문제를 일으킨 기업이 면허를 가지고 사업을 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면허정지까지는 아니지만, 다시 일어서기 힘들 겁니다.”
“......?”
“이건호 회장님께서 건설 비리를 하나 더 터트릴 걸로 보였습니다.”
“......?”
“직접 언급하지 않으셨습니까. 승계작업과 내부작업이 끝날 때까진 이번 일을 물고 늘어질 거라고.”
“아..... 그랬지.”
그제야 손을 들어 자신의 이마를 팍 쳤다.
너무 판결에 신경을 집중했다.
“영업정지 기간이 풀린다고 다시 사업을 하기는 힘들 겁니다.”
“빚쟁이로 살다 죽겠군요.”
직원들이야 회사를 사직하고 다른 기업에 몸을 의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기업의 오너와 일부 경영진은 부실공사 책임을 피해 가지 못할 터다.
“그렇습니다.”
재기가 불가능한 기업은 파산절차를 밟기 마련. 이마 위로 진하게 잡혔던 주름을 풀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한강은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사기 행위를 벌이는 일은 절대 참을 수 없었다.
일은 잘 해결됐다.
***
시청자 여러분 즐거운 한가위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보며 다소곳하게 예를 다하여 절을 하였다.
2010년 9월, 한가위가 밝았다.
80년, 90년대와 달리 거리엔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줄었지만.....
“명절 특집! SBC 동안선발대회를 시작합니다!”
방송국은 한복을 입고 예쁘게 치장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변에는 남녀 할 거 없이 한껏 외모에 힘을 준 사람들로 득실했다.
모두 동안선발대회 참여를 하기 위해 모인 최종 결승이 SBC 세트장에서 개최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 모인 분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동안인 분들로 구성됐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무작위로 뽑은 100명의 분들로 구성이 됐으며 이분들의 평가로 최종 동안이 결정됩니다.”
동안선발대회 MC를 맡게 된 김성수가 기본적인 룰을 설명하였다.
“자,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SBC 동안선발대회!”
취이이이익!
김성수의 외침과 동시에 무대에 설치된 장치에서 하얀 연기가 위로 뿜어져 나왔다.
흥겨운 노래가 나오자, 자리에 함께한 방송인들이 신나게 춤을 추었다.
“참가 번호 1번입니다.”
차가워 너무나 속이 시려 너무나♪
09년 당시 사람들의 더위를 날려준 노래 냉면이 무대 위에 퍼졌다.
와아아아.
동시에 터지는 사람들의 감탄이 무대를 채웠다.
“암만 봐도 20대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파란색 티에 하얀 치마를 입고 나온 여성의 모습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나이를 속이고 나온 듯한 외모는 사람들의 눈을 의심 들게 만들었다. 귀여운 춤이 매우 인상적인 여자였다.
그래도 널 사랑해.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는 걸로 1번 여성의 무대가 끝났다. 여성은 한껏 끼를 발산하며 무대에서 퇴장을 하였다.
“...... 저 어머니 대단하네.”
미화의 동안선발대회에 한강은 가족으로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중 장기를 자랑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며 놀란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밖으로 표출을 하였다.
아무리 뜯어봐도 누나라 불러도 다들 믿을 정도로 아주 빼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었다.
“다음은 5번 참가자의 무대입니다.”
찰나의 시간 벌써 5번의 차례가 되었다.
그 순간 한강의 시선은 무대 입구로 고정됐다.
“엄마......?!”
한강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곳에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어린 여성이 서 있었다.
“와......”
“정말 우리 엄마야?!”
“미화야......”
주인공은 미화였다. 집에서는 보기 힘든 소녀 같은 미화의 모습에 모두는 깜짝 놀랐다.
“노래를 부른다고?!”
미화가 마이크를 들었다. 그간 참가자는 모두 춤을 추거나 전공인 무용으로 아름다움을 뽐냈다.
당연히 미화도 그와 비슷한 걸로 장기를 준비했을 거라 여겼는데,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화가 한 노래 했지.”
“네에? 엄마가 노래를 했다고요?!”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에 한강의 고개가 확 꺾였다.
“정말로요?!”
“하지만, 엄마는 노래방 갈 때면 안 불렀잖아?”
노래방을 가면 마이크를 멀리하던 게 미화였다. 덕분에 한강을 포함해 지연과 지혜는 엄마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접한 적 없었다.
“그건 너네들 놀라고 안 잡은 거고. 네 엄마가 한때 부여 가수로 통했다. 너네들 노래 잘 부르는 게 왜 잘 부를 거라 보는 거냐?”
지혜와 한강은 음악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꽤 괜찮은 보이스와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It's gonna be another day with a sunshine.
미화의 노래가 시작됐다.
“유전이다. 피는 못 속인다니까.”
말끝을 흐리며 오랜만에 듣는 아내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내 볼에 살짝 입 맞추고 사랑한다고 속삭였죠.”
애교가 가득하고 사랑으로 충만한 목소리에 심취해 눈가에 하트가 새겨졌다.
참여한 가족을 응원하기 참여한 사람들조차 감미로운 목소리에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아니, 이런 실력을 지니셨으면서 어째서 가수에 도전을 안 한 거죠.”
한강은 의문이 들었다. 정말 사기적이었다. 개연성 따위 무시한 듯한 스토리를 접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우리 엄마 진짜 멋지다.”
“와......”
진심으로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MC도, 함께 자리하고 있는 연예인들도 모두 눈을 떼지 못하고 미화의 노래에 집중했다.
When we can got together I feel paradise.......
다시 태어난 거죠......♪
노래가 끝났다.
짝짝!
뜻하지 않게 모두 기립해 박수를 쏟아냈다.
“아...... 가,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넋을 놓았던 미화는 정신을 빠르게 수습하고 가슴에 손을 얹어 박수를 보내주는 사람들에 인사를 하였다.
“엄마, 어떻게 그런 노래 실력을 숨겼어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미화를 반기며 한강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를 보냈다.
“맞아. 엄마. 진짜 얼마나 놀랐다고.”
“정말 멋졌어요!”
감동 그 자체였다.
새로운 엄마의 모습은 매우 멋졌고 눈부셨다.
“쑥스럽게 왜들 그래. 평소처럼 해.”
칭찬에 약한지, 무대에서 자신감을 드러내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뭘 그래. 축제 때도 자주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아니, 그건 동네 어르신들도 많았고...... 이거랑 경우가......”
“잘했어.”
아내의 모습이 너무 귀엽다. 덕화는 손을 꼭 잡고 애정을 보였다.
“모든 참가자들의 경연이 끝났습니다.”
스크린에 열 명의 사진이 띄워졌다.
MC 김성수는 화면에 뜬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 놀랍죠. 여기에 계신 분들이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란 사실이. 모두 20대, 30대라 해도 믿을 정도로 젊은 시절 아름다움을 뽐내셨습니다.”
정말로 사진만 봐서는 모두 누나라 불러도 될 정도로 40대 이상으로 보이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진행을 맡은 김성수조차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제 나이가 올해 마흔여섯입니다.”
푸하하하.
뜬금없는 나이 고백에 사람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스크린에 있는 어떤 참가자를 보더라도 또래로 보이는 이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하하하. 대부분이 누님들이신데 이거 부럽습니다.”
김성수는 재치있는 입담으로 지루한 시간을 웃음으로 이끌었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스탭으로부터 결과가 적힌 용지를 건네어 받았다.
“아! 역시 이분이 되셨군요.”
짧은 탄성과 함께 내심 짐작을 했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심사위원 100명이 뽑은 대한민국 최고의 동안......”
두구두구두구.
북소리가 들려왔다.
“3위, 동상! 참가 번호 1번 김미래 씨! 축하합니다.”
상큼한 춤 실력으로 끼를 발산한 여자가 동상을 거머쥐었다.
“트로피와 함께 상금 1천만 원이 주어집니다.”
플래카드와 트로피가 1번 참가자에게 주어졌다.
두근두근.
시상을 지켜보며 미화는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빌었다. 별거 아닌 대회일지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미화가 하고자 스스로 결정해 참가한 대회였다.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고 나온 대회인 만큼 꼭 시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2위, 은상! 섹시미를 어필해 홀을 뜨겁게 달군 참가 번호 10번 조세연 씨. 축하합니다. 상금 3천만 원이 주어집니다.”
대망의 1위만이 남겨졌다.
아직 호명되지 않은 사람들은 합장한 손을 가슴에 올려 기도를 하였다.
“1위! 금상만을 남기고 있는 가운데. 1위는......”
김성수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누군가와 시선이 맞닿은 순간!
“축하합니다. 금상! 참가 번호 5번 김미화!”
퐈아아앙!
종이 가루가 허공에 날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아주 깜찍한 외모를 보유하고 계신 김미화 씨는 놀라운 노래 실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어 줬으며, 사람들에게 산뜻함을 줘 여동생 이미지를 심어 주었습니다.”
와아아아아아!
됐다!
예!!
아싸!!
김성수의 발표에 한강과 더불어 덕화와 지연, 지혜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만세를 부르며 기쁨을 공유했다.
“상금 1억 원과 피부관리 1년 치 이용권을 드립니다.”
올해 나이 마흔일곱 살인 김미화는 동안선발대회에서 1위를 차지함으로써 대한민국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저 때 정말 대단하지 않았어요. 아빠?”
“정말 대단했지. 화장의 힘은 참 대단해. 안 그러냐?”
동안대회 녹화방송을 보던 덕화는 주방에 있는 아내 몰래 한강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방금 뭐하고 했어? 두 사람......”
하나 그것도 잠시. 뒤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둘의 얼굴이 경직됐다.
“하하, 저 아무 말 안 했어요. 아빠 왜 그런 말을. 엄마가 얼마나 예쁜데요.”
한강은 급히 자리에서 벗어나 밖으로 피신을 하였다.
“저 얍삽한 녀석! 으악, 여보, 아냐. 오해라고. 악!”
도망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미화의 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