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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209화 (209/237)

209화. 26살, 침수피해 건물 디자인

단군 신화급 탄생설 해프닝을 지나쳐 2010년 8월에 접어들었다.

올해도 장마는 저지대 지역에 물폭탄을 쏟아내 침수피해를 일으켰다.

“올해도......”

침수피해는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떠나려 해도 돈이 없으니...... 어디로 떠난다요.”

매년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침수피해는 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바뀌지 않는 침수피해로 정부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못 본 척하기엔 피해가 심각하네요. 칠레와 거래를 했다지만, 대외적으로 칠레를 도왔으니.”

이번 침수피해로 한강은 재차 임원진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좋은 의도로 갔다지만, 해외를 도운 기업이 국내에서 벌어진 피해를 무시하고 넘어간다면 구설수에 오를 겁니다.”

다른 사람들도 한강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지, 하나둘 목소리를 냈다.

의견은 하나로 좁혀졌다.

“결국 칠레보다 지원이 약하면 안 된다 이 말이군요.”

작은 기업을 운영할 땐, 단순히 운영만 잘하면 되어 머리 아플 일은 벌어지지 않지만, 기업의 규모가 거대해지면 일뿐만 아니라 신경 쓸 일이 더욱 방대하게 늘어난다.

사회에 대한 책임.

이것만큼 민감한 문제도 없었다.

“좋아요. 피해 규모 확인은 차후에 하는 걸로 하고 바로 구호물자를 보내세요. 그리고 다른 문제는 육성과 따로 협의를 하겠습니다.”

물자뿐 아니라, 한강은 여기에 추가로 얹어 또 다른 계획안을 내보였다.

너무 큰 금액이 들어가는 문제라 반대하고 나섰지만, 한강은 몰아붙였다.

결국 회의는 한강의 뜻에 맞게끔 이뤄졌고 종결을 하였다.

***

육성그룹 도곡동 사옥.

“뭐라?”

이건호는 황당한 눈으로 눈앞에 있는 인물을 바라봤다.

“시범적으로 해보자 하였습니다. 매년 상습적으로 발생하는 침수 지역입니다. 그럼 그에 맞는 건물과 대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단번에 육성으로 달려와 상습 침수 지역에 대한 브리핑과 해결책을 내놓았다.

“...... 우리가 정부더냐? 아니면 땅 파서 돈이라도 벌고 있더냐?”

너무 어이없어 날 선 시선으로 노려봤다. 심통이 가득했다.

“땅 파서 일하는 건 맞지 않습니까.”

“......네 녀석을...”

한강이 육성의 사위이고 한리버 그룹의 오너만 아니었다면 당장 쌍욕을 퍼부었을 터다.

이건호는 간신히 정신 줄을 붙들고 두통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꼭꼭 눌렀다.

“전 절대 손해가 아니라 봅니다.”

하나, 한강의 뜻은 확고했다. 겁이라고는 단 ‘1’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걸 공짜로 만들어 주라는 게 그럼 손해지 뭐가 아니란 거냐.”

미친 듯 밀어붙이는 한강의 말에 당최 납득할 수 없는 이건호다.

“당장 돈으론 손해일지 모르나 길게 보면 손해는 아닐 겁니다.”

한강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유는?”

“저희가 집을 지어주면 이건 육성과 한리버의 소유지. 주민들의 것이 아닙니다. 우린 1인에 대해 한정해 지낼 수 있도록 해줄 뿐입니다.”

“......”

“풀옵션으로 맞춰 주고 모든 관리는 저희가 합니다. 그래야 추후 뒤탈은 없을 겁니다. 일종의 임차를 해 자는 겁니다. 그 후 월세든 전세든 매매든 하여 투자금을 회수하면 그만입니다.”

한강은 열심히 이건호를 설득했다.

몸짓 발짓 모든 몸을 이용해 열심히 설명을 하였다.

“......”

이건호는 말없이 한강이 하는 양을 지켜봤다.

“저희가 오래 들고 있으면 상황에 따라 건물의 가치는 오를 거라 봅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매우 큽니다.”

“계속해봐.”

찡그리던 이건호의 얼굴이 펴졌다.

처음과 달리 한강의 이야기를 집중해 들었다.

“어쨌든 대내외적으로 볼 때 육성과 한리버는 피해주민들을 위해 지원을 한 모습으로 비치게 될 겁니다. 두 번째 건물에 대한 새로운 시도에 있고, 세 번째......”

당연히 기업에 대한 사람들의 충성도이다.

충성도가 오르면 시장의 시선은 육성에 맞춰진다. 또한 이익만을 위한 기업이 아닌, 나눌 줄 아는 기업이라며 사람들은 박수를 보낼 터.

한강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래, 좋다. 네 말대로 한다 치자. 그럼 우리는 매번 손해를 감수하고 그렇게 행동을 하자 이 말이냐?”

아주 현실적인 부분을 지적하였다.

자, 이건 어떻게 설명을 해볼 테냐?

이건호의 시선은 한강의 눈에 고정됐다.

“이 대한민국에 육성만 건설사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다른 기업들을 자극한다면 따라 하지 말란 법도 없지요. 설사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꼭 우리 돈으로 집을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말은?”

“우리의 세금을 가져가는 집단. 정부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선례를 만드는 걸로 끝내면 됩니다.”

한강의 아주 간략한 계획이었다. 언제나 처음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두 번째부터는 진심이 아닌, 따라 하기 정도.

“......음.”

“거주하는 사람도 적고 시도를 해볼 만합니다. 그리고 거기서의 손실은 다른 곳에서 채우면 될 겁니다.”

“......?!”

마지막에 던진 한마디에 이건호의 눈빛이 변했다.

“칠레에서 복구 사업에 나설 겁니다. 그곳과 연결해 드리죠.”

“......!!”

이건호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정말이냐?”

“네. 그래서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일단 저도 사업가예요. 쏟아부은 돈...... 절대 무시 못 합니다. 그만한 가치가 될 만한 걸 가지고 와야 했는데 그중 하나가 그겁니다.”

한강은 칠레에서 리튬만을 가져온 게 아니었다. 복구 사업에 직접 나서고 싶다 말한 것.

“허허, 별놈이 재주는 뛰어나구나. 확실히 그 정도면......”

이건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손익계산을 따져 보는 중이었다.

“좋다. 제 말대로 하지. 지분은?”

“당연히 제가 70입니다.”

“좋아, 침수피해 지역은 7대3으로 가고, 칠레는 소개비로 챙겨주마.”

“감사합니다.”

이번 계획도 완벽했다.

“그런데, 얼굴에 또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뭐지?”

얼굴에 ‘저 할 말 아직 남았습니다’가 대놓고 쓰여 있었다.

이건호는 어서 말해 보라 일렀다.

“건물 디자인과 일부 벽면 도색은 저에게 맡겨 주세요.”

“뭣?”

한강도 사업에 나서려나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디자인과 도색?!

이게 무슨 말인지, 다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다시 시작을 하는 지역입니다. 아주 특별한 지역으로 꾸며 보고 싶습니다.”

한강은 자신의 뜻을 확실하게 밝혔다.

“...... 그 말은??”

이건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예상하신 대롭니다. 지역에 맞게끔 예술과 합쳐진 농업지역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대체 왜 사업가가 돼서는...... 그럴 바에 사업을 관두고 예술가로 가지 그러냐?”

몸도 하나인 놈이 두세 마리 토끼를 놓지 않고 잡으려 한다.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뇌 구조를 지녔다.

“절대 예술만 할 생각이 없습니다. 가장 재미없는 일이지요. 돈을 벌고 쓰며 예술을 하는 행위가 좋습니다.”

“그림만 그려도 네 녀석은 한 일가를 충분히 이룰 터.”

“그랬겠죠. 하지만 그런 재미없는 삶은 거부입니다.”

“내 몸을 그리 걱정하는 녀석이 자신의 몸은 신경을 쓰지 않는 거더냐?”

어느 누구보다 건강에 민감한 것이 한강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를 하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일에 모든 걸 바치는 걸로 보이지만, 회사에 있는 시간은 6시를 넘기지 않습니다.”

“......?!”

“회사에 저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6시를 넘깁니까? 그런 노예 같은 생활은 하지 않아요.”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다. 퇴근 시간은 18시로 고정해, 그 외 시간은 개인 시간을 가졌다.

“고얀.”

이건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묘한 억울함이 얼굴 위에서 느껴졌다.

“장인어른도 재석이 결혼하는 건 보셔야죠.”

꽉 찬 직구를 던졌다.

“할 말 끝났으면 나가.”

심술 궂은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심기가 불편한 눈빛이다.

“하하, 재석이가 좋아할 거예요.”

그걸 또 여유로이 받아넘기는 한강이다.

“흥, 재석이도 자주 데려오지 않는 녀석이......”

이건호는 작게 중얼거린다지만, 한강의 귀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재석이도 외할아버지 많이 보고 싶다고 칭얼대던데, 데려가겠습니다. 그때 귀찮게 한다고 내치지 마세요.”

밖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슬쩍 재석을 언급하고 열었던 문을 닫았다.

“하여간, 참 귀여운 분이시라니까. 후후.”

이건호의 솔직하지 못한 귀여운 모습에 방긋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

[한리버, 육성 그룹 침수피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집을 공급해 주기로 금일 10시 20분 도곡동 본사에서 이건호 회장이 기자들을 모아 입장을 밝혔다.]

└ 이미연: 대체 이게 뭥미?! ㄹㅇ 찐짜로?!

└ 탁재문: 요즘 육성 미쳤나?? 대체 왜 저래?

└ 김의학: 이해가 안 되네, 분명 좋은 거긴 한데...... 그동안 아무 지원 없이 관망하던 기업이 왜......?

└ 나동원: 확실히 이해가 안 가네요. 저걸 해준다고 이득이 되는 부분은 없을 건데, 한두 명도 아니고.

육성그룹의 발표는 대한민국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돈을 던져주고 끝냈던 지원이 집으로 등급이 확 올라간 건, 아주 놀라운 발표였던 탓이다.

정부도 손 놓고 있는 일을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집을 지어주겠단 발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한리버 사옥에 이어, 사람들이 살아가게 될 디자인을 내가 맡게 되다니, 벌써 즐거운걸.”

커다란 스케치북을 펼쳤다. 이곳에 한강이 짓고자 하는 건물이 표현이 될 터다.

“이곳은 잦은 침수 지역인 만큼 1층으로 된 집은 맞지 않아.....”

연필을 들어 하얀 종이 위에 가져갔다. 힘 빠진 실선들이 연하게 그어졌다.

“최대한 높게 짓자. 1층은 두꺼운 기둥으로 높게 지탱하고 주차장과 창고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2층부터 사 가정집을 꾸리는 거지.”

어르신과 장애인을 위한 자동 리프트도 그렸다.

“대충 필요할 거라 생각되는 건 해놨으니,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다음 장을 넘겨 농경지에 어울릴만한 건물을 그려보았다. 연하게 그려진 선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빈공간을 채워갔다.

건물 외벽에 벼와 과일을 닮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그려졌다.

“붉은 기와는 너무 촌스러운데...... 이거 말고...... 어떤 게 좋으려나......”

마지막은 남은 지붕에 어떤 색의 기와가 좋을지 고민을 하였다.

“가만, 그래...... 기둥 색을 하얗게 할 게 아니라 어두운 갈색으로 만들자. 벽은 옅은 황토 계열로 하고. 지붕을 길게 뻗어 놓는다면......”

됐다!

여러 날 고민 끝에 만족한 디자인이 뽑혔다. 1층에 튼튼한 기둥들로 2층을 떠받치는 형태를 취했다.

침수가 되더라도 잠자리만큼은 지킬 수 있는 높이로 지어진 기와집을 그려 놓았다.

실속과 가성비보다 안전에 집중된 처음 보는 기와집이 도화지에 그려졌다.

한강은 도화지에 그려진 건축물을 모여 만족한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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