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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208화 (208/237)

208화. 26살, 협상

커다란 식탁을 차지하고 있던 음식들이 사라지고 입가심을 위한 찻잔만이 덩그러니 놓였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시선이 맞닿았다. 한강은 세바스티안 피녜라를 주시했다.

“하하,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눈치가 아주 좋으십니다.”

한강의 반응에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통쾌하게 웃어 젖히며 순순히 인정을 하였다.

“맞습니다. 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드리죠. 한리버가 이곳에 오신 이유를 조금 수정해 주셨음 합니다.”

“......그게 무슨 의미이죠?”

잠깐 뜸을 들인다 싶더니, 생뚱맞은 소리를 해대는 모습에 반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입니다. 한리버가 자원해서 온 게 아닌, 저의 적극적인 요구로 칠레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이렇게 바꿔주셨으면 합니다.”

“......”

그제야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무슨 의도로 말을 던졌는지 알 거 같았다.

“그 말씀이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지 아시나요?”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하는 말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려는 계획에 차질을 주는 부탁이었다.

물론, 약간의 내용만 변경한다면 크게 틀어지지 않겠지만 자체적으로 움직인 것과 협상을 통해 움직이는 건 아주 큰 차이가 발생한다.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였다.

“아주 잘 알지요. 섭섭하지 않은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의 눈에 절실함이 묻어났다.

“왜 그걸 그 정도로 원하는 건가요?”

이쯤 되자 궁금증이 일었다.

그가 왜 이렇게까지 요구하는지 이유가 궁금해졌다.

“제가 제 이름으로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말씀을 드리지요.”

텁텁해진 목에 수분을 보충하고 목을 몇 번 가다듬던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멈췄던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사회당에 비해 우리당의 실적이 부진합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한 조치로 회장님께 부탁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솔직하시군요.”

‘이거 괜히 물어본 건가? 괜히 후회가 되네.’

나쁜 일이야 없겠다 싶지만, 사람 일이란 모르는 법.

좋은 일 하러 왔다가 괜히 독박 쓰게 생겼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협상을 할 필요가 있겠네.’

너무 궁금해 묻게 된 게 탈이 나버렸다. 제기랄.

“제가 그걸 들어 드린다면, 대통령님께선 저에게 무엇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무조건 이득을 챙겨야 한다. 이대로 넘어가면 돈과 인력만 쓴 꼴.

“사업에 관한 거라면 적극 도움을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한강을 응시했다.

‘......칠레 하면 역시 두 가지지. 와인과 리튬이지. 어쩌면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몰라.’

20세기는 석유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면, 21세기는 석유가 아닌 리튬이 석유를 대신할 터.

‘아직 리튬의 중요성은 모를 때야.......’

칠레는 세계 제3의 리튬광 보유국이며 제2위 생산국에 오른다.

‘추후 젊은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막 환경에 부담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무엇보다 지금은 리튬의 중요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때야.’

말 한마디 해주는 데 어려울 건 없었다. 하지만 리튬과 같은 자원은 또 다른 문제.

이번 기회에 확실히 찔러 보기로 하였다.

“좋습니다. 대통령님의 부탁을 들어줌과 동시에 지지의 뜻을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대신......”

결심이 섰으니, 이제부터 뒤는 없었다. 오로지 전진만이 있을 뿐.

“리튬개발사업에 대한 공동 발굴 및 프로젝트 정보공유에 대한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양해각서)를 체결하였음 합니다.”

한리버에 있어 구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리튬이란 희귀광물!

MOU를 통해 실질적 협력기반을 마련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리튬이요?”

“그렇습니다. 요즘 리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친환경과 관련된 연구로 이번에 개발이 성공한다면 추후 칠레는 사우디에 필적할 부유한 국가로 올라서게 될 거라 확신합니다. 이는 대통령님의 업적으로 남게 될 겁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납득할 만한 말들을 던져 한리버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으음.”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잠시 고민을 하였다. 여기서 자원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줄 몰랐던 탓에 고심이 깊었다.

“계약조건은 우선권 보장, 대신 대부분의 개발자금을 칠레가 아닌 한리버가 대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리튬 가격은 미친 듯이 오른다.

이는 전기차 원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이번 일만 성공을 한다면 앞으로 전기차 시장은 완벽하게 한리버에게 넘어가리라 확신을 가졌다.

“결코 칠레에 손해가 가는 일이 아닐 겁니다.”

실제로 칠레에 손해 갈 건 없었다. 단지 한리버가 여타 기업보다 저렴한 가격에 가져갈 뿐.

투자한 만큼의 이득을 취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허허, 이거 내가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생각을 하였는데, 상황이 반대가 되었습니다.”

“저도 일이 이리될 줄 몰랐습니다. 초기 개발비도 저희가 대겠습니다. 대신 이외에 다른 비용이 부과되지 않도록 해주신다면 칠레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겠습니다.”

칠레는 재해복구로 인해 막대한 자금이 빠져나갈 예정이다. 그 부분을 긁어주며 협상을 이끌었다.

“하하, 이거이거. 아주 마음에 드는 제안입니다. 그리된다면 칠레의 국민들은 한리버에 상당한 고마움을 심장에 새길 겁니다.”

약 19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칠레.

비록 적은 인구를 가진 작은 국가이나, 리튬이란 광물로 인해 경제적 위치가 크게 역전을 하게 되는데.

“한리버를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강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와 악수를 통해 리튬개발에 대한 MOU를 체결하게 되었다.

***

맛있는 시간을 보낸 다음 날, 세바스티안 피녜라의 부탁으로 바로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사업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님의 요청에 저는 칠레에 대대적인 지원을 결심했습니다. 자원개발뿐 아니라 재해로 인해 피해를 본 분들을 위해......”

한강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투자라는 단어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지원이라는 단어를 강조해 국민들의 환심을 사려 노력하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대통령 참모진들이 나와 무대에서 내려오는 한강을 반겼다.

역동적으로 인터뷰를 하는 한강의 모습에 반하고 말았다.

“제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이렇게 된 이상, 다음 정권에 잘 보여야 해.’

추후 현정권은 좌파 정치인 사회당 미첼 바첼레트로 바뀐다.

“네네, 감사합니다.”

악수를 건네는 이들과 인사를 하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접니다. 유한강이.”

자리를 벗어나면서 핸드폰을 들어 한국에 있을 김동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리튬 개발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세요. 하루가 급합니다. 네, 일렉트라로 돌리면 될 겁니다.”

일을 서두를 것을 주문했다.

“휴우, 생각지 않게 일이 너무 잘 풀렸어. 리튬 투자를 어찌할까 했는데.”

모든 조건이 일렉트라 전기차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한강은 피식 웃으며 작업 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끝났다!”

누군가의 외침이 하늘에 진하게 울렸다.

“으아아아아, 이제 집에 가서 다리 펴고 푹 잘 수 있겠다.”

열흘간의 자원봉사가 모두 끝났다. 모든 피해지역 정리가 끝난 건 아니지만, 이들에게도 개인적인 삶이 있었다.

구호물자를 더 지원하는 걸로 마무리를 짓고 피해현장에서 벗어났다.

“모두 고생 많으셨어요. 열흘간의 작업으로 매우 힘들었을 겁니다.”

여자는 구호물자를 나누어 주었고, 남자는 현장에 투입해 주변을 정리하였다.

“여러분에게 3일간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지친 몸 편히 쉬고 좋은 모습으로 회사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똑같이 고생해 무사히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고생한 이들에게 3일간 휴가를 줌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이.

“회장님, 칠레 리튬개발 MOU를 체결하였다 들었습니다. 앞으로 리튬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회장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공항에 포진해 있는 기자들의 장벽이 어마무시하다. 한강은 경호원들이 뚫은 길을 따라 공항을 벗어났다.

“후아, 역시 기자들은 아무나 하는 게 아냐. 집으로 가죠.”

우여곡절 끝에 공항을 벗어난 한강을 태운 차는 청담동 고급빌라타운으로 향했다.

***

“아빠!”

집에 도착하자 재석이 크게 반긴다.

“우리 아들 잘 있었어?”

덥석 안기는 아들을 힘껏 들어 올렸다.

“네!”

오랜만에 봐서 그럴까? 예전보다 더욱 깊게 안겨 왔다.

“왔어.”

뒤늦게 윤희가 나왔다.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꽤 피곤해 보인다.

해외로 출장을 다녀온 자신보다 더 힘들어 보여 의문이 들었다.

“이걸 봐봐.”

윤희는 기다렸다는 듯, 종이를 건넸다.

“응? 이게 뭔데?!”

피곤함을 뒤로하고 종이를 받아 안의 내용을 확인하였다.

『학부모님께.

무더운 여름날 고생이 많으십니다. 다름이 아니옵고 재석이에 관하여......』

“자신을 꿈속에서 태어난...... ”

종이에 적힌 모든 내용을 확인한 한강은 그제야 윤희의 상태를 이해하였다.

“에휴...... 내가 그걸로 유치원에 다녀왔다는 거 아냐. 아주 단군신화 한 편을 쓰고 있더라고.”

하하......

한강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주 소심하면서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우리 얘기가 완전...... 전설이 됐더라.”

“끄응.”

역시 자식 교육은 참으로 어렵다.

“다른 문제는......!?”

물어보기가 조심스럽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운 심정으로 물었다.

“왜 없겠어. 있었지.”

“뭐?!”

“당신 아들은 아들인가 보더라. 아니면 이름 탓인지도......”

윤희가 말끝을 흐렸다.

“아니, 뭔데 그래?”

“에휴, 아주 우리 아들 연예인 다됐어.”

윤희의 시선이 재석에게 머물렀다.

“아빠, 나 MC 봤다.”

“잉?”

난데없이 튀어나온 재석의 한마디에 뭔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들어 윤희를 바라봤다.

“글쎄, 재석이가 미래에 뭐가 되고 싶냐는 말에 MC가 되겠다고 개그맨이 되겠다 했다는 거야.”

“풋, 푸하하하. 크크.”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재벌 가문에서, 그것도 육성의 피가 흐르는 재석이 개그맨이 되겠다는 말에 그만 폭소가 터졌다.

“웃지 말고!”

“어때. 난 그것도 좋을 거 같은데.”

“그게 뭐가 좋아!”

“난 우리 아들이 세상을 재밌게 즐기며 살았음 좋겠어. 지금도 공부에 시달리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해주고 싶은 걸 해주자고. 재석아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한강은 재미진 얼굴로 아들을 천장에 닿을 때까지 올려 빙글빙글 돌았다.

“응! 친구들 웃기는 거 너무 좋아!”

재석은 신나 한강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좋아했다.

“에휴...... 내가 진짜.”

남편만 아니었다면 주먹을 날렸을지 모르겠다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방으로 사라졌다.

“재석아, 대신 너의 본분을 잊으면 안 된다. 늘 기억해.”

“본분?!”

“아직은 몰라도 돼. 대신 잊지만 마.”

“응!”

재석의 미래가 한강도 예상하지 못한 날,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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