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207화 (207/237)
  • 207화. 26살, 칠레로

    푸에취!

    “뭐지?”

    뜬금없이 터지는 재채기.

    오늘따라 코가 근질거렸다.

    “괜히 여름에 감기 걸리는 건 아니겠지.”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리는 건 아닌지 싶었다.

    괜히 담요를 챙겨 몸을 덮었다.

    “아, 좋다. 따스하니 좋네.”

    햇빛에 몸을 노출시켜 혹시 모를 감기에 대비를 하였다.

    “저기 여기 따뜻한 물 한 잔 부탁해요.”

    그리고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따스한 물을 부탁했다.

    “여깄습니다.”

    잠깐의 시간, 승무원이 따스한 차를 가져왔다.

    “고마워요.”

    잔을 받아 올라오는 김을 잠시 감상하다 ‘후우’ 불어 열을 식히며 조심히 마셨다.

    “역시 따뜻한 물이 최고야.”

    조금은 추웠던(?) 몸 안으로 따뜻한 액체가 스며들자 뜨끈함이 위로 올라왔다.

    따스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몸을 깊이 파묻었다.

    끼리릭. 끼릭.

    “회장님,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입니다.”

    게이트를 통과하자, 수행원이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국가의 원수가 직접 나와 마중을 나와 있었다.

    “허, 저 양반은 불편하게......”

    큼.

    몹시 불편한 시선을 보냈다. 눈이 마주치자 옆에 있는 사람이 ‘헤이’ 하며 손을 흔들었다.

    “갑시다.”

    국가의 원수의 마중이라, 모든 인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아주 불편한 경험이다.

    걷는 걸음에 맞춰 카메라가 따라 다녔다.

    고작 기업가를 만나기 위해 직접 행차를 한다?

    벌써부터 피곤함이 팍 밀려왔다. 자원봉사보다 더 피곤한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다.

    찰칵찰칵.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세바스티안 피녜라에게 이동했다.

    “반갑소이다.”

    “직접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제가 더 감사드리죠. 우리를 위해 구호물자뿐 아니라, 회장님께서 손수 나서 도움의 손길을 주신다는데, 어찌 나와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의 눈동자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참 대단한 사람이야. 저 어린 나이에 예술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유한강은 전 세계를 아우를 정도로 지대한 영향력을 뻗치고 있었다.

    막강한 팬층과 사업들은 새로운 문화의 장으로 떠올라 한리버의 성장 동력이 되어 주고 있었다.

    “이렇게 직접 나오지 않으셔도 되었는데......”

    불편한 티를 팍 내었다.

    예고도 없던 일이라 경황도 없었다.

    “오늘 회장님을 위해 작은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는 한강의 불편함을 무시하고 함께하기를 바랐다.

    ‘끙, 역시 이렇게 꼬이나...... 그래도 너무 거부하면 안 되겠지만......’

    자신은 이곳에 놀러 온 것이 아니다. 봉사를 하러 온 자리에 맛 좋은 음식을 먹으며 편하게 있을 생각은 없었다.

    하나, 상대는 국가의 원수.

    너무 거부를 하여도 문제가 되었다.

    신중하게 생각을 정리해 가장 그럴싸한 답을 찾아냈다.

    “아...... 죄송합니다. 오늘은 어렵지 싶습니다. 대통령님의 환대는 감사한 일이나, 지진으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돕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온 상황이라, 일이 마무리되면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제안을 일시에 거절하면서도 여지를 남겼다.

    “아, 이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걸 잠시 망각했습니다. 실례를 범했습니다.”

    차로 이동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꽉 막힌 사람은 아니라 다행이야. 휴우......’

    간혹 권위적인 인물 중 고집쟁이들이 더러 있었다. 혹여 기분이 상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우려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국가에서 준비한 차량을 한강에게 무상으로 대여를 해주었다.

    국가를 위해 도움을 주는 데 작은 도움을 주었다.

    “와, 진짜 지옥이 따로 없네.”

    공항을 나서 세바스티안 피녜라와 헤어진 한리버 직원들은 밖으로 보이는 참상에 혀를 내둘렀다.

    전쟁통을 방불케 하는 모습들이 시야를 채웠다.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장면에 표정을 굳혔다.

    “모두 저를 봐주세요.”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흩어진 시선들을 하나로 모았다.

    “오늘은 휴식을 취하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이 될 텐데 열흘간 힘든 일정이 될 겁니다.”

    한국에서도 타지로 가면 힘이 드는데, 타국으로 넘어와 일을 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일을 하다 힘들면 편히 쉬세요. 어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 없습니다. 호루라기는 항시 차고 다니시고 준비한 송수신기는 필히 착용하고 다니세요.”

    한강은 책임감을 느끼고 직원들의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힘을 썼다.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의 몸보다 집에 있을 가족보다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더 하면 잔소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네!

    직원들의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말을 마쳤다.

    한강은 이야기를 끝내고 버스에서 하차를 하였다. 직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따랐다.

    ***

    읏차!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대지진으로 인해 덮친 쓰나미와 그로 인해 벌어진 대홍수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삶의 터전을 잃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힘을 모아 휩쓸려온 쓰레기와 흙더미를 각종 장비를 이용해 치웠다.

    “포대 더 가져와. 상길아 꽉 잡아, 든다. 하나 둘 셋!”

    이럇차!

    쓰러진 나무를 도끼로 내리쳐서 자르고 사람들과 힘을 합쳐 한쪽으로 옮겼다.

    “정말 엄청나네요.”

    “그러게 말이야. 이게 참 뭔 일인지.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피해를 입지 않아 다행이야.”

    낮은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매년 홍수로 인한 피해를 보기는 하지만,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바는 없었다.

    자신의 가족들이 칠레와 같은 피해를 입지 않은 것에 크게 안도했다.

    “식수와 텐트는 부족하지 않죠?”

    작업을 하다 잠시 가지는 휴식시간.

    한강은 땀을 닦으며 제일 중요한 식수에 대해 물었다.

    “부족하지 않습니다.”

    “2차 물자는요?”

    “3일 뒤 도착 예정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요. 중간에 변수가 생긴다 해도 크게 지장은 없을 거고.”

    물자를 체크한 한강은 들려온 보고에 만족하며 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그럼 다시 일을 해볼까요. 자 일하는 사람 중 쉴 사람은 쉬세요.”

    작업 현장으로 가면서 박수를 크게 쳤다.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휴식을 권했다.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던 사람들은 휴식을 끝내고 돌아온 사람들과 교대를 하였다.

    “어떻게 보는가?”

    “어리지만 대단한 리더십을 보유했습니다. 전쟁터에 볼 법한 지휘관을 보는 거 같습니다.”

    멀리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던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시선을 돌려 한강에게 고정했다.

    적재적소에 맞게 사람들을 배치해 일하는 모습은 20대가 보여 주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아무리 기업을 일으켜 성공을 한 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저리 다루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이제 움직여 볼까.”

    “유 회장과 일정을 잡으러 오신 거 아니었습니까?”

    “저리 열심히 일하는데, 방해할 수 없지. 작업이 끝날 때, 사람을 시켜 내 얘기를 전해주게.”

    무턱대고 고집을 부릴 성격은 아니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재해 지역에 필요한 건, 물자뿐 아니라 도울 사람들도 많이 필요로 하였다.

    지시를 마친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대기하고 있는 차량에 아무 말 없이 몸을 실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님께서 내일 오찬을 드셨으면 한다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모든 작업이 끝난 저녁 시간.

    저녁을 마치고 텐트로 돌아온 한강의 앞으로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다.

    “네, 알았어요. 그러도록 할게요.”

    첫날 제안을 거절한 한강은 이번엔 거절하지 않고 세바스티안 피녜라의 요청을 수락하였다.

    “이 정도면 참여를 해도 되겠지.”

    원수(元首)의 부탁을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급한 일은 어느 정도 끝내놨다. 일정도 충분해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되리라 봤다.

    “건물 무너질지 모르니, 모두 뒤로 빠져. 중장비가 들어갈 거야.”

    다음 날 오후.

    사람들이 물에 젖은 질퍽해진 땅을 밟으며 우르르 아래로 내려왔다.

    “저는 칠레 대통령과 만나기로 해서 잠시 자리를 비울 거예요.”

    함께 칠레로 온 임원진들을 불러 오늘 일정에 대해 말했다.

    “시간 되면 바로 빠지고 직원들에게 맛좋은 음식을 제공하세요.”

    며칠간 고생한 직원들에게 고단백 음식을 제공하기로 하였다.

    고기를 먹어야 사람이 힘을 쓰지 않겠나.

    혼자 중간에 빠져 칠레 대통령을 만나는 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녀오세요. 여기는 저희에게 맡겨 주시면 됩니다.”

    임원진들의 말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천막에서 나와 준비된 차량에 몸을 실었다.

    “출발하겠습니다.”

    한강과 한강의 경호를 위해 따라온 경호팀이 줄지어 출발을 하였다.

    ***

    기업인 출신으로 억만장자에 이르며 성향이 온건한 범군사정권계 인사로 알려졌다.

    1970년대 후반 칠레 최초로 신용카드 회사를 설립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중남미 최대 항공사와 병원, 콜로콜로 축구팀 등을 소유한 거부로 매우 유명하다.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우파정권인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 올랐지만, 전 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를 대신하기에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건 세바스티안 피녜라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하여 고민 끝에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인 ‘유한강 회장’이 자원봉사 팀을 이끌고 칠레로 방문을 한다는 소식에 좋은 생각이 떠올렸다.

    “실수는 없어야 할 걸세. 그는 우리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손님이란 점 잊지 말게.”

    이번에 벌어진 대지진은 그에게 있어 다시 없을 기회였다. 늘 위기는 기회를 낳는 법.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주의를 주면서 한강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대통령님, 유한강 회장이 도착했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한강의 도착 소식이 들려왔다.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잘 왔습니다.”

    “초대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으로 들어선 한강은 세바스티안 피녜라와 악수로 인사를 대신하였다.

    “이리 오시죠.”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오찬이 준비되어 있는 자리로 향했다. 칠레의 대표 음식들이 식탁을 채우고 있었다. 각종 해산물들과 구운 야채를 곁들인 농어 스테이크가 한강의 앞에 놓였다.

    “이거 맛있어 보이는데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인 농어 스테이크입니다. 입에 맞았음 하는군요.”

    나이프를 가져가 스테이크를 잘랐다. 육즙이 아래로 흐르는 게 시야로 보였다.

    자른 부위를 포크로 찍어 올려 향을 음미한 다음 입에 가져갔다.

    ‘음......’

    구운 야채를 곁들인 농어 스테이크의 육즙이 입 안에서 터졌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에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야들야들하니 정말 맛있습니다.”

    제법 유명한 쉐프가 만든 요리로 보였다.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보여 주었다.

    “천천히 드세요. 부족하다면 더 내오라 이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여기에 있는 요리를 먹기도 벅찰 거 같은데요.”

    “하하, 그렇군요. 하마터면 제가 큰 실수를 저지를 뻔하였습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여유 있는 얼굴로 한강과 대면을 하였다. 둘의 식사 자리는 기대 이상으로 매끄럽게 흘렀다.

    “저를 이곳으로 초대한 건......”

    폭식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음식들이 입맛에 맞아 계획에도 없던 폭식을 했다.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입가에 묻은 음식 소스를 닦았다.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겠지요?”

    한강의 시선은 앞으로 고정됐다. 이제 본격적인 대화로 넘어갈 때였다.

    한강의 눈은 하늘을 누비는 매의 눈으로 변해 세바스티안 피녜라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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