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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206화 (206/237)

206화. 26살, 칠레로

“어떤 그림인데?”

그림에 고정됐던 재석의 눈이 윤희의 얼굴로 이동했다.

“그걸 말해 주기 전에 저 그림을 보고 뭘 느꼈어?”

바로 알려줄까 하다, 아들의 생각이 듣고 싶어졌다. 윤희는 아들과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음......”

시선을 다시 그림으로 향했다. 손가락으로 입술을 누르며 그림을 바라봤다.

“같은 것도 같고 달라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저기 저 여자가 엄청 행복해 보여요. 그림을 그린 사람이 저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거 같아요.”

재석은 그림을 보며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해, 자신이 느낀 감성을 솔직하게 표현을 하였다.

“......”

“......”

재석의 말을 들은 한강과 윤희는 입을 쩍 벌렸다.

그러다 윤희는 시선을 돌려 재석을 내려보는 한강을 올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만났다.

무척 놀란 감정이 둘의 얼굴에 맺혔다.

“재석아, 지금 그 말들 무슨 뜻인지 알고 말한 거야?!”

너무 놀라 한강도 다리를 굽혀 아들에게 물었다.

“조금?”

재석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지식 수준을 표현하였다.

“......허허, 하하. 푸하하하하.”

한강은 폭소를 터트렸다. 재석으로 인해 어린 시절 자신으로 인해 황당해했을 어른들의 모습을 떠올리자 웃음이 쏟아졌다.

충분히 그분들의 마음을 알 거 같다.

‘이런 기분이었나. 설마 내 아들이......’

천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유전일까?

여섯 살이 저리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게 다가왔다.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였다.

‘교육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는구나.’

진지하게 재석의 교육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아빠 왜 웃어?!”

자신이 말을 잘못했나 싶어, 엄마를 바라봤다.

“아니야. 우리 아들이 너무 기특해서 웃는 거야. 그리고 재석이가 본 그림 속 여자는 엄마란다.”

“와! 이게 정말 엄마예요?”

윤희의 말에 재석은 깜짝 놀랐다.

그림 속 여자 주인공이 엄마일 줄이야.

“그래, 예쁘지. 자, 보렴. 이걸 누가 그렸는지.”

손가락을 가리켜 사인 아래에 적힌 이름을 가리켰다.

“유... 한... 가...ㅇ...?!”

그동안 배운 글자를 천천히 끝까지 읽은 순간!

“아빠?!”

아주 익숙하면서 친숙한 이름이 뇌를 주물렀다. 재석은 윤희에게 안겨 있는 모습 그대로 한강을 쳐다봤다.

“그래, 아빠다. 어때? 괜찮아?!”

안겨 있는 아들을 보며 씩 웃었다.

“정말 멋져요! 와아......”

아빠가 그린 그림을 처음 본 재석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대부분 잠드는 시간에 들어오는 덕에 제대로 그림을 접할 시간이 없었는데.

설마, 아빠가 저리 멋진 그림을 그리는 화가일 줄 몰랐다.

“멋지지?”

순수하게 놀라는 아들의 모습에 윤희는 뿌듯한 얼굴로 남편을 바라봤다.

“응! 네! 진짜 너무 멋져요!”

하하하.

한강은 아들의 재미진 반응에 활짝 웃었다. 아들의 칭찬은 세상 어느 누구의 칭찬과도 맞바꿀 수 없는 종류의 힘을 지녔다.

“이게 엄마와 아빠가 너와 만나기 전에 지금껏 걸어온 길이란다.”

한강은 친절하게 그림의 특별함을 설명했다.

1월부터 12월까지 나열된 그림을 하나둘 가리키며 당시의 감성을 설명했다.

알 수 없는 감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아주 기분 좋은 감각이었다.

“그럼 저것도 아빠가 그린 거예요?!”

재석의 눈에 또 다른 작품이 들어왔다.

앞쪽에 유모차가 놓인 작품이었다.

“아, 저건......”

윤희의 시선이 재석의 손을 따라갔다.

동시에 더욱 진한 미소가 입가에 얹어졌다.

“그래, 재석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던 때, 그린 거야.”

한강은 아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 그런 여성의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

그건 다름 아닌, 한강의 열일곱 번째 작품 ‘산책’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추억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럼 저 아기가 저예요?!”

천천히 걸음을 움직여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그래, 너야. 어때 정말 작지?”

사람의 실체 크기로 그린 역대 작품 중 하나.

그걸 아들과 함께 마주하고 있었다.

“와아......”

재석의 눈은 아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빠, 저 있잖아요.”

감탄을 터트리며 그림 속에 있는 자신의 어린 모습을 쳐다보던 재석의 입이 열렸다.

“응?”

“궁금한 게 있는데요......”

목소리에 비장함이 묻어났다. 떨어지지 않을 거 같던 눈동자가 한강에게 고정됐다.

“그래, 우리 아들이 궁금한 게 뭐가 있을까?”

인자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봤다.

윤희도 아들의 입에 시선을 가져갔다.

“저는 어떻게 태어나게 됐어요?!”

쿵!

“뭐, 뭐?”

윤희는 당황해 재석에게 되물었다.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기습적인 질문에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그게 말이다......”

당황한 건 한강도 마찬가지.

재미로 얘기만 들었지, 직접 경험을 하게 될 날이 올 줄 몰랐다.

준비되지 않은 돌발적 질문에 식은땀이 관자놀이에 맺혔다.

“이상하다. 선생님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물어보면 왜 부끄러워해요?!”

아무래도 유치원에서도 지금과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나 보다.

‘아니야. 이건 무조건 알려주고 넘어가야 돼. 당황하지 말자.’

당황도 잠시.

한강은 큰 결심을 했다는 듯, 주먹에 힘을 주었다.

“커흠. 그게 말이다. 재석아.”

“......”

뭘 말하려 그러느냐는 윤희의 눈이 한강에게 향했다. 윤희와 눈을 마주친 한강은 ‘날 믿어줘’ 둘만이 알 수 있는 신호를 보냈다.

끄덕, 윤희가 고개를 흔들었다.

허락이 떨어졌다.

“네.”

재석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유치원에서 궁금증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나 보다.

“아빠가 말해주기 전에......유치원 선생님은 말을 해주지 않던?!”

선생님한테 물어봤다면 어떤 답안을 내놓았을 터인데, 어떻게 말해 주었을지 무척 궁금했다.

“해주긴 했는데, 이상해요.”

대답을 하면서 미간을 좁히는 재석이다.

“이......상해? 뭐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제발 이상한 소리는 하지 않았기를 간절히 빌었다.

“엄마랑 아빠가 이불 안에 있다 보면 아이가 나온대요.”

“......”

세다. 강력했다.

매우 사실에 근거한 답안을 아이에게 전달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하하...... 이거 낭패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준비를 해 놓는 건데.’

한강도 비슷하게 답을 주려 했던 거 같다.

“그런데 혜진이가 그러는데, 혜진이는 다리 아래에서 주워 왔대요. 너무 불쌍해요.”

“......”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차마 하지 못하겠다. 크면 이해할 날이 오겠지 속으로 근질거리는 마음을 다독였다.

“재석아, 아빠가 말해 줄게. 네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너는 말이다......”

잠깐 짧게 심호흡을 하였다.

“자, 선생님 말씀도 맞는데, 사람마다 태어나는 방법은 같으면서 다르단다.”

“오와.”

재석의 눈은 신비한 모험을 탐구하는 소년으로 변하고 있었다.

윤희의 눈은 불안감에 떨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거야! 하는 감정이 들어차 있었다.

“일단 재석이가 태어날 때, 엄마랑 아빠는 꿈을 꿨어. 재석이도 꿈을 꾼 적이 있지?”

끄덕.

“네, 그런데 어떻게 꿈을 꾸면 생겨요?!”

“궁금하지? 아주 간단해. 각자 다양한 꿈을 꾸는데, 재석이가 태어날 때, 바위에 왕(王)자가 새겨져 있는 꿈을 꾸었단다. 여의주를 문 용들이 바위를 철통같이 지켰는데, 거기서 너를 얻게 되었단다.”

“와아......”

아빠가 무얼 말하는지도 모르고 신비한 동화 같은 이야기에 빠져 입을 벌렸다.

“엄마는 말라가는 저수지에서 갑자기 물이 쏟아지며 물고기를 잡았다고 하는데, 그중 너를 잡았다는 거야.”

“......물고기?!”

용에서 물고기가 나오자 재석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엄마와 아빠의 꿈이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어. 그리고 이 두 꿈 다 무지 좋은 거야.”

“그게 뭔데요?”

꿈에 관련된 이야기는 아이나 어른이나 크게 다르지 않나 보다.

아들이 푹 빠져들자, 윤희는 크게 안도하는 얼굴이다.

아주 잘했다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떴다.

“아빠가 꾼 꿈은 우리 재석이가 아주 큰 인물이 된다는 뜻이고, 엄마가 꾼 꿈은 사람들의 사랑받는 인기인이 된다는 의미란다. 우리 재석이 사람들에게 인기 많지?”

“응! 혜진도 나 좋다고 했고, 예리도 나 좋대! 유나도 그렇고...... 나은이도......”

재석은 지금껏 자신에게 찾아와 고백을 하던 여자아이들을 손가락을 접으며 자신의 인기를 과감히 어필했다.

“......하.....하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재석의 순수(?)한 모습에 실소가 터졌다.

“좋겠다. 우리 아들. 호호.”

그 모습이 마냥 귀여운지 그제야 가벼워진 마음으로 아들을 품에 안는 윤희였다.

‘잘했어. 그런데 유치원 가서 이상하게 말하면 어쩌지?’

한편으로 재석이가 유치원에 등교해 이상한 말을 퍼트리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몰려왔다.

‘아냐, 그러려고. 설마......’

아들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순수함을 믿기로 했다.

재석이는 똑똑한 아이니까.

“배고프다. 우리 밥 먹으러 가자.”

윤희가 배를 만진다.

“그럴까? 재석아, 오늘 모처럼 나왔는데, 뭐 먹을까?”

이에 한강이 동참해 재석에게 물었다.

“나 돈가스!”

재석은 신나 손을 번쩍 들어 요즘 확 꽂힌 메뉴를 외쳤다.

한강은 재석을 목말을 태우고 미술관을 나왔다.

***

다음 날 아침.

쉬이이이이이이이.

한강이 비행기를 타고 칠레로 떠나는 시간.

“오늘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밥도 꼭꼭 씹어 먹고,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야 된다. 알았지.”

재석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윤희는 출근길에 올랐다.

“네!”

재석은 씩씩하게 대답하고 수행원을 따라 유치원 안으로 들어갔다.

“재석아 안녕.”

유치원으로 들어서자, 선생님이 마중 나와 인사를 하였다. 유치원에서 정말 인기가 좋은지, 아이들이 줄줄이 나와 재석이와 인사를 나누었다.

“있잖아, 아빠가 그러는데, 나는 꿈속에서 태어났대.”

유치원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철수 옆에 앉아 한강에게 들었던 내용을 이야기하였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어떻게 꿈속에서 아이가 생겨.”

하지만, 철수는 믿지 않았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그랬다니까. 너 높은 건물에서 떨어진 꿈을 꿨는데, 그거 너네 엄마가 그랬다매. 키 크는 꿈이라고.”

재석은 자신이 꿈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대한 근거를 대었다.

“아, 맞다. 그랬지.”

그 말에 철수는 쉽게 납득을 하였다. 꿈을 꾸고 키를 재었는데 놀랍게도 키가 자랐다.

꿈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겨 버렸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꿈을 가지고 미래를 점치는 모습까지 본 까닭에, 한강의 이야기에 신빙성이 더해졌다.

“어떤 꿈이었는지 알아?”

“뭔데?!”

“내가 용들이 지키는 바위에서 태어났대.”

“와!! 진짜!!”

철수는 재석의 무용담(?)에 깜짝 놀라 박수를 짝 쳤다. 철수는 재석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있잖아......”

철수는 삽시간에 재석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재석의 입담은 주변에 자리한 아이들을 한 번에 끌어모았다. 아이들은 재석의 말에 흠뻑 취해 선망의 빛을 쏟아냈다.

재석의 이야기는 삽시간에 유치원 전체로 퍼져갔다. 재석은 윤희와 한강도 모르는 사이 단군신화에 나올 법한 전설적인 인물로 회자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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