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200화 (200/237)

200화. 26살, 추락사

회장실 안으로 긴장감이 흘렀다. 한강의 눈이 동진에게 향했다.

“어서 TV를 켜 보세요.”

곧장 TV를 틀 것을 주문했다. 한강의 눈은 김동진에게서 TV로 고정됐다.

[...... 이곳은 한리버 그룹 신사옥 건설 현장입니다. 이곳에서 고정 중이던 철제가 뜯겨져 2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경찰은 사고현장을 조사 중이며 건설소장을 소환해 관련 안전 규정을 지켰는지, 또 안전장비는 제대로 갖췄는지 등 업무상 과실 여부를 조사할 진행할 예정입니다. SBC 이유정입니다.]

좋은 일로 가득하던 한리버 그룹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한리버 그룹 측 잘못은 아니나, ‘한리버 그룹’이 메인에 자리하게 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느 누구보다 직원과 기업의 투명함을 고수하고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마음을 가진 이가 한강이었다.

이번 사건이 충격으로 다가오기엔 충분하리만큼 컸다.

“현장으로 갈 겁니다. 차 대기시켜 놓으세요.”

차량을 준비할 것을 주문하고 나갈 채비를 하였다.

방 안은 암전돼 조용한 공기만이 흘렀다.

***

국내 건설 20위 안에 들며 토건 시평액 2조 원이 넘어서는 호건건설.

긴급 소집으로 호출된 임원들이 회의장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의 얼굴이 무척 무겁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상석에 자리한 중년인, 호건건설 회장 김호건은 시뻘게진 얼굴로 노기를 밖으로 발산했다. 회의장은 살얼음판을 걸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고를 일으킨 회사는 저희가 아닌 아연토건입니다.”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윤석 전무가 자신감을 내비쳤다.

아연토건은 호건건설이 2차로 계약한 하도급 업체이다. 윤석은 호건건설의 이름을 빌려 사업을 하고 있는 아연토건에 모든 책임을 떠넘길 참이었다.

“문제는 없겠지?”

활화산이 터지는 시점, 윤석의 말은 호건의 화를 가라앉히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호건의 눈빛이 달라졌다.

“계약서상에도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우리의 이름이 거론되면 안 될 거야. 알겠나.”

“맡겨 주십시오.”

윤석은 깊게 고개를 내려 보이며 충성의 자세를 취했다. 잔뜩 굳어 있던 호건의 얼굴이 조금은 풀어졌다.

호건은 모여있는 임원진들에게 윤석을 귀감으로 삼을 것을 강조하며 추가적인 지시를 내리는 걸로 자리를 떴다.

***

하도급 순위 30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기업 아연토건에 위기가 닥쳤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지금 호건에서 이번 일을 모두 우리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호건에서 온 연락은 먹구름이 되어 아연토건을 덮쳤다.

“하, 이건 직접 가 따져야 합니다. 저들의 무리한 원가 낮추기로 우리만 피해를 보고 있는 입장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번에도 공급 원가를 낮춰달란 말에 5%나 추가로 낮췄습니다.”

호건 건설의 계속되는 압박은 아연토건을 힘겹게 만들었다. 수주 입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최대한 값을 적게 적어 냈다.

그런 상황에 개별적으로 접근한 호건건설 관계자는 추가적인 할인을 강요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진행한 일로 아연토건은 이익률을 올리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하였다.

결국 소모품과 비품 일부를 줄이거나 재사용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트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은 건설업에선 비일비재 벌어지는 일인 만큼 감수하고 진행을 하였다.

“곧 경찰이 들이닥칠 겁니다. 당장 수를 내지 않으면 모든 문제를 우리가 뒤집어쓰게 될 겁니다.”

상황이 너무 좋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벗어날 수 있을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회의는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기만 하였다.

웅성웅성.

그때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회의를 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문으로 움직였다.

“큰일 났습니다. 안으로 검찰이 찾아와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습니다.”

“뭐라?!”

임원진들은 놀라 바깥으로 향하던 시선을 회장에게 옮겼다.

“아......”

“대, 대표님!”

놀라 일어서던 박길주 대표의 다리가 풀리며 의자에 축 늘어졌다.

임원진들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박길주를 챙겼다.

“김 이사, 자네가 어서 확인을 해보게.”

상태가 좋지 못한 걸 확인한 중년인은 직접 대표를 챙기며 일부 인원을 밖으로 내보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라 지시를 내렸다.

***

끼이익.

약 세 시간이 지난 시각.

대전 엑스포 공사장 현장 앞으로 고급 세단이 멈췄다.

“폐기로 분류된 자재를 다시 사용하였다는데, 그 말이 정말이신가요?”

“현장에 로프나 안전장비가 일절 지급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왜 그러셨나요?”

와우.

도착한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기자들은 앞다퉈 기사를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하여 질문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엄청나네요.”

모여든 기자들의 모습은 하이에나 그 자체였다.

사고현장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은 붉은 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카메라에 담는 일부 기자도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죠. 주변을 정리해 주세요.”

한강은 걸음을 옮겨 따라붙은 수행원들과 경호원들에게 입구를 막고 있는 기자와 관계자들을 물리게 하였다.

“유한강 회장이다!”

한강을 발견한 기자들은 또 다른 먹이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우르르 달려들었다.

“회장님, 지금 심정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합니다.”

“사용해선 안 되는 자재로 사옥을 짓고 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이에 대한 회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경호원들의 보호 아래 입구로 향하는 한강의 얼굴은 출발했을 때와 달리 딱딱하게 굳었다.

기자들에게서 들려온 목소리를 듣고서야, 현 사태가 어떠한 경위로 벌어지게 된 것인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호건건설 관계자를 불러 주세요.”

입구를 지나 건설 현장 안으로 들어선 한강은 책임자를 불렀다.

“호건건설 소장 이경호입니다.”

얼마 있지 않아 호건건설 소장이 눈앞에 당도했다. 한강은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이를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했다.

이경호 호건건설 소장은 긴장된 모습으로 말없이 빤히 바라보는 눈빛에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 손 쳐도 한 그룹의 오너라는 위치는 나이가 많다 하여 쉽게 대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도 사회는 나이가 아닌, 위치에 따라 크게 좌지우지된다.

“제 소개는 사양하죠. 그래도 되겠죠?”

소개를 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눈에 담긴 감정은 무척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겨울의 한기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당장에 한파가 닥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 네.”

이경호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그저 한강의 말에 수긍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오는 길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 회사에 폐기된 자재를 재사용을 하셨다고요?”

건설 현장 생리야 대충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공사를 위해 세운 철제가 끊겨 아래로 주저앉았단 소리는 시작부터 잘못되었음을 의미했다.

절대 이대로 대충 넘어갈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잘못 아신 겁니다. 회장님.”

“잘못 알았다? 지금 보관 중인 자재부터 시작해 저기 붙어 있는 것들을 뜯어 확인해 봐도 될까요? 만약 뜯어서 정상이면 내가 사과하고 반대면 소장님과 호건건설은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아, 아닙니다. 회장님, 이번 사고는 저희 호건건설과 관련이 없는 사고입니다.”

“......?”

갑자기 이상한 말이 귓가로 들려왔다. 분노에 휩싸인 한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말인지 설명하란 뜻을 눈빛으로 보냈다.

“아......”

호건건설 소장 이경호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입을 가렸다.

“말씀하세요. 전 당신의 말을 꼭 들어야 할 거 같군요.”

소장에서 당신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 또 있다는 어떤 확신이 들었다.

“생각 잘하셔야 할 겁니다. 만약 제가 조사해 알게 된다면, 말하지 않은 책임을 물겠습니다.”

절대자의 힘이 한강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전생을 통틀어 오늘처럼 분노가 치미기는 또 처음이었다.

“자, 말씀해 보시지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 드리겠습니다.”

“......”

이경호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 채 식은땀을 흘렸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경호를 더욱 힘겹게 만들었다. 입술을 달싹이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을 하였다.

“실장님.”

“예 회장님.”

“저기 있는 기자 중 아무나 이리로 모셔오......”

“자, 잠시만요.”

분명 지시를 받은 바 있었다. ‘절대 현장으로 기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을 것’ 이것이 위에서 떨어진 특급 지시였다.

만약 기자들이 안을 난입해 이상한 거라도 찍어 기사로 올린다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지 몰랐다.

지시를 내리려던 한강을 황급히 붙잡았다.

“말하겠습니다.”

우물쭈물하던 이경호 소장의 입이 열렸다.

“좋아요. 다시 기회를 드리죠. 말해 보세요. 어째서 이번 일이 호건건설과 관계가 없는지 잘 설명을 해야 할 겁니다.”

경호의 눈동자에 담긴 진실의 유무를 확인하겠다는 듯 뚫어져라 쳐다봤다.

“사고를 일으킨 곳은 호건이 아닌, 아연토건입니다.”

“아연토건? 실장님.”

“처음 들어보는 곳입니다.”

낯선 상호에 김동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원하는 답은 들을 수 없었다. 김동진도 모르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상하군요. 저는 호건에 맡겼는데, 왜 그곳을 호건이 아닌 아연토건이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죠?”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인지를 하였지만, 납득할 수 없다는 어투로 몰아갔다.

자칫 직원 전체를 위험에 노출을 시킬 뻔하였다. 제대로 꼬리를 물기 위하여 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하였다.

“건설사마다 일부를 타 건설사와 하도급 계약을 맺어 공사를 진행합니다.”

한리버는 건설사를 가지고 있지 않을뿐더러, 한강은 나이가 어려 이쪽 계통까지 모른다 생각했다.

곁에 동진이 있다 하지만, 굳이 동진에 물어보지 않은 건 자신에게 듣기 위함이라 받아들이며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한강에게 털어냈다.

“실장님, 이번 일 확실하게 조사를 해주세요. 그리고 호건건설에 계약해지 통보를 하세요. 사유는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

소장을 돌려보낸 한강은 김동진에게 지금껏 들었던 내용에 대한 조사를 하고 하면서 계약해지 통보를 하라 이르렀다.

“알겠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기업과 거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누구의 탓이듯, 관리를 소홀히 한 점과 사용되는 자재를 확인하지 않은 두 기업의 잘못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피해에 대한 배상금과 위약금을 물게 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누구를 호구로 알았나......’

얼마나 밉보였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나 싶기도 하였다. 그런 만큼 확실하게 선례를 남겨 두 번 다시 지금과 같은 사고는 벌어지지 않도록 만들리라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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