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99화 (199/237)
  • 199화. 26살, 운동회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아이들의 목소리가 푸른 하늘 위로 울려 퍼졌다. 그중에는 아이들과 자리를 함께한 학부모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열심히 응원을 하였다.

    “재석이 아빠, 재석이 잘 찍고 있지?”

    아들의 경기를 한 장면도 놓칠 수 없다는 윤희의 의지에 예술가인 남편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이날을 위해 준비한 최신식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아들의 모습을 담았다.

    띠리리리리리.

    점심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심을 먹고 1시까지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들렸다.

    “엄마!”

    경기를 마친 재석이 달려왔다.

    “누구를 닮았는지 내 새끼 잘났네.”

    미화가 재석의 등을 두들겨 주며 자리에 앉혔다.

    “김밥이랑 과일을 준비해 봤어요. 드세요.”

    윤희가 챙겨온 도시락을 개봉했다. 몇 명은 먹어도 됨직한 김밥과 과일이 도시락을 꽉꽉 채우고 있었다.

    “나도 좀 챙겨 봤는데, 사부인 드세요.”

    미화도 도시락을 풀어 자리에 놓았다. 안에는 야채, 과일 샐러드와 얼음이 수북한 화채가 들어차 있었다.

    “우리는 마실 걸 좀 챙겨 봤는데, 한 잔씩들 하세요.”

    이에 질세라 홍라혜는 수행원들의 도움을 받아 가져온 음료 통을 꺼냈다.

    “엄마, 그게 뭐야?”

    김밥을 집어 먹던 윤희가 궁금한 시선을 던졌다.

    “식혜랑 수정과. 사위가 좋아한다기에 좀 챙겨 봤어.”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한강에게 얼음이 든 수정과를 전달했다.

    “잘 먹겠습니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인 한강은 반색하며 종이컵에 든 수정과를 단숨에 입안으로 털어냈다.

    생강과 계피 향이 섞여 코끝으로 스며드는 달달한 향이 머물며 잔에 있던 얼음들이 입 안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아빠, 이따 아빠랑 같이 달린대.”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를 한강에게 전달했다.

    오! 드디어 내 순서다.

    한강의 눈이 반짝였다.

    “아빠만 믿어. 일등하게 만들어 줄게.”

    어린 시절부터 일등만을 해오던 한강에게도 일등을 하지 못했던 종목이 있었다.

    [100미터 달리기 17초.]

    막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뛰어나게 잘하지도 않았다.

    아주 평범한 수준. 어릴 때부터 운동은 노력해도 일정 수준 이상은 발전이 없었다.

    덕분에 운동은 깔끔히 포기를 하였다.

    그래, 그때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화르륵!

    남자의 승부욕은 심장에 안착돼 ‘일등’을 쟁취하고자 의지를 불태웠다.

    “와! 아빠 짱!”

    조막만 한 손에 올라가는 엄지손가락.

    재석은 좋다며 한강을 끌어안았다. 손가락에 묻은 기름이 한강의 옷에 묻었지만, 한강은 무시하고 재석을 끌어안았다.

    “6명 중 4번째로 간신히 들어온 녀석이.”

    그때 덕화가 불쑥 끼어들었다.

    달리기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아는 덕화는 못마땅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봤다.

    “아빠!”

    귀로 들려온 자극적인 한마디에 덕화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커험. 거 시간 다 됐다. 다 먹었으며 다녀와라. 아들 실망시키지 말고.”

    “두고 보세요. 1등 합니다.”

    콧김을 내뿜고 아들의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근데 사돈, 옆에서 듣자니 사위도 못 하는 게 있는가 봅니다?”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며 두 부자의 대화를 듣던 이건호는 멀어지는 한강을 보며 넌지시 물었다.

    “하하, 말도 마세요. 저 녀석 운동은 완전 꽝입니다. 꽝. 삼 등 안에 드는 걸 보질 못했어요. 저나 아내나 달리기를 그렇게 잘했는데 말입니다.”

    덕화는 아들의 험담을 하며 슬쩍 자기 자랑을 하곤 어깨를 올렸다.

    “사위가 그래요? 몸도 좋고 늘씬해서 잘할 거 같은데.”

    홍라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호호, 정말이에요. 자신 있게 나갔다 글쎄 오 등을 하고 오지 뭐예요.”

    미화도 아들의 험담에 참여를 하며 입을 가려 웃었다. 아들의 자랑만이 부모를 기뻐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아들, 잘할 수 있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험담을 하는 것도 모르고 한강은 재석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응! 나 정말 잘 뛰어!”

    부자(父子)는 의지를 불태우며 이번 경기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였다.

    “여기 있는 줄을 자녀분과 다리에 묶으세요.”

    이번에 할 경기는 자녀와 짝을 지어 달리는 달리기 경주였다.

    한강은 줄을 집어 오른쪽 발과 재석의 왼발을 묶었다.

    아빠와 아들, 아빠와 딸들이 몸을 풀며 출발 자리에 섰다.

    “경기 내용은 자녀분과 저기에 준비되어 있는 사탕과 과자를 드시고 오시면 되는데요. 아이들은 작은 책상에 있는 밀가루 속 사탕을 먹고 아버님들은 위에 매달린 과자를 점프해 드시고 오시면 되십니다.”

    아이들의 눈에 승부욕이, 아이와 함께 있던 아빠들의 눈에는 불길이 뿜어졌다.

    “그럼 준비하시고......”

    경기 내용을 이해한 모습을 보며 심판을 보는 남 선생은 스타트건 총구를 하늘로 향했다.

    땅!

    화약이 터지는 소리가 강렬하게 하늘을 울렸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아이들의 응원 소리와 함께 경기가 이어졌다.

    “재석아 가자!”

    한강은 눈에 불을 켜고 재석과 호흡을 맞춰 앞으로 나아갔다. 하나 둘, 하나 둘.

    오른발, 왼발.

    말을 하면서 열심히 달렸다.

    치열한 접전이 이뤄졌다. 2등부터 4등의 치열한 경쟁이 이뤄졌다.

    “아빠 더 빨리!”

    재석이 눈에 힘을 주며 두 걸음 정도 앞서고 있는 1등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메롱.

    “아빠 빨리!”

    1등으로 앞서고 있는 아이가 혀를 빼꼼 내밀자 재석은 아빠를 재촉했다.

    “으득.”

    아들의 목소리에 이빨을 강하게 물고 발가락에 힘을 더욱 주어 바닥을 강하게 박찼다.

    재석은 한강에 의지해 끌려가는 모습으로 변하였다.

    “재석아 사탕!”

    1등부터 4등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밀가루 사탕 코스에 다다랐다.

    책상 앞에 당도한 재석 허리를 숙여 밀가루 속에 감춰진 사탕을 입으로 찾아냈다.

    “그치, 잘한다.”

    재석이 먼저 일어났다. 얼굴에 밀가루 자국으로 가득한 모습에 살짝 웃음이 났지만 웃을 시간 따위 없었다.

    재석을 이끌고 다음 코스로 향했다.

    실에 의지해 매달린 과자가 있는 장소였다.

    “여기서 승부지점이야.”

    큰 키라 그런지 다른 아빠들과 달리 여유로운 모습으로 입을 가져가 ‘콰직’ 과자를 물었다.

    “됐다!”

    1등으로 과자를 먹었다. 한강은 힘껏 달렸다. 재석도 한강의 흐름에 맞추기 위하여 땀을 흘리며 하늘을 날 듯 달렸다.

    와아아아아아아!

    결승 지점에 가까워지자, 응원하고 있던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함성을 질렀다.

    “아자! 1등이다!”

    “와!!!!”

    우여곡절 끝에 단 한 걸음 반 차이로 결승 테이프를 끊고 지나갔다.

    한강과 재석은 머리 위로 손을 들며 기쁨의 포효를 외쳤다.

    “아빠 우리가 1등이야!”

    “봤지, 이 아빠의 실력을.”

    “웅!”

    아빠의 품에 안겨 기쁨을 표현하였다. 한강은 재석을 안아 볼을 가져가 비비며 기쁨을 표현을 하였다.

    “이번 경기는 백팀 승리! 그리고 1등 2등 3등으로 들어오신 분들께 소정의 상품을 지급하겠습니다.”

    남성은 준비된 선물을 들어 경기에 참여해 순위에 든 팀에게 선물을 건넸다.

    “호호, 수고했어.”

    “이열, 아들. 1등 했네.”

    미화와 덕화가 웃으며 반겼다. 험담을 늘어놓던 이들의 자세가 확 바뀌었다.

    “에헴, 보셨죠. 1등하는 모습.”

    “에헴!”

    아빠의 행동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따라 하는 아들의 모습에 자리해 있던 이들 모두 빵 터져 웃음을 터트렸다.

    운동회는 큰 공 굴리기를 지나쳐 아이 부모들이 함께 진행하는 릴레이 경기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승리는 백군!”

    아자!

    재석이 포함된 백군의 승리로 운동회는 막을 내렸다.

    부릉!

    “오늘 수고했어.”

    품속에서 잠든 재석을 안고 차에서 내린 윤희는 헝클어진 모습의 남편의 머리를 쓸며 정리를 해주었다.

    “당신도.”

    한강은 윤희의 손길을 즐기며 재석을 받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재벌 오너의 모습이 말이 아니었지만, 모처럼 재밌는 하루를 보냈다.

    ‘후후, 1등이다.’

    걸음을 옮기는 한강의 입가가 귀에 걸려 내려오질 않았다.

    아들의 목에 걸려 있는 메달은 오늘 있었던 일을 입증해 주었다.

    뿌듯함을 안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참으로 즐거운 하루였다.

    ***

    [아들과 함께 운동회에 참여한 유한강 회장이 화제이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아들과 달리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아래 사진은 육성그룹 이건호 회장과 홍라혜 여사와 기뻐하는 유한강 회장의 모습이다.]

    [옆으로는 1등을 기록한 유한강 회장이 포효하며 기뻐하는 모습이다.]

    [사업뿐 아니라, 달리기 부분에서도 1등을 거머쥐는 유한강 회장은......]

    며칠 지나지 않아, 인터넷 기사엔 죄다 유한강 회장의 운동회 모습들이 메인에 도배되다시피 하였다.

    “회장님 얼굴이 아주 생동감이 넘치십니다.”

    “하하, 그런가요.”

    김동진 비서실장의 말에 한강은 어깨를 힘껏 끌어 올렸다.

    “역시 아들은 아빠를 닮나 봅니다.”

    다른 기사에는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는 재석의 모습이 재밌게 담겨 있었다.

    “아주 귀여운 녀석이에요. 제 삶의 원천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들의 모습을 보는 한강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축하의 말을 건네고 받으며 훈훈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레고사 측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저희의 주문을 받아, 일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기간은 두 달 정도 걸릴 걸로 보입니다.”

    운동회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레고사와 협상이 오고 갔다.

    [우리는 앞으로 백범 김구 선생님을 시작으로 한국의 자랑스러운 영웅분들의 생전의 모습을 레고로 담을 겁니다.]

    한국 전쟁사에 이름을 알린 수많은 영웅들의 모습을 레고로 표현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레고사는 한리버 그룹의 주문을 받아 제작에 들어갔다.

    “완료되는 날에 맞춰 레고를 맞출 인력을 준비해 주세요.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 같으니 장기간 일할 분들이면 좋겠어요.”

    “급여 수준은 어떻게 할까요?”

    “꽤 중노동이 될 거예요. 최저 임금보다 1.5배로 맞춰 주시고 그룹의 복지를 모두 누를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 작은 레고 블럭을 이용해 사람의 형상을 완성하는 일은 결코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다.

    나름의 기술직이라 할 수 있었다.

    이번 일을 중요시 여기는 만큼,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직원을 채용해 전문가로 키워볼 심산이었다.

    “그건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공사 건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일정에 큰 차질은 없을 걸로 보입니다. 주변 부지를 추가로 모두 매입하는 데 성공을 하였고, 각 기업들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참여한 기업은 육성, 엔지, JK, 애플, 아마존 등 50여 개사입니다.”

    놀이동산, 백화점, 호텔 등 여러 사업이 한 장소에서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많은 기업에서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

    한강은 그들의 투자를 받아 사업을 빠르게 키워 갔다.

    덕분에 일정은 무리 없이 순탄하게 이루어졌다.

    덜컹!

    그때였다. 문이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거칠게 열렸다.

    “무슨 일이죠?”

    한강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그곳엔 비서과장 김소영이 자리해 있었다.

    “회장님, 뉴스를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대전에서 진행 중인 건설 장소에서 추락사가 발생했습니다.”

    “네에?!”

    비서과장의 보고를 들은 한강은 깜짝 놀라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한강의 놀란 눈이 김동진 실장에게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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