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98화 (198/237)
  • 198화. 26살, 2010년 4월 11일

    “와아.”

    사람들 입에서 감탄이 쏟아졌다.

    길을 지나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춰 구경꾼을 자처했다.

    사람들은 유리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적을 목도했다.

    “진짜 같다.”

    당장이라도 석고를 부수고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 것 같았다.

    “대체 유한강 회장은 어떻게 생겨 먹은 사람이야. 그림에 사업에 이젠 조각?! 이건 진짜 아니다.”

    “내 말이. 될놈될이라 하지만, 너무하다. 저 능력 중 하나만 내게 줘도 탈 나지 않을 건데.”

    투자의 귀재.

    예술 천재.

    반 고흐의 환생.

    등등의 여러 별명들이 한강을 쫓아다녔다.

    정말 말도 나오지 않는 개사기 같은 능력.

    외계인은 아닐지, 심문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바닥은 하얀 가루로 깔고 저기엔 큰 돌을 읏차 놓으면, 완성.”

    목장갑을 낀 손으로 무릎 높이까지 오는 돌을 직원의 도움을 받아 배치를 하였다.

    유리관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본명 김창수(金昌洙)』

    『백범 김구 선생님께 물었다. “왜 자신의 이름을 구(九)로 바꾸셨습니까?”』

    『백범 김구 선생님은 말씀을 하셨다. “열 사람이 있으면, 그중 아홉 번째에 해당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선생님의 피로 이뤄진 독립운동의 발자취, 나는 잊지 않겠다.』

    -유한강 올림

    벽에 박힌 석화 판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어리지만, 참으로 생각이 깊은 사람이야.”

    “내 말이. 허허. 우리 동네에 이런 멋진 곳을 만들어 준 유 회장에게 감사하자고.”

    뒤늦게 자리를 차지한 두 노인은 유리관 안에 박혀 있는 비석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흘렸다.

    두 노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

    2010년 4월 9일이 되는 날.

    『대상: 이화여대 정연화.』

    수상 작품을 발표했다.

    [이화여대 재학 중인 정연화(23) 양은 흑백과 컬러를 나누어 과거의 민주항쟁과 평화를 표현한 작품은 우리의 가슴에 강한 울림을 전해 주었다.]

    [시상은 한리버 독립 전시관에서 오는 4월 11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한리버 그룹이 주최한 첫 공모전에 2억 원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며 정연화를 축하해 주었다.

    “대상 정연화, 상금은 2억 원입니다. 축하합니다.”

    짝짝짝.

    4월 11일 일요일, 10시.

    대상 트로피와 상장 그리고 2억 원이 적힌 큰 플래카드를 전달했다.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임에도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정말 멋지구나.”

    수상이 끝나고 홍라혜가 수행원들을 이끌고 전시관을 찾았다.

    1800~1949년 당시를 소환한 듯한 공간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들.

    홍라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림을 감상하며 순수한 감탄사를 날렸다.

    “감사합니다.”

    홍라혜 여사의 발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이동을 하였다.

    “마음 같아선 이곳에 있는 것 중 몇 개를 추려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커.”

    걸음을 멈추고 사위에게 시선을 가져갔다. 눈웃음을 짓고 있지만, 그 안에는 작품에 대한 욕심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수상작들은 앞으로 이곳에 전시가 되어 국민들을 위한 전시관으로 남게 될 겁니다.”

    허락을 할 법도 하건만, 한강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가로저어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호호, 그렇겠지?”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홍라혜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넘겼다.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대할 사람은 한강이밖에 없을 거야. 어쩜 저리 한결같을까.’

    아무래도 전생에 늘 푸른 잎을 유지하는 소나무나 아니면 그와 유사한 식물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사위이고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기업가라 한들, 육성이 그간 이룩한 힘은 무시할 게 못 됐다.

    육성의 힘은 자금력에서도 나오지만, 육성의 후원으로 성장한 인재들과 정치권 등이 진정한 육성의 힘이라 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한강은 정치권과 긴밀히 이어진 줄은 없다시피 하였다.

    “대신이라 말씀드리기 뭣하지만, 아쉽게 수상작에 들지 못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관련된 화가님과 연결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보더라도 당장 수상작에 올라도 나쁘지 않을 작품들이 상당했다.

    평점을 준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여 아쉽게 떨어졌다.

    그런 작품들을 소개해 주겠다 한강은 말하고 있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냥 해 본 말이니, 그리하지 않아도 돼.”

    홍라혜는 방긋 웃으며 멈춘 걸음을 움직였다.

    널찍한 룸에 전시를 선택받은 1백여 작품들을 감상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괜찮다 말하지만, 그녀의 뒷모습은 아쉬움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오오오오.

    우뚝 걸음이 멈췄다. 팬 사인회라도 기다리는 듯한 긴 행렬이 시선을 끌었다.

    “역시 유 회장입니다. 이런 멋진 글귀라니. 이걸 조각칼로 일일이 전부 표현을 했다죠.”

    “김구 선생님께서 현생에 다시 태어나 웃고 계시는 거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표현력이 참으로 뛰어납니다. 유 회장의 능력이 참으로 탐이 납니다 그려.”

    “......이런.”

    백범 김구를 보기 위한 긴 행렬이었다. 한강은 크게 당황했다.

    “정말 엄청나네.”

    거리를 두고 사람들의 모습을 응시했다. 한국에서 방귀 좀 낀다는 정재계 사람들이 모여 한강의 작품을 평하고 있었다.

    “정말 표현을 잘한 작품이구나.”

    사위의 작품을 보며 칭찬 일색인 사람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날렸다.

    홍라혜도 멀찍이 떨어져 백범 김구를 감상했다. 역사의 현장에 온 듯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맞다. 정말 운이 좋았다. 실수하면 다시 처음부터 작업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한 번에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먼지를 뒤덮고 고난의 길을 걷던 걸음은 기적의 길로 인도를 하였다.

    “운이라... 세상에 있을 천재 화가들의 혼이 울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저곳은 왜 비어 있는 거지?!”

    한강이 언급한 ‘운’이란 부분에 실소를 머금었다. 모든 걸 운으로 해내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말은 기만 그 자체였다.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던 라혜의 눈으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빈자리로 시선을 옮겨 가리켰다.

    “아, 저기는 레고를 둘 자립니다.”

    가리킨 방향을 본 한강은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남겼다.

    “레고?!”

    갑자기 튀어나온 레고랑 단어에 의아함을 품었다.

    “네, 오늘 전시관을 준비하던 중 떠오른 아이디어입니다. 단순히 그림을 전시하는 게 아닌, 역사적으로 위대한 분들을 당시 실제 키로 맞추어 맞춰볼까 합니다.”

    백범 김구의 실체 키로 만든 레고는 사람들의 관심을 단숨에 집중시킬 터다.

    시간은 걸릴 작업이나 아주 매력적인 계획이었다. 한강은 이번 계획을 밀어부칠 작정이었다.

    “정말 사위는 생각을 따라잡지 못하겠어. 매번 사람을 놀라게 하고 말이야.”

    레고라면 홍라혜도 잘 알았다. 아이들의 유행 장난감 중 하나. 그걸 떠올리자 여러 이미지가 머릿속에 하나둘 자리를 잡아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 주었다.

    새로운 생각과 다른 사상을 지닌 사위의 모습이 마냥 놀라웠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나이를 먹었다 한들, 장모님의 칭찬은 매번 부끄러운 감정을 심어 주었다.

    “사위 외에 들은 바 없는데.”

    쑥스러움에 몸 둘 바 모르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모습은 보노라면 그 나이대로 보인다.

    여러 모습들을 보여 주는 모습들은 매번 새로움을 선사해 주어 미소를 피우게 해주었다.

    “하하,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할 말이 궁색해지네요.”

    “후후, 그 계획이 완료되면 꼭 초대를 해주게.”

    다섯 살에 보던 아이는 어느덧 스물여섯 살이 되어 경제를 이끄는 핵심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강을 잠시간 응시하던 홍라혜는 한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고는 건물을 빠져나갔다.

    “이 정도면 성공인가.”

    바쁘게 준비한 전시회는 아주 좋은 결과를 안아 들고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2010년 5월의 달이 떠올라 세상을 푸른 옷으로 도배해 주었다.

    따스한 햇살이 사람에게 비추니, 모두의 입가에 미소꽃을 피게 만들었다.

    겉옷을 입던 사람들은 무게감을 덜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도심을 거닐었다.

    “아빠, 아빠! 빨리요!”

    청담동 고급빌라 안.

    이제는 제법 발음이 뚜렷해진 재석의 목소리가 방은 두들겼다.

    “어, 기다려.”

    욕실에서 볼일을 보던 한강은 아들의 목소리에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을 해주었다.

    “아빠는 거북이! 엄마, 나 김밥 하나 먹어두 돼?!”

    한강이 나오지 않자 입술을 삐죽이며 주방에서 도시락을 챙기고 있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이따 운동회 때 먹어야지.”

    “하지만. 웅... 하나만?! 웅?!”

    고소한 향을 풍기는 맛 좋은 냄새는 재석의 입 안에 고인 침을 밖으로 흘러내리게 했다.

    “아이그, 알았으니 침 그만 흘러. 하나만이야. 또 달라고 하면 안 돼?”

    “네!”

    도시락 하나를 개봉해 김밥 하나를 꺼내 아들의 입에 넣어 주었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아들이 기특하고 예쁘게만 보였다.

    “후우, 시원하다. 진짜 안에 구멍 나는 줄 알았네.”

    욕실에서 짧게 안도하며 나오는 한강의 목소리에 안도가 느껴졌다.

    “무슨 화장실에 20분이나 있어.”

    “아침에 너무 먹었나 봐. 좀 맛있어야지.”

    “에휴, 애나 아빠나. 어쩜 저리 똑같을까.”

    김밥 쟁탈전을 벌이고 화장실을 드나드는 둘의 모습에 아침부터 윤희는 배를 잡고 웃어야 하였다.

    집안에 고소한 참기름이 발린 김밥 냄새와 시골 냄새가 하나로 섞여 향수를 느끼게 하였다.

    “빨리 준비해. 모두 출발하셨대.”

    늦으면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없다며 일찍부터 서두른 이건호, 홍라혜, 유덕화, 김미화는 자리를 맡기 위하여 한강네보다 일찍 출발을 하였다.

    “이크, 뭘 그리 서두르신대. 나 운동회 때는 느긋하게 움직이시던 분들이.”

    한강은 황급히 웃을 주워입고 나갈 채비를 하였다. 하얀 운동복을 입은 재석을 제외한 한강과 윤희는 추리닝을 입고 급히 학교로 향했다.

    “엄마, 아빠. 장인어른, 장모님 좀 일이 있어 늦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부랴부랴 서둘러 유치원에 도착했다.

    그늘진 장소에 돗자리를 펼쳐 기다리고 있는 네 사람과 만났다.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재석은 넷을 보며 달려갔다.

    “아이구, 내 새끼 왔누.”

    이건호가 재석을 안았다. 까칠하게 보이던 이건호의 얼굴은 여느 할아버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찰칵찰칵.

    주변에 숨어 한강네 가족을 지켜보던 기자들은 사진을 찍어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았다.

    오늘은 즐거운 날인만큼 기자들의 촬영을 애써 막지 않았다.

    [지금부터 운동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청담 유치원 학생들은 운동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주변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방송이 들려왔다.

    운동회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퍼져 모두에게 전달이 되었다.

    “재석아, 잘하고 와!”

    외할아버지 품속에서 아양을 떨던 재석은 선생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달려갔다.

    윤희는 달려가는 아들을 응원하였다.

    ‘후후, 내가 오늘을 위해 체력을 길렀다 이거야. 오늘 아빠의 위대함을 보여 주겠어.’

    한강은 조용히 남몰래 웃으며 입매를 슬며시 한쪽 방향으로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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