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25살, 메리 크리스마스
└ 천지영: 한강 오빠 많이 먹어요!!
└ 차영호: ㅋㅋㅋ 이건호 회장님 ㅠㅠㅠㅠ 광고 출연 대박스......
└ 조성진: 이건호 회장님 한강이 형님 말 한마디면 끔뻑 죽는다네요 ㅋㅋㅋ 아마 저것도 억지로 나오신 걸 겁니다 ㅋㅋㅋ 그런데 개 신선하네 ㅋㅋㅋ
└ 지소연: 맨날 아이돌이랑 연예인들 보다 이런 걸 보니 너무 웃기고 재밌어요!!! ㅋㅋㅋ 이런 신선함 너무 좋습니다!
└ 도지운: 그런데 저기 두 여성분들....... 완전 존예....... 여신이네요.
└ 간미영: 진짜 예쁘다. 어머님도 예뻐...... 대체 유전자 무엇?! 진짜 부러워요......ㅠㅠ
└ 박정선: 오늘부터 팬 됐습니다. 지연님!!!
└ 노학인: 나는 지혜님이 더!!!
“푸훗.”
약속을 기다리며 SNS을 보다 ‘유한강 가족 축산 광고 찍다. 우월한 유전자의 모든 것’ 이란 긴 제목을 클릭했다 웃고 말았다.
“뭘 이렇게까지, 부끄럽게.”
조회 수는 100만 회가 넘어간 상황.
마치 연예인이 된 기분이다.
웅성웅성.
힐끔힐끔.
지나가는 사람마다 괜히 알아본 거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머리에 쓴 모자를 더욱 꾹 눌렀다.
“어, 눈이다!”
회색으로 뒤덮인 하늘에서 신기할 정도로 새하얀 함박눈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피부에 부딪혀 녹아내리기를 여러 번.
지연은 옷에 묻어 쌓이는 눈을 가만히 응시하다 두 팔을 쭉 뻗어 하늘로 올렸다.
시선도 하늘로 향했다.
“좋다.”
이번 겨울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크리스마스이브, 목요일 오전.
겨울이면 들려오는 캐롤송이 사람들에게 값진 시간을 전해주었다.
지연은 잠시 걸음을 멈춰 캐롤송을 들으며 눈을 맞았다.
“이때쯤이었지. 한강이 오빠를 만나게 된 게.”
딸랑딸랑.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
귓가로 들려오는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에 하늘로 가져갔던 시선을 틀어 자선냄비로 가져갔다.
“그땐 정말 저 사람들조차 너무 무섭고 원망했었지.”
몇 번이고 외쳤다. 자신이 불우한 이웃이라고. 하지만 작은 도움조차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몇 날 며칠 굶으며 길가에서 어떤 희망도 없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랑 가자.]
나타난 유한강 오빠.
그때를 조용히 떠올려 천천히 걸음을 떼어냈다.
“나 같이 보호받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자신이 싫었던 행동을 따라 하는 건 잘못된 행동. 당시의 사람들은 그들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지연은 주머니에 꼬깃꼬깃 구겨져 있는 만 원짜리 지폐를 자선냄비에 넣었다.
“언니! 지연 언니!”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귀여움으로 한껏 물든 지혜가 뛰어오고 있었다.
“늦었지. 미안. 실수로 집에 지갑을 놓고 왔지 뭐야.”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니 다급하게 뛰어온 게 예측이 되었다.
“전화하고 천천히 오지 그랬어. 그렇게 늦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래. 미안해서.”
평소보다 30분 정도 빨리 준비한 게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가자. 내가 밥 살게.”
지혜는 지갑을 꺼내 살살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재석이 선물로 뭘 줄까?”
“그러게......”
오늘은 하나뿐인 조카를 위한 선물을 고르기 위하여 나들이에 나섰다.
도착한 곳은 육성 백화점 장난감 코너였다.
“이거 어때?”
지연은 장난감 하나를 들었다. 동물의 왕국이라 적힌 봉지였다.
“귀엽다. 맞아, 재석이 동물 좋아했지.”
“그러고 보면 오빠 어릴 때랑 완전 반대야.”
“호호, 그랬지.”
대화를 하다 주제가 한강의 어린 시절로 넘어갔다.
“다섯 살에 영어도 혼자 터득하고, 그림으로 돈 벌고 재테크로 돈을 긁어모았다잖아.”
지혜는 부모님께 들었던 말들과 기사로 본 한강의 역사를 되짚어갔다.
“정말 대단하지?”
“완전 사기캐라고. 오빠한테 비교되기 싫어서 공부 겁나 했잖아, 우리. 반 1등 한 번 해보고 끝이었지만.”
“오빠는 진짜 전설이야. 초중고 전부 만점에 전교석차도 늘 일등을 유지하고 장학금은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을 위해 기부를 했다지.”
한강의 역사는 모든 게 전설이다. 경기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아직까지 한강의 기록을 깬 이들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그뿐이야?! 그 어렵다던 국제 피아노 대회에 입상해서 둘 다 대상 받고. 오빠는 사업하지 않아도 부자로 살았을 사람이야.”
“아유 괴물. 지금 오빠 재산은 얼마나 될까?”
어릴 땐 그저 돈 많은 오빠였다면 성장한 지금 한강은 그냥 범접할 수 없는 괴물이고 신이었다.
한강의 말도 안 되는 성공으로 가문을 일구고 남들 부럽지 않을 생활을 보장받았다.
참으로 은혜로운 오빠였다.
“지금 상장하지 않은 기업들 모두 상장하고 미국, 일본, 한국에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까지 합친다면 300조는 훨씬 넘을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공식적으로 세계 자산 1위가 되어 버린 한강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기업의 가치는 세계 정상에 한강을 올려 두었다.
“에휴, 정말 괴물 오빠야. 언니 골랐으면 가자.”
“그치? 호호. 뭐 골랐어?”
“나는 낚시 골랐지.”
“귀엽다. 가자.”
선물을 고른 둘은 계산을 마치고 백화점을 나와 또 다른 장소로 걸음을 이동했다.
드르르륵.
“어서 오세요. 스타벅스입니다.”
다음으로 이동한 장소는 커피숍이었다. 지연과 지혜는 안으로 들어서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 여기.”
약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장소에서 남자가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언니 저기.”
지혜가 먼저 남자를 발견하고 지연을 불렀다.
둘의 걸음은 천천히 남자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그곳엔 농협 축산 광고를 찍은 감독 배용만이 앉아 있었다.
“갑자기 불러 놀랐죠?”
올해 49살이 된 배용만은 여고생인 지연과 지혜에게 존칭을 사용하였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지연이 대표로 답했다.
“그냥 메시지를 남길까 하다 갑자기 부르게 된 이유는 제가 그때 찍게 되는 광고가 있다고 했지요?”
“아, 네.”
끄덕.
이번에도 지연이 대답하고 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님께 허락을 구하기 전에 둘의 생각을 듣고 싶었어요.”
배용만의 시선은 둘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갈등하는 모습에 어느 정도 넘어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광고인데요?”
지연은 신중하게 생각을 해보고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이런, 제가 그걸 먼저 말을 하지 않았군요. 레모나입니다. 둘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 되는 것뿐이라 그리 어려울 건 없을 겁니다.”
“아, 그 레모나요?!”
“그렇지요.”
“그런데 그거 기업에서 컨택하는 거 아닌가요?”
지연은 꼼꼼하게 체크를 하였다. 오빠가 유명한 기업인에 예술인이다 보니 듣는 부분들이 많았다.
“하하, 아주 잘 아네요. 맞아요. 사전에 사진을 넘겨 허락을 받았습니다.”
배용만은 경남제약에 해당 모델을 추천해, 단번에 승인을 받아냈다.
[고등학생에 꾸밈없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당시에 메이크업을 받지도 않고 광고에 임했는데, 이 정도입니다. 절 믿고 이 애들을 뽑는 건 어떻습니까?]
[이 프로필과 영상이 전부 메이크업을 받지 않은 모습들이라고요?]
담당자는 놀랐고 회의 끝에 지연과 지혜를 캐스팅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둘의 뒷배경으로 인한 영향도 없지 않아 있었다.
“어때요? 이 정도면. 모델료는 조금 적지만 연예계에 관심이 있다면 좋은 기회일 겁니다.”
배용만은 두 자매가 연예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명함을 받아가지 않았을 터이고, 가족 광고를 그렇게 열심히 찍지 않았을 거라며 확신을 가졌다.
“지혜 넌 어때?”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지혜에게 고개를 틀었다.
“난 하고 싶은데, 언니 하면 안 돼?!”
지혜는 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의사를 보냈다.
“하겠다는 거지. 알았어. 저희 할게요.”
지혜의 이야기를 듣고 최종 결정에 이르렀다.
‘재석이도 방송에 관심이 있는 모습이었지. 그럼 내가 먼저 데뷔해...... 재석이를 도와주는 거야.’
어떤 형태로든 한강에게 보답을 하고 싶었다.
“하하, 좋아요. 정말 좋군요. 제가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좋은 시간이었어요.”
배용만은 둘과 작별을 고했다.
“와, 우리 또 광고 찍는 거야! 좋다!”
지혜가 폴짝폴짝 뛰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럴 때 보면 초등학생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가자. 늦겠다.”
자리에 놓아둔 선물 봉투를 들었다. 지연은 지혜를 이끌고 청담동으로 향하는 택시에 올랐다.
“재석아, 메리 크리스마스!”
고모들이 집으로 깜짝 방문해 장난감을 선물로 건넸다. 작년에 유치원에 들어간 재석은 올해 여섯 살의 나이가 되었다.
“고모, 감사합니다.”
한강과 윤희의 예쁜 모습만을 닮은 재석은 미소년으로 성장할 완벽한 외모를 보유했다.
“꺄, 귀여워.”
뽀얀 피부에 탱글탱글한 볼살이 참으로 부드럽다.
지연은 좋다고 호들갑을 떨며 재석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시간이 갈수록 귀여움이 배로 늘어 갔다.
“고모, 감사합니다.”
배꼽 인사를 하며 선물을 받았다.
“말 어떡해. 정말 귀여오.”
지혜는 재석을 안아 들고 빙글빙글 돌았다.
“뭘 이런 걸 준비했어. 괜찮다니까.”
한강이 선물을 챙겨온 동생들에게 쓴소리를 하였다.
“오빠는 꼭 그러더라. 베풀 줄만 알지 받을 줄을 몰라.”
지혜가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쿵!
한강은 지혜의 말에 작게 충격을 받았다.
“그렇잖아. 우리나 엄마 아빠에겐 그렇게 돈을 쓰고 양보하면서 오빤 받지 않고 희생만 하려 하잖아.”
“맞아요. 우리가 언제까지 애들도 아니고. 오빠 덕분이지만 통장에 부족하지 않은 돈도 있어요.”
지혜의 곁에 서서 지연도 단호하게 말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고집으로 꽁꽁 묶인 눈으로 한강을 올려봤다.
“그래, 미안하다. 내가 생각을 잘못했네. 너희들 말이 맞아.”
나이 차도 있지만, 그동안 동생들을 너무 어리게만 대하였다. 자신만 하더라도 지연의 나이 때 사업을 시작하여 지금 자리에 올랐는데.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을 하였다.
“아가씨 말 잘했어요. 하여튼 이이는 늘 이렇다니까요.”
윤희도 둘의 의견에 십분 공감을 하였다.
“오늘 아가씨들과 먹으려고 무알코올 샴페인을 준비했으니 여기서 자다가요.”
“네! 새언니.”
“아싸! 재석아 오늘은 고모랑 놀자!”
200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하얀 눈이 내리는 날 집안엔 따스한 정이 다섯 사람에게 내렸다.
파아아앙!
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폭죽이 터지며 반짝이는 비닐이 하늘로 날아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Merry Christmas!
기쁨과 행복, 좋은 일로 가득하던 2009년은 서서히 저물어 갔다.
2010년의 해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시간은 흘러 2010년 4월로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