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25살, 모델
그 일이 있고 하루가 지난 저녁 밤.
덕화의 집으로 대식구가 모였다.
덕화, 미화, 지연, 지혜, 한강, 윤희, 재석까지 7명은 각자의 자리를 잡고 한강에게 시선을 보냈다.
치이이이이익.
불판 위를 덮고 있는 생갈비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기묘한 기운이 방 안을 채웠다.
“그래서 우리 가족 모두 나가서 광고를 찍기로 했어요. 지연이와 지혜도 이쪽에 관심이 있는 것도 같고. 경험 삼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봐요.”
치이이이이익.
말을 하는 시간에도 고기는 잘만 익었다.
집게를 가져가 고기를 뒤집었다.
“아니, 그래도 그걸 갑자기 말하는 법이 어딨어. 아들...... 너무 갑자기 그러면.....”
벌써부터 창피한지 허둥지둥 못하는 미화의 옆에 있던 덕화는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참았다.
“엄마, 이건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요즘 아빠 바빠서 데이트도 제대로 못하잖아요.”
덕화의 사업체는 말도 못하게 거대하게 변했다. 이건호와 한강의 투자로 스마트폰 부품 일부를 생산해 육성에 납품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HY자동차의 부품도 책임을 지고 있는 실정.
늘어나는 물량 덕에 덕화에게 여유 따위 남아 있지 않았다.
“커험. 그건 네가 하도 나를 못살게 굴어 그런 거 아니더냐. 그걸 아는 녀석이 아빠 허리를 꺾이게 만들어?!”
덕화가 불만을 토로하였다. 농담이 아니라, 돈을 버는 능력자가 되면 삶 속에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완전 정반대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하, 그거 엄살인 거 아시죠? 아빠 그런 말 하시면 일감 더 늘어나게 해드릴 거예요.”
덕화의 불만 아닌 불만에 손가락을 곧게 펼쳐 자신을 가리켰다.
한리버 그룹 전체를 총괄해 방향을 잡으면서 방송 활동에 이어 예술계에 몸을 담고 있다.
몸이 세 개라도 부족한 이때, 덕화의 투정은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강은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면서 덕화를 압박했다.
절대 편한 꼴 보지 못한다는 감정이 눈동자에 자리했다.
“하하.”
덕화는 아무 말 못하고 익은 고기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우적우적 씹으며 술로 민망함을 털었다.
위기감을 느낄 때, 먹는 데 집중하는 게 최고의 선택지였다.
“엄마, 해보세요. 엄마의 미모가 아깝다고요.”
올해 나이 46살.
요즘 피부와 여러 취미 활동으로 미화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늘어가던 주름이 개선되고 처지려는 살들이 제자리를 잡혔다. 피부는 탱탱하게 바뀌었다.
당장 30대 초라 말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
그냥 썩히기에 엄마의 미모는 매우 아까웠다.
엄마에게 변화된 인생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
‘아빠는 꿈을 이뤄드렸고, 이젠 엄마의 꿈을 이뤄줄 차례야.’
[엄마도 가능만 하다면 한 번쯤 해보고 싶지. 일단은 엄마도 여자인데. 호호.]
30대 시절 들려주던 말이 떠올랐다.
비록 축산광고에 지나지 않지만, 이것이 발판이 되어 광고나 연예계에서 러브콜을 보내올지 모를 일이다.
재력과 영향력으로 꽂아주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룩한 성취감을 전해주고 싶었다.
“정말 괜찮을까?!”
흔들리던 초점이 자리를 찾아갔다.
“괜찮지요. 엄마가 꾸미면 요즘 나오는 배우 이상일 거라 자신해요.”
“맞아요, 어머니. 저도 이이랑 대화를 하면서 얼마나 반겼는데요. 어머니의 미모를 이대로 방치하는 건, 국가적 손실이라고요!”
윤희가 지원 사격에 나섰다. 목에 힘주어 강하게 주장을 하였다.
“얘도 참.”
부끄러운 척 말하지만, 얼굴엔 기대로 가득하다. 둘의 지원 사격에 용기를 얻어갔다.
“그래, 해보지 그래. 애들도 다 컸고. 당신이 하고 싶다면 해. 옆에서 열심히 지원해 줄게.”
이름을 알리지 못하는 배우가 되면 어떻고, 모델이 되면 어떠한가?
그간 가족을 돌본다고 힘들었을 아내에게 자유를 주어, 꺾였던 날개를 다시 달아 하늘로 날게 해주고 싶었다.
“한강이 아빠.”
“여보......”
노릇하게 익어가는 고기에서 나는 연기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장막을 쳐주었다.
“으이그, 아빠 엄마! 여기에 오빠만 있는 거 아니고, 우리도 있거든!”
지혜가 나서 두 사람의 오글거리는 분위기에 찬물을 얹어 뜨겁게 불타던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다.
“아, 얘는......”
“커험......”
그만 자식들이 주변에 있단 사실을 망각하고 말았다.
“뭣들 해. 어서 먹지 않고.”
미화는 민망함을 지우기 위하여 급하게 고기를 집어 각자의 접시에 덜어 주었다.
‘엄마도 참......후후.’
솔직하지 못한 엄마의 모습에 웃음이 흘렀다.
***
[유한강 회장, 가족을 대동하고 농협 축산 광고에 나서다. 가족으로는......]
“하하하, 장인어른 한 입.”
아~!!
“......”
삐질삐질.
한강인 건넨 상추쌈을 본 이건호의 눈빛에 불만이 가득하다.
시선은 한강과 쌈을 번갈아 봤다.
드세요. 어서요. 지금 안 드시면 또 엔지라고요! 장인어른!
절실함이 느껴지는 눈빛을 응시하고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입을 크게 벌렸다.
우적우적. 가까스로 들어간 상추쌈을 힘겹게 씹으며 한강을 따뜻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호호.”
이 장면을 보는 홍라혜의 얼굴에 웃음이 터졌다. 난생처음 보는 남편의 모습이 그렇게 웃길 수 없었다.
막냇사위와 함께 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지금의 행복이 끝까지 유지되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우리 아들도 아~”
이건호가 먹는 모습을 지켜본 윤희는 깻잎에 고기를 올려 재석의 입에 넣어 주었다.
“와! 맛있어요!”
재석이 엄지를 올려 감탄을 터트렸다.
카메라가 옆으로 쓱 이동했다.
“정말 맛있다. 역시 한우야.”
“당신과 같이 먹으니 더 맛있어요.”
한편 깨가 쏟아지는 40대 부부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서로 먹여주며 행복감에 취해 있는 모습은 10대의 풋풋함을 떠오르게 하였다.
사랑과 믿음을 우리의 소중한 한우와 함께 나누세요.
농협은 믿을 수 있습니다.
『농협.』
“컷! 고생하셨습니다.”
힘든 촬영이 끝났다. 컷 사인을 보내는 감독의 얼굴에 후련함이 깃들었다.
이건호로 인한 ‘NG’ 스물세 번. 덕화로 인한 ‘NG’는 열아홉 번.
가히 막강한 기록을 달성하면서 어렵사리 끝을 냈다.
감독의 얼굴에 ‘살았다’는 감정과 후련함이 느껴졌다.
“두 자매분은 별도로 찍을게요.”
카메라 밖에서 빠져 있던 지혜와 지연이 촬영장소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여기서 구경해요.”
“......네 녀석, 상추에서 교묘하게 고기를 빼고 줬더구나.”
“하하, 많이 드셨잖아요. 고기 드시려고 NG만 수십 번 내신 거 알아요. 제가 조절해 드리지 않으면 장인어른의 건강을 누가 챙겨 줍니까?”
“우리 사위가 맞는 말 했네요. 호호. 사위 잘했어요.”
이건호를 맞상대하는 막강한 사위를 얻은 사실에 홍라혜는 흡족한 미소를 그렸다.
“흥!”
그간 온 집안에서 먹는 걸 방해받아 극도의 스트레스가 쌓인 이건호는 이번 기회를 잘 살려 참아야 하였던 고기를 먹게 되는 기쁨을 누릴 줄 알고 기대를 하였는데......
잘못 거둔 사위로 인해 된통 당해 버렸다.
능력만 출중한 배은망덕한 놈이 바로 한강이었다.
“언니! 저기 우리 한우 아냐?”
촬영이 시작됐다.
지혜가 가던 길을 멈추고 정육점을 가리켰다.
촬영 전 약속된 장소로 시선을 가져갔다.
“와! 우리 한우다.”
지연이 매우 자연스러운 음성을 기쁨의 감탄을 터트렸다. 청초하기 이를 데 없는 미모는 스탭들의 눈길을 확 잡는 마법을 부렸다.
“이거 무슨 한우예요?”
지혜의 손을 잡고 정육점 앞에 다가선 지연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
“네, 우리 한우 농협입니다.”
정육점 안에 대기하고 있던 젊은 남자가 나와 인사를 하였다.
“농협은 정말 믿고 먹을 수 있는 한우인가요?”
지혜가 물었다.
지연은 옆에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당연하지요. 농협은 고객분들께 믿음과 신뢰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우 드셔 보세요.”
“와아, 저희 열 근 주세요!”
지연이 굳게 결심한 얼굴로 두 손을 펼쳐 열 개의 손가락을 내보이며 외쳤다.
“그렇게 많이요?”
두 젊은 아가씨가 열 근이나 시키자, 남성은 크게 놀란 눈치다.
“당연하죠. 이런 좋은 고기를 우리만 먹을 수 있나요.”
“가족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지 않겠어요?”
가족과 함께 즐기면 맛은 더해집니다.
『농협.』
컷!
“이야, 두 분 표정이 살아 있네요. 배우인 줄 알았어요. 역시 회장님 집안은 달라도 다르네요. 하하.”
대사도 틀리지 않았다. 심지어 욕심을 내 애드리브마저 선보이는 과감한 모습에 홀딱 반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둘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어디서 연기라도 배우고 있는 거예요? 정말 좋던데?! 사모님도 그렇고.”
감독의 시선이 홍라혜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미화에게 시선을 보냈다.
핏줄의 위대함에 혀를 내둘렀다.
“아니요.”
“없었어요. 그냥 집에서 어쩌다 상황극만......”
말하면서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혔다.
“하하, 그래서 그런가 보네요. 이건 내 명함이에요. 혹시 연락처 알 수 있을까요? 두 분.”
감독은 명함을 건네며 조심히 번호를 물었다.
“번호는 왜요?”
지혜의 눈빛이 변했다. 살갑게 웃던 눈에 경계심이 묻었다.
“오해하지 말아요. 내가 설마..... 크흠. 다른 광고도 찍게 되는데 따로 자리를 가져보고 싶어 그래요. 제가 설마 미쳤다고...... 두 분을......”
감독은 슬며시 한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 이건호와 티격태격하며 정을 쌓고 있는 이건호와 한강이 자리해 있었다.
“아......”
시선을 가져가 두 사람을 확인하자 경계로 가득한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네, 제 번호는요. 010-XXX-XXX.”
“저는......”
둘은 핸드폰 번호를 감독에게 알려주었다.
조만간 미팅을 가지자는 약속을 하고 감독은 자리를 떴다.
***
2009년 12월 밤.
[사랑과 믿음을 우리의 소중한 한우와 함께 나누세요.
농협은 믿을 수 있습니다.]
[농협.]
[가족과 함께 즐기면 맛은 더해집니다.]
『농협.』
“정말 잘 나왔다! 지혜 예쁘다.”
“언니도 넘 예쁘게 나왔어.”
축산 광고가 전파를 탔다. 화면에 시선을 던진 자매는 서로를 칭찬하며 처음으로 찍은 광고를 쳐다봤다.
[광고비 각자 1억씩 들어갔을 거다. 아껴 써.]
그리고 두둑해진 잔고에 행복함을 만끽하였다.
“우리 정말 이 길로 가볼까?”
“그럴까?!”
언니가 하면 나도 한다.
지혜는 지연의 말에 연예계 활동에 대한 확실한 꿈을 키웠다.
통장 잔고가 두둑하니 자신감이 충만하다.
충분히 도전을 할 만하다 느꼈다.
“그래, 해보자. 우리.”
지연에게도 새로운 목표가 생기는 순간.
“한강이 아빠. 나......”
“아무 말 하지 마. 내가 믿어줄게. 꼭 해.”
“고마워.”
“당신은 잘할 거야.”
“여보......”
안방에서 TV를 보고 있는 덕화와 미화는 서로의 온기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번 광고 활동으로 한강의 집에 막둥이가 생겨날 조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