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92화 (192/237)
  • 192화. 25살, 만원의 불행

    치이이이익.

    불판 위에 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어간다. 두툼한 살코기와 하얀 비계가 만나 환상의 조화를 이뤘다.

    젓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고기를 한 점 두 점 상추에 올렸다. 김치는 돼지기름에 볶아 입에 넣어 우적우적 씹었다.

    “크아, 맛있다.”

    맛은 그야말로 일품!

    술이 당기는 맛이었다.

    “천천히 먹어. 체해.”

    정신없이 먹어대는 남편의 모습은 며칠은 굶은 거지를 보는 거 같았다.

    어린시절부터 지금껏 지내오면서 처음으로 보는 남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음마저 나왔다.

    “아니야. 난 괜찮아. 자기도 맛있게 먹어.”

    오랜만에 먹는 삼겹살의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마늘에 상추에 쌈장을 듬뿍.

    주먹보다 커보이는 상추쌈을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단숨에 넣었다.

    잘 들어가지 않자 손으로 꾹꾹 누르기까지 하였다.

    쩝쩝, 냠냠.

    “......”

    고기와 함께 폭풍으로 먹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윤희는 너무 황당해 먹던 걸 멈추고 남편의 먹는 모습을 구경했다.

    “삼겹살에 먹는 와인이란...... 크.”

    달달한 포도 향이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느끼하던 혀는 와인에 적셔져 식도로 내려갔다.

    “그래 이거쥐!”

    맛있는 세상에 태어난 행복감.

    눈물 나도록 고맙다.

    불판에 가득하던 고기가 단숨에 사라졌다. 한강은 재차 고기를 올려 쉬지 않고 구웠다.

    “......정말 괜찮아?! 벌써 4인분이야.”

    벌써 800g을 먹어 치웠다. 그럼에도 남편은 먹는 걸 멈추지 않았다.

    된장찌개도 뚝배기 하나를 비운 상태.

    심히 걱정이 되었다.

    시선은 자연히 배로 향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 정돈 먹어야 건강한 남자라고.”

    소식(小食)을 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지도 모를 말들을 마구 뱉어냈다.

    “네, 그랬어요. 아구 우리 남편 그러다 돼지 되면 어쩌려고.”

    “아직 한창이라 괜찮아. 재석아 그치?”

    젓가락을 잡고 있던 손을 티슈에 닦고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행복감이 물씬 묻어나는 얼굴에 윤희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다 먹었다.”

    장장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먹은 한강은 백기를 들고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덕분에 재밌는 장면들을 많이 찍었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붉은빛을 반짝이던 카메라의 불이 꺼졌다.

    “고생하셨어요. 저기 있는 거 여러분 드리려고 준비한 음식들이에요. 가는 길에 드세요.”

    손으로 가리킨 방향에 스티로폼 박스가 있었다.

    집에서 먹고 가라 하고 싶었지만, 부담에 소화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먹을 거 같아 나름의 배려를 해주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모른다. 무엇일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우르르.

    한강의 집에 있던 스태프들이 장비들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막내들이 박스를 들고 나머지는 장비들을 챙겨 탑차에 실었다.

    “뭘까요? 맛있는 거였음 좋겠다. 아까 삼겹살 먹는 걸 보는데 어찌나 먹고 싶던지.”

    뒷정리를 마치고 다가온 붉은 모자를 쓴 남자가 궁금증을 드러냈다.

    “나도 그랬어. 뭔지 궁금하지?”

    “네, 뭐가 있는지 확인해 보죠. 배고파 죽겠어요.”

    “그래, 확인해 보자.”

    40대로 보이는 남성도 궁금했는지, 남자와 함께 상자를 열어봤다.

    “와, 이건...... 완전 대박이네요. 마침 고기가 당기던 참이었는데. 역시 스케일이 남다르네요.”

    붉은색 모자를 쓴 남자는 상자 안에 있는 내용물에 깜짝 놀랐다.

    소불고기로 이뤄진 도시락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고, 쌈도 함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또 다른 박스에는 음료수로 가득했다.

    “참 된 사람들이야.”

    남자는 흐뭇한 얼굴로 도시락을 꺼내며 웃었다. 같이 방송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참으로 한결같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늘 사람들부터 챙기는 모습은 한리버에 소속된 직원들에게 부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하였다.

    “자, 모두 도시락 나눠줄 테니까 차에 타기 전에 도시락들 받고 타세요.”

    남성은 소리를 높여 식구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차례대로 도시락과 음료 등을 받고 차에 올랐다.

    ***

    2009년 11월 말.

    하늘에서 눈이 내리며 폭설 주의보가 떴다.

    눈발이 흩날리는 날, 방송국으로 여러 대의 차량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안녕하세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차량에 내려선 인물은 유한강.

    건물 안으로 들어선 한강은 세트장에 모여 있는 무한도전 예능팀 식구들 한 명 한 명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뭘 이런 걸 다, 잘 먹겠습니다.”

    비닐봉지에 한가득 챙겨온 캔커피와 샌드위치를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돌렸다.

    마치 신인 연기자나 아이돌이 할 법한 행동을 한강은 서슴없이 하였다.

    “일은 밥심으로 하는 거 아닌가요. 맛있게 드세요. 재석이 형, 하하 형 이리 와서 샌드위치 들어요.”

    하나둘 안으로 들어오는 출연진을 보며 한강이 손을 흔들어 이목을 모았다.

    “뭘 이렇게 준비를 했어. 회장님이......”

    유재석은 조금 멋쩍은 얼굴로 건네는 샌드위치를 받았다.

    “회장님, 잘 먹겠습니다. 충성, 또 충성을 하겠습니다!”

    하하는 샌드위치를 받으며 예의 재치 있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경례구호를 외쳤다.

    허리까지 90도로 팍! 숙이는 재미난 모습까지 연출을 하였다.

    “와 진짜 맛있다. 이거 어디서 파는 거야?”

    안에 든 내용물이 싱싱하고 식감이 무척 좋았다. 먹을 때마다 귓가로 들리는 아삭이는 소리가 맛을 더해 주었다.

    “아, 그거요. 잘 아는 요리사에게 특별히 부탁했어요.”

    푸웁!

    먹다 말고 입에 든 내용물을 밖으로 뿌렸다. 사람들은 고개를 홱 돌려 한강을 바라봤다.

    “편의점이나 제과점에서 사기에도 그렇고 물량도 부족하고 뭐 좀 그래서, 지인에게 부탁했어요.”

    한강은 싱긋 웃었다.

    “......”

    “......”

    먹던 샌드위치를 보다 해맑게 웃는 한강을 응시했다.

    순수하게 웃는 모습이 오늘따라 무섭게 다가왔다.

    한강이 아는 요리사라면 최소가 5성급 요리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허허......”

    얼추 가격대를 유추한 멤버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우적우적 씹어 먹던 샌드위치를 작게 베어 물며 맛을 음미했다.

    “으으으음. 대기업.”

    정형돈이 먹으며 황홀경에 취했다.

    어쩐지 안의 내용물이 심상치 않더라니. 한강이 덕분에 입이 호강하는 날이다.

    “자, 방송 들어갑니다.”

    샌드위치를 다 먹자 피디가 신호를 보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아쉽네요. 재밌었는데. 힘들긴 했지만.”

    걸음을 세트장으로 이동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 번 나오기 힘들지, 한 번 나오면 반복적으로 나온다.”

    유재석이 함께 걸으며 또 출연하게 될 것임을 조심스럽게 예언을 하였다.

    “그랬음 좋겠네요.”

    한강은 꼭 그러기를 바라며 작게 웃었다.

    “슬레이트 칩니다. 하나 둘...”

    탁!

    무한도전 결선이 시작됐다.

    ***

    [만원의 행복의 행방은 어디에......]

    “푸훕, 크크크크. 미치겠네. 만원으로 일주일을 어떻게 버틸까 봤는데. 완전 돌았네.”

    TV 화면에 뜬 자막을 본 지혜는 방이 떠나가라 웃었다. 오빠가 출연한다기에 집중해 봤는데, 만 원으로 버티기는 개뿔.

    행복은 사라지고 불행이 스며들었다.

    “오빠 너무 불쌍하다.”

    반면 지연은 처음 보는 한강의 궁핍함에 눈시울을 붉혔다. 한강에 대한 애정은 어느 가족보다 컸다.

    그냥 지나쳐도 될 걸, 손수 거두어 준 오빠.

    갚아야 할 은혜가 너무도 많지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처럼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던 이유가 되어 준 사람.

    그때의 기억이 올라오자, 웃음보다 눈물이 났다.

    “언니 또 운다! 저 오빠는 저렇게 살아 봐야 돼!”

    지혜는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며 한강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웃으라고 한 이야기였지만.

    “너무 그러지 마. 지혜야.”

    통하지 않았다.

    “알았어. 안 그럴게. 그런데 우리 오빠 진짜 잘 먹는다. 언니. 그치?!”

    그러다 한강의 식성이 공개되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4kg의 감량을 배로 채우겠다!]

    [4kg을 뺀 유한강 회장, 다시 살을 찌우기 위해 4kg을 먹다?!]

    말도 안 되는 자막이 화면 아래를 채웠다. 과장된 자막이나, 자막에 어울리게끔 식탁 위를 채우고 있던 그 많은 고기를 단숨에 해치우는 모습은 괴물 그 자체였다.

    어떻게 저리 마른 체형에 모든 고기가 들어가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도 고기 먹고 싶다. 엄마! 오늘 삼겹살 먹자!”

    지혜가 주방에 있는 엄마를 불러 삼겹살을 주문했다.

    “우리 아들 참 복스럽게도 먹네. 호호. 그럴까?”

    주방에서 TV를 슬쩍 본 미화는 아들의 식성에 감탄하며 저녁 메뉴를 삼겹살로 정했다.

    [만원의 불행을 몰고 온 오늘의 벌칙자는!]

    어느덧 화면은 결선으로 향했다. 이제 각자의 지출 내역을 공개하며 벌칙자를 정하는 순서로 넘어갔다.

    [2위를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유재석이 나와 순위를 발표했다. 화면은 정형돈, 정준하 등의 순서로 쭉 비추다 잠시 한강에게 포커스를 맞춘 후 유재석을 잡았다.

    [2위는 접니다!]

    만세를 부르며 감격하는 모습을 보이며 두 손을 합장했다.

    벌칙에서 멀어졌기에 크게 안도를 하였다.

    잔고는 -18만5천600원이 찍혔다.

    [3위는 노홍철!]

    빠르게 3위를 발표했다.

    [예~ 가는 거야!!]

    노홍철이 나와 두 손을 모아 화면에 장풍을 쏘듯 자세를 잡으며 하관을 크게 벌렸다.

    잔고는 –22만 6천 원을 순서로......

    4위는 전진, -25만7천100원.

    5위는 하하, -28만 6천 원.

    6위는 박명수, -30만500원.

    7위는 정형돈, -31만 원이 되었다.

    두구두구.

    이제 남은 사람은 단 두 명!

    한강과 길이 남게 되었다.

    길은 절망으로 물든 얼굴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렸다.

    만 원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방송이 어쩌다 대출 방송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벌칙자는 길 씨로 -43만2천200원을 기록했습니다! 1등은 유한강, 잔고는 –11만5천 원으로 최종 우승!]

    퐈아앙!

    꽃가루가 터지며 한강의 아래로 쏟아졌다.

    [우승자에게는 유한강 씨 이름으로 벌칙금이 기부금으로 나갑니다. 당연히 돈은 벌칙자의 돈으로 진행이 되겠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물러가겠습니다. 무하아아아아안!!]

    [도전!]

    방송이 끝났다.

    “엄마, 오빠도 불러요!”

    방송에 출연한 한강을 보자 급 보고 싶어졌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방은 한강의 방으로 수시로 드나들던 애틋한 장소!

    그때는 방에 들어가면 늘 웃으며 맞이해 주었는데.

    지금은 결혼해 보기 어려워졌다.

    “그럴까? 그럼 지연이가 전화해서 오빠네 오라고 해. 오랜만에 우리 예쁜 손주 재석이도 보자.”

    “네!”

    지연은 크게 반색하며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오빠! 오늘 엄마가 같이 삼겹살 굽재요! 네, 네! 빨리 오세요. 새언니랑! 재석이랑!”

    텐션이 업된 지연을 보는 지혜의 모습은.

    절레절레.

    조용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언니 우리 장 보러 가자.”

    그것도 잠시 지연의 손을 잡아끌어 밖으로 나갔다.

    오늘도 한강이네는 행복의 온기를 공기 중에 퍼트렸다.

    따스한 온기가 세 사람의 가슴에 봄소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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