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25살, 만원의 행복
벽에 붙은 카메라와 집안에 모여든 카메라맨을 보며 볼살을 긁적였다.
어떻게 해야 한다?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니까, 집에서 먹는 이것도 돈을 주고 먹어야 한다...... 뭐 그런 거죠?”
끄덕끄덕.
카메라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끙.
한강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밥까지 돈을 내서 먹으란 충격적인 사실에 머리가 아파왔다.
“얼마인데요?”
“최소치 5백 원이고, 협상 가능합니다.”
곁에 있던 남자가 룰을 말해 주었다.
하필 오늘 아침은 한강이 좋아하는 소고기 필라프.
소고기가 크게 썰려 밥 위에 수북하게 올려져 있었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먹고 싶어!
침샘이 목과 입을 계속 주물렀다.
‘어떻게 한다. 진짜로. 저걸 5백 원에 가져가는 건 무리고. 만 원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한강의 머리가 비상식적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현실을 생각하며 빠르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일주일간 만 원으로 버티는 건 완전 무리야. 말도 안 되는 일. 당장 김밥만 먹는다고 해도 일주일이면 2만 원은 그냥 넘어. 교통비도 생각을 해야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스탭들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그래, 어차피 꼴등만 안 하면 되는 거잖아.’
계산을 끝마쳤다.
“대출한 거 외부로 노출되나요?”
“아니요. 안 됩니다. 비밀이 지켜집니다.”
단호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런데 입가에 머무르는 미소가 묘하다.
무언가 숨기고 있는 모습.
“그럼, 만 원 미리 대출할게요.”
미리 당기나 후에 당기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한강은 미리 만 원을 당겨 받기로 하였다.
“한 번 받으시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정말 받으시겠습니까?”
재차 확인하는 말이 들려왔다.
“네, 받지요.”
무한도전의 모든 멤버가 대출을 받는다에 배팅을 던졌다. 상식적으로도 무리였다.
“네, 좋습니다. 여깄습니다.”
준비된 봉투가 추가로 지급이 되었다.
이제 한강의 전 재산은 2만 원이 되었다.
“호호.”
윤희는 지금의 모습을 재밌게 지켜봤다.
너무 웃기기도 하고, 처음 보는 남편의 허둥대는 모습은 새롭게 다가오기도 하였다.
“손님, 얼마치 드릴까요?”
“4천 원어치 주세요.”
“잠시만요.”
저울 위로 접시가 올라갔다. 100g에 100원이라 표기된 상황.
두툼하던 고기를 최대한 작게 썰어 밥과 적절하게 섞어 접시 위에 올렸다.
“여깄습니다......”
4천 원이 윤희의 손에 쥐어졌다. 윤희는 지폐를 들어 싱긋 웃었다.
“또 오세요. VVIP 고객님.”
윤희는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
한강은 핼쑥한 얼굴로 터벅터벅 현관문을 나섰다.
“교통비는 차량 한 번 이용할 때마다 500원입니다. 10km 벗어나면 km당 100원씩 붙습니다.”
생각 없이 차량에 오르려던 한강은 어이없는 얼굴로 남자를 쳐다봤다.
“...... 기사님, 가주세요.”
한강은 고개를 내리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부턴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는 자전거를 떠올리며 추가로 돈을 내고 출근길에 올랐다.
‘벌써 4500원인데! 이걸로 어떻게 버티냐고!!’
무한도전 만원의 행복을 수락한 걸 진심으로 후회하였다.
***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사람들 사이를 누비는 남자가 보였다. 뒤뚱뒤뚱 걷는 모습에 당당함이 깃든 남자, 정형돈이었다.
정형돈은 매의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적당한 장소에 걸음을 멈췄다.
“이게 말이나 되는 거야? 이건 아니잖아. 안 그래?”
봉투에 든 천 원짜리를 펼쳐 부채질을 하였다.
열 장이던 지폐가 7장이 되어 있었다.
만 원으로는 일주일을 버티기 어렵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었다.
물가가 꽤 올랐다.
“음...... 그래! 그거야. 그럼 되지!”
그때 정형돈은 번쩍이는 아이디어에 손가락을 딱 치다 박수를 쳤다.
“아아아, 내가 이걸 지금 생각을 하다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안녕하십니까. 길 사장.”
전화를 건 상대는 리쌍의 길이었다.
정형돈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쳐졌다.
---무슨 일이신가? 정 대표?!
“자네와 비즈니스를 할까 하는데, 어떠신가? 나와 비즈니스를 하지 않겠나?”
---비즈니스?!
“별건 없고, 요즘 사업이 어려워 먹고 살기 빠듯하지 않은가?”
---말해 보시게.
“해서 내 제안이 있네만. 우리 점심을 조건으로 내기를 해보지 않겠나?”
---내애기?!
솔깃한 제안이었는지, 길이 반색을 하였다.
“어떤가? 오늘따라 스테이크가 당기는데 말이야.”
겨우 7천 원 있는 자의 입에서 나올 법한 메뉴는 아니었지만, 이미 정형돈의 눈에는 욕망의 불꽃이 타올라 있었다.
---내기 내용은?
“땡금으로 하지. 단판 승부.”
---좋네. 거기에 교통비까지 얹으면 참 좋을 거 같은데 말이야.
“콜!”
---지금 어딘가?
“압구정이네.”
---오, 아주 좋은 곳에 있구만. 모처럼 럭셔리하게 먹어보지. 내 그리로 갑세.
전화는 끊겼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만 아니면 되지. 가자고.”
정형돈의 머리에는 만원의 행복 따위 완벽하게 삭제가 되었다.
“통화 5분 하셨습니다. 500원입니다.”
“.......”
이제 생사결만이 남았다. 이기는 자는 부와 명예를!
진 자에게는 엄청난 부채를 떠안는 죽음만이 기다렸다.
“두 번 말하기 없기일세.”
도착한 약속 장소에서 길을 만났다. 길은 도착한 정형돈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기라는 약속을 받았다.
“흥,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기 없기입니다?”
질세라 정형돈은 당당하게 받아쳤다.
“등심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게임에 앞서 선조치 후결제를 하기로 하였다. 둘은 우아하게 나이프를 들어 스테이크를 썰었다.
“음, 스멜. 이 향기로움.”
포크에 찍혀 올려진 두툼한 고기가 코를 벌렁이게 만들었다. 정형돈은 아주 황홀한 얼굴로 고기의 향을 음미하며 입안에 넣었다.
“......”
“......”
생각지 않게 아주 재미난 장면을 두 사람이 만들어 냈다. 막장 한 번 찍을 거라 예측은 했지만, 기대 이상의 장면을 찍고 말았다.
둘의 주변에 모여 카메라를 든 사람들의 얼굴에 곧 벌어질 피의 향연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거억.”
“역시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정형돈의 트림에 맞춰 길의 포크가 식탁 위에 내려졌다.
“이제 계산을 해야 하는데, 준비되었는가?”
두 사람 손에 동전이 주어졌다. 가게에 양해를 구하고 긴 복도에 나란히 섰다.
“저 선에 가장 근접한 이가 이기는 걸세. 알았는가?”
길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손에 쥔 동전에 오늘의 점심값이 달렸다.
점심값은 14만 원.
만원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일이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있는 스테이크 집에서 벌어졌다.
“자, 누가 먼저 할지 가위바위보로 정합시다.”
“좋소.”
가위바위보!
“얍스! 아자!”
정형돈이 보자기를 냄으로, 길을 이겼다.
“윽!”
길이 민머리를 두 손으로 꽉 쥐고 절망의 기운을 풍겼다.
“길아, 잘할 수 있어. 이것만 잘 던지면 넌 오늘 공짜로 7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먹은 거야.”
자기 주문을 외우며 어두워지려는 정신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흐읍, 후우. 얍!”
길의 손에 들린 동전이 선을 향해 던져졌다. 모든 희망을 동전에 쏟아부었다.
땡그랑. 따르르르르르.
“아자!”
선에서 불과 10cm 정도 차이. 아주 만족한 결과였다. 조금은 아쉬운 결과였지만,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기에 딱 좋았다.
“음하하하. 어서 해보시지요.”
길의 얼굴에 여유가 떠올랐다.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 자신을 하였다.
절대 이곳에 14만 원이란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쏟아부을 수 없었다.
“정말 한 판이오. 길 사장.”
“어허, 당연한 말씀을.”
그 순간 둘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여유로 똘똘 뭉치던 길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제발, 제발......”
정형돈은 동전을 양손으로 꼭 쥐고 돼지와 소의 신에게 기도를 하였다.
아주 맛있게 먹었으니, 이기게 해달라고.
“얍!”
정형돈의 동전이 손을 떠나며 허공에 떠올랐다. 둘의 시선은 동전에 집중됐다.
“오오오오오.”
길의 외침이었다.
“으아아아아. 제발!”
정형돈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땡그랑. 휘리릭.
그 순간 대반전이 벌어졌다. 길의 동전보다 먼 거리에 떨어졌던 동전 바닥에 튀기다 세워져 빙글 굴러갔다.
원을 그리며 달려가던 동전은 둘의 얼굴에 희망과 공포를 동시에 심어주었다.
“아자!!!!”
“아......”
몇 초간 둥글게 돌던 동전은 놀랍게도 선 중앙에 정확하게 멈춰 쓰러졌다.
“옙스!! 길 대표, 아주 잘 먹었네. 음하하하하하.”
길의 등을 두어 번 탁탁 치고는 식당을 빠져나갔다.
“14만을 대출하였습니다. 길 씨는 마이너스 13만 5천 원입니다.”
엄청난 부채가 길의 이름으로 기록됐다.
길은 절망의 눈물을 쏟으며 힘없는 발걸음으로 건물을 나섰다.
***
길과 정형돈의 비스니스가 끝나는 시각.
“실장님, 커피 마렵지 않습니까?”
방으로 들어온 김동진 실장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눈빛에는 진한 사심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거 설마.”
한강의 끈적거리는 목소리에 김동진 실장의 얼굴에 난감함이 떠올랐다.
“커피 세 모금에 백 원이면 충분할 거 같은데 말입니다.”
눈동자에 물기마저 생겨났다. 커피 한 모금이 이렇게 절실한 날이 찾아올지 몰랐다.
세계적인 부자의 모습이 참으로 처량하다.
언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지.
눈물이 날 정도다.
“크흠. 괜찮은 겁니까?”
김동진 실장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졌다.
“거래를 하셔도 됩니다.”
불가능하단 소리는 하지 않았다.
김동진은 슬며시 한강의 눈치를 보다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민망함에 물든 눈을 한강에 던졌다.
“회, 회장님께서 저를 그려 주시면...... 커피 한 잔을 백 원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딜이 들어갔다. 그것도 엄청 양심을 판, 아주 사기적인 딜이.
“그거 너무한 거 아닌가요?”
“한 잔입니다.”
“불가합니다.”
한강은 거부를 하였다. 그림 한 장이면 커피가 몇 잔인지 모르겠다.
“......”
이쯤 되자, 김동진도 오기가 생겼다. 눈치 때문에 그간 말하지 못했는데, 꼭 그림을 가지고 싶었다.
절대 다른 회사에선 볼 수도 보기 힘든 회장과 비서의 모습이었다.
묘한 재미에 한강의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크게 만족하는 얼굴로 모든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럼 커피는...... 어려울 거 같......”
“으득,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하자고요. 실장님이 일주일간 저의 출퇴근을 책임져 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그림 한 장에다 백 원으로 커피 사먹겠습니다.”
머리를 굴려서 최대한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제안을 하였다.
이것도 안 된다면 가방에 챙겨온 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계약 성립입니다. 회장님. 바로 커피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승리자의 얼굴을 한 김동진은 싱긋 웃으며,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하아...... 어쩌다......”
한강은 다시 한번 찾아온 처량함에 고개가 떨구어졌다. 분명 손해가 아닌 거래임에도 동공에 습기가 차오르는지 모르겠다.
꼬르르륵.
동시에 배에서 처절한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