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87화 (187/237)
  • 187화. 25살, MBS

    MBS 방송국 무한도전 예능팀이 있는 공간은 오늘도 정신없이 흘러갔다.

    “큰일이야. 시청률이 23%를 뚫은 이후로 다시 아래로 내려가고 있어. 다시 살릴 좋은 수가 없을까?”

    회의실엔 피디를 비롯해 무한도전 예능팀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동시간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더는 오르지 않고 떨어지는 시청률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화제를 모을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해 특별한 이벤트성 방송을 찍어 보는 건 어떨까요?”

    “이벤트?”

    “네, 회사 막내로 만들어 꽁트를 짠다든가.”

    “음......”

    갑자기 모인 탓에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다.

    “휴, 잠깐 쉬자. 생각을 많이 했다니 머리가 당겨오네.”

    김지경 피디는 찡한 머리를 양손으로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읍, 후우.”

    폐부 깊게 빨아들인 연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하얗게 수놓은 아지랑이가 공기 중에 흩어졌다.

    “카악, 퉷.”

    목 안에서 답답하게 구는 침을 뱉었다.

    “에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은 탓에 찝찝함이 목구멍에 느껴져 인상을 구겼다.

    “뭐라도 마시자.”

    그냥 넘어가려다 거슬려 안 되겠다. 지경은 걸음을 옮겨 자판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라, 여기에 500원이 있어야 하는데, 왜 없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자판기 앞에 서고서야 주머니에 돈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저께 분명 500원을 넣어 두었는데.

    미간을 좁혔다.

    “아, 맞다. 그 녀석 음료수 마신다고 500원 줬지. 에휴......”

    머리를 팍팍 긁었다. 죄 없이 거칠게 긁힌 머리카락은 하늘을 향해 불만을 표했다.

    삽시간에 헝클어진 머리는 지경을 거지꼴로 만들었다.

    “아,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더니 돈 관리를......잠깐 돈관리......??”

    그때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머리를 강타했다.

    “여기서 뭐 하세요. 김지경 피디님.”

    하지만,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생각을 접었다.

    “아니, 회장님.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말끔하게 차려입은 귀공자 유한강이었다. 차량을 타고 지나가는데, 익숙한 얼굴에 중간에 차에서 내려 걸어왔다.

    “피디님께 줄 게 있어 잠시 들렀습니다.”

    한강은 손에 들린 물건을 들었다 내렸다.

    “줄 거요? 그게 뭐죠?!”

    자연히 시선은 한강의 오른손에 들린 물건으로 향했다. 넓은 사각 면을 가린 신문지 뒤에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그게 가요제에서 좋은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려 봤습니다. MBS에 걸어두면 어떨지 싶어 가져왔어요.”

    “아니, 그 귀한 걸......”

    김지경은 화들짝 놀랐다.

    한강의 그림이 어떤 그림이던가?

    전시만 해두면 몇십억은 훌쩍 넘는 보물이지 않던가.

    그런 걸 가져왔다는 사실에 눈은 한강의 오른손에서 떠나지를 못했다.

    “하하, 크게 뭐 없습니다. 그냥 제 마음입니다. 좋게 표현해 주어 감사합니다.”

    “......하하. MBS가 회장님과 연이 닿아 귀한 걸 받네요.”

    뒷목을 어루만져 어색함을 풀었다.

    “하하, 그런데 여기서 뭐 하셨어요?”

    “아, 그게 커피를 마시려 했는데, 돈을...... 놓고 왔지 뭡니까. 사무실로 가시죠. 제가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아, 그랬군요. 자판기가 앞에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여기서 마시고 들어가죠. 제가 사겠습니다.”

    “아, 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땡그랑. 땡그랑.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한강의 주머니에 있던 동전이 자판기 안으로 들어갔다.

    ‘재벌도 동전을 들고 다니는구나.’

    재벌은 수표만 들고 다닐 줄 알았는데, 100원짜리 동전이 나오니 무척 신기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뭐 드실래요?”

    지경이 생각을 하는 틈에 동전이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자판기 버튼에 붉은 불이 들어와 있었다.

    “아, 저는 블랙커피로 부탁드립니다.”

    “도시 남자시네요. 전 아직도 블랙커피는 좀 그런데. 하하.”

    웃으며 블랙커피를 먼저 뽑아 지경에게 건넸다. 한강은 밀크커피를 뽑았다.

    “잘 마시겠습니다.”

    귀한 선물까지 가져왔는데, 기업의 오너에게 커피를 얻어 마시니 황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뭘요. 더 좋은 걸 해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미안하네요.”

    “아닙니다. 이거면 충분합니다. 아 맛있다.”

    목에 걸려 있던 끈적한 침이 안으로 넘어갔다. 이제 좀 살 거 같았다.

    ‘정말 다른 재벌들과 다르구나. 참으로 소탈한 사람이야.’

    20대 중반이면 혈기가 왕성하고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나이이다. 한데, 한강에게 있어 그런 재벌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한강이 입은 옷과 신발, 액세서리만이 부유한 집안의 사람임을 보여줄 뿐이었다.

    만약, 평상복을 입고 다녔다면 재벌 회장으로 보지 않으리라.

    ‘재벌이 동전을 꺼내는 모습이라...... 참으로 재밌는 장면이었...... 가만. 이거 어쩌면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불현듯 떠다니는 대박 아이디어!

    지경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저 회장님, 염치없지만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지경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방송에 자유로운 사람이지만, 지금 할 말은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말이었다.

    “무슨 말인데, 그러세요? 편히 말하세요. 우리가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고.”

    진지하면서 조심스러운 모습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강은 무슨 일인가 하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러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큼. 저 혹시 만원의 행복을 일주일간 찍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머릿속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는 MBS가 방영하고 2008년 10월에 종영한 방송 ‘만원의 행복’이었다.

    당시 시청률은 6~8%를 오갔던 효자 방송이었다.

    재벌이 만 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리자, 그 모습들이 새롭게 재미있게 다가왔다.

    “네에?!”

    갑작스러운 제안에 한강은 놀란 눈을 거두지 못했다. 얼마 전에 했던 방송은 자신과 관련된 일에 재미가 있을 거 같아 출연을 한 것인데.

    뜻밖에도 또 출연을 제안받자 고민이 되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회장님의 주머니에서 나온 동전을 보고 떠올린 생각인데, 재벌의 주머니에서 동전이 나와 무척 신기했습니다. 재밌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생소한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내면 사람들의 관심을 단번에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거절하지 않았음 좋겠는데’ 어렵게 생각한 만큼 수락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만원의 행복이라. 확실히 그런 방송이 있었지. 연예인들이 일주일간 만 원으로 버티게 하는.’

    신중하게 생각을 가져봤다.

    재벌이 일주일을 겨우 만 원으로 생활한다? 이건 그동안 타고 다니던 자동차도 제대로 타지 못하고 모든 걸 돈으로 계산해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경험이라 재미는 있을 거 같은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러다 가능성에 저울을 달아 계산을 해보았다.

    ‘만약, 이걸 이룬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확실하게 한몸에 받겠네. 이미지도 제법 좋아질 거고.’

    한강의 이미지가 좋아진다는 건, 한리버 그룹의 이미지도 좋아짐을 의미했다.

    ‘그래, 돈 주고 홍보하는 것도 아니고, 돈 받고 홍보하는 건데. 어때. 해보자.’

    회사와 이어 생각을 해보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란 결론에 미쳤다.

    “좋아요. 하죠.”

    한강의 입이 작은 호선을 그렸다.

    눈매도 살짝 휘어 호기심을 드러냈다.

    “아, 감사합니다. 저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히려 좋은 기회를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그림만 전해주고 가려 하였는데, 새로운 일정이 잡혔다. 한강은 그림을 지경에게 전해주고 발길을 돌렸다.

    “좋았어!”

    지경은 그림을 든 채, 주먹을 불끈 쥐어 허공에 어퍼컷을 날렸다.

    이번에도 대박의 조짐이 팍 하고 터졌다.

    “모두 내 말을 들어봐.”

    허겁지겁 그림을 들고 안으로 들어와 회의실에 도착했다. 지경은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와 방금까지 한강과 있던 일을 말했다.

    “와, 정말 좋은 거 같아요. 출연진들도 전부 재벌로 꾸며서 일주일간 만원의 행복을 찍는다면 재밌는 모습들이 찍힐 거 같아요.”

    결과는 모두 박수를 치며 반겼다.

    지경의 놀라운 아이디어에 찬사마저 보냈다.

    “좋아. 그럼 그런 줄 알고 그렇게 준비를 해봐. 난 국장실에 다녀올게.”

    “네!”

    직원들에게 모든 말을 마친 지경은 예능국장실로 향했다.

    손에는 그림이 들려 있었다.

    “그거 정말 대박 기획인데. 이번에도 큰 거 하나 했어. 이 피디. 그런데 그건 뭔가?”

    안으로 들어와 회의 내용을 전달받은 예능국장 이영규는 크게 만족했다.

    솔직히 자신도 신경을 쓰던 부분이었는데, 가져온 아이디어는 무한도전의 새로운 상승 지점으로 떠오를 거 같았다.

    느낌이 좋았다.

    그러다 김지경의 손에 들린 그림으로 향했다.

    “이건 유 회장님이 가져온 물건인데, 직접 그리신 그림이랍니다.”

    “뭐어?!”

    김지경의 말을 들은 이영규 예능 국장은 깜짝 놀랐다. 쉽게 구할 수 없다는 한강의 그림을 눈앞에서 목도를 하였기 때문이다.

    “예능팀에 걸어두라며 가져오셨다더군요.”

    “허허.”

    이영규는 황당해 헛웃음을 흘렸다.

    “뜯어 볼까요?”

    “그래, 뜯어봐.”

    영규의 표정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기대 어린 눈은 탁자 위에 올려지는 그림에 향했다.

    부스럭 부스럭 찌익.

    포장된 신문지가 이리저리 찢어져 바닥에 내려앉았다.

    “허허...... 정말 귀한 걸 받았다.”

    “......허얼.”

    포장된 신문지가 모두 제거되자 안에는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그림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얗고 검은 선들이 어우러진 그림은 가요제를 하던 당시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당장 무대로 올라가 그림 속에 있는 사람들 속에 녹아들어 축제를 즐기고 싶었다.

    “이건 아무래도 국장님께 보여야 할 거 같아. 그리고 이 피디, 자네는 절대 실수하지 말고 유 회장님 편의를 잘 봐주게. 알았나?”

    귀한 선물까지 받자 자세는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알겠습니다. 실수 없이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이 피디야, 알아서 잘할 테니. 그럼 난 국장실에 다녀올 테니 일 보게.”

    “네.”

    이영규 예능국장은 그림을 조심히 안아 들고 방송국장실로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 중 단연 독보적인 기업이라 평가를 받는 한리버 그룹이 신사옥을 건설하기 위하여 부지를 알아보고 있다. 장소는 화성과 대전시가 유력 후보지로 떠오르고 있다.]

    한리버 그룹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언론사들은 제법 정확하게 한리버 그룹 신사옥 부지를 예측하고 있었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면적은 90만 제곱미터로 3조 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을 예정......]

    기사가 쏟아지자마자 관련된 부지의 땅값이 크게 요동쳤다.

    “꼭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요. 한리버가 들어오면 어쩌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인구를 끌어 올려야 하는 입장에서 각 시에선 한리버의 선택을 반겼다.

    무조건 자신이 있는 시에 한리버의 거대한 사옥을 건설하게 만들기 위하여 바쁘게 움직였다.

    따르르릉.

    “네, 한리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전 대전시장 곽주원입니다. 회장님과 통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며칠 뒤, 한리버 그룹 비서실로 대전시장 곽주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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