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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85화 (185/237)
  • 185화. 25살, 미래 자동차 디자인

    한강의 시선을 받은 정지섭의 눈이 단단해졌다. 어떠한 결심이 섰음을 눈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이건호도 같은 생각.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한강에게 모였다.

    “좋습니다.”

    한강의 입이 열렸다.

    “오!”

    정지섭은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크게 놀라워했다. 한강의 배포에.

    “어쨌건 제가 한 약속입니다. 지킬 의무는 있다 보여 수락하기로 하였습니다.”

    세계사에 남을 일이 청담동 한식당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건호도 적잖이 놀란 모습이다. 여기까지 데려온 건, 그저 사위를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고, 적당한 협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하지만, 이렇게 쉽게 한강이 승낙하리라 보진 않았다.

    “단 제가 드리는 디자인은 미래에 어울리면서 어울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애초에 미래에 줄 디자인은 정해져 있었다. 미래가 어긋났다면 미래를 이어 붙이는 것도 자신의 일이라 여겼다.

    “......음.”

    지금껏 디자인 부문에서 늘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한들, 또 혁신적인 자동차 디자인을 뽑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경쟁하는 기업에 그만한 디자인을 줄지도 보장된 바 없었고.

    정지섭 회장의 얼굴에 고민이 떠올랐다. 주저앉는 미래 자동차를 살리고자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상황.

    이걸 무시하면 한국 시장의 점유율은 한리버에게 이동하게 될 것인데. 이걸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복잡하시죠? 제가 왜 경쟁사인 회장님의 기업을 돕고자 하는지를. 장인어른도 궁금해하는 눈치시네요.”

    맞은편에 앉은 이건호와 정지섭을 이리저리 시선을 옮겨 얼굴을 살폈다.

    확실한 이유를 듣고 싶은 모양이다.

    “방금 전 말씀드렸듯 약속이 첫 번쨉니다. 두 번째는 내게 손해가 아니란 점이고, 셋째로 한국 자동차가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았음 하는 바람입니다.”

    “......”

    “......”

    한강과 마주한 두 사람의 얼굴에 황당함이 머물렀다.

    “끝으로 전 하나의 기업만을 위한 독점 시장은 바라지 않습니다.”

    어쩌면 오만하고 건방진 말.

    “......”

    “......”

    한데, 그게 불편하게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경쟁사 회장인 정지섭조차 그걸 당연시 받아들였다.

    디자인 하나만으로 매출을 견인하는 한리버 유한강의 실력을 확인한 탓이다.

    대형차 시장은 미래 자동차가 앞서지만, 허리 역할을 하는 중형차 시장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고작 디자인 하나가 만들어낸 결과는 미래 자동차의 위기감을 심어 주었다.

    “서로 경쟁을 해야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국내 기술과 경쟁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한강은 미래 자동차를 메기라 생각했다. 번식하며 성장하는 HY자동차를 위해서라도 꼭 있어야 하는 기업으로 인식했다.

    “유 회장님의 생각......정말 이해하기 힘들지만, 내 입장에서 볼 때 다행이라 해야 하겠군요.”

    대화를 나눌수록 한강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실력과 배포, 모든 것이 매우 크게 다가왔다.

    “아닙니다. 그저 저에게 그런 좋은 기회를 주신 점,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어려운 선택이었고 말도 안 되는 일을 회장님의 과감한 선택으로 저 또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지섭이 높게 평가를 해주지만, 반대로 한강은 정지섭에 대한 평가를 정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래서 국내 자동차 시장을 미래가 가져간 것이었겠지.’

    “빠른 시일 내에 좋은 디자인을 뽑아 건네 드리겠습니다.”

    생각도 해보지 않던 거래를 청담동 한식당에서 끝냈다.

    “이번 빚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정 회장님.”

    한강과의 협상이 끝나고 남게 된 둘.

    이건호는 모종에 있던 거래를 슬며시 언급했다.

    “물론이지요. 이번 건설 입찰에서 빠지도록 하지요. ”

    이번 일로 육성과 입찰 경쟁을 하는 곳 중 한 곳에서 발을 빼기로 하였다.

    미래에 있어 자동차는 무척 중요한 사안이었다. 차에 오르는 정지섭의 얼굴에 씁쓸함이 가득했다.

    “임원진들 모아다 깽판 치기 참 좋은 날씨야.”

    그리고 이건 미래 그룹 내 재앙을 이끌어 냈다. 어둠이 미래 그룹을 향해 뻗어 갔다. 부르릉!

    차량에 시동이 걸렸다.

    차량은 거친 투레질과 함께 식당 주차장을 벗어났다.

    ***

    자, 보자.

    집에 도착한 한강은 집무실로 들어가 책상 위에 펼쳐둔 드로잉북을 노려봤다.

    “수많은 디자이너들을 미래가 받아들이지 못했어. 역사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

    해당 디자인을 누가 그렸는지 모를 일이지만, 미리 선수 쳐 미래에 넘기는 게 좋을 거 같다.

    이런 좋은 디자인은 해외로 넘어가기보다 미래에 넘기는 게 좋다.

    “제네시스, 미래를 바꿀 역대 디자인이지.”

    처음부터 2040년에 등장한 신형을 줄 생각은 없었다. 단계를 밟아 나가,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로 하였다.

    “그렇다면 역시 이것부터 주는 게 좋겠지.”

    한강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자리했다.

    ***

    이틀이 지난 날.

    “회장님, 유한강 회장이 찾아왔습니다.”

    한강이 미래그룹 회장실을 찾았다.

    “아니, 벌써 다 그리셨습니까?”

    안으로 들어서는 한강의 오른손에 들린 파일로 눈길이 갔다.

    화구가방이 들려 있었다.

    “어쩌다 보니, 좋은 영감을 받아 한 장 그려 와 봤습니다.”

    “......놀랍군요. 디자인이 그렇게 빨리 뽑히는 거던가요?”

    아래에 일러 혁신적인 디자인을 가져오라 지시 내리기를 수십여 번.

    하나 매번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먹이거나 기존에 있는 자동차를 수정해 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걸 유한강은 이틀 만에 완성이 됐다며 가져왔다. 이 정도면 자동차의 녹을 먹고 사는 디자이너들의 실력을 확인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봐도 되겠습니까?”

    나이를 먹고 손이 떨려보긴 처음이다.

    디자인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네, 여깄습니다.”

    앞으로 내어진 파일을 받아,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허어, 이건......”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차량 한 대가 종이에 그려져 있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고급스러움은 마음을 확 잡아끌었다.

    “어떠십니까?”

    그 모습을 보며 한강은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정말 놀랍습니다. 이런 디자인을 단 이틀 만에 뽑았다는 것도 그렇고. 허허. 정말 우리 회사에 인재가 없는 모양입니다.”

    허탈함이 심장을 후벼 팠다. 세상을 바꾸는 건 소수의 천재라 하였다. 정지섭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서야 천재의 위대함을 머리에 새겨 놓을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사람마다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바늘로 양심을 쿡쿡 찔러댄다. 한강은 양심을 단단하게 만들어 찔러오는 바늘을 막아냈다.

    “그렇지요. 한데 정말 이걸 우리가 써도 되겠습니까?”

    막상 받으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딱 봐도 대박을 터트릴 디자인.

    아무리 기업의 오너라 하지만, 양심이란 놈이 혼란을 가져왔다.

    “전에도 말했지만, 미래가 잘될수록 HY도 크게 성장을 할 겁니다. 또한 미래에서 차를 잘만 팔아도 한리버 입장에서 보더라도 수익이 발생하기에 절대 손해가 아닙니다.”

    어떤 비용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한강의 노력만이 들어간 디자인으로 얻어지는 수익이다.

    이보다 알짜 수익도 없을 터.

    어떤 시각으로 보나 무조건 한리버에 이득이었다.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마지막 말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계약대로 로열티를 드리리다.”

    “특별 사항에 이번 차종의 시리즈는 제가 맡는 걸로 해주셨음 합니다.”

    “허허, 당연하지요.”

    마음이 간 탓일까?

    바로 양산차 디자인으로 활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저 그리고 잠시 말씀을 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다소 건방진 말일 수 있으니 기분이 나쁘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가 주셨음 합니다.”

    지난 시간 잠시 고민하던 일을 이 자리에서 밝히기로 하였다.

    ‘빚 정도는 만들어 두어도 괜찮겠지’ 한강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확 당겨 놓기로 하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지 몰라도 제가 화를 낼 일이 있겠습니까.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들어야지요.”

    “그렇다면 과감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차량은 고급 차량만을 생산하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그곳에서 진행하면 좋겠습니다. 차량의 디자인에 있어 로고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고급 차량에 맞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든다면 미래 입장에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리라 봅니다.”

    미래에 생산될 차에 미래 마크를 부착한다면......?!

    그건 생각도 하기 싫었다.

    “......허어.”

    “그리해 주신다면 한리버가 투자를 하겠습니다.”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충분히 예상이 되기에 투자를 결정했다.

    투자에서 얻어지는 이익금도 가져가겠단 의도였다.

    “정말이지 저를 계속 놀라게 하는군요.”

    “놀라실 건 없습니다. 언젠간 회장님도 생각을 하셨을 부분입니다.”

    “유 회장님은 정말 특이한 분입니다. 어떻게 그런 태연한 얼굴로 경쟁사를 도울 수 있는지요?”

    정말 궁금했다. 며칠 전부터 계속 묻고 싶던 물음을 이제야 꺼내게 되었다.

    “인류는 전쟁을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평화롭게 발전하는 방법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제 대답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을지 그건 모른다.

    그저 자신이 가지는 생각의 일부를 밝혔을 뿐.

    “신선이 따로 없으십니다. 회장님의 제안,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통과가 되면 회장님께 연락을 드리지요.”

    “네,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한강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한강은 만족한 얼굴로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야, 과연 저 사람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보통은 경쟁기업을 밟고 올라서는 게 일반적. 자신의 기업의 이익을 목표로 두지, 한강과 같은 마인드를 가지지 않았다.

    당장 스스로부터 기업의 이익을 위해 고군분투를 하거늘.

    그의 생각을 따라잡기 어려웠다.

    “날세. 당장 임원진과 설계팀과 디자인팀 내 방으로 오라 이르게.”

    한강이 빠져나간 지 10여 분의 시간 뒤, 관련된 인사들을 소환하였다.

    “어떤가?”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회장실을 소환된 사람들로 채워졌다.

    한강이 그려온 디자인을 내보이며 모두에게 물었다.

    “실로 놀랍습니다. 어찌 이런 디자인을......”

    “설계 뒤 디자인팀과 조율을 해봐야 알겠지만, 당장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정면, 뒤, 옆, 위, 대각선 등 여러 각도에서 차량을 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그려놓은 그림.

    심지어 차폭, 전장, 길이, 바퀴 크기까지 적혀 있었다.

    “자동차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한 거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감탄만 하기에 바빴다.

    “......정말이지. 휴.”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정 회장은 몸을 생각해 하고 싶은 말을 내리눌렀다.

    “한 달 주지. 한 달 내 이 자동차에 대한 설계를 완벽하게 해놓게.”

    “......”

    “......”

    자리해 있던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 찾아온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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