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25살, 가요제에서 얻어진 영감
콩닥콩닥.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마치 땅에 지진이라도 난 거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내가 이렇게 떤다고?!’
처음으로 겪는 떨림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심호흡을 해보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꽤 왔을 거라 자신하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예상과 달리 1천 명도 안 되는 인원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
후읍, 후우우우.
‘가볍게 생각하자. 내가 언제 그런 걸 따졌다고. 한 명이면 어떻고 만 명이면 어떤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단 한 명에게라도 즐거움을 주고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길 바라서가 아니던가.’
......
그렇게 떨리던 심장이 심해로 내려앉았다.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니, 그제야 따스하게 불어오는 여름 바람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안대를 벗어 주세요!”
스피커를 통해 나온 사회자의 목소리가 무대 위를 감쌌다.
출연진 뒤에 자리한 스탭들이 손을 가져가 안대와 헤드셋을 벗겼다.
“......으윽.”
어둠에 적응된 탓에 햇살에 눈이 찌푸려졌다. 얕은 신음을 내뱉으며 시력에 집중해 회복에 나섰다.
차츰 시간이 지나 흐릿한 잔상이 또렷하게 변할 때.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공기를 찢어발기는 비명과 가까운 소리가 올림픽대로를 진동케 하였다.
“이건......”
“세상에......”
어둠을 뚫고 보이는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된 대형 공간이었다.
“유재석! 유재석!”
“하하! 하하!”
“유한강! 유한강!”
“아이 윤! 아이 윤!”
“노브......”
사방천지에서 들려오는 응원의 목소리가 식었던 가슴을 뜨겁게 데웠다.
주르륵, 주책맞게 찡함이 감동이 눈물로 변해 얼굴을 적셨다.
“좋구나......”
무대 아래에서 보던 것과 다른 감각이 전신에 퍼져 있는 세포 단위로 느껴졌다.
“할 수 있다. 잘하자.”
불끈 힘이 솟았다.
한강은 이번 무대에서 그간 준비해 온 모든 걸 쏟아붓기로 하였다.
“아까 나 진짜 다리 풀려서 죽을 뻔했어요. 이거 보이세요? 소름......”
대기실로 돌아온 하하는 팔을 들어 자잘하게 닭살이 돋아 있는 걸 보여주었다.
“난 찡하더라니깐.”
유재석은 전생과 달리 무대 위에서 진행을 맡지 않고 대기실에서 별도의 진행을 하였다.
“저도 그랬어요. 피아노 대회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을 여기서 받게 될 줄 몰랐어요. 안대를 벗기 전까지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한강도 대화 속에 끼어들어 느꼈던 감정을 얘기하였다.
“맞아요. 그걸 보고 느낀 게 정말 잘해야겠다였어요.”
이 자리에서 가장 막내인 지윤도 크게 공감하며 다시 축축해지려는 눈가를 손을 이용해 닦았다.
“화이팅하세요!”
“호오우우우우.”
각자의 팀으로 묶여 경쟁하는 관계이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무대 위로 올라가는 이들을 응원해 주었다.
여름 여름 여름 여름.
아아아! 여름이다!
노브레인과 노홍철이 하나가 되어 여름 찬양곡을 부르며 교도를 만들었다.
영계백숙 오오오.
영계백숙 오오오.
뒤를 이어 애프터스쿨과 정준하가 나와 영계백숙을 부르면서 몸보신을 확실하게 해주었다.
속이 든든해지는 노래는 사람들의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부드러운 살코기를 음미하였다.
차가워 너무나 속 시려 너무나......
“헐, 명수형 어째.”
“아이쿠야......”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박자도 어긋나고 춤동작도 엉클어지며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은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노래는 멈추지 않고 쭉쭉 이어졌다.
‘뭐, 이건 예능이기도 하니까. 저런 것도 방송에 재미지.’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전문 가요방송이 아닌, 무한도전에서 내보내는 예능방송이라 재미 요소로 떠올려 웃음을 남기게 하였다.
“오리발 아이(Y.Y.I) 다음 차례입니다. 준비하세요.”
그때 무전을 받던 스탭이 재석, 한강, 지윤이 있는 팀을 불렀다.
“정말 팀명 잘 짰네. 아이디어가 기막혀. 크크.”
밖으로 나가는 오리발 아이(Y.Y.I)를 보며 대기실에 남겨진 사람들은 웃으며 팀명을 칭찬했다.
유한강과 유재석의 앞글자를 따서 ‘Y.Y’를 붙였더니 오리발 같아 정해진 팀명, 오리발 아이.
처음엔 다들 유치하다며 비난을 쏟아냈지만, 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하는 이들이었다.
경쟁이라 생각했던 가요제는 경쟁이 아닌, 함께 더불어 만들어갔다.
“다음 무대는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룹! 오리발 아이! 여름을 타고 떠나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찾아왔다. 재석과 지윤은 무대 중앙으로 향하고 한강은 뒤에 마련된 피아노로 향했다.
“갑니다.”
탁, 탁. 딴!
한강의 손가락이 건반을 두들겨 박자를 탔다. 곧 피아노에서 시원한 여름 향이 떠도는 연주가 공기를 탔다.
살포시 드럼이 얹어지고 각종 악기들이 맛을 더해 주었다. 그러다 잠깐 연주가 멈추는 순간!
“여러분 오늘부터 여름입니다!! 퐈이어!!!”
재석이 흥이 잔뜩 오른 목소리로 공기를 찢었다.
“와아아아!! 여름이다!!!”
“아이크!”
한강과 지윤은 뒤를 이어 여름을 외치고. 지윤은 바로 귀여운 애교를 선보여 남자들 심장을 ‘쿵’하게 만들었다.
“여름이 유혹한다 바다로 가자. 팥빙수 쩝쩝대며 부릉 떠나자.”
유재석은 무대를 걷는 모습을 보이며 정말 바다로 떠나는 모습을 보였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를 타고.”
동요 같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차를 가져다 함께 떠나는 기분을 가져왔다.
부웅 부웅 뿌우우우웅!!
한강은 피아노를 연주하며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었다.
“우리는 오늘부터 여름 해병대, 바다의 무법자 오리발 아이(YYI)”
이제부터 지윤의 파트.
재석은 뒤로 물러나 열심히 귀여운 춤으로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다행스럽게 지윤의 귀여운 미소가 부족한(?) 부분을 확실하게 채워주었다.
“찰싹찰싹 때리는 파도를 타고, 바나나에 몸을 맡겨 바다를 누비자.”
(현 가사는 작가가 머리를 짜내어 만들었습니다. 부족해도 양해 바랍니다. 꾸벅.)
어느새 눈을 선글라스로 가려 바나나 보트를 타는 모습을 선보였다.
사람들은 둘의 모습을 귀엽게 감상하며 입가에 미소를 걸쳐 오늘의 행사를 함께 즐겼다.
“후우.”
다른 곡들과 달리 짧은 노래였지만, 한껏 뛰놀던 둘은 금세 숨이 차 어깨를 들썩였다.
무대를 노닐며 지금을 즐겼음을 의미했다.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무대를 깔끔히 끝냈다.
“모든 무대가 끝났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를 해주신 분들의 평가에 맡겨 오늘의 무대 우승자를 가리겠습니다.”
잠깐의 심사가 이뤄지는 사이 애프터스쿨이 나와 무대 위에 올라 무료함을 해소해 주었다.
뒤를 이어 지윤도 자신의 노래를 선보이며 모여든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도장을 찍었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늘의 대상은!!”
두둔!!!
북소리가 들리며 긴장감을 높여 주었다.
사회자가 재밌다는 듯, 결과를 질질 끌며 장난을 쳤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애를 타며, 사회자를 욕했다.
“여름 주제와 찰떡으로 어울리며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여름을 타고 떠나자의 오리발 아이!!”
와아아아아아아!!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서로의 파트에 충실하고 팀으로서 충실한 모습을 선보인 한강이 속한 오리발 아이가 대상을 거머쥐었다.
뒤를 이어 2위 3위 4위 5위 등이 정해지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가요제가 막을 내렸다.
***
디제이 그룹 대표실.
똑똑.
“대표님.”
“여어, 왔는가.”
호출한 박호경이 대표실로 들어왔다.
꾸벅.
호경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고진의 앞에 섰다.
“서 있지 말고 앉게.”
“네.”
고진의 지시에 뻘쭘하게 서 있던 호경은 빈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유 회장을 만났다 들었네.”
믹스 커피가 들어 있는 잔에 물을 부어 티스푼으로 살살 섞었다.
테이블 위에 있는 얼음을 집게로 집어 천천히 컵에 한 개 두 개 넣어 또다시 티스푼을 빙글빙글 돌렸다.
“네, 대표님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진이 연결해 주지 않았다면 한강과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을 터다.
좋은 친구와의 인연을 되돌려준 고진에게 감사를 느꼈다.
“들지.”
고진은 자신이 잘 섞은 냉커피가 든 잔을 호경에게 넘겼다.
“아, 네...... 감사합니다.”
자신의 잔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밀어지는 잔에 크게 당황했다.
“부담 없이 들어. 내가 직접 타준 이는 몇 되지 않으니까, 남기지 말고.”
“가, 감사합니다.”
연달아 고개를 숙여 받아든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진한 커피 향이 코로 스며드는 동시에 차가운 액체가 입안을 축축하게 적셨다.
텁텁하던 목이 시원해 졌다.
“어떤 얘기를 했는지 들을 수 있을까.”
무슨 이야기를 들었다는 눈빛이 호경에게 향했다.
“실은 사업 이야기를 했습니다.”
“계속 이야기해 보게.”
새 잔을 가져와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다시 커피가 동그란 원을 그려 물과 섞였다.
“초등학교 당시 한강... 유한강 회장은 집안 경제로 어려워진 친구들을 돕고자 제안을 했습니다.”
호경은 초등학교를 다닐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고진에게 털어냈다.
고진은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호경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유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보통이 아니었어. 허허. 실질적인 배경이 되어 줄 수 있는 아이까지 끌어들여 확실한 시장을 만들다니. 보통이 아니야.”
될성부른 떡잎은 다르다 하였다. 몰랐던 한강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흥미를 끌다 못해, 헛웃음마저 일게 만들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어떨지 모르나, 그 나이에 절대 나올 수 없는 발상이었다.
무조건 힘으로 누르는 게 아닌, 서로의 형평성에 맞게 시장을 이끄는 힘.
이건 누가 알려준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걸 배우면 안 된다 생각을 하면서도 미래의 경영자가 될 아이들이 미리부터 작은 경제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였다.
“전 당시를 떠올려 미리부터 배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시기에 맞지 않게 움직여 맞지 않은 옷을 걸친 꼴이 되었지만, 전 미래는 반드시 배달업이 크게 뜰 거라 자신합니다.”
호경은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배달업도 크게 발전을 거듭하리라 자신했다.
한강이 한리버 메신저를 이용해 광고와 마케팅을 하여 쇼핑몰을 이끌 듯,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배달업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내다봤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야. 확실히......”
고진은 좋은 냄새를 맡았는지 호경이 말한 사업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 대표님, 호경이를 도와주세요. 투자를 해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지난날 한강에게서 걸려온 전화 내용을 들으며 호경에 대한 평가를 고쳤다.
“......”
호경은 잠자코 고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좋아, 해봐. 나도 자네에게 투자란 걸 해보지.”
“네에에?!”
“이미 유 회장과 얘기는 끝냈어. 사업계획서가 완성되면 내게 들르게. 보고 투자금을 결정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진은 재차 허리와 고개를 바닥으로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 사람의 만남은 호경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