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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80화 (180/237)
  • 180화. 25살, 투자 & 이제 네 거다

    “혹시 둘이 오셨나요?”

    밥을 다 먹고 순대타운을 나가는 길, 근처에서 우물쭈물하던 여자가 슬쩍 다가왔다.

    “아뇨, 이따 마누라 오기로 했습니다.”

    약간 취기가 오른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다, 무슨 의도로 접근을 했는지 깨닫고 선을 그었다.

    “아, 네. 죄송합니다.”

    한강에게 말을 건 여자는 붉어진 얼굴로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넌 진짜 대단하다. 보통은 없는 척 노는데 말이야.”

    이제는 부담감을 내려놓은 호경은 가볍게 픽 웃었다.

    “내 여자가 최고다. 다른 데 봐도 내 여자보다 예쁜 여잔 없다.”

    “어련하실까.”

    호경은 히죽 웃으며, 계산대에서 카드를 뽑고 밖으로 나갔다.

    “너 결혼 안 했지?”

    “결혼은 혼자 하냐.”

    “기다려라. 내가 괜찮은 여자 소개해 줄게.”

    “됐네요. 아직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여자 만나는 건 뒤로 미루련다.”

    여자를 만나면 나가는 게 돈이고, 개인 시간이 줄어든다.

    호경은 하고 싶은 일이 있기에 그 시간을 쪼개 여자에게 투자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쯧쯧, 그러다 노총각 된다.”

    “내가 준비가 되면, 그때 부탁할게.”

    한강이 소개를 시켜주는 여자는 절대 보통의 여자는 아닐 터.

    누가 될지 모르지만, 자신이 부족한 상태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가 당당하고 떳떳할 때, 그때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리라 다짐했다.

    “가자. 노래방으로.”

    호경의 어깨에 손을 올려 앞으로 당당하게 걸었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2차는 신나는 메들리로 그간 감춰온 욕망을 쏟아부었다.

    한강의 가창력에 호경은 깜짝 놀라고, 호경의 노래 실력에 한강도 깜짝 놀라는.

    우스운 일들이 벌어졌다.

    “오늘 정말 잘 놀았다. 준비되는 대로 연락할게.”

    1시간 반 정도 놀고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호경을 택시 태워 보내고, 한강은 대기 중인 차량에 올랐다.

    [내가 말이야, 나는! 널 존경해. 고마워. 한강아. 내가 꼭! 정말 잘해서 이 은혜 갚을게. 꼭! 갚을 거야. 으아아앙!!]

    “후후, 녀석.”

    집으로 복귀하는 길, 2차 노래방에서 있던 일을 떠올렸다.

    어찌나 서글프게 울던지, 한강은 십여 분 동안 호경의 등을 살살 두들겨줬다.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던 녀석이야.”

    유치원 시절부터 우는 아이들을 달래고 코를 풀어주었는데.

    문득 그때가 떠오르자 즐거운 미소가 입가에 맺혔다.

    “취한다.”

    어두운 도심이 뒤로 밀리는 모습을 보다 기분 좋은 취기에 미소를 지은 채 눈을 감았다.

    흐음, 드르렁.

    얼마 가지 않아 차 안에는 한강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음악을 틀고 있던 기사는 한강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볼륨을 줄였다.

    ***

    2009년 7월, 한리버 일렉트라 전기차가 세상에 모습을 공개했다.

    [한리버는 완성된 전기차 1백 대 중 10대만을 우리나라에 공급하고 나머지는 해외로 수출할 예정이다.]

    [한리버 일렉트라 세계 최초 전기차 양산에 들어가다.]

    한리버의 전기차 판매는 세계에 뻗쳐 있는 자동차 회사들을 긴장케 하는 동시에 이목을 끌어모았다.

    “허허, 나보고 타고 다녀라 이 말이냐?”

    그중 한 대가 이건호 회장에게 주어졌다.

    이건호는 너무 어이없어 영업하러 온 사위를 바라봤다.

    “장인어른에게 딱 어울리는 차입니다.”

    약간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한강은 아주 당당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게 어딜 봐서 영업하는 눈이더냐?”

    “제 눈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네 녀석은...... 됐다. 사마.”

    말은 이리했지만, 전기차 개발 소식을 들은 이후로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자동차를 좋아하기로 소문난 이가 바로 이건호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만 해도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자동차로 전시회를 열어도 될 정도로 남다른 애증을 보이며 꾸준히 모아온 이가 이건희였다.

    전기차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입증을 하기라도 하듯, 질질 끌던 것과 달리 계약서에 신속하게 서명을 하고 종이를 밀었다.

    “......감사합니다.”

    츤데레도 아니고 참으로 솔직하지 못한 장인어른이라 생각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끝났음 나가 봐.”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속으로 되뇌며 밖으로 나갔다.

    “지시대로 전기차로 끌고 왔습니다.”

    10대 중 한 대는 아주 당연하게도 한강이 사비로 매입을 하였다.

    그동안 끌고 다니던 차를 지하 주차장에 방치하고 전기차를 홍보하기 위하여 발 벗고 나섰다.

    “와! 저거 그거 아냐? 딱 100대만 만들었다던 그 차.”

    길을 나서던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도로를 달리는 차량에 집중됐다.

    스포츠카처럼 날렵해 보이면서 롤스로이스의 중후한 멋을 살린, 누가 봐도 부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차량이 도로 위를 누비고 있었다.

    “진짜 멋지다. 육성에서 한리버로 인수되더니, 요즘 나오는 차들 보면 하나같이 예술이야.”

    “맞아. 보통 앞이 멋지면 뒤가 겁나 구렸는데. 요즘 등도 예술로 승화시키는 거 같아.”

    촌스러울 수 있는 부분을 LED를 잘 사용해 시각적인 부분을 충족시켜 주었다.

    “엄청 조용하다.”

    그것도 부족해 귀로 들려온 차량의 소음은 휘발유 차량보다 현저하게 적었다.

    저게 가능한 일인가 궁금증으로 가득 묻어난 시선을 ‘일렉트라 5’에서 떼어내지 못했다.

    “차는 어때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차 안에는 한강이 탑승해 있었다. 밖으로 시선을 던지던 시선을 기사에게 향했다.

    “차가 밟는 대로 나가는 게 참 좋습니다. 변속도 그렇고. 내연차와 많이 다릅니다. 기기시설도 한국 감성에 맞춰져 그런지, 조작도 편하고. 무엇보다 실내가 무척 고급스럽고 승차감이 좋아 의전용으로 제격에 맞는 거 같습니다.”

    주행도 부드럽고 잔떨림이 없었다. 무엇보다 미래 감성으로 꾸민 내부 인테리어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심플하면서 부티가 나는 럭셔리한 인테리어가 크게 눈길을 끌었다.

    그중 대표적인 건, 기어봉에 있었다.

    단순하게 막대기가 올라온 형태가 아닌, 둥근 곡선을 살려 인테리어의 포인트를 제대로 살렸다.

    원형 테두리에 부착된 금박은 고급스러움의 끝을 보여주었다.

    “다행이네요. 기사님이 그리 생각을 한다면 다른 사람도 같은 생각을 가지겠죠.”

    고급화 이미지를 갖춰가는 과정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상류층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동경하는 건,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자리한 마음이었다.

    선망은 욕망으로 바뀌고 그건 가치로서 나타난다.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일렉트라 전기차에 심어 넣었다.

    “제가 감히 말씀드리지만, 세계 자동차 시장...... 회장님이 가져가실 겁니다.”

    기사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한껏 묻어났다. 백미러로 비치는 눈동자에 한 치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랬음 정말 좋겠네요.”

    바람이 눈에 가득 들어찼다.

    “아, 회장님. 지금부터 안대를 쓰셔야 합니다.”

    그때 기사가 불쑥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창밖으로 향하던 시선이 어이없는 눈으로 변해 기사를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목적지와 다른 장소에 차가 멈췄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안녕하세요!”

    지윤이와 매니저였다.

    “왜 여기에 너랑 매니저가?!”

    아리송한 눈이 되어 기사와 매니저, 지윤을 번갈아 봤다.

    “그것이 여기부터는 제 차를 이용해 움직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눈에 안대를 착용해야 한다며, 피디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

    매니저가 사정을 설명했다.

    “몰래카메라라도 할 모양인가...... 그러지요. 기사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뒤를 따르겠습니다.”

    “그러세요. 이동하죠.”

    한강은 차에서 내려 벤에 올랐다.

    안대를 든 남자가 눈을 가렸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깜깜한 어둠만이 자리했다.

    “헤드셋도 채우겠습니다.”

    말랑말랑한 귀마개로 귓구멍을 막은 다음, 헤드셋을 썼다.

    시각과 청각을 잃었다.

    지금부터 모든 움직임은 매니저와 함께 탄 남자의 손에 달렸다.

    ***

    무한도전 가요제 당일.

    “오늘 얼마나 올 거 같아요?”

    피디와 스탭들에게 가려진 정보에 출연진들은 복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예고도 없이 대형 콘서트장으로 변해버린 상황은 걱정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천 명은 오지 않을까?”

    정형돈은 가슴 부위를 손으로 마사지하듯 만지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야야! 천 명이 뭐야 천 명이! 우리 회장님도 있고 한데. 1천 받고 5천!”

    거성이라 불리우는 박명수가 등장해 세게 배팅을 던졌다.

    여기에는 약간의 계산이 깔리기도 하였다.

    국내 유명한 밴드와 어여쁜 여자 아이돌이 출연해 무대를 함께 한다.

    최소 5천 석은 채울 수 있으리라 강하게 자신했다.

    “형, 형. 유 회장님 오세요. 준비하세요.”

    그때 대기실로 스탭이 들어와, 한강의 도착 소식을 알렸다.

    “어, 어. 천천히 가주세요. 앞이 안 보여요. 손 놓지 마세요.”

    복도에서 들려오는 앳된 여성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지윤이도 왔나 보다. 귀엽네.”

    안대로 눈이 가려졌지만,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이 윤, 지윤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왜 안대를 쓰게 합니까.”

    한강과 함께 안대로 눈을 가리고 대기실로 입장했다. 한강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 궁금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강의 물음이었다.

    “안대와 헤드셋을 쓴 상태로 무대 위에 오를 겁니다. 관객들이 적게 왔을 수도 있고, 많이 올 수도 있습니다. 안대는 무대 위에 올라가서 오프닝과 동시에 풀게 될 겁니다.”

    출연진 전체가 눈을 가렸다. 피디는 장난기로 얼룩진 얼굴로 입매를 비틀어 궁금증을 살포시 풀어주었다.

    “자, 들어갑니다! 모두 무대 위로 올라가세요.”

    약 5분 뒤, 오프닝에 들어갔다.

    ***

    웅성웅성.

    “와... 이거 대박인데요.”

    무대에서 아래로 내려보는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정말 이 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지냈는데.

    “나도 믿어지지 않아. 이거 무도 방송 이래 처음이라고.”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무대 위에 오를 사람들을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방송 성공할지 모르겠는데요.”

    “성공은 이미 했고. 지금 시청률이 10%나 올랐다고.”

    꿀꺽, 마른침이 삼켜졌다.

    약간 겁도 나고, 기대도 되고, 오묘한 감정들이 심장과 머리를 후벼 파며 돌아다녔다.

    “옵니다. 준비하세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무대 위에 있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여 출연진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눈이 가려진 상태라 다치지 않게 무대 중앙으로 이끌었다.

    “......”

    “......”

    “......”

    “......”

    “......”

    무대 위에 올라선 유재석을 필두로 어떤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대기실에선 서로 목소리가 잘 전달이 되지 않더라도 이런저런 말들로 호들갑을 떨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달리 순한 양이 되어 모든 것이 공개되기를 기다렸다.

    ‘이런 거였나.’

    퀸 엘리자베스와 쇼팽 콩쿠르 국제 피아노 대회에 나가서도 긴장하지 않았던 한강이다.

    한데, 그때와 달리 지금은 무척 긴장이 되었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 소리가 헤드셋으로 귀를 막았음에도 크게 들려왔다.

    “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 함께하고 계실지!”

    무대 외곽에 자리해 있던 30대 남성이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안대와 헤드셋을 모두 벗어 주세요!”

    곧 사회자의 입에서 잠겨있던 모든 봉인을 풀 것을 알려왔다.

    그 순간, 조용하던 공간에 폭발적인 함성이 대기를 강하게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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