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25살, 친구 사이에 벽은 없다
따란!
[신림동 1422-X번지 XX타운. 여기서 보자.]
[5시 콜?]
[응.]
[오키 이따 봐.]
“녀석 언제 연락 오나 기다리다 안 와서 연락했는데... 먼저 연락하길 잘했네.”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의 위치와 가지게 되는 생각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위에 있는 사람은 누굴 보든 부담 없이 만나지만, 반대인 사람은 상대와 거리가 느껴져 멀리하게 된다.
마치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을 구분해 생활을 하는 것처럼.
“다른 녀석도 보고 싶지만......호경이부터 만나자. 어, 가만. 이거 좋은데?!”
그러다 문득 떠올린 생각에 박수를 짝 쳤다.
“추억의 인물을 찾아주는 프로그램!”
아주 좋을 거라 생각했다. 나이를 먹은 이후 멀어져야 했던 친구와의 만남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 것.
너무 좋아 보였다.
“호경이 만나고 회의를 해보자.”
한강은 옷을 갈아입으러 피팅룸으로 향했다.
“어디 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재석을 재우던 윤희가 안방에서 나왔다.
“얼마 전에 다녀온 생가에서 봤다던 친구 있었지?”
“그 친구 보러 가는 거야?”
“응, 기다려도 연락이 없길래, 먼저 전화했어.”
“그 친구도 안타깝다. 너무 그런 쪽 얘기는 하지 말고.”
“응.”
“잘할 거라 보지만, 올 때 기사 부르고.”
“알았어. 다녀올게.”
갑자기 잡힌 약속으로 나가는 남편에게 인상을 쓸 법하지만, 윤희는 잘 다녀오라며 따뜻한 말을 건넸다.
남편을 믿는 마음이 겉으로 나온 건지 모르겠다.
한강은 윤희의 배웅을 받아 밖으로 나갔다.
빵빵!
도로 위에 달려야 하는 차량들이 꽉 막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기사님, 저는 여기서 내릴게요.”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탓에 중간에 내려 계산을 마치고 빠져나왔다.
“신림은 처음이네.”
강남 거리 만큼이나 사람이 많은 거리를 구경하며 앞으로 걸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눈에 담으며 목적지를 향해 발을 열심히 움직였다.
“길 좀 물을게요. 여기 근방에 XX타운이 있다는데,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초행길이라 찾다 못해,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 물었다.
“아, 이거 저기 건물 보이시죠? 나이트 있는 건물.”
“네.”
“저 뒤에 있어요.”
“감사합니다.”
여성이 가리키는 건물에 XXXX 나이트 클럽이 붙은 고층 건물이 보였다.
“야, 저 사람 유한강 닮지 않았어?”
“그런 사람이 여기는 왜 와. 닮은 사람이겠지.”
“그런가? 잘생겼다.”
한강을 지나쳐 가는 여자는 앞으로 걸어가는 한강을 보며 아쉬운 눈빛을 보냈다.
XX타운.
“찾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약속 장소를 찾던 중, 목적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강이?”
약속 장소에서 주춤거리던 호경이 한강을 발견하고 걸어 나왔다.
“야, 호경아. 오랜만이다. 진짜 어릴 때와 크게 변하지 않았네.”
호경을 발견한 한강은 추억을 되새기며 몸을 끌어안아 반가움을 표했다.
당황하는 호경의 마음도 몰라주고, 한강은 순수하게 호경을 반겼다.
“지금 사는 곳이 신림이야?”
“서울예대, 여기는 무난하게 놀 수 있는 곳이라. 여기로 불렀어.”
“잘했다. 야 가자. 배고프다.”
만나는 장소가 XX타운이었을 뿐인지, 둘은 횡단보도를 건너 간판이 화려하게 빛을 뿌리는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밀집되어 있어 걷기 불편했지만 이 또한 즐거움 중 하나이리라.
“여기가 순대타운이구나. 여기 가자.”
커다랗게 적힌 ‘순대타운’이라 적힌 건물로 호경의 팔을 잡아끌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걸로 되겠어?”
“야, 내가 뭔 대단한 놈이라고 맛있는 음식들을 가리며 먹냐. 이걸로 먹자. 너 혹시 순대 못 먹는 거 아니지?”
“그건 아닌데.”
“그럼 가자.”
호경은 머쓱한 마음에 주춤거리다 한강의 힘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녀석, 확실히 예전과 달리 많이 위축됐네.’
사람이 환경을 만들기도 하지만, 대체로 환경이 사람을 만들어 간다.
당당하던 눈빛이 사라져 있는 모습에 티 나지 않게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잘생긴 총각들 왔네. 우리 집이 맛있는 건 어떻게 알고.”
자리에 앉자 넉살 좋은 아주머니가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철판 세 개 주시고 소주 두 병 주세요.”
“좀만 기다려. 이 총각 진짜 잘생겼네. 호호.”
고민 없이 시원하게 주문을 하는 한강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중년여성은 한강의 어깨를 살짝 치며 주방으로 향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넌 특이해. 그게 또 부럽기도 하고.”
어색한 기류가 조금은 흐려진 때, 호경은 지금껏 가지던 생각을 털어냈다.
“뭐 그럴 수 있지.”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무척 특이할 터다.
어른들에게는 영특한 애늙은이로 또래에겐 다른 세상에 사는 노땅.
이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잘생긴 총각, 맛있게 먹어.”
대화하는 사이 붉게 양념된 순대가 수북하게 쌓인 철판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졌다.
따다닥. 소주 뚜껑을 따서 호경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감사합니다. 첫 잔은 짠 하자.”
청명한 소리가 들리며 잔에 든 알코올이 출렁였다.
둘은 단숨에 잔을 입안으로 털었다.
“나 네가 늘 부러웠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간 시각. 호경의 입에서 진솔한 얘기가 흘러나왔다.
“......”
한강은 입을 다문 채, 호경의 말을 집중해 들어주었다.
“자신감도 그렇고, 거친 애들도 네 한마디면 다들 얼었잖아. 돈이 있던 집안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넌 약하든 강하든 늘 당당했어.”
모든 아이들에게 평등한 아이. 그런 모습들이 늘 부럽게 느껴졌던 호경이었다.
닮고 싶어 따라 해보려 했지만, 만만한 아이들 외에 강자에겐 한없이 약해지고 작아졌다.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강이가 얼마나 대단한 아이였는지를.
“사람은 말이야,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며 달래줘야 돼. 내가 너에게 무턱대고 욕한다면, 넌 나를 어떻게 볼까?”
“그야 뭐......”
“그치? 열받을 거야. 욕도 하고 주먹질을 할 수 있겠지. 한데, 너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고 이득을 안겨 준다는 조건을 달고 욕한다면? 전보다는 좀 더 낫지 않을까? 뭐 그런 거야.”
“아......”
모든 걸 납득하진 못했지만,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왕따들을 불러 모아 자발적으로 셔틀을 하게끔 해서 자금을 불리게 만들어 경제적인 부분에 도움을 주었고, 무너질 수 있는 위험 요소를 강자를 섭외함으로 강제적인 질서를 만들어 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군대에 입대하면서 확실히 느끼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역시 넌 대단해. 초등학교 때 그런 걸 생각했다는 거잖아? 결국은.”
한강의 얘기를 되짚어 보던 호경은 잔을 단숨에 비우고 다시 잔을 채웠다.
동시에 놀란 눈으로 한강을 응시했다.
“아, 얘기가 그렇게 되나. 큭큭.”
말하다 보니 얼굴에 스스로 금칠을 해버렸다. 그걸 또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호경의 모습에 민망함마저 들었다.
“역시 대단해.”
“쉽게 믿어져?”
“다른 사람이라면 안 믿겠지만, 내가 직접 본 진실인데. 믿지.”
“......것도 그렇겠다. 시간 빠르지. 우리 만난 지 벌써 한 시간이 넘어간다.”
소주병은 어느새 세 병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가능만 하다면 집안이 잘못되던 시기로 돌아가고 싶다. 그랬다면 아빠의 잘못된 선택을 막고 지금보단 나은 삶을 살았을 텐데.”
다시 잔을 들이켠다.
“......”
호경에 대한 얘기는 대표로부터 간략하게 들었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략 알고 있었다.
어떤 위로의 말도 던질 수 없었다.
‘미래를 바꾼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지만, 그 확률에 걸어보는 것. 나쁘지 않지. 내가 너라고 그런 생각을 가졌을지 모르겠다.’
공감을 하면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봤다.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한 노력은 결코 쉽지 않았다. 행운과 인연이 닿아 이뤄진 결과물이 지금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 우리 나이 이제 20대 초중반이야.”
“......늦진 않았다 싶은데, 휴......”
말을 하다 마는 호경이다.
“말해봐.”
무언가 눈치챈 한강은 시선을 호경에 눈에 맞췄다.
“아냐.”
시선을 피했다.
“너 하고 싶은 거 있는데, 돈 때문에 피하는 거지?”
뻔한 변명이긴 하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부양할 가족이 있다면 더욱더 망설여지게 될 터이고.
그건 겁이란 걸로 드러나 움직일 수 없도록 족쇄를 채워둔다.
“사실 사업을 시도한 적이 있었어. 잘될 줄 알고 시도했는데 보기 좋게 망했어.”
술을 연거푸 세 잔을 마시더니, 그제야 힘겹게 지난 얘기를 꺼냈다.
“어떤 사업이었는데?”
궁금증이 일었다. 한강의 눈이 더없이 깊어졌다.
“배달.”
“뭐?”
“네가 초등학교 때 애들 시켜서 한 거 있잖아. 나중에 나와 생각해 보니까, 괜찮겠다 싶어서 시도를 해봤어. 처음엔 전단지만 뿌려서 중간 수수료를 챙겼는데...... 쉽지 않더라.”
이 녀석......
한강은 깜짝 놀랐다. 그저 아이들을 위해 시도했던 일을 떠올려 그걸 사업으로 이어 볼 생각을 하다니.
당시 경태와 다른 아이들이 시도를 했다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호경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
“지금도 할 생각은 있는 거고?”
“솔직히 다시 하고 싶어.”
“하고자 하는 이유를 들어 볼 수 있을까?”
술에 취해 잠시 흐릿하던 눈동자는 주제가 사업으로 넘어가자 빛을 뿌렸다.
또렷해진 시선은 호경의 입에 머물렀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고, 관리가 어려웠어. 그런데 지금 스마트폰으로 인해 플랫폼 시장이 커지고 있어. 그렇다는 소리는 앞으로 이쪽 시장이 계속 커질 거란 소리인데, 어플을 이용해 주변에 셔틀을 돌린다면 충분히 되리라 봐.”
호오, 얘 봐라?!
한강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제법 시장이 돌아가는 걸 알고 있다.
무엇보다 미래에 있을 몇몇 업체들이 가지게 되는 시스템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알 거 같다. 시기도 이르지만, 일부러 건들지 않은 영역이었는데......’
호경에 대한 평가가 확 바뀌었다. 가문이 망해 기를 펴지 못하는 친구에서 가난이란 알을 깨고 상공에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아기새로.
‘이 정도면...... 도움을 줘도 되겠어.’
단순히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인드였다면 한쪽 귀로 흘렸을 터.
더욱이 저런 말을 하고 있음에도 자신에게 도움을 구걸하는 모습조차 없었다.
술에 취했음에도 제어를 할 줄 아는 정신력을 높게 쳐주고 싶었다.
“아무래도 우리 술이 부족한 거 같다. 2차 가자. 1차는 네가 내라.”
1차는 어차피 식사 자리.
2차는 값진 술을 마시며 호경과 술값에 맞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였다.
추억의 친구를 만나려다 생각지 못한 일을 벌이게 생겼다.
“걱정하지 마. 2차도 내가 낼게.”
“2차는 백만 원 나올지도 모르는데?”
“아...... 2차는 넘길게. 기다려.”
한강의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 카드를 꺼냈다.
“귀여운 녀석.”
한강은 먼발치에서 머리를 긁으며 민망해하는 호경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