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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78화 (178/237)
  • 178화. 25살, 장례식

    발인 전날 밤.

    “정말 보기 드문 사람이야.”

    “그러게. 나이도 어린데, 저리 열심이라니. 김 원장이 그래도 인복은 타고났구만. 헛살지 않았어.”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만 보더라도 고 김문숙 유치원 원장의 생전 모습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직도 장례식장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얼굴도 제대로 비추지 못하고 조용히 부의금만 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더욱 놀라게 하는 건.

    “여기 편육 하나 더 주세요.”

    “홍어무침 주세요.”

    “네네, 잠시만요.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

    쏟아지는 주문을 받으며 바쁘게 움직이는 한강의 존재는 고 김문숙이 지나온 발자취를 존경하게 만들었다.

    그 정도로 한강의 영향력은 안팎으로 거대했다.

    “과연 내가 죽으면 몇이나 올까. 부럽고만.”

    죽은 자를 부러워하긴 처음이다. 술을 쉬지 않고 입으로 털어내며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되짚는 시간을 가졌다.

    “크으, 쓰다.”

    입맛이 썼다. 썩 좋지 못했다.

    사람들을 시켜도 되건만, 직접 뛰어다니며 자리를 정리하고 주문을 받는 한강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이고! 아이고오! 엄마!!

    발인 날이 되었다.

    “이렇게까지 해주지 않아도......”

    마지막 일정은 장례식을 벗어나 묘지로 향하는 것.

    한강은 자신이 보유한 차량 중 가장 값진 차를 가져와 김문숙 원장을 모시고자 하였다.

    이에 하나는 깜짝 놀랐다.

    “아냐, 한강아...... 이건 너무......”

    “제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진즉 한 번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죄송하기도 하고. 이렇게나마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정말 고마워......”

    남편도 있지만, 작은 인연으로 시작한 한강이 옆에 있어 든든하게 다가왔다.

    가족보다 더 열심히 움직인 한강의 모습에 적잖게 감동을 하였다.

    첫째 사위가 영정사진을 들고 차량에 올랐다. 그러면서 눈으로 작게 감사를 전했다.

    부릉!

    긴 행렬이 시작됐다.

    영정사진을 들고 탑승한 차량을 버스와 수십 대의 차량들이 뒤를 따르며 긴 행렬이 이어졌다.

    아이고! 아이고! 엄마!!

    무덤에 묻히는 관을 보며 하나와 하영은 땅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흙에 묻혀 모습을 감추는 관을 보며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등진 채 눈을 감아 눈물을 참았다. 거기엔 한강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은 언젠간 가는구나. 늦든 빠르든...... 부디 좋은 복을 타고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3일간의 장례는 그렇게 끝이 났다.

    [3일간 모습을 감춘 유한강 한리버 그룹 회장의 행보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다시 없을 그의 선행은 유한강 회장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PBS 그림을 그립시다’로 미국을 떠나기 전까지 잠시 머문 유치원 선생을 위해 작은 은혜를 갚고자......]

    └ 이혜나: 원장님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주영수: 한리버가 잘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여지네요. 정말 멋집니다. 전 생각도 못 해본 일인데...... 같은 한국인이란 점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이기찬: 작은 은혜를 큰 걸로 갚는 모습, 정말 멋집니다. 네이컴과 더움, 한리버에서 만드는 모든 제품에 대해 신뢰가 갑니다.

    장례식장에서 바쁘게 일하며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이 기사에 크게 실렸다.

    재벌기업의 오너가 서민을 챙기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있어 새롭게 다가왔다.

    이는 한리버의 이미지를 더욱 단단히 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허... 이번 달은 정말 좋지 않은 소식이 연달아 들려오네요.”

    그러던 때 또 하나의 소식이 세상을 덮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설마 그 마이클 잭슨이......”

    잊고 있던 사건이 벌어졌다. 마이클 잭슨의 사망은 그를 좋아하던 팬들을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쪽은 뭐라던가요?”

    “타살을 의심하고 조사하고 있다는데, 나머진 지켜봐야 알 거 같습니다.”

    “......”

    관여를 하지 않는 역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단 한 번의 만남은 그때 끝이 나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쯤 콘서트를 구경 가보는 거였는데...’

    지난 과거는 후회로 얼룩져 다시 돌아오지 않을 늪으로 가라앉았다.

    “회장님께서 그리신 그림이 경매로 나와 380달러에 거래가 되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네?”

    마이클 잭슨을 위해 그려준 그림이 40억 원에 달하는 금액에 팔렸다는 소리에 얼이 빠졌다.

    “아무래도 마이클 잭슨 팬 중 재벌도 껴있다 보니, 그의 유품을 가지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중 회장님의 그림은 자산가치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

    여러 감정들이 소용돌이쳐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 얼굴에 금칠이라 말하기도 뭣하고.”

    “회장님의 작품은 많은 자산가들이 원하는 백지수표입니다. 얼굴에 금칠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로 칠하셔도 되십니다.”

    “......그거 개그인가요?”

    “진담입니다.”

    “......아, 네.”

    휘이이잉.

    남극의 추위가 잠시 방 안을 훑고 지나갔다.

    “전기차 양산은 들어갔나요?”

    얼마 전 전기차 테스트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부족한 부분은 분명 존재하나, 나쁘지 않은 수준에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지시대로 1백 대를 미리 생산 후 특별한 계층을 골라 판매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HY자동차이면서 같은 기업이 아닌 새로운 브랜드 일렉트라의 전기차가 세상에 모습을 보이려 준비에 들어갔다.

    일렉트라의 특별함을 알리기 위하여 지금껏 HY자동차와 합병을 하였음에도 별도의 브랜드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자존감을 높여 주어 특별함을 심어주는 전략.

    한국인조차 한국의 자동차보다 외제차를 선호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주 단순한 부의 과시에 포커스를 맞췄다.

    사람들은 특별함을 가지면서 희열을 느끼는 변태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미국보다 더하지. 과시욕이. 중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들에게 판매를 하고 중간중간 ‘누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 걸 봤다’ 기사를 작성해 사람들에게 내보인다면 단번에 관심이 쏠리게 될 터.

    ‘본격적인 판매는 그때부터다.’

    계획대로 차근차근 한 계단씩 올라서기로 하였다.

    “실수 없어야 할 거예요.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양산 멈추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라 이르세요. 첫발이 중요한 법이에요.”

    첫 이미지는 막대한 거금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무척 중요하다.

    한 번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선 배 이상의 자금이 투입이 된다.

    한강은 몇 번이고 강조했다.

    똑똑.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생각에서 나와 시선을 문으로 가져갔다.

    “회장님, 시간 되셨습니다.”

    김소영 과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일만큼 중요하게 챙길 또 다른 일에 집중할 시간이 되었다.

    “아, 얘기하느라 시간이 벌써 이리됐는지 몰랐네요.”

    시간은 벌써 오전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할 얘기가 많아, 잠시 다음 일정을 잊고 있었다.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대표에게 전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동진과의 대화를 마치고 가볍게 차려입은 옷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

    부릉!

    “......”

    아버지의 원단 염색 사업은 제법 잘 나가는 편이었다. 재벌까진 아니더라도 먹고 사는 데 불편함이 없었고,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하.”

    문제의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까진.

    나갈 돈은 많은데, 어음이 싹 날아가 버렸다.

    집은 풍비박산이 나고 아버지는 빚쟁이에 쫓기다 스스로 몸을 날려 생을 마감하셨다.

    “한강일 보면 늘 존경스러워.”

    그러다 한강이가 떠올랐다. 한강의 자신감 넘치는 행보, 어떤 누구를 만나도 절대 굴하지 않고 스스로 정한 기준을 무너트리는 경우는 없었다.

    “친구라기보다 인생 선배나 다름없었지.”

    선생님한테 말하기보다 한강에게 말하는 게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서로에게 손해를 주지 않고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흐름을 유도해 주었다.

    “빛이었지.”

    매일 빛을 뿌려 희망을 심어주던 친구는 더욱 거센 아우라를 몸에 걸쳐 세상에 등장했다.

    고작 시간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정도.

    시간은 마치 한강의 편이라도 된다는 듯, 한강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더해갔다.

    “만나지 않으려 그렇게 조심했는데...... 결국 들키고 말았네.”

    늘 한강이 되기를 꿈꿨었다. 그래서 가리지 않고 일을 하였고, 좋은 기회가 닿아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다.

    “날 뭘로 생각할까......”

    육성보다 더한 권세를 누리고 있는 한리버의 주인 유한강. 그런 그가 자신을 보는 위치는 어디일까?

    “......하인 정도겠지?”

    아무리 학생 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시간은 많이 흘렀다.

    [유한강 한리버 그룹 회장은 진정한 이 시대를 이끌어 갈 차세대 리더임을 입증했습니다. 작은 인연조차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에......]

    “......이미지 관리겠지.”

    한강의 소식 중 나쁘게 들려오는 건 없었다. 마치 MC 유재석처럼 큰 구설수 없이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유 회장 번호다. 연락해봐.]

    환청처럼 들려오는 목소리에 핸드폰을 바라봤다.

    『유한강.

    010-XXXX-XXXX』

    한강의 번호가 시야로 들어왔다.

    “내가 전화를 해도 되려나......”

    전화를 해보란 말을 들었지만, 손가락은 통화버튼을 누르기를 망설였다.

    “아냐, 나까짓 게 뭐라고. 관두자.”

    한강과 자신은 노는 물 자체가 다르다.

    켜진 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따라라라라라.

    그때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넣어둔 핸드폰을 다시 꺼냈다.

    “대표님인가?”

    주변과 연락을 끊고 살았기에 딱히 연락 올 곳은 없었다.

    있다면 엄마나 대표님.

    “어?!”

    그런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화면에 지금껏 생각한 이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유한강.』

    “아니, 왜. 어째서.”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정상에 있는 고귀한 재벌의 오너가 무슨 일로 보잘것없는 자신에게 전화를 했는지.

    “운전기사가 부족한가......”

    별생각이 다 들었다.

    “......”

    받을까, 말까.

    경계를 잡고 고민했다.

    “윽.”

    핸드폰은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르겠다.”

    이 정도면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있는 일.

    핸드폰 화면에 손을 가져가 화면에 뜬 ‘통화버튼’을 옆으로 밀었다.

    ---엇, 받았다. 호경이 폰 맞죠?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에 괜스레 울컥했다.

    “네, 맞는데......”

    입에서는 알면서 누군지 모른다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야, 박호경 나야. 한강이!

    “어, 어?!”

    ---내 이름 잊은 거 아니지? 우리 줄곧 짝꿍 했잖아.

    “......”

    한강의 목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마음이 울컥해 눈물이 흘렀다.

    ---정말 보고 싶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오늘 시간 어때? 우리 보자.

    변해 있을 줄 알았던 한강은 한 끗조차 변해 있지 않았다. 초등학교 당시 자신을 대하던 모습과 똑같았다.

    그래서일까?

    “......오늘 괜찮아.”

    부담으로 가득하던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고민의 경계선이 무너졌다.

    마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이 두 개로 나뉘던 마음이 하나로 뭉쳐졌다.

    ---그래, 주소 불러주면 내가 갈게. 메신저로 찍어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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