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25살, 장례
난을 닦다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이하나 선생님이 어떤 인물이던가?
자신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끔 단초를 제공한 인물로 은혜로운 선생님이었다.
“재석이 엄마.”
난을 치울 생각도 못하고 곧장 지윤을 불렀다.
“무슨 일이야?”
자고 있었는지 헝클어진 머리에 힘겹게 뜬 눈으로 거실로 나왔다.
입이 위아래로 크게 찢어졌다.
“나 장례식 가야 되니까, 옷 좀 챙겨줘.”
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상의를 벗어 던졌다.
“장례식? 누구?!”
“나 유치원 때 도움을 주신 선생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대.”
“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다던 그분?”
“어,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먹기 힘들겠다.”
“그게 중요한가. 알았어. 어여 씻어. 내가 준비해 둘게.”
윤희는 멍하던 정신을 팍 차리고 피팅룸으로 이동했다.
샤아아아아.
샤워기의 물줄기에 피곤한 몸을 씻고 머리를 말렸다.
드라이기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날리며 물기가 사라지고 마른 머리카락이 눈썹을 덮었다.
“소파에 올려뒀어. 가서 위로 잘해드리고 와.”
종종 듣고 살던 이하나 선생님과 얽힌 일들.
한강이 옷 입는 걸 도우며 잘 위로해 줄 것을 강조했다.
“알았어. 도착하면 연락할게.”
“응. 다녀와.”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고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실장님, 제가 보내준 장소로 화환을 보내주세요. 이름은 제 이름으로 하세요.”
차량에 올라타며 비서실장에게 전화해, 화환을 준비해 줄 것을 부탁했다.
끼리릭.
바닥에 마찰을 일으키는 타이어 소리가 들리며 차량은 도로로 진입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
90년대 설립해 엄마와 함께 운영하던 유치원.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힘든 기억보다 좋았던 적이 많은 추억의 일터다.
“엄마......”
당시만 하더라도 신설이고 주변에 유치원이 없어 사업도 잘되던 시기.
선생으로서 책임을 가지고 아이들을 위해 애써왔다.
구박도 많이 하던 엄마.
‘이 노무 지지배가, 또 뭔 사고를 치고 다녔길래 뭔 사람들을 끌고 다녀!’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 허엉.”
한강이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을 벌이면서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멋대로 정해 유치원을 운영한 탓에 엄마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지만.
알게 모르게 뒤에서 재능 있는 아이들을 후원해 도움을 주던 존경 받아 마땅한 분이었다.
이제는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난 엄마를 애통하게 불렀다.
유일하게 남겨진 사진을 보며 눈물을 쏟아냈다. 멈출 줄 모르는 눈물은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흘러 옷을 적셨다.
“어?!”
엄마의 액자를 보며 빈소를 지키고 있을 때, 밖은 또 다른 이유로 떠들썩했다.
“한강이 온대?”
짧은 단발머리를 뒤로 묶은 여성의 시선이 막 들어온 화환에 꽂혔다.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참뜻 유치원 제자 일동 대표 유한강.』
아주 멋스럽게 써진 추억 속의 이름이 화환에 새겨져 있었다.
“곧 도착할 거 같아.”
밝은 갈색 머리를 올려 묶은 여자가 핸드폰에 찍힌 메시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너네 정말 잘될 줄 알았는데. 너 한강이 무지 좋아했잖아.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한강이 노래 부르다, 고등학교 올라가서 운명적으로 만나고. 진짜 잘되길 바랐는데.”
짧은 머리 여성과 대화하는 여성은 다름 아닌, 이미나였다.
그리고 미나와 대화를 나누며 씁쓸한 얼굴을 하는 여성은 유치원 때부터 단짝으로 유명한 이연희다.
연희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빗겨진 인연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언제적 일인데. 너 한강이 오면 그 얘기 하지 마.”
“내가 뭔 애냐. 그것도 모르게. 걱정 마. 그나저나 선생님 진짜 안됐다. 원장님 참 좋은 분이셨는데.”
“맞아......”
대화의 주제가 슬며시 바뀌자, 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 사람, 유한강 아냐?”
“어, 맞네. 유한강이다!”
“왜 저 사람이 여기에?!”
그때 출구 쪽에서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물을 훔치던 연희와 미나의 고개가 출구로 향했다.
“한강이다.”
연희가 먼저 반응했다.
“한강아......”
오랜만에 보는 한강의 모습은 전보다 더 멋지게 변해 있었다.
눈이 맞닿은 한강에게 손을 살짝 들었다.
“미나야.”
헝클어진 머리로 입장해 미나를 발견하고 다가온 한강.
“오랜만이지?”
조금은 어색한 얼굴로 한강에게 인사를 건넸다.
“......”
오랜만에 본 연희는 막상 한강을 접하자 어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랜만이다.”
한강도 조금은 어색하게 인사를 하였다.
그러다 시선이 옆으로 옮겨갔다.
“기억 못 할 수도 있겠다. 참새반에서 같이 있던 연희야.”
“어, 연희?! 연희라면 그 코찔찔이?”
무언가 생각난 한강은 진정 깜짝 놀란 얼굴로 연희를 응시했다.
“아니거든!”
우물쭈물 있던 연희는 이내 욱해 날 선 시선을 보냈다.
“정말 예뻐졌다. 반갑다. 정말 반갑네. 다음 말은 이따 하자. 나 선생님 뵙고 올게.”
으르렁거리는 연희에게서 도망치듯 급하게 빈소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는 중에 많은 이들의 시선을 느꼈다.
“선생님.”
안으로 들어서니 피폐해진 얼굴로 영정사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강은 작은 목소리로 하나를 불렀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한강을 보자 눈을 부릅떴다.
“......한강이?!”
엄마의 영정사진을 보고 있던 하나는 생각도 못한 목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 뒤로 시선을 가져갔다.
“한강아...... 네가 어떻게.”
“원장 선생님께 절부터 드리고 이따 말씀드릴게요.”
“......아, 내 정신 좀 봐.”
힘겹게 몸을 일으켜 벽으로 걸어가 남편 옆에 섰다.
놀란 심정도 잠시, 눈에는 다시 슬픔이 깃들었다.
‘원장 선생님. 어쩌다 이리...... 부디 다음 생은 현생보다 더 행복하고, 하고 싶은 모든 걸 하며 사세요.’
한 번 죽고 환생을 해서일까?
한강은 죽음을 다른 사람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다.
슬픔이 밀려오지만, 한편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리라고 생각을 하였다.
향을 피우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던 한강은 영정을 향해 절을 올렸다.
한 번, 두 번. 반절.
한강의 몸을 돌려 상주와 맞절을 하였다.
이하나의 언니 하영의 등이 들썩인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빈소에서 상주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 것이 예의.
한강은 속으로 김문숙을 애도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한강아.”
자리를 잡은 미나와 연희가 손을 흔들어 한강을 불렀다.
“아, 미나와 연락을 하고 있었구나. 와줘서 고맙다. 한강아. 미나도. 연희도 고마워.”
기억 속에 자리해 있던 젊은 시절의 이하나의 모습이 아닌, 당시의 풋풋함을 잃은 수척해진 이하나가 셋에게 다가왔다.
놀란 모습은 지워지고 눈동자엔 고마움이 한가득.
이하는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힘내세요.”
“좋은 데 가셨을 거예요......”
미나와 윤희는 하나를 달래어 주었다.
“연락을 드리며 지냈어야 했는데.”
한강은 참 뭐라 말하기 난감했다.
“한강...이가 TV에 나오던 날,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는지 몰라. 엄마가 많이 좋아했어. 우리 유치원에서 유명인이 배출됐다고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야윈 얼굴에 힘겨운 미소가 걸쳐졌다.
당시를 회상하는지 하나의 눈이 잠시 감겼다 떠졌다.
“차린 건 많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게 먹고 가.”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 생각한 하나의 엉덩이가 떨어졌다. 하나는 다시 문상 온 사람들을 맞이하러 돌아갔다.
“원장님 병명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그게 심장병 같아. 듣기로.”
연희가 말해줬다.
“......그렇구나.”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강은 잠시 말을 흐리며, 술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씁쓸함을 알싸한 알코올이 씻겨줬다.
“그렇지. 나 집에 가면 부모님 건강검진 시켜드리려고.”
사람의 목숨이란 것이 순서가 없다.
이번 일로 깨닫는 바가 있는지, 미나는 부모님의 건강을 챙기고자 하였다.
“그래, 나도 그래야겠다. 그런데 요즘 어떻게 지내?”
올해 나이 24살.
남자는 군입대 문제로 복학준비에 나설 때이지만, 여자는 휴학을 하지 않았다면 취업 시기이다.
둘이 어떻게 지내는지 슬쩍 물었다.
“우리는...... 취업 준비하고 있지.”
한강의 위치에서 묻는 물음은 친구라도 조금은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대기업의 회장과 24살 취업 준비생.
차이가 엄청났다.
“그렇구나. 이제 우리 나이도 일할 나이네.”
“......”
“......”
한강의 말에 둘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거 내가 괜히 자리를 어둡게 만들었네.”
어두운 반응에 머쓱한 얼굴로 뒷목을 살살 긁었다.
“언제 갈 거야?”
적막감에 빠진 공기를 미나가 밀고 질문을 던졌다.
“발인까진 있을 거야.”
“뭐......?!”
“......!”
한강의 말에 깜짝 놀랐다. 친인척도 아닌 걸 떠나, 기업의 오너가 발인까지 지킨다는 말에 쉬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리 놀랄 필요 없어. 이하나 선생님은 내 인생의 은인이야. 일이야 어찌 되었든. 사람의 도리는 지켜야 한다고 봐.”
자금으로 무언가 해주는 건 무척 쉬운 일.
돈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행동이었다.
하나, 지금처럼 누군가를 위하여 시간을 만들어 함께 있는 건 아무나 하지 못했다.
기업의 오너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라면 더할 터다.
그걸 한강이 하겠다 말하고 있었다.
“......미안하네.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어진다.”
취업 준비생인 둘은 거기까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꺼낸 얘기는 둘의 마음에 먹구름을 불러왔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너희랑 나랑 입장이 다르잖아.”
당시 이하나 선생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일반 선생들처럼 행동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을 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망하지 않더라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겠지만,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에 무리가 따랐을지 몰랐다.
“역시 넌 대단한 거 같아. 어릴 때부터 하고자 하는 건 다 했고, 목표 이상의 결과를 얻어가고. 이렇게 보면 확실히 우리와 사는 세상이 다른 게 느껴져.”
20대부터 성인이 칭하지만, 아직은 어리다.
실수도 많이 할 시기고, 부모님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강은 어린 시절부터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고 이뤄내며 성장의 발판을 다져갔다.
그리고 가족도 아닌, 선생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발인까지 지키겠다는 사람은 한강이 유일했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래......”
미나의 얼굴이 왠지 씁쓸하다.
“늦었네. 여긴 어떻게 왔어?”
대화하는 사이 시간은 저녁 7시가 넘어갔다.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흘렀다.
“택시 타고 왔지.”
“택시 값 좀 나왔겠네. 가는 길 내 차 타고 가.”
“아, 아냐.”
미나가 황급히 손을 저어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냥 타고 가. 어차피 난 여기에 있을 거라서. 겸사겸사 기사님도 퇴근시켜서 쉬게 하게.”
“우리가 부담돼서 그래.”
거듭된 한강의 제안에 미나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냈다.
“우리 친구 맞지? 연희도 그렇고?”
“그야... 그렇지만.”
“......”
“타고 가.”
짧게 말했다. 단호한 눈빛은 거절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고마워.”
“고마워.”
결국 둘은 한강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30분 정도 더 대화가 이어지고 미나와 연희는 차량에 올라타 장례식을 떠났다.
“좋아, 이제 나도 움직여 볼까.”
부족한 일손을 돕고자, 한강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쟁반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