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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76화 (176/237)
  • 176화. 25살, 가요제

    꽃내음이 솔솔 풍기는 오후 공원.

    카메라를 줄줄이 달고 한강과 지윤, 재석이 걸음을 옮겨 녹색으로 가득한 잔디밭 위 벤치로 향했다.

    “한강 오빠, 여름 노래로 뭐가 좋을까요?”

    빨대를 쪽쪽 빨고 있는 지윤이 슬쩍 물었다.

    화사한 노란 원피스를 입은 지윤의 모습은 민들레를 떠오르게 하였다.

    “일단 여름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정리해 보자. 재석이 형도 생각해 보세요.”

    촬영을 하는 동안, 셋은 호칭을 편하게 바꾸었다. 지윤은 둘 다 오빠로 통일을 하였고, 한강은 재석에게 형이라 불렀다.

    “키워드 키워드 키워드......”

    한강의 말에 지윤은 턱을 톡톡 치며 여름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을 떠올려봤다.

    재석도 옆에서 함께 고민을 하였다.

    “바다, 계곡, 산, 바캉스, 물놀이......”

    어느새 들린 수첩에 떠올린 단어들을 정리했다.

    “그런 거 말고 음식도 생각해봐.”

    지윤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한강은 피식 웃고는 주제를 제시하였다.

    “아, 그렇네요. 어디 보자...... 그러니까......”

    팥빙수, 아이스크림, 수박, 화채, 참외, 아이스 커피, 얼음......

    지윤은 여름에 먹을 법한 음식들을 쭉 적었다.

    “음...... 살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지윤의 수첩을 빤히 보던 한강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오, 뭔데?”

    “들어 볼게요.”

    “여름날 먹기 위해 놀러가는...... 그러니까, 처음에 갈매기 소리가 잔잔하게 들리면서 우리가 크게 외치고 들어가는 거예요. 여름이다! 놀러 가자! 하고.”

    한강은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과감히 꺼내 들어 가요제에서 부를 노래를 불렀다. 가수도 아닌 일반인에게서 나오는 놀라운 음색에 둘은 취해갔다.

    “......”

    “......”

    한강의 노래 실력을 아는 지윤이지만,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들어보는 재석이야 오죽할까.

    “노래가 너무 신나요. 귀엽기도 하고. 마음에 들어요.”

    지윤의 볼에 홍조가 스며들었다.

    한강이 부른 노래를 되짚으며 코로 흥얼거렸다.

    “너무 좋다. 이거 하자. 이게 딱이네.”

    재석은 크게 감탄하며 박수까지 쳐대며 강하게 밀고 나갔다.

    딱 꽂힌 얼굴이었다.

    “다행이네요. 그럼 이 느낌 살려서 이대로 진행해 보도록 하죠. 회사로 돌아가죠. 지윤아 가자.”

    둘의 극찬에 한강은 흥이 올랐다.

    이 감각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발을 바쁘게 움직였다.

    ***

    “재석아, 너네 어때?”

    피곤함이 잔뜩 서린 눈으로 소파에 털썩 앉으며 가요제 곡에 대해 물었다.

    “아주 좋아.”

    “뭐 부르는데?”

    “에이, 그걸 알려주면 쓰나.”

    명수의 물음에 재석은 발을 쓱 뺐다.

    말도 안 된다는 눈으로 경계의 시선을 보내며 장벽을 쳤다.

    “형은 제시카랑 어때?”

    여자 아이돌 중 대세로 알려진 소녀시대의 제시카와 짝을 이룬 명수.

    가자미눈이 되어 명수를 응시했다.

    “망했어. 완전.”

    역시나 쉽게 알려줄 명수가 아니었다. 그 밖에 다른 멤버들도 서로를 견제하며 다들 망했다며 한탄을 하였다.

    “어, 벌써 시간이. 나 먼저 가볼게. 연습 시간이다.”

    분위기가 묘해지자, 재석은 시계를 쓱 보다 후다닥 현장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야!’ ‘형!’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재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와, 다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다들 망했다며 난리 피우는 말들은 단 한 개도 믿지 않았다.

    한솥밥을 먹은 지가 얼마인데.

    그들의 사기성 말들은 이골이 날 정도라, 딱 듣는 순간 거짓이란 걸 알았다.

    “그런데, 곡은 잘 뽑혔으려나?”

    중간중간 만나 곡을 써서 작업에 들어갔다. 피아노와 어우러지는 여름 노래.

    어떻게 제작이 되었을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천천히 뚝 뚝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맞춰 걷는 발걸음 소리가 뒤를 따랐다.

    피아노 소리가 멈추고, 뒤를 따르던 발걸음 소리가 멈추는 순간.

    [여러분 오늘부터 여름 방학입니다. 퐈이아!!]

    걸걸하게 깔린 재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강이 눈을 돌려 지윤에게 신호를 보냈다.

    하나, 둘, 셋.

    “와! 방학이다!!”

    한강과 지윤은 하나 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모든 봉인을 풀어버린 해방의 감정이 시원하게 방 안을 두들겼다.

    “아이크!”

    끝에 지윤이 귀여운 목소리로 장식했다.

    끼이익.

    그때 녹음실 문이 쓱 열렸다. 노래를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형 왔어요.”

    “오빠 어서오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온 재석을 맞이했다.

    “미안, 내가 늦었지.”

    약속 시간에 늦진 않았지만, 먼저 와 연습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자 미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아니에요. 우리도 막 온 거예요.”

    재석의 부담을 덜어 주고자, 두 시간 전부터 도착해 준비하고 있었다는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다.

    “이게 형 가사예요.”

    깔끔하게 정리한 가사를 재석에게 전달했다.

    “처음부터 내가??”

    “네, 형 목소리가 뭐랄까? 도입부에 제격이에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MC로 활동해서 그런지, 사람들 귀에 잘 전달되는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꾸미지 않고 바로 내보이는 목소리가 이번 노래에 핵심이 되겠다.

    “음, 그래. 해보자.”

    부담이 되어 얼어붙은 재석은 수십 번 가사를 머릿속으로 되뇌며 달달 외웠다.

    “이도라 씨 잘 부탁할게요.”

    작곡가이자 디렉터, PD로 활동 중인 이도라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떴다.

    “하하, 맡겨주세요.”

    이도라는 자신감을 내보이며 유재석이 녹음실로 들어가는 걸 보다 자세를 고쳐 잡았다.

    “자, 시작합니다.”

    유리창 너머로 준비하는 유재석의 모습이 보였다.

    도라는 재석을 보며 ‘큐’ 사인을 주었다.

    “여러분 오늘부터 여름입니다. 퐈이아아아!!”

    피아노 연주가 끝나는 시점, 재석의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오, 좋은데요. 팍하고 힘이 찬 느낌이랄까?”

    지윤은 들려온 소리에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좋긴 한데, 끝에서 힘이 팍 빠졌어. 안 되겠다.”

    프로 가수보다 귀에 민감한 한강은 만족하지 못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재석이 형, 마지막에 입니다에서 힘이 넘 빠졌어요. 그래서 퐈이어를 크게 살리지 못했어요. 힘드시겠지만, 마지막에 배에 힘을 빡 줘서 힘을 쭉 유지하다 터트려 주세요.”

    이번 노래는 신나는 노래다. 순수함이 가득 깃든 노래라 밋밋할 수 있어 요소요소에 확실하게 포인트를 줄 필요가 있었다.

    “......퐈이아!!!!”

    다시 들려오는 재석의 목소리.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힘을 빡 준 모습이 일품이었다.

    “어떤 거 같아요?”

    도라에게 물었다.

    “이야, 역시 회장님 귀는 최고네요. 확실히 좋아졌어요. 소리가 꽉 차는 게 느낌 있네요. 이걸로 쓰면 될 거 같아요.”

    도라도 만족한 웃음을 띠었다.

    “역시 회장 오빤 멋져.”

    카메라가 돌거나 말거나 늘 한결같은 모습.

    더욱이 지금의 모습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로 한강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자, 지윤아 들어가자.”

    “넵!”

    지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기합이 단단히 들어갔다.

    “고생하셨어요. 우리도 소리 한번 내지르고 올게요.”

    녹음실에서 나오는 재석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지윤과 목을 가볍게 가다듬고 헤드셋을 머리에 걸쳤다.

    하나, 둘, 셋.

    “와아아아아아. 여름이다!!!”

    지윤과 함께 괴성에 가까운 고성을 내질렀다.

    여름이 와 신났음이 얼굴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살아있는 표정은 방 안을 활활 태웠다.

    “아이크!”

    지윤의 앳되고 귀여운 애교성 목소리가 뒤를 따르면서 녹음이 끝났다.

    “지윤아, 정말 귀엽다.”

    녹음실에서 나오는 지윤을 보며 도라와 재석이 엄지를 세웠다.

    “그만 놀려요. 정말 나빴다.”

    이런 쪽은 참으로 약한 지윤이었다. 지윤은 후다닥 달려가 자리에 앉아 올라온 열을 식혔다.

    “다른 가수들도 이렇게만 해주면 참 좋겠는데. 회장님은 좀만 더 다듬으면 바로 무대에 올라도 되실 건데. 가수 관심 없으세요?”

    “아휴, 전 이 정도로 족해요.”

    노래를 취미로 가져 본 적은 있었다. 반대로 직업으로 생각해 본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었다.

    “아쉽네요. 딱 회장님께 어울릴 법한 곡이 있었는데. 이건 잠시 봉인. 진심이니까, 생각 있으실 때 꼭 말씀해 주세요.”

    진담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네, 그럴게요.”

    알겠노라 말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번 부분은 최대한 즐겁고 천진난만하게 불러야 해요. 아이들이 뛰어노는 듯한 착각이 일게.”

    이 시대 아이들은 공부라는 벽에 막혀 자유를 억압받고 살아간다.

    어릴 때 고생해야 늙어서 편하다는 말이 늘 따라붙는다.

    한강은 스스로가 원해서 한 공부라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자유를 구속받는다.

    그런 아이들에게 힘내길 바라는 마음에 이번 노래를 작곡했다.

    “마무리 지어 보죠.”

    약 10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한강을 제외한 지윤과 재석이 녹음실로 들어갔다.

    ---여름이 유혹한다 바다로 가자. 팥빙수 쩝쩝대며 부릉 떠나자. 쨍쨍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를 타고......

    (작가가 지은 가사입니다.(_ _))

    재석과 지윤의 얼굴에 즐거움이 묻어난다. 지금의 기분을 그대로 표현하는 노래에 어깨가 들썩였다.

    지윤의 얼굴엔 미소가 만개해 녹음실을 환하게 비췄다.

    “수고하셨습니다.”

    장장 한 시간에 걸쳐 녹음을 끝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당시를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재석의 얼굴에 홀가분함과 기대감이 섞여 얼굴에 자리했다.

    “만족했음 좋겠다. 큰 무대에 어울릴지 모르지만.”

    가요제까지 디데이 57일.

    잘해보자.

    ***

    [아이 윤의 곡인 ‘좋은 날’을 작곡한 유한강 회장이 가요제를 위하여 새로운 곡을 작곡했다. 노래는 비공개로 제목만을 공개한 상태.]

    [제목은 ‘여름을 타고 떠나자’로 알려졌다.]

    └ 이미영: 제목이 넘 감성적이다. 넘 좋아유!!!!!!

    └ 유혜린: 옵빠~~~ 빨리 가요제 열어주세요!!!!! 혜린이가 기다리고 있어요!!!!

    └ 박유진: 뭔가 좋을 거 같아. 이번에도 동화 같은 노래일까?

    좋은 날이 공개된 날, 당시 한강은 상당한 이슈를 낳았다.

    미술뿐 아니라 작곡에도 조예가 있다는 사실에 세상은 신을 얼마나 저주했는지 모른다.

    훤칠한 키에 여심을 흔들리는 완벽한 외모, 만능이라 할 수 있는 예술적 재능과 기업을 이끄는 리더십까지.

    어느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허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가요제 준비로 피로한 몸을 푸는 주말 오후.

    따란!

    스크린 골프장에서 가볍게 라운딩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선풍기를 틀고 난을 닦고 있을 때, 메신저 알람이 울렸다.

    “누구냐. 보자보자.”

    난을 닦는 걸 잠시 멈추고 탁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을 가져와 메신저를 확인했다.

    [이미나.]

    “응? 미나가 왜?!”

    결혼 이후 연락을 해본 적 없던 미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상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고민했다.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자. 이유가 있겠지.”

    몹쓸 생각을 털었다. 미나가 그런 여자일 리 없었다.

    한강은 조심스럽게 메신저를 터치해 내용을 확인했다.

    [갑자기 이렇게 연락해 미안. 다름이 아니라 참뜻 유치원 이하나 선생님 어머님이 돌아가셨대. 너랑 잘 지내기도 했고, 그래서 연락을 남겨.]

    [발인은 내일모레야. 올 수 있으면.......]

    “......뭐?!”

    메시지 내용에 한강의 눈이 부릅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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