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68화 (168/237)

168화. 24살, 엘리자베스 여왕 부부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방 안은 적막감에 사로잡혔다. 어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오로지 한강의 입만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눈이 간절함으로 채워졌다.

‘두 분 다 장수를 하시지만, 그래도 추억은 중요하지. 슬픔을 덜어주는 약이 될 거야. 바라는 건... 나중에 생각해보자.’

고민을 끝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알겠습니다. 따로 잡힌 일정도 없으니, 두 분을 따라 버킹엄으로 가겠습니다.”

얼떨결에 다음 행선지가 한국이 아닌, 영국이 되어 버렸다. 한국에 있을 일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 없음을 깨닫고 영국으로 일정을 잡았다. 눈짓으로 수행하는 비서에게 눈치를 주었다.

비서는 티 나지 않게 고개를 흔들고 일정을 노트에 정리했다.

“정말 고마워요. 갑작스러운 부탁이라 기분이 상했을 텐데.”

엘리자베스는 꼭 직접 만나 부탁을 하고 싶었다. 이러한 부탁을 메일이나 편지로 준다는 건 올바르지 않다 여긴 탓이다.

“기분은 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불러 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영국왕실과의 인연은 절대 가볍지 않다. 유럽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보이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름만 팔아도 절대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터다.

쉬이이이이이이.

그날 저녁, 한강은 한국의 역사상 처음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의 전용기를 타고 영국으로 향했다.

***

[한리버 그룹 유한강 회장이 그린 작품 ‘천국의 계단’은 영국 왕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낙찰받았다. 낙찰가는 2억 홍콩달러로 우리 돈 300억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으로 최고가 문턱에 발을 걸쳤다.]

[우리나라에서 100억 원이 넘는 낙찰가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 이미영: 나니???

└ 조현영: 오빠, 실종된 우리 오빠를 찾았어요!!!

└ 박종규: 와...... 1년 3천도 벌기 힘든데...... 한 달 고생한 걸로 300억...... 현자타임왔다. ㄹㅇ로......

└ 간미영: 시불... 이건 사기 아니냐. 진짜...... 그런데 진짜 개 잘 그렸네......

└ 유지예: ㅎㅎㅎㅎ.

└ 이영호: 정말 부럽다...... 내가 저 돈을 벌려면 얼마나 일해야 할까.

천국의 계단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못해 남았다.

말이 300억이지, 일반인들은 결코 쉽게 벌 수 없는 돈이며 이는 부자들도 한 달 만에 만지기 어려운 돈이었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 이어지면서 2억 홍콩달러는 가볍게 묻혀 버렸다.

[【특보】SBC 단독으로 접수한 내용입니다. 유한강 회장이 엘리자베스 여왕 전용기를 타고 영국 버킹엄 궁전으로 향했다는 소식입니다. 영국 방문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위상을......]

“가자아!!”

“아자아아아아!!!”

“올인!!”

기사를 본 한리버 그룹 주주들의 환호가 터졌다.

운이 좋은 이들은 시기적절하게 투자를 하여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한리버 계열사 영국과 캐나다 사업확장. 영국 왕실이 투자에 나서다.』

시장에 한리버에 관련된 찌라시가 나돌았다. 어떤 계열사가 될지 알려지지 않은 부정확한 찌라시임에도 더움, 네이컴, HY자동차 주가가 대폭 상승하는 효과를 얻었다.

붉게 타오르는 양봉을 보며, 사람들은 돈을 끌어와 투자를 감행했다.

그 시각.

“찌라시 출처는?”

이건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증권가에 나도는 찌라시에 대해 물었다.

김종식 비서실장의 답을 기다렸다.

“허위정보로 보입니다. 출처는 기사에 남긴 댓글에서 시작됐습니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 작전세력이 붙은 걸로 보입니다.”

한리버 계열사 중 상장된 기업들이 하루 사이에 20%나 폭등했다.

13시 20분을 시작으로 갑자기 위로 치솟아 오른 되도 않는 붉은 줄기에 개미 투자자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쯧, 한심한 작자들 같으니라고. 그렇다고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우리 움직임은?”

자동차와 포털 사이트의 주식이 크게 오른 만큼, 이걸 두고 보고 있을 육성이 아니었다.

“이번 기회를 살려 차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다시 내려가면 그때 다시 투자를 할 계획입니다.”

대략적인 계획을 보고했다.

“그래, 좋군. 너무 티 나지 않게 해. 괜한 일로 구설수에 오를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의도치 않게 수익을 올릴 기회가 생겼다.

너무 큰 물량을 쏟아내면 언론의 표적이 될 수 있어, 적정선에서 차익을 챙길 것을 주문했다.

“그보다 영국이라...... 아주 홍길동이 따로 없어. 홍콩에서 뭔가 하는가 싶다 물류사업을 하질 않나, 이번엔 영국 왕실과 엮여 영국으로 향했다라......”

주식 시장이야 어쨌든, 한리버에 있어 호재는 확실했다. 이건호는 이번엔 어떤 일로 자신을 놀라게 할지 몹시 기대가 되었다.

“궁금해서 안 되겠어. 이쪽도 알아보는 게 좋겠군.”

이건호는 영국으로 향한 한강이 왜 불려 갔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한번 알아보기로 하였다.

이건호의 손은 바로 핸드폰으로 향했다.

이건호의 손에는 아이폰이 아닌 Y폰이 들려 있었다.

그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

끼리리리리릭.

도착한 영국 버킹엄 궁전.

교대시간인지 붉게 차려입은 근위병들이 교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절도 있게 교대하는 근위병은 영국에 있어 대표적인 이벤트와도 같았다.

‘멋지네.’

차를 타고 버킹엄 궁전 안으로 들어가며 근위병의 교대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처음 보나 보네요. 영국은 처음인가요?”

한강의 모습을 보며 슬며시 웃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한강을 응시했다.

‘재벌그룹 사람들과 확실히 달라.’

전세기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화를 하며 깨달은 건, 생각 이상으로 순수하다는 데 있었다.

“네, 이번이 처음이네요. 여왕님이 아니었다면 영국에 와볼 일이 더 늦어졌을 겁니다.”

전생엔 자주 오고 갔지만, 현생은 처음이 맞았다.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부부와 함께 보는 근위병과 뒤로 높게 솟아 있는 버킹엄 궁전.

다시 없을 값진 경험이었다.

“정말이지 신기한 사람이에요. 당신은.”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호호, 칭찬이라면 칭찬이겠네요.”

곱게 늙은 어여쁜 미소가 입가에 머물렀다.

한강도 따라서 잔잔한 미소를 걸쳤다.

차가 건물 앞에 멈췄다. 차량 문이 열리고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그림은 언제 그려드리면 되겠습니까?”

버킹엄 궁전을 감상하던 마음을 털고 영국에 온 목적을 떠올렸다.

“유 회장님이 편한 시간이면 아무 때나 좋아요.”

“음, 오늘은 여독을 푸시고 내일 오후에 버킹엄 궁전을 배경 삼아 그리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을 가늠하던 한강은 두 사람의 나이를 떠올려 오늘이 아닌 내일 그리기로 하였다.

굳이 무리해서 그릴 필요는 없었다.

조금은 쉬고 싶기도 하였고. 영국 왕실의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싶었다.

“피로할 테니 어서 들어가서 쉬어요. 필요한 게 있다면 배치된 사람에게 말하세요.”

“감사합니다.”

한강은 두 부부와 헤어지고 고용인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향했다.

“내가 또 왕실에서 잠을 다 자보네.”

한강은 모든 게 신기하게 다가왔다.

5성급 호텔도 부담 없이 이용하는 한강이지만, 버킹엄 궁전에서 수면을 취하는 건 돈이 있다 하여 아무 때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좋구나.”

방으로 안내된 한강은 방을 구경할 틈도 없이 침대에 누워버렸다.

심력을 하루 종일 소모했더니 무척 피곤하다.

한강은 옷조차 제대로 갈아입지 않고 깊은 잠에 빠졌다.

짹짹.

“으자자. 휴. 잘 잤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 안에 마련된 욕실에서 샤워를 마쳤다.

몸에 묻은 물기를 닦고 건조한 얼굴에 로션을 발랐다.

상큼하고 달달한 향이 코끝에 머물렀다.

“회장님. 식사 준비됐습니다. 식당에서 여왕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왕실의 고용인이 문을 두들겼다.

한강은 후딱 정리를 하고 문으로 향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가시죠.”

침실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5성급 호텔과 비교해 전혀 꿀리지 않았다.

“여기에 앉으시면 되십니다.”

고용인이 의자를 뒤로 끌어 한강이 앉기 쉽도록 도움을 주었다.

“잘 잤나요.”

그리고 들려오는 인자한 여왕의 목소리.

“덕분에 아주 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호호, 그랬다니 다행이네요. 어서 들어요.”

한강의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웃음 띤 얼굴로 말하며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이야, 영국이 조식과 정식에 신경을 많이 쓴다더니 정말이구나.’

동그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메뉴에 눈이 돌아갔다.

베이컨, 소시지, 계란, 토스트, 버섯 등등 각가지 메뉴가 테이블 위를 채우고 있었다.

‘이게 블랙 푸딩이고, 이건 해시 브라운......’

아침부터 느글느글한 음식들로 배를 채우게 생겼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블랙푸딩은 돼지 피로 만든 소시지로 한국의 순대로 보면 됐고, 감자를 다지고 뭉쳐 튀긴 음식이 해시 브라운이었다.

그리고 비프 웰링턴이 보였는데......

‘초대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가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해, 기념으로 만들었다는 요리......’

소고기 안심에 버섯을 볶은 걸 감싸 파이지와 계란물로 감싼 요리에 시선이 꽂혔다.

‘느끼하지만 맛있네.’

모든 요리가 기름과 한 몸을 이룬 음식들이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제법 입맛에 맞았다.

‘물론 자주 먹으면 힘겹겠지만.’

하루 정도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입맛에 맞나요?”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시점, 여왕은 한강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은근한 말투로 물었다.

“네,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국에선 아침을 대충 먹거나,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정말 배불리 잘 먹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배불리 먹었다. 남기면 섭섭해할 거 같아, 미친 듯이 먹방을 찍었다.

“정말 복스럽게 먹어 보기 좋네요.”

“맛있는 음식을 남겨서야 되겠습니까.”

“맞아요. 그렇지요.”

귀족문화가 몸에 밴 그녀지만, 처음 접하는 한강의 신선한 모습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손주뻘이라 그런지, 그도 아니면 자신이 구입한 작품의 화가라 그런지 볼수록 진한 호감을 느꼈다.

“두 시간 뒤에 그림을 그릴까 하는데 어떠신지요.”

식사도 든든하게 하였고, 이제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할 때다.

“그리하지요. 필립은 어때요?”

남편에게 물었다.

“난 언제든 괜찮습니다.”

필립 공은 웃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여 보였다.

“그렇다는군요.”

“그럼, 두 시간 뒤 출입구 앞에서 뵙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한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딴!

[영국은 뭐 하러 간 게냐?]

“응, 장인어른이네. 메신저도 다 하시고.”

밖으로 나가는 때, 이건호로부터 메신저가 도착했다.

[여왕님이 그림을 부탁하셔서 그림 그리러 왔습니다.]

[그림?]

[네.]

[허, 이제는 원정까지 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다니는 게냐?]

[줄 잡으면 좋겠다 싶어 수락했습니다.]

[그게 다냐?]

[제 부탁도 들어주겠다 하셨습니다.]

[그래? 확장이라도 할 생각이더냐?]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건 없어서.]

[사업을 확장하지 그러냐.]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 알아서 잘하겠지. 조심히 올라오거라.]

한강에게 용건이 끝났는지 천천히 오던 메시지가 끝났다.

“하여튼 장인어른은 츤데레라니깐.”

건호와 연락을 끝낸 한강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나저나 말은 그리했지만...... 정말 고민되네. 여왕님께 뭘 부탁할지......”

밖으로 향하는 한강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엉겨 붙었다.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는 동안 계속 생각을 해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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