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67화 (167/237)
  • 167화. 24살, 천국의 계단

    주변은 시끌시끌했다. 시선은 한 장소에서 떠자지를 못했다.

    “설마, 엘리자베스 여왕도 한리버의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인가.”

    “허허, 이거 참... 곤란하게 됐어.”

    설마 엘리자베스 여왕까지 홍콩아트페어에 손수 참석하리란 생각은 가져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번 경매는 생각 이상으로 어려워질 거 같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향하는 시선에 짙은 부담감이 실렸다.

    “허허, 세상에. 내가 여기서 엘리자베스 여왕을 보게 될 줄은.”

    현 상황을 멀리서 지켜본 닉 하이예크는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만큼 한리버의 영향력이 유렵에도 미치고 있단 의미겠지요.”

    한리버란 이름은 중국 내에서도 제법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태.

    충분히 납득이 되는 상황이었다.

    부디 텍의 시선은 한강에게 향했다.

    “정말 영광스럽네요. 제 작품에 여왕께서 관심을 보이시니, 어깨가 올라갑니다.”

    이보다 더 영광과 명예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어느 예술인이 있어 한 국가의 원수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을까.

    있다 한들 그리 많지 않으리란 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아주 잘 알 터다.

    “이번 승리를 확신했는데, 아무래도 어렵겠어.”

    류이첸이 중국에서 알아주는 재벌이라 하더라도 국가급은 되지 못했다. 심지어 이름까지 높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그림자조차 미치지 못하니, 썩 달갑지 않았다.

    “혹시 아세요. 지나친 가치에 포기하실지 말입니다.”

    아무리 예술품을 가지고 싶다 하더라도 가치를 넘지 않는다.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다.

    하물며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면?

    더욱 냉정하게 시장의 흐름을 보고 결정할 터.

    한강은 그리 생각했다.

    “그리되었으면 좋겠구만. 가십시다.”

    슬슬 경매시간이 입박했다. 시계를 본 류이첸은 슬슬 이동하자 말하며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

    와!

    경매장에 사람들의 감탄이 터졌다.

    “5천만 홍콩 달러에 낙찰되셨습니다.”

    쾅!

    기분 좋은 나무판을 찍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입 벌려 탄성을 자아냈다.

    “이번 경매는 다른 날보다 엄청나군요. 역대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어요.”

    류이첸도 나섰던 경매였지만, 낙찰에 실패했다.

    높은 수준의 예술품이 다른 날보다 많이 나온 현 아트페어를 살짝 원망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워낙 마음에 든 작품들도 많아 함부로 배팅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부디 텍도 사정은 같았다. 무엇보다 진짜 원하는 작품들이 전부 뒤에 몰려 있어 난처한 심정으로 경매사를 바라봤다.

    휴... 긴 한숨이 배어 나오는 입은 현 심정을 밖으로 표출하였다.

    “저돕니다. 이거 정말 사람 눈은 다 같은가 봅니다. 허허.”

    닉 하이예크의 미간이 좁혀져 현재 심정을 고스란히 내보였다.

    좀처럼 표정을 풀지 않던 그였지만, 그조차 지금 상황이 썩 좋게 와닿지 않았다.

    “모두 기다렸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 작품은 전 세계에 이슈를 낳았던 작품!”

    경매자의 입에서 강한 악센트가 홀에 모인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한리버 화가님의 작품, 천국의 계단입니다.”

    사람들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자리해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점찍은 작품이 공개됐다.

    “드디어 나왔군.”

    “정말 엄청난 작품이야.”

    “집안 로비에 두면 아주 좋겠어.”

    하늘이 그려진 넓은 판은 정면뿐만 아니라 바로 뒤에도 같으면서 다른 하늘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람들 모두 하늘을 감상하고 있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계단을 밟고 있는 아름다운 천사에 시선을 뺏겼다.

    이런 증상은 남녀 할 거 없이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시작가는 100만 홍콩 달러입니다. 단위는 50만으로 하겠습니다.”

    시작부터 상당히 높은 가격에 책정됐다.

    경매사는 웃으면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250만!”

    “500만!”

    “600만!”

    시작과 동시에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다. 사람들은 한 치의 고민 없이 ‘천국의 계단’의 가치를 힘껏 끌어올렸다.

    “1000만!”

    어느새 가격은 1000만 홍콩 달러를 돌파했다.

    “안 나서십니까?”

    류이첸이 슬쩍 부디 텍을 떠봤다.

    “허허, 그건 류 회장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기 닉 하이예크 회장님도 그렇고.”

    동시에 눈짓으로 닉 하이예크를 가리켰다. 오로지 앞으로 가져간 시선에 뜨거운 불길이 타올랐다.

    “역대 최고의 금액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반 고흐 정도 나오지 않을지......”

    류이첸은 1990년 당시를 떠올렸다. 일본의 다이쇼와 제지 명예회장 사이토 료에이가 ‘가셰박사의 초상’을 8250만 미국 달러에 낙찰함에 따라 세계 최고가를 세운 바 있었다.

    당시 한화로 약 580억 원에 상당하는 거대 자금.

    그 이후엔 미국의 수집가에게 4400만 미국 달러에 팔렸다.

    아직까지 반 고흐의 기록을 깬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영국의 여왕이 관심을 보이는 작품.

    반갑지 않은 경쟁이지만, 웃기게도 내심 기대도 되었다.

    천국의 계단이 얼마에 낙찰을 받게 될지.

    “3000만!”

    잠깐 사이에 천국의 계단은 3000만 홍콩 달러에 이르렀다. 한화로 약 40억 원 중반대에 이르렀다.

    ‘정말 말도 안 나오는군.’

    대자연의 즉흥곡 당시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모습에 한강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지켜봤다.

    “7000만!”

    상승하는 단위가 1000만 단위로 바뀌고 나서 가격대는 더욱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손이 들리며 가격을 높여갔다.

    “1억4천.”

    두둔!

    그때였다. 단번에 두 배에 이르는 금액을 부른 이가 나타났다.

    “엘리자베스 여왕이다!”

    줄곧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경매에 참여를 하였다.

    경매에 참여한 이들은 벙찐 얼굴로 엘리자베스 여왕을 응시했다.

    세기말 최고의 화가인 반 고흐와 같은 라인에 한강의 작품이 놓이는 순간이었다.

    “질 수 없지. 1억 5천!”

    류이첸이 발 빠르게 나섰다. 닉 하이예크는 포기한 모습이었다.

    “1억 6천.”

    부디 텍도 질 수 없다는 듯, 금액을 높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두 배를 부른 순간, 경매에 참여를 하였던 사람들은 대다수 포기를 하였다.

    이제 경매의 대결 구도는 세 사람으로 좁혀졌다.

    “......이쯤 되니까, 너무 부담스러운데.”

    기대 이상으로 올라간 금액에 한강은 얼이 빠졌다.

    그저 대자연의 즉흥곡보다 가치를 인정받았음 하였는데 기대를 훨씬 뛰어넘어 버렸다.

    “대체 얼마야...... 240억 원 정도인가......”

    잘 나가는 중소기업 매출을 작품 하나로 이뤄내고 말았다.

    약 한 달간 그려내 얻어진 결과였다.

    “휴...... 여기서 멈췄음 좋겠다.”

    예술가로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건 좋은 일이나, 정도가 넘어서면 무척 부담이 되었다.

    한강이 딱 그랬다.

    담력은 누구보다 높으며, 자존감 또한 월등하지만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모든 걸 흔들리게 만들었다.

    “2억.”

    와아.

    엘리자베스 여왕은 한 번 더 크게 올리며 앞 숫자를 바꿔 버렸다.

    “전 포기입니다.”

    부디 텍은 손을 내렸다. 더 부를 수도 있겠지만, 더 부르기엔 부담이 되었다.

    무엇보다 더 올린다 하여 엘리자베스 여왕이 포기하지 않을 거 같았다.

    “저돕니다.”

    류이첸도 손을 내렸다.

    부디 텍과 같은 생각이었다.

    웅성웅성.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반 고흐의 다음으로 역대 가치를 인정받았다.

    “290억......”

    300억 원에 근접하는 자금이 단번에 찍혔다. 한강은 말없이 2억 홍콩 달러를 부른 주인공을 바라봤다.

    “3, 2, 1. 낙찰입니다.”

    귓속으로 경매사의 망치를 찍는 소리와 낙찰 소리가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낙찰받은 엘리자베스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두 시간 정도가 더 흐른 시각, 경매는 끝을 고했다.

    “유한강 회장님, 잠깐 시간이 되시는지요.”

    얼이 빠진 얼굴로 경매장을 벗어나려는 때, 낯선 이가 길을 막았다.

    류이첸과 부디 텍, 닉 하이예크가 그를 바라봤다.

    “누구시죠?”

    “저는 엘리자베스 여왕님을 모시는 수행원입니다. 여왕님께서 회장님을 뵙고자 합니다.”

    “......”

    한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늘 여러 번 놀라는 날이다.

    “이런, 오늘 시간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합시다. 어차피 한국에서 뵙게 될 테니 말입니다.”

    한국에서도 곧 미술전시가 열린다.

    자신들과는 시간을 넉넉하게 가졌으니,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양보하기로 하였다.

    “이런, 참. 알겠습니다. 한국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한강은 셋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

    “정말 대단한 그림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낙찰받은 그림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황홀감에 빠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필립 공 옆에 찰싹 붙어 사진을 감상했다.

    “정말 훌륭한 화가예요. 특히 이 여인은 동양인 같으면서도 서양인 같은 외모가 참으로 신비하게 다가옵니다.”

    필립 공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이지만, 존대를 사용하며 그녀의 감성에 공감을 하였다.

    “어서 이분을 만나보고 싶네요.”

    회장 유한강이 아닌, 화가 유한강을 만나기 위해 홍콩까지 발걸음을 하였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작품에 매료되어 경매에 적극 참여를 하였다.

    비록 거금이 나갔지만, 결코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천국의 계단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무척 흡족해하고 있었다.

    “마침 저기 옵니다.”

    아내의 바람이 이뤄지는 순간이라 그런지, 그의 입에 미소가 번졌다.

    아직 경매장을 나서지 않은 둘은 경호를 받으며 걸어오는 한강을 포근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저의 작품을 높은 값에 쳐 주신 것에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놀란 마음에 인사를 드린다는 걸 잊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한강은 둘에게 허리를 낮춰 사죄를 하였다.

    “아니에요. 가는 길을 막아 내가 미안해요.”

    한강의 사죄에 엘리자베스 여왕도 미안함을 드러냈다.

    “아닙니다. 너무 낮추지 마세요.”

    올해 80대에 이르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음성에 한강은 더욱 자신을 낮춰 그녀를 대했다.

    “그럴 수 있나요.”

    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은 고개를 저어 반대 의사를 내비치고 처음 가지던 모습을 고수해 나갔다.

    “그러시다면...... 한데, 저를 무슨 일로 찾으셨는지요?”

    편하게 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강은 자신을 찾은 이유를 물었다.

    직접 찾았을 정도면 조금 중요한 일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음, 이런 부탁을 드려도 될지 모르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이 뜸을 들이며 눈치를 살폈다. 무척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편히 말씀해 주세요. 제가 들어 드릴 수 있는 거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영국 왕실과 끈이 이어진다면, 한리버 입장에서도 무척 좋았다.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가 홍콩아트페어에서 생겼다.

    한강의 눈에 강렬한 빛이 새겨졌다.

    예술가이기 전에 기업가.

    이번을 계기로 영국 왕실과 친분을 쌓기로 하였다.

    “버킹엄 궁에서 우리 부부의 지금 모습을 그려줄 수 있을까요. 그리해 주신다면 저도 당신의 부탁을 들어드릴게요.”

    엘리자베스 여왕의 입에서 한강을 찾은 목적이 공개가 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눈동자에 ‘꼭’ 이란 바람이 채워졌다. 그녀의 눈은 한강의 눈과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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