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65화 (165/237)

165화. 24살, 천국의 계단

짹짹.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전봇대를 잇는 전깃줄 위로 새들이 나란히 앉아 지지배배 울며 노래를 불렀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여 나뭇가지들이 흔들렸다.

부릉!

용인 내 있는 처인구로 차량 한 대가 시골과 다름없는 지역으로 들어섰다.

“완전 시골이네. 20년 뒤에는 여기도 적당히 발달하는데, 저 동네에 땅이 있는 사람은 돈 좀 벌겠어.”

차량 안에 탑승해 있는 한강은 20년 후 미래의 가치를 비교하며 슬며시 웃었다.

서울과 인접해 있어 제법 발달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은 동네는 논밭으로 이뤄진 시골 그 자체였다.

“다 왔다.”

너무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은 장소에 조립식으로 지어진 건물 한 채가 있었다.

단층으로 되어 있는 건물은 화물차 한 대가 여유로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셔터가 올라가 있었다.

차량은 올려진 셔터 옆에 세워두었다.

“여기로 들어오세요.”

뒤따라 들어온 1톤 트럭이 후진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다 두면 되나요.”

기사와 단기로 고용한 인부가 내려 주변을 훑어봤다.

“네, 정리는 제가 할 테니, 내려주세요.”

문 앞 벽면을 가리켰다.

“네. 하나 둘, 으샤.”

기사와 인부가 힘을 합쳐 짐을 내려놓았다. 한강은 깔끔히 정리된 공간을 둘러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했다.

“생각보다 좋네.”

건물이 조금 오래돼서 걱정했는데, 건물을 둘러보니 제법 괜찮았다.

“풍경도 좋고, 역시 예술은 도심보단 이런 곳이 최고지.”

재벌이 사용하는 건물과 어울려 보이진 않지만, 한강에게 있어 그런 건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지금 한강에게 중요한 건, 작품활동에 있었다.

작품 구상을 하며 심장을 뜨겁게 달궈 놓았다.

“다 됐습니다. 회장님.”

때마침 마무리를 지었단 소식이 들려왔다.

“고생했어요. 이건 추가로 드리는 돈이니, 가셔서 맛있는 거 사드세요.”

운반비는 선불로 지불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또 그게 아니 않은가.

한강은 지갑을 열어 둘에게 20만 원씩 추가로 지급하였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담에도 연락 주세요. 책임지고 안전하게 옮겨 드리겠습니다.”

기사는 받아 든 돈을 꾹 잡으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죠. 그때도 부탁할게요.”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부담이 덜 가리라.

기사의 명함을 받고, 둘을 돌려보냈다.

“목공소에 부탁할까 했지만, 내 작품이니만큼 내가 하는 게 좋겠지.”

필요한 자재는 도면을 그려 미리 준비를 해두었다.

문 앞에 쌓여 있는 아크릴과 나무토막이 그것들이었다.

“이번 작업은 제법 오래 걸렸지.”

캐드가 익숙하지 않기에 그리는 데 꽤 애를 먹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져 속도를 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럼 어디 보자......”

챙겨온 도면을 세워둔 스탠드에 펼쳐 꽂았다.

“혼자 하는 작업이라 애 좀 먹겠지만, 이게 또 예술이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준비된 자재를 이어 붙이는 작업은 금방이다.

“시작해 볼까.”

도면대로 나무막대를 잇기 시작했다. 삐뚤어지지 않게 직각도로 일일이 확인하며 틀을 만들었다.

“후우...... 다음 작업은 내일 하자.”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하다.

풀벌레 소리가 주변에서 요란하게 울어댔다.

푸드득, 푸드득.

드르륵 셔터를 내렸다.

“계단만 완성되면 나머지는 크게 어렵지 않으니까......”

전공과 비전공은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불량 없이 일이 순탄하게 흐르고 있다는 점에 위안을 삼았다.

부릉! 차량의 시동이 걸렸다.

“가시죠.”

피곤한 하루다. 앞자리에 앉아 의자를 뒤로 당겼다.

“내일부터 벤으로 부탁해요.”

승용차가 승차감이 좋다지만 벤보다 편할 순 없었다.

하루 동안 모든 열정을 작품에 쏟아부으니 몸도 마음도 무척 무겁다.

이동하는 동안 편한 휴식이 필요했다.

“그리하겠습니다. 출발하겠습니다.”

액셀이 아래로 내려가며 엔진이 울기 시작했다. 바퀴는 서서히 굴러 도로로 진입했다.

***

“하무이이이이.”

“아이구 우리 손주 왔어.”

한강이 한창 작품에 전념하는 시각.

윤희는 재석을 데리고 홍라혜를 찾았다.

재석이 홍라혜의 품에 안겨 아양을 떨었다.

“재석아, 그러면 할머니 힘들어.”

“난 됐어. 애들이 다 그렇지.”

“어머? 어쩜...... 나 아기 땐 그렇게 구박하더니.”

“너도 더 커서 손주 봐봐. 그럼 할미 맘 이해할 거야.”

“눼눼.”

과거를 떠올리자, 엄마의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 있었다. 오빠와 언니들에 비하면 덜하지만, 교육에 상당한 투자를 하셨던 분이 눈앞의 있는 엄마였다.

그런데 지금은.

“오르르르. 까꿍.”

“꺄르르르.”

마음씨 좋고 인자한 할머니로 바뀌어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재석의 웃음을 이끌어 내는 좋은 할머니로.

‘참 많이 변했어. 정말로 나이를 먹으면 저리될까.’

윤희는 많이 바뀐 라혜를 보며 미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요즘 사위는 작품활동 하느라 바쁘다지?”

재석에게 젖병을 물리며 한강의 근황을 물었다.

“응, 이번에 아주 제대로 꽂혀서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조금은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어떤 작품을 만들기에 이리 오래 걸리는데?”

보통은 하루면 끝내던 작품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이틀 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완성을 하지 못했다는 소리에 의아함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홍콩아트페어에 낼 작품을 만들고 있어. 용인에 큰 창고를 빌려서.”

“공방이 있는데, 큰 창고를 빌렸다고? 그리고 홍콩아트페어라니? 라움도 아니고.”

윤희의 말에 라혜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오랜 시간 기다려 왔는데, 라움이 아닌 홍콩이라니.

“라움에 내걸 작품 몇 작은 완성은 했고...... 이번에 만드는 건 꽤 대형인가 봐.”

“얼마나 대형인데 창고까지 빌려.”

“모르겠어. 알려주지를 않아.”

윤희의 얼굴에 심통이 떠올랐다. 볼을 부풀린 모습이 귀여웠다.

“사위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인걸.”

라혜도 한강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장기간 만들 정도면 쏟는 정성이 상당하다는 의미인데, 그런 작품을 라움이 아닌 홍콩으로 보낸다니.

당장에 달려가 쓴소리를 하고 싶었다.

“됐어. 라움에 1년짜리 작품도 있는데. 뭘 그래.”

남편을 구박하려는 엄마의 모습에 윤희가 나서 한강의 편을 들어 주었다.

“지금 남편이라고, 편드는 거니?”

“사실이잖아.”

“어이구? 방금까지 나랑 남편 욕하던 이윤희 씨는 어디 가셨나?”

“내가 언제 욕했다 그래. 그냥 그랬다 뭐 그런 거지.”

“그러셨어. 재석아 너는 크면 저러면 안 된다. 알았지?”

갑작스러운 딸의 배신에 재석을 보며 마음을 다독였다.

“근데 있지. 라움에 들어오는 거 정말 짱이야.”

“......?”

윤희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엄마의 불편함을 잠재우기 위한 변명이 아니었다.

직접 보고 느꼈던 감상평을 소상히 라혜에게 고했다.

“그 정도야?”

“그렇다니까. 물론 그중 한 작품은 팔기 좀 그렇긴 한데, 정말 보면 엄청 놀랄 거야.”

“그 정도라고.”

“내가 보기에 대자연 즉흥곡 이상의 작품이야.”

자신과 가족이 있어 그런 게 아니다.

자재비가 많이 들어서 가치를 높이지 않았다.

순수한 마음에서, 평론가로서, 미술관장으로서 내리는 평가였다.

“기대해도 되는 거야?”

“언제 울 남편이 실망을 준 적 있남.”

“그래, 알았다. 그만 서운해할 테니 표정 풀어. 그러다 엄마 때릴라.”

공격적인 눈빛에 몸을 떨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언제!”

엄마의 반응에 윤희는 꽥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둘의 얼굴엔 미소가 감돌았다.

호호호, 급기야 두 모녀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

“됐다!”

천국의 계단이 장장 3주 만에 완성이 되었다. 오로지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일주일이면 끝냈을 작품이었느나, 회사를 다니며 작품활동을 한다는 점이 만만치 않은 시간을 잡아먹게 만들었다.

“하아..... 이걸 한다고 정말 힘겨웠어.”

한강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하늘로 뻗은 계단 위에, 천사가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오르려 하고 있었다.

“천국의 계단, 정말 이름 그대로 마음에 드는 작품이야. 내 인생 최고의 역작 중 하나가 됐어.”

미술계 올림픽이라 불리는 아트바젤이라 불리우는 전 세계 미국, 홍콩, 스위스에 열리는 아트페어.

그곳에 역작을 출품하게 된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감이 위로 올라왔다.

“좋은 평을 받았음 좋겠는데.”

대자연의 즉흥곡만큼이라도 인정을 받고 싶었다.

“할 만큼 했다. 이제 일에 집중하자.”

그간 회사와 집에 소홀했다. 본래 자리로 돌아가,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로 하였다.

“천으로 가리자.”

선적 일자가 이틀 뒤로 잡혔다. 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가 신문지를 이용해 작품을 가렸다.

그 뒤 거대한 종이롤을 이용해 포장을 하였다.

“회장님, 저희 왔습니다.”

약 2시간이 지난 시간,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안으로 1톤 지게차와 2.5톤 화물 트럭이 들어왔다.

“깔끔하게 포장하셨네요. 이거랑 이건가요?”

계단과 배경을 그린 넓은 판을 가리켰다.

“빨리 오셨네요. 네. 그거 다 포장해 주세요. 습기 안 차게 주심해 주시고요.”

“걱정 마세요.”

선적을 위해 도착한 포장 직원들은 나무를 이용해 상자를 만들었다.

움직이지 않게 고정해 뚜껑을 덮고 못으로 열리지 않게 완전히 봉해버렸다.

“앞으로, 더! 더!”

곧 2.5톤 트럭에 작품이 실렸다. 길고 긴 전쟁이 드디어 끝났다.

“다시 홍콩으로 가는구나. 경매자가 아닌 작품의 주인으로서.”

한강의 얼굴에 뿌듯함이 올라왔다.

떠나는 화물차량을 보며, 손을 가볍게 좌우로 흔들었다.

“홍콩에서 보자. 천국의 계단.”

***

[속보입니다. 한리버 유한강 회장이 오랜만에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작품 수는 총 여섯 가지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 한 작품이 홍콩아트페어에 출품이 된다......]

하루가 지난 날, 한강의 작품 소식이 기사에 실렸다. 이번 작품은 이례적인 측면이 있어 9시 뉴스로 다뤄지기도 하였다.

덕분에 한강의 작품은 공개가 되기도 전에 큰 관심을 얻었다.

[약 3주가 넘는 기간이 걸려서야 완성된 이번 작품은 유한강 화가에게 있어 역작으로 기록될 거라는 소문이 나돌고......]

사람들은 작품의 내용보다 기간에 초점을 맞춰, 작품에 대한 기사를 다뤘다.

“고생했어.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윤희가 다가와 축하를 해주며, 다음 일정을 물었다.

“일단 5월 말에 홍콩 아트페어에 들러 내 작품에 대한 평을 들어보고, 6월에 라움에 전시회를 열었음 해.”

물음에 대한 답을 고민 없이 말해 주었다.

작품을 내기 전에 정해 둔 것이기에 고민할 것도 없었다.

“알았어. 이제 자기는 좀 쉬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준비할게.”

“고마워.”

아내의 배려에 행복한 미소를 날렸다.

한강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

한강의 기사가 터진 시각.

“완성이다!”

또 다른 장소에서 할 피니의 목소리가 시원하게 공기를 두들겼다.

비트코인이 완성되었음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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