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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64화 (164/237)

164화. 24살, 창조 경제

사흘이 지난 날, 미국으로 출장 간 협상단이 귀국했다. 나동근 대표는 결과 보고를 위해 회장실을 찾았다.

“......여기까지 제너럴 모터스와 협상한 내용입니다.”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작성된 보고서를 책상 위에 올렸다.

“수고하셨어요. 나머지는 대표님께 맡기도록 하지요.”

보고서를 쓱 훑어본 눈이 얇게 휘었다.

보고서에 적힌 내용 대부분이 만족스러웠다.

“이번 일로 자동차에 보너스가 지급될 겁니다.”

한강의 상벌은 확실했다. 아직 벌을 내린 적은 없지만, 보상만큼은 확실하게 해주었다.

‘돈은 직원들을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수단. 회사에 있어 돈의 목적을 잊으면 안 된다.’

회사에 있어 돈이란, 기업을 유지하는 용도이며 직원들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직원들이 고성능 엔진이라면 돈은 기름이란 소리.

기름이 없는 자동차는 고철에 지나지 않게 된다.

“감사합니다.”

한강의 말에 나동근은 크게 감격했다. 한리버에서 일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돈을 벌기 위함이니, 돈을 받는다는 건 인정을 받는다는 소리였다.

나동근은 한리버에 대한 애사심을 한층 더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급한 건 다 처리했어. 나머지는 알아서 착착 진행될 터. 그렇다면......”

매년 회사의 성장 속도도 나쁘지 않았다. 잠시 업무에 대한 브레이크를 걸고 작품활동에 빠져도 되리라.

“이참에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가지자.”

90년 후반과 비교했을 때, 기업의 성장은 1000%가 넘어선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풀리면서 속도는 배로 빨라지고 있었다.

덕분에 기업이 가진 기초 체력보다 기업의 덩치가 비대해져 가고 있었다.

바닥이 갯벌로만 이루어지면 언제고 건물은 무너지기 마련.

더 높이 날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바닥을 다지고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기둥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한강의 손이 수화기로 향했다.

“당분간 회사는 확장 정책을 잠시 중단하고 기술투자와 인력투자에 온 힘을 쏟습니다. 저는 당분간 일정을 잡지 않을 거니, 중요한 일을 제외하고는 약속을 잡지 마세요.”

당분간 자신의 본업은 기업인이 아닌 예술가로 활동할 예정.

정과 부를 바꿔 활동하기로 하였다.

***

[유한강 회장, 예술가 활동 재개. 이번 일정을 이용해 기업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이번엔 어떤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해줄지, 모든 관심이 유한강 화가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눈이 한국에 집중됐다. 1년 전 위더야호 부디 텍 회장에게 대자연의 즉흥곡이 60억 원에 낙찰된 바 있다.]

한강의 개인 생활이 언론에 노출됐다.

이는 한강이 의도적으로 흘린 정보였다.

‘작품활동으로 바쁘니까, 앞으로 부르지 마’ 의미가 담긴 메시지였다.

“이게 뭐야?”

재석을 안아 든 윤희가 옆으로 찰싹 붙었다.

계단형태로 된...... 아니 계단을 만들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알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이번 작품을 그릴 특수한 그림판.”

“에엑?? 말도 안 돼. 이게 그림판이라고? 전혀 그림판으로 안 보이는데?!”

남편의 말에 윤희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약간의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걸 무시하지 말라고. 앞으로 몇 가지 작품을 만들고 그릴 건데, 새로운 생명이 마술처럼 일어날 거니까.”

아내의 반응이 무척 재밌게 다가왔는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어 보였다.

“새로운 생명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가장 상단에 세로로 세워진 넓은 판이 자리한 2단 형태의 계단.

어디로 봐도 그림판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주 재밌을 거야. 이걸 이제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히죽히죽,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재석아, 저게 뭐로 보여?”

“아바바바.”

“그치? 엄마도 그래. 새벽 일찍 일어나 공방에서 뭐 하나 궁금해서 왔더니. 아빠가 이상해진다.”

떠올려도 정체를 알아낼 수 없자 아들과 대화를 나누며 불만을 토로했다.

아침부터 도시락을 싸달라길래 무슨 일에 또 빠졌나 싶어 따라온 게 급 후회되었다.

“기대해도 좋아. 아주 재밌는 작품이 만들어질 테니깐.”

슥슥슥.

다음 날 아침.

작업할 준비를 끝냈다.

오늘은 아내와 아들을 집에 두고 공방으로 출근했다.

“실패할까 싶어 여분을 만들어 두길 잘했어.”

첫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망치로 시원하게 부수고 새로운 계단형 그림을 가져와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세로로 세워진 넓은 판 위에 하늘을 그렸다. 포탈로 블루를 붓으로 미끄러지듯 가져와, 툭툭 쳐 붓끝에 골고루 묻혔다.

세로로 세워진 판에 일정한 방향으로 칠해 푸른 하늘을 그렸다.

“하얀 면은 구름으로 표현하자.”

리쿼드 화이트에 섞여 하늘과 구름이 구분되어 아무것도 없던 면은 하늘로 변했다.

위로 갈수록 진해지고 아래로 갈수록 푸른 면은 흐려졌다.

붓으로 부드럽게 좌우로 밀자 하늘에 명암이 생겼다.

티타늄 화이트에 아주 적은 양의 브라이트 레드를 섞어 하얀 뭉게구름을 더욱 돋보이게 표현을 하였다.

“하늘 아래쯤에 놀이터 땅을 그리는 거지.”

붓은 하얀 경계선으로 이동했다.

다크 브라운과 블랙을 섞어 바닥을 다져갔다.

“이건 거대한 의자가 될 거야.”

계단이라 생각했던 게 나무 의자로 변했다. 정말로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앉아 있고, 여자 품에는 어린 남자아이를 안기자.”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는 그림은 놀랍게도 생명이 감돌기 시작했다.

고작 그림이라 생각했던 그림은 부부가 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모든 것에 스토리가 담겼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는 부부의 모습은 다름 아닌 한강과 윤희였고, 품에 안긴 아이는 아들 재석이었다.

“후우......”

한강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하지만 한강은 닦을 생각조차 못 하고 그림에 몰두했다.

“헤라로 철봉을 표현하자. 놀이터에 타이어를 박아 두고, 이쯤에 나무와 잔풀들이 자라나고 있을 거야.”

완성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강의 집중력은 어느 때보다 배 이상으로 높았다.

작은 소리가 들려도 눈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저벅저벅. 조심스러운 걸음이 당도했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

뒤에 도착한 이는 집에 있던 윤희였다. 심심해 들른 공방에서 본 장면에 윤희의 입은 말 없이 쩍 벌어졌다.

“검은 바닥은 신문지를 구겨서 마구 찍어 누르고...”

구겨진 신문지로 인하여 독특한 문양을 가진 바닥이 묘사가 되었다.

“여기에 준비한 유모차를 가져다 놓으면 완성.”

몇 시간이나 걸려 완성했는지 모른다. 한강은 정면을 바라본 채 걸음을 뒤로 옮겼다.

“하아...... 성공이다!”

찌뿌둥한 허리를 쭉 펴 만세를 힘차게 불렀다.

쭉 뻗은 팔에 힘이 빡 들어갔다.

“진짜 같아......”

응, 어라?

뒤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고개가 뒤로 홱 돌아갔다.

“언제 온 거야?”

“좀 됐어. 정말 일에 집중할 때 보면 누가 때리고 가도 모를 정도로 집중하더라. 저거 진짜 어떻게 그린 거야?”

한강을 작게 핀잔을 주던 윤희의 시선은 다시 그림으로 향했다.

정면으로 볼 땐 잘 느끼지 못하는데, 옆에서 보면 정말 사람이 앉아 있는 착시를 일으켰다.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떻게 그리긴, 보는 대로지. 어때. 마음에 들어?”

“당연하지. 이걸 어떻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어. 진짜 이건 역대급야.”

윤희에게 있어 가장 좋은 칭찬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역대급이라네. 제목을 역대급이라 지을까? 킥킥.”

아내의 칭찬에 한강은 실실 쪼갰다.

무척 마음에 든 눈치다.

“진짜 장난 아니야. 나 지금껏 이런 작품 처음이라고. 게다가 진짜 유모차를 앞에 두니까, 정말 아이를 데리고 부부끼리 놀이터로 놀러 나온 거 같아.”

남편이 뭐라 하든 순수한 감탄과 미술관장으로서 평가를 내렸다.

윤희가 보기에 비평조차 할 수 없는 완벽한 작품이었다.

“점수가 너무 후해서 좀 부담인데.”

“나 결심했어. 이거 라움에 둘 거야. 그리고 이런 거 몇 개 더 만들자. 아예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방을 따로 만들어서 자기 작품을 모두 전시할래.”

굳건한 의지를 표명했다. 고집으로 똘똘 뭉친 눈은 뜻을 절대 굽히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그래야지. 이건 라움에 전시하려 했어.”

“이건...?!”

그러다 묘한 표현에 눈썹이 꿈틀댔다.

제대로 설명해 보란 강압적 눈빛이 한강을 압박했다.

“다음으로 구상한 작품은 홍콩에 낼 거야. 내가 전에 얘기했잖아. 나도 홍콩에 작품을 낼 거라고.”

“아......”

떠올랐다. 몇 번이고 의지를 다지던 말을.

“걱정은 하지 마. 그거 외에 다른 작품들은 모두 라움에 전시할 거야.”

한강의 작품활동은 늘 뉴스감이다. 자주 활동하지 않은 탓에 한강의 작품은 수가 매우 적었다. 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물량이 부족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작품의 가치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올라갔다.

“어떤 작품을 내려고?”

제법 궁금했는지 윤희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을 뿌렸다. 큰 눈망울이 사랑 빛을 던졌다.

“천국의 계단.”

아주 간단하고 상상이 되는 제목.

“계단을 그리겠다고?”

풍경과 인물을 주로 그렸던 남편이 이번엔 단순한 계단을 그리겠다고 하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대체 머릿속이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내 남편이지만, 정말 신기할 정도로 아이디가 막 튀어나오는 게 너무 신기해.’

사업할 때도 그렇고 작품활동도 그렇고 실력도 실력이지만, 발상 자체가 너무 남달랐다.

자신도 예술가이지만, 이상하게 남편처럼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미술작품이 나오지 않는 반면, 남편의 머릿속은 아이디어가 득실득실하였다.

“응, 표현에 따라 계단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이 가능해. 이제 그걸 고민을 해서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오면 홍콩아트페어에 출품할 거야.”

머릿속은 온통 홍콩아트페어 생각뿐이다. 그때 느꼈던 열기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뜨거운 경쟁 속에 작품을 인정받는 건, 예술가에게 있어 영광 그 자체였다.

“저걸 보고 나니, 다음 작품이 무지 기대돼.”

보지 않았음 믿지 못했을 터다.

창작과 모방은 한 끗 차이라 하는데, 한강의 작품활동은 월드 플레이와 오션월드를 통해 유행처럼 번져갔다.

너도나도 한강의 작품을 비슷하게 그리며 영상을 찍는 BJ가 늘고 있었다.

“아주 재밌을 거야. 그러기 위해선 큰 창고를 하나 임차해야 돼.”

“여기 작업실이 있는데, 굳이?”

지금 공방도 혼자 쓰기에 그리 작은 평수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작다고 말하고 있는 모습에 미간이 좁혀졌다.

“좀 커. 나중에 옮기는 문제까지 생각하면 넓은 공터가 있는 창고가 좋을 거 같아.”

“아니, 대체 얼마나 크길래 그래? 지게차라도 이용해야 할 정도야?”

“그러지 싶어. 사람이 혼자 들기에 무리가 있고.”

물감이 묻은 손으로 콧잔등을 긁었다. 코 주변에 물감이 묻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진짜 못 산다.”

뭐 하나 대충하는 법이 없는 남편의 모습이 존경스럽다가도 황당하게 다가오기도 하였다.

“헤헤, 이번에 대작이 나올 거니까. 기대하라고. 크크.”

그러거나 말거나, 한강은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지금껏 사업으로 하지 못했던 작품을 단번에 쏟아낼 생각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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