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24살, 몸집을 키워라
“아이 윤이다!”
“엇, 저기 유한강 회장 부부다!”
지윤이 먼저 도착하고 뒤따라 들어온 차량의 문이 열렸다.
원더걸스에 가져간 관심을 지우고 지윤과 한강에게 향했다.
“이야.....”
“귀족 자녀 같지 않아?”
“그림 좋고.”
찰칵.
어깨가 드러나 보이는 붉은 드레스에 가슴 아래까지 내려오는 털이 복슬복슬한 털숄을 걸쳐 레드카펫을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지윤의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다.
‘으, 창피해. 이건 진짜 계획 된 거다. 진짜!’
코디를 원망하고 매니저를 원망했다.
뒤에 따라오는 한강과 윤희의 기척은 느낄 새도 없이 힘겹게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와아......”
반면, 거리를 두고 걷고 있는 한강과 윤희는 당당한 모습으로 지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어깨와 등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파격적인 하얀 드레스를 선택한 윤희와 검은 턱시도를 입은 한강의 모습은 미의 신이 강림했다 표현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완벽했다.
어느덧, 셋은 포토존에 서서 카메라를 독점했다.
“저 부끄러워요.”
작게 속삭이는 지윤의 목소리에.
“부끄러우면 더 과감하게 행동해.”
윤희는 나직한 음성으로 조언을 해주었다.
“......”
지윤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러면서 한강의 얼굴을 슬며시 보며 볼을 부풀렸다.
[가요대전에서 사진을 찍는 건, 절대 가볍게 볼 일이 아니야. 아직 어려 이런 걸 말해도 되나 싶은데, 너를 확실하게 알리는 자리기도 해. 하나만 잘 뽑아도 한 달은 갈 테니까.]
지윤이 유명해질 수 있는 방법. 한강이 현실적으로 생각해낸 건, 포토존에서 지윤이 확실하게 자신을 어필하는 거였다.
꽈악, 지윤이 드레스를 한 움큼 움켜쥐었다.
‘나 망하면... 모두 회장 오빠 탓이야.’
결연한 의지가 눈가에 스쳤다.
“......”
“......”
그 순간, 주변은 냉동창고 얼음 인간으로 변해버렸다.
“.....?”
주변의 반응에 한강의 시선이 슬쩍 지윤에게 옮겨갔다.
“풋.”
크크.
지윤의 모습을 본 한강은 그만 웃음이 터져 버렸다.
“......지윤아.”
윤희는 멍한 표정으로 지윤을 바라봤다.
90년대를 거쳐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면 누구나 다 아는 만화 주인공.
그 이름하여 세일러문.
지윤은 카메라를 향해 외쳤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치 않겠다.”
귀여운 외모에서 흘러나오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더불어 눈에서 느껴지는 결연함이란.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한 액션이었다.
“조, 좋아요. 갑니다.”
찰칵찰칵.
정적도 잠시, 기자들과 작가들은 좋다고 지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터지는 플래시는 오로지 지윤을 향했다.
“우린 옆으로 살짝 빠질까.”
한강은 웃으며 슬쩍 거리를 벌렸다.
“그러쟈. 호호. 넘 귀엽다.”
윤희도 한강을 따르며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작게 웃었다.
“천상 연예인이네. 후후.”
지윤이 잘해줄지 의문이었다. 아이디어를 제공했지만,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그런 일.
그렇다고 손해 볼 것도 없었다.
한데, 지윤은 용기를 내어 한껏 끼를 발산해 매력을 뽐냈다.
기자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핸드폰 동영상으로 이 장면을 찍고 있던 사람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지윤의 모든 모습을 핸드폰에 저장했다.
“신인상! 2007년 혜성처럼 등장해, 국민 여동생으로 떠올라 사랑받은 가수죠. 아이 윤!”
“네, 축하합니다. 아이 윤 씨. 트로피는 신화 애릭 씨가 전달하겠습니다.”
SBC 가요대전 신인상으로 지윤이 수상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감사해요. 대표님 감사해요. 매니저 오빠도 감사하고 저를 응원해 주시는 모든 팬분들께 감사합니다.”
지상파 방송 3사의 모든 신인상을 받음으로 화려한 한 해를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
[와이폰 아이 윤과 신인상을 받다.]
[널 정의의 이름으로 놓치지 않겠다.]
[이런 기분 처음이야.]
[Y2는 사랑이에요.]
2008년 새해가 밝았다. 신인상을 싹 쓸어 간 지윤은 육성전자와 전속계약을 맺어 핸드폰 광고를 찍었다.
“씨티그룹과 JP모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리버 주관사로 참여하고 싶다는 연락이었습니다.”
2월이 되던 날, 한리버 엔터테인먼트 IPO 윤곽이 서서히 잡혀갔다.
각 금융권에서 주관사로 나서고 싶다는 주문이 들어왔다.
김동진 연락받은 내용을 한강에게 보고했다.
“유명한 곳에서 연락 왔네요. 거기도 모기지 사태 때문에 많이 힘들 텐데.”
“이걸로 손해를 메꾸려 하는 게 아닐지요.”
“육성과 공동주관사라......”
육성에서 도움을 받은 게 많기에 대표 주관사 중 한 곳을 육성증권을 선택했다. 이걸 다른 곳으로 넘기면.
‘장인어른께 완전 미움받겠지. 어쩌면 재석이 엄마한테도......’
육성은 무조건 껴 넣기로 하였다.
‘매번 불만을 듣는 것도 지겹고......’
그게 또 장인어른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JP모건을 공동 주관사로 진행하고, 나머지는 인수회사로 넣으세요.”
해당 기업들과 친분이 없기에 이번 기회에 친분을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공모가는 어떤 방식으로 산정하시겠습니까?”
공모가 산정 방식은 세 가지로 정해진다.
EV(Enterprice Value), EBITDA(Earnings Before Interest, Taxes, Depreciation and Amortization), PER(Price Earning Ration: 주가 수익비율)이 있다.
EV는 시가총액과 순부채를 더한 금액을 말하고 EBITDA는 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무형자산 상각비를 차감하기 전 영업이익을 말한다.
즉, 기업의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방식.
“공모가는 PER(Price Earning Ration: 주가 수익 비율)로 하세요.”
PER은 간단히 동종업종과 비교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한강은 그 중 PER을 채택했다.
“상장일은 8월까지 잡아보세요.”
간단한 가이드 라인을 짜주었다.
이 정도면 진행하는 데 크게 무리 없으리라.
나머지는 밑에 사람들에게 맡기면 될 터다.
“알겠습니다.”
예정대로 한리버 엔터테인먼트 IPO가 진행되었다.
이제 시장의 선택에 맡길 일만 남았다.
***
한리버 엔터테인먼트 IPO에 대한 의논이 있는 시각.
“이건 아니야.”
현장을 돌아다니는 남자는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리버에 테슬라가 인수되어 보다 완벽한 전기차를 만들게 된 부분까지 좋았다.
“내가 할 일이 없어.”
아직 전기차가 양산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양산에 들어가리라 내다봤다.
좋았던 건 딱 여기까지.
신기할 정도로 막힘없이 일이 술술 풀린다. 덕분에 남자는 할 일이 없었다.
방향이고 지시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덕분에 백수 아닌 백수 신세가 되어 버렸다.
“여기엔 내가 할 일이 없어.”
꿈에 그리던 하나인 전기차는 완벽에 가까운 상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아무래도 회장님께 말해서 자리를 바꿔 달라 해야겠어.”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끝내 결단을 내렸다.
자신의 진가를 내보일 수 있는 일을 해보고자 움직이기로 하였다.
***
『자동차 생산시설 부족으로 아래와 같이 확충을 하고자 하오니 재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목적: 생산시설 확충』
『차종별 월평균 생산량:
HY5: 5천 대
HY6: 6천 대
HY-P7: 8천 대
......』
『전년 대비 생산량 19% 증가』
총생산량이 월 2만 대가 넘어섰다.
미래 자동차의 부진한 성적과 대조되는 성적이었다.
“생산량이 꾸준히 늘고 있고, 더욱이 미국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다 이건가.”
특히, 미국 시장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만큼, 미국에 공장을 늘려 현지화를 하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월 목표 총생산량을 5만대로 잡았다.
“미국 GM자동차 공장을 매수하자라......”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미국은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기업들은 인원을 대대적으로 감축하는 움직임 보였고, 시장을 축소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중 GM(제너럴 모터스)은 부도 위기에 직면한 상태로 주가는 휴짓조각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전기차 공장은 아직 국내에서 소화가 가능한 정도의 규모를 가졌다.
그렇다면.
유한강.
서명을 하였다. 반려할 이유는 없었다.
스스로도 미래를 위해서라도 자동차 생산시설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었고, 미국에서 판매량이 늘고 있는 만큼 현지화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따르르릉.
서명을 끝내고 다음 보고서를 보려 하는 때, 전화기가 울렸다.
“유한강입니다.”
---오늘 뵐 수 있겠습니까? 상담을 드릴 일이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기차 사업부 일렉트라 대표로 활동 중인 일론 머스크였다.
그간 조용히 있던 인물이 무슨 일로 그런 걸까?
궁금증이 일었다.
“네, 그러세요.”
일론 머스크의 방문을 허락했다.
수화기를 내리자마자, 자동차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거절해도 올 생각이었나 보네.”
역시나 그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를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다.
똑똑.
한 시간 반 정도 지난 시간.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일론 머스크가 도착했다.
꽤 급하게 온 티가 역력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나요.”
그의 얼굴을 보고 자신에게 만남을 요청한 이유를 물었다.
결코 보통 일은 아닐 터.
“제 거치 문제로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회사에 소속된 임직원들은 회장이 내린 법칙에 뒤에서 아쉬운 소리를 할지언정 조용히 따르기 나름이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는 그 법칙을 깨고 회사의 오너인 한강을 찾았다.
“거치 문제라면, 지금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단 소리인가요?”
“사실 그렇습니다. 지금 전기차 사업부는 너무 완벽합니다. 제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표로 앉혀도 충분히 해낼 겁니다.”
일론 머스크의 눈이 진지하다.
‘일론 머스크 대표의 성격은 알아주지. 고집도 확실하고. 그렇다면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볼 필요가 있어.’
“제 어렸을 적 꿈이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꿈이 되었지만, 우주여행이란 꿈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이 기분.
한강은 황당함이 담긴 눈으로 일론 머스크를 응시했다.
‘아, 우주...... 그게 있었지. 이 사람......’
일론 머스크의 또 다른 행보를 잠시 잊고 있었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던 역사를.
‘시작이 스페이스X였지......’
그의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다음 이야기를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지금 한리버는 전기차와 인터넷 사업에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그만한 힘과 능력을 갖췄다 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합니다. 만약 이걸 이룬다면 한리버는 세계를 아우르는 전설적 기업으로 재탄생하게 될 겁니다.”
설마......
“우주사업부를 설립해 저를 그 자리에 앉혀 주십시오.”
아니겠지. 했던 말이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한강은 넋 놓고 한참 동안 일론 머스크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