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54화 (154/237)
  • 154화. 23살, 아이 윤 무대에 오르다

    2007년 9월, 한리버 엔터테인먼트에 들어온 지도 일 년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

    “오케이! 좋았어. 이제 가수라 해도 믿겠다.”

    여성이 박수를 짝 치며 녹음실에 들어가 있는 지윤을 향해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합격점을 받은 지윤은 고개를 깊게 숙여 인사를 하였다.

    “다음 주면 첫 무대인데, 지금 심정이 어때?”

    녹음실에서 나오는 지윤에게 생수를 건넸다.

    “좋아요. 막 떨리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근데 빨리 올라가고 싶어요.”

    솔직한 마음을 밝혔다. 가족 외에 지인조차 모르는 한리버에서의 생활.

    과연, 자신이 TV 화면에 가면을 벗고 나온다면 사람들 반응은 어떨까?

    몹시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재밌는 생각도 들었다.

    “다들 그래. 그게 정상이야.”

    지윤의 반응이 재밌고 귀엽다. 여성은 다가가 지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처럼만 하면 잘할 거야. 걱정하지 말고 연습한 만큼만 해.”

    “네! 선생님.”

    화사한 미소가 예쁘다. 순수함이 실려있는 얼굴에 여성은 가볍게 웃고는 자리를 떴다.

    “이제 나도 가수다.”

    별거 없는 단어지만, 단어에서 찾아오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윤은 두 글자를 꼭 움켜쥐고 곧 있을 방송에 잘하리라 각오를 다졌다.

    ***

    “벌써 그렇게 됐나요?”

    시간이란 놈은 참 말없이 빨리 간다.

    한강은 흐르는 시간 속에 성장한 지윤을 떠올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무척 어두운 아이였는데.”

    늘 그늘 속에 살아가 빛을 보려던 모습에 마음이 무겁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은 빛을 찾은 아이가 되어, 되려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 주고자 하였다.

    ‘역시 사람은 환경에서 비롯돼. 환경으로 인해 꿈조차 제대로 꾸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해당 콘텐츠를 포기하면 안 될 거 같아.’

    한리버의 연습생 대부분이 콘텐츠를 통해 유입이 되었다. 아직 제대로 방송 생활을 하는 아이는 없지만, 다음 주부터 꾸준히 배출하게 될 터다.

    당연히 시작은 지윤이다.

    “회장님을 위해 자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첫 방송은 SBC에서 이뤄졌다. 전담 매니저까지 배치해 둔 상태.

    요즘 열심히 일한다며 입소문이 자자했다.

    “모처럼 그것도 좋을 거 같네요. 사람들이 너무 끼지 않는 장소로 부탁해요.”

    김동진에게 부탁하고 시선을 창가로 가져갔다.

    “휴우, 날 한번 식을 줄 모르네.”

    무더운 8월이 지나갔지만, 9월도 8월 못지않게 더웠다.

    껐던 에어컨을 다시 틀어 달아오른 더위를 식혔다.

    “다민 씨도 치료가 끝났다 하니... 이번 일만 마무리 되면 웹 드라마를 시작해도 되겠어.”

    한 인물을 떠올려 흥얼거렸다.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한다.

    막힘없이 흘러가는 사업과 사람들의 도움은 한강을 기쁘게 만들었다.

    ***

    [한리버의 신인가수 수수께끼 풀리나?]

    [한리버의 신비로 둘러싸인 ‘아이 윤’의 정체가 SBC 인기가요에서 공개된다.]

    └ 박지희: 언제 나올까 기다렸는데!!!!!!!

    └ 구본승: 기다려집니다!! 아이 윤! 아이 윤!

    └ 노동호: 콘서트 때 노래 듣고 아직도 넘 좋아서 컬러링 해뒀어요.

    └ 지석진: 난 벨소리라구~~

    한리버에서 내보낸 기사는 사람들의 이목을 확 잡았다. 이것도 전략이라면 전략.

    덕분에 오랜 시간 가면 가수에 얼굴 없는 가수로 사람 입에 오르내리던 아이 윤은 공식 데뷔를 하기도 전에 유명세를 탔다.

    “생방송 인기가요! 안녕하세요. 유노윤호예요.”

    “배슬기입니다. 윤호 씨. 오늘 엄청난 신인이 데뷔한다죠?”

    9월 둘째 주 일요일, 무대가 인기가요 시간이 되었다.

    사방에서 돌아가는 카메라들이 MC와 모여든 사람들을 찍었다.

    “그렇습니다. 인터넷 오디션 파이널 콘서트에 가면을 쓴 채 등장한 아이 윤의 정체가 최초로 이곳 인기가요에서 공개됩니다.”

    “너무 궁금해요. 어떤 분일지. 우리 빨랑 봐요.”

    배슬기가 아양을 떨며 윤호를 꼬셨다.

    “하하, 그럴까요. 온 국민을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그녀가 부릅니다.”

    “아이 윤, 좋은 날.”

    ***

    인기가요 대기실 안.

    “떨지 말고 잘해. 잘할 수 있을 거야.”

    매니저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한 지윤을 달래주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다.

    “정말 잘할 수 있겠죠?”

    “당연하지. 그동안 해온 노력이 있는데. 그리고 회장님도 여기에 오셔서 널 응원한댔어.”

    “매니저 오빠... 저 긴장 풀어주는 거 맞아요?”

    갑자기 한강의 얘기가 나오자 그렇지 않아도 쿵쾅 뛰는 가슴에 페달을 밟게 만들었다.

    “하하. 그니까 이 악물고 잘해 보라고.”

    “칫, 너무해. 이건 진짜 일부러 그런 거다.”

    지윤은 눈을 얇게 떠 매니저를 노려봤다.

    “딱 지금이다. 지금 얼굴로 나가.”

    “너무해요!”

    붉게 상기되던 얼굴에 평온이 찾아왔다.

    매니저의 농담에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게 되니 떨리던 심장이 조용해졌다.

    “잘 해봐. 그리고 회장님이 첫방이라고 선물도 준비했으니, 기대하고.”

    “선물?”

    “그래.”

    “와! 역시 우리 회장 오빠!”

    선물이란 말에 힘이 솟아났다.

    지윤은 ‘빠샤!’ 파이팅을 외치고 심호흡을 하였다.

    “시간 됐어요. 앞으로 모실게요.”

    그때 스탭이 찾아와 스탠바이할 것을 주문했다.

    “가자. 아이 윤.”

    이제 지윤이 아닌, 가수 아이 윤이다.

    매니저는 경호원과 앞장서 무대 뒤로 향했다.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그녀가 부릅니다.”

    “아이 윤, 좋은 날.”

    MC의 목소리가 들리고.

    “올라가세요.”

    스탭의 사인에 맞춰 가면을 쓴 채 무대로 올라갔다.

    와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의 비명과 같은 함성이 퍼지며 아이 윤을 불렀다. 신인임에도 열광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공기를 뜨겁게 감쌌다.

    “...자리 멋지네요.”

    한강이 자리한 곳은 카메라가 돌아다니는 맨 앞쪽 자리. 덕분에 주변에 있는 사람은 전부 SBC 직원들뿐이었다.

    “신경 썼습니다.”

    김동진은 자신 있게 말했다.

    얼굴엔 자부심이 잔뜩 서렸다.

    “저기 올라오네요. 잘하겠죠?”

    무대 위로 올라오는 지윤을 바라봤다. 지윤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자리에서 지윤을 응원했다.

    “잘할 겁니다.”

    “내 선물이 마음에 들었음 좋겠어요.”

    한강의 시선이 뒤로 이동했다.

    이 많은 사람들 중 어딘가 있을 선물을 떠올렸다.

    따라라라.

    전주가 시작됐다.

    “어쩜 이렇게 하늘은 더 파란 건지......”

    지윤의 노래가 홀을 메웠다. 함성을 지르던 사람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모두 지윤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

    지윤의 깜찍한 춤은 듣는 귀와 더불어 눈까지 즐겁게 만들었다.

    “와, 이게 라이브?”

    “쩐다.”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미로운 노래에 흠뻑 취한 목소리에 앞에 자리한 한강의 입가에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 어떡해.”

    타악!

    그때 무대 위에 불이 꺼졌다. 정전이 된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 가운데.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는 소리가 들리고.

    “......어?!”

    “어?!”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이 사라진 상태로 등을 돌린 채 무대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예감했다. 아이 윤의 정체가 공개되려 하고 있음을.

    “새로 바뀐 내 머리가 별로였는지......”

    와아아아아아아!

    정적으로 휩싸이던 홀에 사람들의 함성이 터졌다.

    노래가 시작됨과 동시에 돌려진 얼굴을 본 사람들은 환호를 하였다.

    아이 윤! 아이 윤!

    남자들은 한목소리로 아이 윤을 외치며 팬이 되기를 자처했다.

    중간에 여자들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 어떡해.”

    아이 윤! 아이 윤!

    “이런 나를 보고 그런 슬픈 말은 하지 말아요.”

    지윤은 화사한 미소를 내보이며 홀 안을 밝게 비추었다.

    “지윤아......”

    “설마 했는데......”

    이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두 남녀가 서로의 손을 꼭 붙들고 무대를 응시했다.

    둘의 눈가가 습기로 가득하다. 지금껏 어떤 경제적인 도움도 주지 못했거늘.

    지윤은 아주 훌륭하고 멋지게 성장했다.

    “지윤이 아빠.”

    두 사람의 정체는 지윤의 부모였다.

    여성은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딸의 멋진 무대를 보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딸을 응원해 주고 좋아해 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아이쿠, 하나 둘. I'm in my dream.”

    오늘을 위해 참고 또 참았다. 얼마나 참았는지 모른다.

    꿈을 향해 달려왔던 이 날을.

    지윤은 모든 걸 보여주겠단 각오로 배에 힘을 줘 자신이 낼 수 있는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고도를 높여 올라가는 음이 절정에 이르던 때, 세 번째 고음이 터졌다.

    “......”

    “......”

    홀 안에 다시 찾아온 정적.

    모두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떤 누구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Just don't make cry.

    하지만 노래는 멈추지 않고 끝을 향해 달려갔다.

    “이렇게 좋은 날.”

    와아아아아아아!

    후회 없이 쏟아부은 노래가 끝난 시점.

    사람들은 열광했다.

    라이브로 올려 버린 3단 고음에 함성과 함께 아이 윤을 불렀다.

    “아......”

    지윤은 자신을 향해 응원 목소리를 보내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사람들에게 답례를 하였다.

    이제 정말로 가수가 되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어......”

    그때 시야로 들어온 두 사람의 모습에 지윤은 크게 당황했다.

    저벅저벅, 천천히 앞으로 나오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엄마, 아빠.”

    집에 있어야 할 부모님이 앞에 있었다.

    한강의 도움으로 다시 함께 살게 된 부모님을 무대에서 보게 되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멋지다.”

    지윤의 아빠가 엄지를 세웠다.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지윤은 알 수 있었다.

    아빠의 마음을.

    이상함을 눈치챈 카메라가 지윤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를 가져갔다.

    곧 두 남녀가 카메라 렌즈에 잡혔다.

    어떤 사연이 있음이 분명하다.

    두 사람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방송에 내보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고마워요.”

    동시에 지윤의 작은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홀에 퍼졌다.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스탭은 말리지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되고서야, 사인을 보냈다.

    아이 윤! 아이 윤!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윤은 그제야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정말 멋졌다. 지윤아. 프로 세계에 데뷔한 거 정말 축하해.”

    내려오는 지윤을 매니저가 받아주었다.

    “오빠, 앞에 엄마가, 아빠가.....”

    “봤구나.”

    “으...응.”

    “나중에 회장님께 감사해해. 회장님이 오늘을 위해 준비한 이벤트니까.”

    “회장 오빠 너무해. 미리 말해 주지. 흐엉. 아앙.”

    지윤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렀다.

    동시에 한강을 탓하며 울었다.

    찰칵찰칵.

    그런 지윤의 모습을 뒤에서 몰래 사진을 찍는 이가 있었다.

    해당 카메라의 존재는 매니저도 지윤도 알지 못했다.

    스탭은 다음 준비를 위해 바빠 신경조차 쓰지 못하는 상태.

    어떤 것도 알지 못한 채.

    “대기실로 가자. 거기에 부모님이 계실 거야.”

    “응.”

    지윤은 매니저의 부축을 받으며 대기실로 이동했다.

    지윤의 얼굴에 행복감이 묻어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