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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51화 (151/237)
  • 151화. 23살, 꽌시

    홍콩의 바다와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홀 안으로 사람들은 자리를 잡았다.

    “멋지다.”

    푸른 하늘 아래로 뻗은 바다를 바라보는 윤희의 눈이 초롱초롱 빛을 뿌렸다.

    “홍콩은 처음인가 봅니다.”

    윤희의 모습에 류이첸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 네. 어린 시절 대부분을 미국에서 지내서요.”

    윤희는 한강을 슬쩍 보며 배시시 웃었다.

    “하하.”

    멋쩍은 미소를 보냈다.

    “일화는 유명하죠. 유 회장과 함께 미국에서 지낸 이야기는요.”

    한강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아는지 류이첸은 거부감 없이 아는 이야기를 털어냈다.

    “맞아요. 그때 함께 지내며 서로에 대해 천천히 알아갈 수 있었지요. 그때가 그립네요.”

    당시가 떠올랐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옛 과거.

    다섯 살의 화려한 이력과 세계 언론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이름을 알리게 된 시기.

    “아, 맞다. 모델 활동에 영화도 찍었다죠?”

    때마침 생각났다는 듯, 류이첸이 박수를 짝 쳤다.

    “아, 그건 저도 봤습니다. 하하. 정말 잘하시더군요.”

    그에 스와치 그룹 닉 하이예크 회장이 맞장구치며 크게 공감해 주었다.

    “아, 이런. 제 흑역사를 다들 보셨군요.”

    한강의 귀가 붉게 변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세계에서 유한강 회장을 모르면 외계인이란 소문이라 들릴 정도로 유명한데요. 성룡도 그 정돈 아닐 겁니다.”

    “어이쿠, 너무 띄워 주십니다. 인기배우 성룡 배우님과 저를 비교하다니. 팬들에게 로우킥 맞을 일입니다.”

    한강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 정무문을 시작으로 사형도수 프로젝트A, CIA, 러시아워 등등 모든 영화를 빼놓지 않고 다 봤다.

    “성룡을 좋아하십니까?”

    한강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류이첸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성룡 배우님을 싫어할 수 있나요.”

    물음에 즉각 대답했다. 전 세계의 수많은 팬을 보유한 대스타.

    이소룡의 다음을 잇는 액션 배우는 성룡 외에 없을 거라 말이 많았다.

    ‘이연걸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성룡 얘기가 나오니, 저도 모르게 들떠 버렸다.

    “이럴 줄 알았음, 성룡 씨도 초대할 걸 그랬습니다.”

    “아! 성룡 씨와 가까운 사이셨습니까?”

    “가깝진 않지만, 알고 지내는 정도는 됩니다.”

    “아, 정말 아깝네요.”

    류이첸의 말에 정말 아쉽다는 얼굴을 짓는 한강의 모습에 주변은 껄껄 웃음바다로 변했다.

    “다음 만찬엔 꼭 성룡 씨를 초대하겠습니다.”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만찬에 초대하겠단 의미는 한 번 더 홍콩 땅을 밟게 됨을 의미했다.

    예술의 길을 걷는 이상, 홍콩은 멀리서 할 수 없는 국가였다.

    “그때는 홍콩아트페어에 제 작품도 꼭 내걸도록 하겠습니다.”

    홍콩아트페어를 경험하고 느낀 바 컸다.

    국내 화랑이 왜 홍콩으로 모여들어 투자에 나서는지 알만했다.

    “이거 다음 만남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하며 모두 잔을 들죠.”

    어느새 말끔히 차려진 식탁 위 음식들.

    류이첸은 채워진 잔을 높이 들었다.

    “유 회장님의 좋은 작품을 위하여 건배.”

    챙!

    류이첸의 선창에 청명한 소리를 내며 잔이 부딪쳤다.

    연한 갈색빛 액체가 입안을 헹구고 몸 안으로 들어갔다.

    “크, 좋군요.”

    닉 하이예크가 시원한 감탄사를 뱉었다.

    높은 도수의 화끈거림이 몸속 깊은 곳에서 위로 타고 올라왔다.

    “딸꾹.”

    윤희는 작게 목을 꿀렁였고.

    얼굴 전체로 화기가 감돌았다.

    “사모님이 술이 약하신가 봅니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은 한국 소주를 마신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

    윤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평소 술보다 차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한강이 변호하고 나섰다.

    “이런, 그때는 티타임을 가지는 걸로 하시죠.”

    “배려 감사합니다.”

    한강은 짧게 말하며 잔에 든 알코올을 깔끔히 비웠다.

    한강의 터프한 모습에 가라앉으려던 분위기가 다시 위로 올라왔다.

    “그런데 회장님께선 중국과 홍콩에 사업을 확장할 생각이 없으신가 봅니다?”

    어느 정도 술잔이 오가고 부디 텍이 슬며시 사업 이야기를 꺼냈다.

    “제 사업의 성격상 중국에선 사업하기 힘들다 싶어 진입을 망설이고 있습니다.”

    중국은 꽌시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정부와 관계된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분명 중국이라는 땅이 매력적인 시장이긴 하나, 실패 시 리스크는 매우 컸다.

    한강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냈다.

    “확실히, 외국기업이 중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죠.”

    류이첸은 거부감없이 고개를 끄덕여 인정을 하였다.

    “하지만, 홍콩은 그래도 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부디 텍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회장님이 원한다면야, 몇 가지 사업에 힘을 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날의 인연이 지원군이 되어 적극적으로 나서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말씀 감사합니다. 실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업이 있기는 합니다.”

    한리버 메신저가 애플과 육성에 자동으로 깔려 중국 시장에 풀리고 있지만, 언제 끊길지 모를 일이다.

    ‘안드로이드는 어쩔 수 없이 중국과 엮일 수밖에 없고......’

    안드로이드 사업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위해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필수였으니까.

    중국에서 사업하기에 적당한 건, 어시스트(중고거래), 쇼핑 부분이 적당해 보였다.

    ‘오션월드와 다른 사업들은, 스마트폰 시장이 확장함에 따라 자연히 우리 쪽 시장으로 넘어오고 있어. 역시 온라인 거래만큼 좋은 것도 없지.’

    한리버 사업의 시선은 가상화폐 유통을 늘리는 방향으로 흘렀다.

    회사 내 자금 유동 흐름을 더욱 키워보겠단 의도였다.

    ‘그렇게 하려면 유통과 물류망을 늘려야 하겠지. 그렇다면.....’

    생각을 끝냈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이건 어떻습니까? 홍콩과 중국에 한리버와 합작법인으로 물류회사를 세워 보심이.”

    제조사는 위험부담이 많이 갔지만, 물류는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리버의 사업 특성상 안성맞춤 사업이었다.

    한강의 시선이 류이첸과 부디 텍을 번갈아 바라봤다.

    “호오, 꽤 대담하십니다. 바로 이야기를 하실 줄 몰랐는데 말이죠.”

    류이첸은 놀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부디 텍도 마찬가지.

    닉 하이예크는 돌아가는 상황을 조용히 지켜봤다.

    “여기 계신 분들이 도와주신다면 중국과 홍콩에서 가장 크고 최첨단 장비를 갖춘 물류회사를 만들 수 있으리라 보는데, 어떠십니까?”

    역시 합작법인이 최고라 여겨졌다.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렸다.

    “너무 갑작스러워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음이 제안으로 바뀌어 돌아오니, 조금 당황스럽다.

    “당장 답을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제안이니까요.”

    바로 이 자리에서 결론이 나리라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실망하진 않았다.

    사업이란 게 원래 이렇게 시작해 하나둘 만들어나가는 거 아니겠나.

    “하하, 완전 역으로 당해 버렸습니다. 이미 생각해 둔 게 있으셨군요.”

    류이첸은 이마를 탁 치며 통쾌하게 웃었다.

    “물류회사를 어떻게 운영하실 참입니까?”

    현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닉 하이예크가 지대한 관심을 내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계획서라도 가져올 걸 그랬습니다. 간단히 말씀을 드린다면 한리버에서 운영하는 메신저를 이용해 정확히 며칠 몇 시까지 도착하는지 알려주고, 최종적으로 운반물이 어떤 차량을 이용해 누가 전달하는지 세세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한리버가 다음으로 걸어갈 사업군입니다.”

    머릿속으로 정리되지 않은 말을 꺼내려니 참으로 힘겹다.

    하지만, 한강의 사업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호기심을 가지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진한 관심의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거 생각이 확 바뀌게 만듭니다.”

    류이첸이 먼저 반응을 하였다.

    “이거 저도 강하게 끌리는데요.”

    부디 텍도 관심을 보였다.

    “확실히 좋은 아이템입니다. 한리버의 기술력과 어울리는 사업입니다. 회장님이 사업을 시작한다면, 스와치에서 긍정적으로 투자의사를 밝히고 싶을 정도입니다.”

    닉 하이예크는 진한 돈 냄새를 맡았다. 이건 무조건 되는 사업이라 생각했다.

    “이거 가볍게 만난 자리가 합작법인 사업 자리가 되었습니다. 하하.”

    “한데, 이게 또 싫지가 않아 문제다 이 말이죠.”

    류이첸의 말에 부디 텍이 말을 이어받았다.

    “그럼 이럴 게 아니라, 이참에 사업에 대해 좀 더 깊게 이야기를 나눠 봄이 어떻습니까?”

    닉 하이예크가 대화의 방향을 이끌었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이 들었는지 손을 잡고자 하였다.

    “여기 여성분들이......”

    한강의 시선이 옆으로 이동됐다.

    “여기는 걱정 마. 여자끼리 대화를 나누실래요.”

    윤희가 싱긋 웃고 함께 온 세 부인에게 제안을 하였다.

    “남자들이 사업 이야기에 빠져 지루하던 차였는데, 우리 저기서 티타임을 가져요.”

    닉 하이예크의 부인이 크게 반겼다.

    나머지 두 여성도 크게 동조하며 함께 자리를 피했다.

    ‘하여튼, 방해되는 걸 무지 싫어한다니까.’

    스스로를 내조의 여왕이라 칭하는 여자다.

    사랑이 듬뿍 담긴 눈으로 한쪽 편에 자리를 잡은 윤희를 바라봤다.

    “참 좋은 여잡니다.”

    “맞아요.”

    “회장님께서 잘하셔야겠어요.”

    이에 자리에 남은 남자들은 윤희를 칭찬했다.

    현시대에 찾기 힘든 여자란 생각을 하였다.

    “네, 정말 멋진 여잡니다.”

    아내의 칭찬에 어깨가 올라간다.

    덕분에 중국 진출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후후, 눈에 하트가 가득하십니다. 그럼 우리 다시 사업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합시다.”

    류이첸은 주변을 환기하고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자 요청했다.

    동시에 자리는 한층 무게감이 실렸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던 한강은 조금 더 정돈된 사업 이야기를 셋에게 설명하였다.

    셋은 곧 한강의 대화에 푹 빠져들었다.

    ***

    [홍콩아트페어에 전시된 안성하 씨의 그림이 한화 약 6억 원에 낙찰됐다. 낙찰받은 사람은 놀랍게도 한국의 유명 예술가로 우뚝 선 데 이어 국내 IT를 주도해 나가는 한리버 그룹 유한강 회장으로 밝혀졌다.]

    [안성하 화가는 스페인 아르코아트 페어, 소더비 뉴욕의 첫 ‘아시아 현대 미술 경매에도 작품을 낼......]

    한강이 홍콩으로 간 지 이틀이 되던 날, 한국은 한강의 첫 경매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외국 화가의 그림도 아닌, 한국의 신인 화가의 그림을 예상치보다 높게 인수한 사실에 한국 사회는 한강을 크게 띄워 주었다.

    “그분에게 정말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안성하는 한국에 복귀해, 자신의 작품을 높은 값에 구입해준 한강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기자들은 안성하의 이야기를 기사화해 사이트에 올렸다.

    한국에서 한강에 대한 기사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때.

    “한국으로 복귀해 해당 사업에 대해 준비를 하겠습니다. 자잘한 건, 아랫선에서 맡도록 하지요.”

    한강은 한국으로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말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담엔 홍콩이 아닌, 한국에서 뵙게 되겠습니다.”

    류이첸과 부디 텍은 아쉬운 얼굴로 한국으로 향하는 한강과 악수를 하였다.

    쉬이이이이이이.

    얼마 후, 홍콩 공항의 활주로를 긁고 한강과 윤희를 태운 비행기가 하늘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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