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50화 (150/237)
  • 150화. 23살, 첫 경매 낙찰

    ‘왜 홍콩이 뜨고 있는지 알겠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찬찬히 눈여겨봤다.

    ‘베트남에서도 많이 왔네.’

    베트남 식품과 유통업계를 책임지고 있는 빈 그룹과 마산 그룹 관계자가 자리해 있었고, TPG아시아 캐피탈 경영진도 보였다.

    글로벌 큰손들이 미술품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홍콩아트페어를 찾았다.

    “어라, 저 사람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한 장소에 시선을 가져갔다.

    베이지색 슈트를 차려입은 백금발 중년인을 응시했다.

    “닉 하이예크 회장...... 엄청나네.”

    스와치 그룹 회장 닉 하이예크.

    세계적으로 시계로 유명한 기업인 스와치 그룹은 오메가, 브레게, 블랑팡 등의 명품시계를 제조하고 있으며, 중소 브랜드로 캘빈 클라인, 스와치 등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대단한 곳이었다.

    그곳의 오너도 사람들과 모여 미술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왜?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걸음을 멈추고 한 곳에 시선을 가져가는 한강의 모습에 윤희가 귀에 가져가 소곤거렸다.

    “아, 아는 사람은 아니고. 대단한 분을 보게 돼서.”

    “어?! 누구??”

    “저기 있지, 저 사람.”

    한강이 손가락을 펼쳐 슬쩍 가리켰다.

    무례로 오인할 수 있어 가리킨 손가락을 바로 내렸다.

    “베이지 옷?”

    윤희도 봤는지, 확인을 요했다.

    “응, 저분이 바로 스와치 그룹 회장이야.”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눈썰미가 대단하십니다.”

    근처로 다가온 류이첸이 눈을 빛냈다.

    “하하, 그냥 제가 시계를 좋아해 신문에서 자주 보다 보니......”

    “그거 아십니까? 현상수배범 전단지를 돌려도 대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무시한다는 걸?”

    “하하......”

    민망한지 볼을 살살 긁었다.

    “한데, 유 회장님은 신문에서 본 사진 하나로 저 사람을 알아봤어요. 우리야 종종 봐서 안다지만, 대단하십니다. 역시 예술가의 눈은 다른가 봅니다. 하하.”

    류이첸은 호탕하게 웃으며 걸음을 옆으로 틀었다.

    어?!

    류이첸이 향하는 방향에 한강은 당황했다.

    그의 걸음이 방금 언급한 스와치 그룹 회장 닉 하이예크에게 향하고 있던 까닭이다.

    “류이첸 회장이 소개를 해주려나 봅니다. 어서 가시죠.”

    당황하는 한강에게 부디 텍이 은근한 미소를 흘렸다.

    한강은 저도 모르게 어정쩡한 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여, 이게 누구십니까. 하이예크 회장님 아니십니까.”

    꽤나 안면이 있는지, 류이첸은 부담 없이 그에게 다가가 알은체를 하였다.

    “류 회장님도 오셨군요. 오늘은 또 얼마나 쓰시려고 오셨습니까.”

    “하하, 저보단 이분들이 더 쓰게 될지 모릅니다.”

    닉 하이예크와 대화를 나누던 류이첸은 시선을 뒤로 향했다. 닉 하이예크의 눈도 따라 움직였다.

    “오! 이분은!”

    닉 하이예크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그 유명한 한리버 회장입니다.”

    류이첸은 예상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미소를 보냈다.

    “팬입니다. 작은 시계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닉 하이예크입니다.”

    닉 하이예크는 자신을 낮춰 소개했다.

    이미 자산규모는 유한강이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어리지만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력자.

    이것이 닉 하이예크가 생각하는 한강의 위치였다.

    “너무 겸손하십니다. 스위치가 작은 회사면 세계에 뻗어 있는 기업은 구멍가게에 불과할 겁니다. 한리버 회장 유한강입니다.”

    그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둘은 손을 맞잡고 묵직한 무게감을 주고받았다.

    “류이첸 회장님 덕에 대단한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따 다 같이 식사라도 하는 것이.”

    닉 하이예크가 기분 좋게 식사를 제안했다.

    “당연히 가야지요. 부디 텍 회장과 유한강 회장님은 가실 거지요?”

    류이첸이 반색했다. 부디 텍에게 동의를 얻은 후, 한강을 바라봤다.

    “제 아내와 함께라, 아내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에 한강은 윤희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 이 아름다운 분이 유한강 회장의 부인이셨군요. 실례했습니다.”

    닉 하이예크가 급히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였다.

    “아니에요. 좋은 분들과 식사를 나누는데, 우리가 빠질 수 없죠.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한강의 유명세만큼이나, 윤희도 제법 유명하게 언론들 사이에 다뤄졌다.

    한리버 유한강 회장의 아내라는 의미는 육성그룹의 막내딸임을 의미했다.

    윤희는 여유로운 미소로 닉 하이예크의 제안을 수락했다.

    현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본능적으로 느낀 것도 있지만, 남편의 미래를 방해하는 아내가 되기보다 함께 발맞춰 나아갈 수 있는 동반자가 되길 바랐다.

    “이거 시원하십니다.”

    이윤희의 말에 모두는 기뻐했다.

    한강도 그중의 하나였다.

    동시에 고마운 눈을 보냈다.

    ‘나한테 잘해.’

    한강의 미소에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떴다.

    “그럼 이따 정문 앞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요.”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약속을 정하고는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이것 봐봐. 이거 엄청 신선하다.”

    윤희가 벽에 걸린 하나의 그림을 가리켰다.

    “오... 느낌 있는데?”

    투명한 재떨이 안에 들어있는 알록달록한 사탕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크게 클로즈업해 극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치? 나 이거 너무 맘에 들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다른 장소로 이동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걸로 정한 거야?”

    “응.”

    “그래, 이걸로 정하자.”

    한강도 해당 그림이 썩 괜찮다 여겼다.

    참신하고 재밌게 다가왔다.

    “어떤 화가일지 궁금하네. 안성하 화가님이라......”

    어떤 화가일지 떠올리며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

    “2700만 홍콩달러.”

    와!

    주변이 술렁인다.

    한국 돈으로 약 40억이 넘어가는 돈.

    크리스티 경매에서 연달아 천만 단위에 이르는 경매가가 연신 터져 나왔다.

    그들은 단 한 인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더 없습니까? 2800만 없습니까?”

    미술품 경매의 마에스트로라 불리우는 경매사의 목소리가 홀에 퍼졌다.

    경매사는 주변을 둘러보며 금액을 높여 불렀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다 ‘쾅’ 망치를 경매봉을 나무판에 찍었다.

    “27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됐습니다.”

    쩡판즈의 마스크가 2700만 홍콩달러에 주인이 정해졌다.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예술계 거부는 다릅니다. 허허.”

    류이첸은 지금까지 경매에 낙찰받은 금액만 약 2억5천만 홍콩달러.

    환화로 400억이 넘는 미술품을 가져갔다.

    부디 텍은 작게 감탄하며, 역시란 눈빛을 보냈다.

    “회장님도 만만치 않으시면서 새삼스럽습니다.”

    부디 텍도 류이첸이 사용한 자금 규모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다.

    “정말 대륙은 대단해.”

    윤희가 조용히 속닥였다.

    아무리 한국 최고 재벌 가문의 딸에, 세계급 부자를 남편으로 두고 있어도 중국부호들의 씀씀이는 매우 놀랄 일이었다.

    “나도 그래.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보니 억 소리 난다.”

    한강도 이에 동의하고 나섰다.

    하지 못할 행위는 아니나, 성격상 필요 이상의 자금을 쓰는 건 성격에 맞지 않았다.

    “싸게 샀으면 좋겠는데.”

    “에이, 그런 말 하면 못써. 작품의 가치는 인정받아야 마땅하지. 난 자기가 선택한 그림이 제값을 받았음 해.”

    예술가라 그런지,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이 달랐다. 두 눈으로 예술적 가치를 목도했기에 그만한 값을 치르길 바랐다.

    더욱이 같은 한국 사람이 그려낸 작품이다.

    책임감을 느꼈다.

    “어, 나왔다!”

    몇 번 더 경매가 이뤄지고, 기다리던 작품이 나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과연 얼마에 낙찰을 받을 수 있을지, 손에 든 번호를 꽉 쥐며 반드시 가져가겠다 각오를 다졌다.

    “이번 작품은 한국 화가인 안성하 씨가 그린 재떨이 안 알사탕입니다.”

    사탕이 그림에서 튀어나올 거 같은 높은 표현력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찮게 생각하는 사탕은 우리에게 작은 위안을 건네주기도 합니다. 이 미미한 사탕이 그림 안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가졌음 하셨습니다. 가격은 1만 홍콩달러로 시작하겠습니다.”

    경매가 시작됐다.

    “5만.”

    곧장 5만 홍콩달러를 불렀다. 주인공은 유한강이었다. 처음으로 경매에 나섰다.

    “호오, 저걸 기다리고 있었나 보구려. 어쩐다. 나도 마음에 들었는데.”

    류이첸이 눈치를 보며 고심한다.

    “하나 정돈 양보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근처에 있던 부디 텍이 조용히 속닥였다.

    “그렇군요. 첫 자리이니만큼. 지켜보도록 하지요.”

    둘은 이번 경매에서 빠지기로 하였다.

    팬심이 작용했다.

    “20만!”

    둘의 대화가 오가는 사이 4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점프했다.

    “30만!”

    한강은 한 번 더 크게 불렀다. 현장은 점차 뜨겁게 달아올랐다.

    현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한강을 알아보며 경쟁에 들어갔다.

    “100만!”

    가격은 단숨에 백만 자리로 점프.

    의기양양한 30대 남성의 시선이 느껴졌다.

    “200만.”

    한강은 지지 않고 맞섰다. 우리나라 돈으로 3억 원에 달하게 되었다.

    한강은 비릿하게 웃었다.

    이익!

    남자의 눈이 활활 타오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 번호를 들었다.

    “260만이 되었습니다.”

    경매자가 크게 외쳤다.

    “저 사람 누군지 아십니까?”

    치열한 공방전을 지켜보던 류이첸이 물었다.

    “모르겠군요. 저도 처음 봅니다.”

    한강과 경쟁을 벌이는 젊은 남자를 본 부디 텍은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그렇다는 건 중요하게 볼 정돈 아닌가 보네요. 걍 두도록 합시다.”

    “동감입니다.”

    아는 자였으면 눈치를 주어 양보를 하게끔 하려 하였으나,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닌 걸로 보였다.

    “400만, 하나 둘 셋.”

    쾅!

    때마침 경매봉이 나무판을 찍어 낙찰을 알렸다.

    환화로 약 6억 원에 해당하는 거금이 사용됐다.

    “쳇.”

    경쟁하던 남자는 입맛을 다시고는 한차례 노려보는 걸로 경매를 포기했다.

    “됐다!”

    낙찰에 윤희가 작게 만세를 불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얼굴엔 그림의 주인이 되었다는 기쁨으로 차올랐다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처음으로 경매해서 원하는 걸 손에 넣었는데.”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얼굴로 한강을 응시했다.

    ‘이럴 때 보면 누가 위인지 모르겠어. 뭐 이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 모습이 꼭 재석을 보는 것 같아, 귀엽게 느껴졌다.

    화날 땐 분명 소름이 쫙 돋는 도깨비였는데, 어쩜 저리 표정이 다채로운지 놀랄 일이다.

    “그걸로 만족하십니까?”

    길고 긴 경매시간이 끝났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리던 류이첸이 아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걸로 만족합니다. 다음 기회가 있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임해 보겠습니다.”

    이번 경매에서 약 50억 원 정도로 두 작품을 낙찰받았다.

    “그때는 좋은 경쟁이 되길 바라죠. 약속대로 오늘은 제가 크게 쏘겠습니다. 모두 가시죠.”

    류이첸이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곧 고가의 승용차가 출입문 앞에 일렬로 세워졌다.

    닉 하이예크 회장 부부를 필두로 짝을 지어 차량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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