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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49화 (149/237)

149화. 23살, 홍콩아트페어 초대장

딴!

[1등 금액 1억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소득세법 시행령 제87조 기타소득의 필요 경비계산’에 따라 원천징수되는 440만 원을 제외한 ₩ 95,600,000원이 입금됐습니다.]

딴!

[입금 금액: ₩ 95,600,000원.]

“......휴. 통장계좌를 따로 설정해서 다행이야.”

세금 관련 고지서도 회사로 오는 만큼, 걸리지 않을 거다.

한강은 크게 안도하고, 폰을 내려놓았다.

“아니야... 말하는 게 맞아. 숨긴다니 말도 안 되지.”

다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거짓말을 싫어하는 자신이 양심을 속이려 했다.

“하하...... 이런 건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내가 겪다니...... 솔직히 말하고 사과하자.”

깊이 반성했다. 숨기려 했던 마음을 솔직하게 밝히기로 하였다.

“회장님께 편지가 왔습니다.”

문을 열고 여비서가 들어왔다. 손에는 편지가 들려 있었다.

“홍콩?”

편지 끝단에 보이는 영문을 읽었다.

“아직 홍콩에 진출한 일이 없는데, 무슨...... 이건?”

『홍콩아트페어 초대권, 위더야오 부디 텍 올림.』

“헐, 여기에 나를......”

세계적으로 비싼 미술품을 거래하는 스위스의 바젤아트페어 기간에 자가용 제트기 수백 대가 뜨고 내린다 한다.

그와 비견되는 행사가 홍콩에 열렸다.

홍콩에는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터를 잡고 있다. 초대형 아트페어와 경매가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되자, 부자들의 발길은 홍콩으로 향했다.

그런 대단한 곳에서 초대장이 왔다.

한창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중국계 인도 부호 부디 텍 회장으로부터.

“그러고 보면 내 작품을 팔기만 했지, 타인의 작품을 보거나 구입을 한 적이 없구나.”

윤희와 자신의 작품들로 전시된 집.

전생에도 타인의 작품을 구입해 본 경험이 없었다.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괜찮을지도 모르겠는걸.”

돈도 썩어나겠다, 윤희의 기분을 풀어줄 겸 다녀오면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고마워요. 오늘 일찍 퇴근해 볼 거니, 일정은 잡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여비서를 내보냈다.

가방에 초대장을 넣고, 책상을 정리했다.

퇴근 시간이다.

***

“뭐어!?”

저녁 시간, 청담동 고급빌라 안.

윤희의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벽을 두들겼다.

실망으로 가득한 두 눈이 한강을 향했다.

“미안, 숨기려던 건 아니었고. 말하기가 참 그랬어. 자기가 기뻐하는 모습에 찬물을 껴안기도 미안했고, 내가 일등 한 것도 도착해 알았어.”

굵고 짧게 ‘미안해’ 한마디로 끝내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방어적인 변명들이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줄줄이 새어 나왔다.

“아, 빡쳐.”

“......?!”

입이 쏙 들어갔다. 처음으로 듣게 된 윤희의 욕!

한강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나 정말 화났어.”

“어, 어.”

“진짜로 화났다고.”

“......”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한강은 고개를 숙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고개를 숙여 본다.

“내가 왜 화났는지 알아?”

끄덕. 고개를 흔들었다.

“뭔데?”

“숨긴 거.”

“모르네. 내가 왜 화났는지.”

“......”

머리에 순간적으로 마비가 왔다. 당기는 이 기분.

처음으로 을이 되었다.

“미안해.”

“그러니까, 뭐가 미안한데.”

“......다.”

이쯤 되자 자포자기 되는 심정. 오늘따라 일이 하고 싶었다.

“하...... 정말 모르는구나.”

평온한 얼굴로 말해 더 무섭다.

윤희는 무심한 눈으로 한강을 응시했다.

‘뭔지 말해줘야 알지.’

한강은 속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밖으로 밝히는 실수는 범하지 않았다.

“내가 화난 이유는... 나를 그 정도 여자로밖에 보지 않았다는 거야.”

“아......”

윤희가 화난 이유가 밝혀졌다. 한강의 입에서 나왔음 하는 바람이었지만, 기다려도 나오지 않을 거 같자 직접 언급했다.

“내 남자가 일등 했는데, 내 기분이 좋지 않을 일이 어딨어.”

“의심한 건 내 잘못이야.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아무리 60년 70년 80년의 기억을 가지고 수많은 경험을 하였다 한들, 여자의 생각을 따라가는 건 무리인가 보다.

한강은 미안하다는 말 대신, 다시는 이런 일은 없을 거라 밝혔다.

“그래도 예쁘네. 이렇게 말할 줄도 알고.”

굳었던 윤희의 얼굴이 돌아왔다. 윤희의 웃는 모습은 얼었던 겨울왕국에 봄꽃을 피우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건 뭐야?”

그러기를 잠시, 윤희의 시선에 가방 위에 올려진 편지로 향했다.

“전에 라움에서 봤던 부디 텍 기억나? 대자연의 즉흥곡을 60억에 낙찰받은.”

“아, 그 인도 부호. 그런데?”

“그 사람이 보내온 홍콩아트페어 초대장이야.”

“와, 진짜?!”

윤희도 미술관 라움을 운영하는 만큼, 홍콩아트페어에 대해 잘 알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수많은 고가의 미술작품들이 모여드는 장소는 부호들에게 있어 예술의 성지와도 같았다.

“그럼 우리 거기 가는 거야?”

“응, 우리 한 번도 다른 미술관은 안 가봤잖아. 이번에 경매에 나서 보려고.”

“재밌겠다.”

기분이 확 풀어진 윤희 얼굴에 기대감이 실렸다. 그래서일까, 한강의 얼굴도 무척 가볍게 변했다.

“재석이는 어쩌지?”

“재석이는 엄마한테 잠시 맡겨두자. 지연이랑 지혜도 있으니까, 잘 돌봐줄 거야.”

“그럴까?”

“그렇지 않아도 둘이 보고 싶다 난리야.”

재석을 좋아하는 어린 두 고모들.

잠시 재석을 맡겨도 될 것이다.

재석도 두 고모를 잘 따랐다.

“음......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윤희는 남편의 뜻을 따르기로 하였다.

“휴......”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났다. 한강은 크게 안도하고 그제야 마음을 놓고 두 다리를 쭉 펼 수 있었다.

***

압구정 아파트.

“와! 재석이다.”

지연이 먼저 나와 재석을 반겼다.

“지연이가 많이 변했네. 예전엔 오빠 하면 깜박 죽었는데.”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지연은 성숙한 아가씨의 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운동도 제법 하는지, 들어갈 곳과 나올 곳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언니 안녕하세요. 호호.”

반면, 지혜는 능글맞게 변했다. 귀여움을 발산하는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눈을 초승달로 만들어 윤희에게 보냈다.

“아가씨, 재석이 잘 부탁해요. 이건 두 분에게 주는 거고 이건 재석이 용돈이에요. 그건 아가씨들 위해 쓰시고, 재석이에게 필요한 건 이걸 사용하세요.”

“고마워요. 언니!”

“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헤헤.”

“허......”

대놓고 받는 지혜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받는 지연.

확연히 다른 둘의 모습에 황당한 눈이 되어 둘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맡겨도 되는 거지?”

한강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둘을 응시했다.

“고럼고럼.”

“네!”

둘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호호, 아가씨 담에 백화점 같이 가요. 재석아 고모들과 잘 놀고 있어. 엄마랑 아빠 후딱 다녀올게. 알았지?”

윤희는 둘의 모습이 마냥 귀여워 가볍게 웃고 재석을 맡겼다.

“꾸우우.”

재석은 고모들 품에 안겨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지혜는 그대론데, 지연이가 아주 여우가 됐네. 됐어.”

아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온 한강의 한탄이었다.

순수함을 무장하고 늘 오빠 하며 따라붙던 귀여운 동생은 사라지고 남자의 속을 긁는 여우만이 남아 있었다.

“어때. 예쁘고 귀엽기만 한데.”

윤희가 슬쩍 안겼다.

오랜만에 나서는 여행이란 생각에 기분이 좋은가 보다.

“뭐, 그렇지. 가자.”

말이 그렇지, 실은 한강은 두 동생을 무척 사랑했다.

누구보다 믿어주고 아꼈다.

후련한 마음을 안아 들고 홍콩으로 향했다.

쉬이이이이이이이.

성룡 영화 하면 떠오르는 나라, 홍콩에 도착했다.

97년 중국에 홍콩을 반환 시점 15만5천 제곱미터로 확장한 홍콩컨벤션센터가 있는 빅토리아 항구 앞 인공섬 땅을 밟았다.

“홍콩이다!”

윤희가 크게 소리쳤다. 양팔을 하늘로 쭉 뻗어 홍콩의 공기를 만끽했다.

“확실히 멋진 곳이야.”

영국의 영향을 크게 받은 곳. 높디높은 빌딩 숲과 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카메라에 모든 걸 담아냈다.

“그런데 정말 홍콩 처음 온 거 맞아? 어떻게 나보다 더 잘 알아?”

길을 걷다 윤희가 궁금한 시선을 보냈다.

“아, 하하. 당연히 인터넷으로 미리미리 조사를 해뒀지.”

한강은 머쓱한 얼굴로 하하 웃고는 살짝 뜨끔거리는 시선을 하늘로 보냈다.

‘전생에 지겹도록 온 곳이 홍콩이라고 말 못 하지.’

제법 오래됐지만, 막상 홍콩에 발을 붙이니 여러 기억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땐 정말 기업가라기보단, 예술가에 가까웠지.’

기업가가 되기 싫었지만, 환경은 기업가로 흐르게 만들었다.

옛 기억에 젖어가니 한편으로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나름 재밌는 기억이 있던 때였다.

“훔, 그래? 대단하네. 그것만으로 길을 찾아다닐 수 있구나.”

종종 느끼지만, 참으로 신비로운 남편이었다.

“길 안 헤매고 잘 다니면 좋은 거지. 시간 됐다. 가자.”

더 이상한 말이 나오기 전에 손을 잡아끌었다.

“여, 유 회장.”

아트홀에 들어서자, 누군가 걸어 나왔다.

와인색 계열의 정장을 갖춰 입은 부디 텍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부디 텍을 알아본 한강은 손을 맞잡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윤희는 다소곳한 자세로 인사를 하였다.

“오, 이게 누구신가. 오늘 참 아름답습니다.”

모처럼 들른 장소인 만큼 어느 때보다 옷에 힘을 준 윤희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백색 정장이 윤희의 미모를 한껏 돋보이게 해주었다.

“감사해요.”

귀부인의 자태가 이러할 거다. 몸매를 훤히 드러낸 옷,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 충분했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갑세. 내 소개를 시켜 줄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네.”

부디 텍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한강의 손을 잡아 끌어 안으로 들어갔다.

“어딜 그리 바쁘게 다니십니까. 회장님.”

몇 걸음 떼기도 전에 검은색 옷으로 도배한 남성이 다가왔다.

“그렇지 않아도 찾고 있었습니다.”

부디 텍에게 다가온 중년인의 시선이 한강 부부에게 옮겨갔다.

“이분은 혹시, 한리버?”

“역시 류이첸 회장님이십니다. 인사 나누시죠. 여긴 중국 보험사 선라인을 운영하는 류이첸 회장님이십니다.”

류이첸, 중국의 금융계 거인으로 위더야오 부디 텍과 같이 예술계 큰손으로 이름이 높았다.

“유명한 류이첸 회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쪽은 제 아내입니다.”

류이첸 이름을 듣자마자, 한강의 눈빛이 변했다.

‘허허, 이런 인물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화학, 부동산, 금융 등 10여 개의 지주회사인 선라인 그룹의 주인.

추정 자산은 1조2천억 원.

중국의 1% 거부다.

“이윤희예요. 육성그룹 이건호 회장님이 아버지 되세요.”

윤희가 자신을 간단히 소개했다.

“여기서 한국의 거인을 보다니, 제가 인복이 있나 봅니다. 홍 여사님은 잘 계시죠.”

“잘 계세요. 저희 어머니를 아시나요.”

“라움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류이첸은 윤희를 한껏 띄워주었다.

“다음에 라움에 들러주시면,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피는 어디 가지 않는다. 윤희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류이첸과 친분을 맺고자 하였다.

“꼭 들르지요. 그때를 기대하겠습니다.”

류이첸은 기꺼운 얼굴로 윤희를 바라봤다.

“경매가 무척 기대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 경매는 다른 날과 달리 후끈 달아오르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류이첸의 말에 부디 텍은 시선을 돌려 한강을 응시했다. 한국의 최대 거부이자 세계 100대 부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남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즐거운 상상에 빠졌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유 회장님.”

넷은 수행원과 경호원들을 앞세워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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