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48화 (148/237)
  • 148화. 22살, 이모티콘 공모전

    슥슥.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인물화와 풍경화 등을 취급하다 만화스러운 캐릭터를 그리니, 묘한 기분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재밌어.”

    비율 따위 무시하고 내키는 대로 펜을 그었다. 가분수로 이뤄진 세 캐릭터.

    성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아이로 구성된 이모티콘이었다.

    성인 남자는 캔버스를 던지며 ‘갸악!’ 대사를 던졌고, 성인 여성은 미술품을 보며 ‘예뻥’이라 말했다.

    쪽쪽이를 문 아이는 ‘내 꼬야!’를 외치며 바닥에 눈물을 쏟았다.

    “크크.”

    세 캐릭터는 다름 아닌, 한강의 가족을 모티브로 삼은 이모티콘이었다.

    현실 모습과 많이 다르지만, 나쁘지 않다 여겼다.

    “모든 유부남들이 공감하는 짤을 그려보자.”

    한강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며 성인 남성과 여성을 그렸다.

    ‘이틀간 친정에 다녀올게’, ‘더 머물다 와’ 대사를 치는 것들을 시작으로 끝에 ‘예쓰! 내게도 자유가!’를 외쳤다.

    캐릭터들은 깨발랄하면서 슬픔과 기쁨을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이 정도면 됐겠지.”

    어느새 기본 작업이 끝났다. 남은 건 컴퓨터로 옮겨 작업하는 일만 남았다.

    “세상 참 좋아졌어.”

    한강은 빠르게 그림을 컴퓨터로 옮겼다.

    ***

    한 달이 지났다.

    “웹소설과 웹툰 매출이 최근 들어 크게 증가했습니다. 전월 대비 120% 올랐습니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풀리며 월드 플레이를 더불어 파라다이스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늘어 갔다.

    아주 단순하지만,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한강의 시선은 파라다이스 서찬수 사업본부장을 응시했다.

    “시장규모는 어떻게 될 거 같아요?”

    “자세히 따져봐야 알겠지만, 약 3천억 규모로 확대될 걸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3천억......”

    고작 스마트폰 하나에 한리버의 사업 가치가 확 바뀌었다. 이로 인해 다른 산업도 크게 발달하겠지만, 어떤 기업보다 큰 특혜를 보는 기업이 한리버였다.

    메신저와 연동된 오션월드, 음악사업, 어시스트(중고거래), 방송 등등 많은 분야의 매출이 급등했다.

    “이대로 흐르면 웹툰까지 포함해 1조 원이 넘는 시장이 형성될 거라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해졌네요.”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시장을 장악하겠습니다.”

    “네, 그리 해주세요. 이참에 신규 작가들을 받아들이고, 출판사들 접촉해 계열사로 편입시키세요. 작가님들 편의는 무조건 보장받아야 합니다.”

    한강은 몇 번이고 작가들의 편의를 봐 줄 걸 당부했다.

    “너무 게으른 작가님들은 회사로 소환해, 글이 잘 써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세요.”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일명 ‘통조림’이라 하는 이걸, 아낌없이 사용하라 일렀다.

    열심히 일하는 작가들과 비슷한 대우를 바란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니 억지로라고 글을 쓰게 할 참이다.

    “홍성민 대표님.”

    시선을 옆으로 이동했다.

    “네.”

    “이모티콘 공모전은 어떤가요?”

    한강의 눈에 기대감이 실렸다.

    “내일부터 3일간 체험판을 걸쳐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인기 이모티콘을 추려 수상작으로 뽑게 될 겁니다.”

    “수상자 발표는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대회 참가자 기본 조건이 스마트폰 메신저 사용자입니다. 모든 수상자에게 메신저로 메시지가 갈 것이고, 이모티콘 샵에서 순위가 실시간으로 노출이 될 겁니다.”

    “3일간 가장 많이 사용한 작품이 수상작이 되겠네요.”

    “그렇습니다.”

    제법 합리적으로 맞춰 놓았다. 동시에 긴장도 되었다.

    “순위 노출은 몇 위까지 해놓으셨나요?”

    “1천 위까지 하기에 힘들 거 같아, 1백 위 선으로 정했습니다.”

    “결국 1백 위 내 들어야 노출이 되고 그걸로 인해 유입이 늘어 사용자가 증가하겠네요.”

    “네, 아무래도 그럴 걸로 보입니다.”

    “더 고생해 주세요.”

    두근두근, 심장이 펌프질을 한다.

    임원진조차 참가 여부를 모르는 탓에 떨림은 어느 때보다 더했다.

    ‘이거 은근히 승부욕이 생기는데?!’

    처음엔 수상작에 올랐음 좋겠다 생각했는데,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순위 탓에 강렬한 경쟁심리가 정신으로 파고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회의를 마쳤다. 한강은 먼저 자리를 떴다.

    “......”

    한강이 나가는 문을 조용히 응시하는 인물이 있었다.

    “좀 더 지켜보자.”

    주인공은 일론 머스크.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작게 속삭이고는 시선을 거두고 회의장을 벗어났다.

    곧 회의장은 암전이 되었다.

    ***

    [한리버 이모티콘 공모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당 이모티콘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리버는 3일간의 점수를 따져 최종 수상작을 뽑을 계획이라 밝혔다.]

    [수상작 기준은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순위를 보면 유추가 가능하다.]

    [공모전 종료 시, 일간/주간/월간으로 구분해 순위를 나눌 예정이다.]

    한리버 기사가 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만큼, 작은 움직임에도 세계는 한강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 고진감래: ㅋㅋㅋ 임티 개 웃기놐ㅋㅋ

    └ 고진감래: /뿌웅.

    강아지 모습의 캐릭터가 나와 방귀를 뀌는 모습이 메신저창에 떴다.

    └ 자진납세: ㅋㅋㅋ 요즘 한리버 약 빰.

    └ 자진납세: 난 그거보다 극 공감 짤 찾음.

    └ 자진납세: /이틀간 친정에 다녀올게.

    └ 자진납세: /예스! 내게도 자유가!

    └ 고진감래: 뭐야 ㅅㅂ ㅋㅋ

    └ 고진감래: 개 현실 갑이네. 나도 급 다운 ㄱㄱ.

    한리버 메신저에서 취급하는 기본 이모티콘으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몰랐는데, 다양한 이모티콘이 생기면서 표현의 영역이 크게 늘었다.

    동시에 찾아오는 공감과 재미는 대화를 넘어 표현의 길로 접어들었다.

    『1위 괴짜토끼

    2위 웨딩망작

    3위 날 좋아하니 당근

    4위 똥싼 댕댕이

    5위 조선왕조씰룩

    6위 고자라니

    7위 ......』

    “흠... 이거 아무리 봐도 나랑 재석일 닮았단 말야.”

    윤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틀간 친정에 다녀올게.

    “......음.”

    /더 머물다 와.

    “에이, 아닐 거야. 설마......”

    실시간 2위에 오른 ‘웨딩망작’이 신경을 계속 긁었다.

    모든 대사가 참으로 신경 쓰였다.

    “재석이 아빠가 이런 걸 만들 리 없지. 그리고 일하는 사람이 이럴 시간이 어딨어.”

    의심을 가지던 생각을 지웠다. 다른 남자는 모르지만, 한강은 절대 그럴 일 없다 믿었다.

    “후후, 그래도 내가 3위라니. 아이 좋아!”

    바로 3위에 오른 걸 보고 행복감이 찾아왔다. 윤희가 그린 당근당근.

    /녀석 당근감이네.

    /사랑은 당근이야.

    /딸근 보다 당근.

    대부분이 드립으로 이뤄진 이모티콘들.

    빨갛고 주홍빛의 당근들은 강한 눈길을 끌었다.

    “후후, 이따 자랑해볼까?”

    사랑하는 마누라가 남편의 회사 공모전에서 수상 후보작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들떴다.

    지금 마음을 표현하다면, 한강과 첫 연애를 시작할 때이지 않을까 싶었다.

    “재석아, 엄마가 3등 하면 뭐 가지고 싶니. 호호.”

    기쁜 마음에 재석을 안아 들고 몸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아쁘아, 부부부.”

    재석도 한마디를 던졌다.

    ***

    딴!

    └ 예쁜 윤: 회장님, 저 중학교까지 다니기로 했어요!

    └ 예쁜 윤: 그리고 다음 주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어요!

    └ 예쁜 윤: 은혜 정말 진짜진짜 잊지 못할 거예요. 정말 열심히 일해서 은혜 갚을게요. 평생요!!!

    “녀석하곤.”

    퇴근길, 지윤이로부터 메신저가 왔다.

    자퇴하기로 했던 중학교를 마저 마치겠단 내용이었다.

    “다행이야. 이번 생은 행복을 일찍 알게 돼서.”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 깔끔하게 날아갔다.

    “이제 다민 씨만 남았나.”

    준비하고 있는 웹드라마는 매우 귀엽고 상큼함을 겸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민이 재개에 성공하기 바라는 심정으로 정한 작품이기도 한 만큼, 그녀가 하루빨리 완치해 복귀하기를 바랐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집에 도착했다. 차량에서 내린 한강은 주차장을 통해 위로 올라갔다.

    펑!

    “......”

    집 문을 연 순간, 총성 비슷한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한강은 멍한 눈을 정면에 가져갔다.

    “뭐야, 이게.”

    현관문 앞에 윤희가 있었고, 위에서 오색찬란한 반짝이들이 떨어져 내렸다.

    윤희의 손에는 폭죽이 들려 있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헤헤, 놀랐지. 사실 오늘 나 축하할 일이 생겨서, 재석이 아빠.”

    잠옷 차림의 윤희가 은근한 미소를 보이며 한강의 팔에 안겼다.

    “휴... 이번엔 뭐야.”

    요즘 장난이 느는 모습에 짧게 한숨을 쉬었다.

    “나 3등 됐다.”

    “......로또?”

    앞을 싹 잘라먹고 말하는 화법에 의하여 결론은 ‘복권’ 이르렀다.

    “에이, 복권과 비교할까. 나 사실 최근에 처음으로 공모전에 작품을 냈는데......”

    “공모전? 최근 미술 공모전이 있었던가?”

    “그거 말고, 한리버에서 진행한.”

    “예? 어? 아?! 이잉!!”

    한강의 눈이 크게 떠졌다.

    검지를 볼을 부끄럽게 긁고 있는 모습에 황당함이 스륵 올라왔다.

    “설마, 메신저...... 그게 벌써 났......구나. 아니지. 거기에 낸 거야?”

    한강은 믿을 수 없어 되물었다.

    너무 어이없으면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더니, 지금이 딱 그랬다.

    “짠!”

    윤희가 핸드폰을 쭉 내밀었다.

    『최종순위

    1등 웨딩망작

    2등 테러내시

    3등 날 좋아하니, 당근』

    “와......”

    한강의 눈에 보인 건, 1등이었고 다음이 2등을 지나 3등에 멈췄다.

    그러다 1등과 3등을 번갈아 보았다.

    ‘끄악, 수상하면 자랑하려 했는데...... 이건 절대 말 못 해.’

    좋아하는 얼굴에 ‘난 1등 했는데’ 말하며 찬물을 얹기가 겁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찍힌 부분이 있어 말하기 더 부담된다.

    “나 잘했지? 그래서 내가 짜잔 이렇게 준비했지!”

    윤희가 자리를 쓱 비키며 준비한 것들을 보여주었다.

    “허, 허허허.”

    세상이 당근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당근 인형부터 스티커까지.

    아무래도 오늘을 위해 남몰래 준비한 모양이었다.

    “3등이 천만 원이래. 그래서 내가 울 남편 일한다 고생한다고 내 돈 좀 더 얹어서 샀어. 봐봐.”

    “......”

    한강은 입을 열지 못했다. 가면 갈수록 일이 커짐을 느꼈다.

    윤희의 손에 들린 반들반들하고 고급진 금색 넥타이핀.

    끝에 미세한 다이아몬드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자기 옷이나 하나 사지. 왜......”

    “이거 봐봐. 진짜 잘 어울린다. 막 귀티나고. 울 여보 그동안 수고했어요.”

    토닥토닥. 엉덩이를 두들겨 주었다.

    갈수록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

    주방으로 걸어갔다. 식탁 가운데 캔들이 자리했고, 와인과 막 완성된 걸로 보이는 스테이크가 세팅되어 있었다.

    “잘 먹을게...... 그리고 이 핀 잘 하고 다닐게. 고마워.”

    “그래야지. 내 첫 공모전 상금으로 산 건데.”

    “응, 그렇지. 그렇지.”

    한강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황급히 잠옷으로 환복 후 식탁에 앉았다.

    윤희는 자신이 어떻게 당근을 구상하게 되었는지부터, 앞으로 이모티콘을 그리는 작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한강은 식은땀을 쉬지 않고 닦아야 하였다.

    모든 식사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 시간.

    “자기야,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윤희가 안기며 궁금한 눈빛을 보냈다.

    “뭔데?”

    지은 죄가 있는 한강은 최대한 상냥한 표정으로 윤희의 질문을 기다렸다.

    “자기는 내가 친정 가면, 좋을 거 같아?”

    “......”

    순진무구한 눈과 달리 들려오는 목소리는 비수와 같았다.

    “응?”

    “아니지. 어떻게 좋을 수 있어. 이렇게 같이 있고, 안고 자는 게 얼마나 좋은데. 자기가 없으면 예쁜 미소 보고 싶어도 못 보는데.”

    “그렇지? 히히. 역시 그 임티는 유머구나. 다행이다.”

    윤희는 안도를 했다는 듯, 그제야 한강의 품속에서 잠이 들었다.

    “......”

    방금 전까지 피곤해 감기려던 눈이 똘망해졌다.

    “진짜 죽을 때까지 숨기자. 무조건...... 그리고...... 절대 이모티콘은...... 구입하지 말자.”

    진실을 밝힐 타이밍을 놓쳤다.

    한강은 자신이 만든 ‘웨딩망작’을 구입해 활용하려던 목적을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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