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47화 (147/237)
  • 147화. 22살, 이지윤

    습기가 차오른 여름날, 청담 중학교 교무실 안.

    “지윤아, 다시 잘 생각해 봐.”

    수학 교사이자 지윤의 담임 선생인 김지아는 굳은 얼굴로 지윤을 올려 봤다.

    “자퇴할래요.”

    자퇴 의사를 밝힌 지윤에 의해 지아는 적지 않은 충격에 빠졌다.

    그동안 조용하게 지내던 지윤이 갑자기 이렇게 나올 줄 몰랐던 탓이다.

    “그 가수 때문이야?”

    지윤이 한리버 연습생이란 건, 아직 학교에서 밝힌 바 없었다.

    장래희망 검사를 하면서 지윤의 관심사를 알게 됐다.

    “네.”

    “너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그러는 거야? 가수 한다고 막 뜨고 성공하는 게 아냐.”

    진심으로 걱정 어린 눈으로 지윤을 응시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꼭 하고 싶어요.”

    ‘돈을 빨리 벌어 엄마의 빚을 다 갚고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어요’ 말은 간신히 눌러 참았다.

    “지윤아. 학생은 공부를 해야 돼. 그래야......”

    “선생님.”

    지윤이 중간에 말을 끊었다. 담임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뻔한 까닭이다.

    아직 중학생이라 하나, 모를 나이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지겹도록 들었지만, 공부를 한다고 인생이 바뀌진 않았다.

    인생을 바꾸는 건 공부가 아닌 돈이었다.

    돈이 없으면 가족도 없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가치를 존중받지 못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러한 환경에 노출되어 온 지윤으로선 당연한 생각이었다.

    ‘선생님의 말은 가진 사람들의 말에 지나지 않아요’

    부자는 말한다. 돈을 계속 굴리라고.

    365일 잠을 자도 돈이 들어오는 일을 하라고.

    우습게도 그건 기만에 지나지 않았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돈을 굴려 돈을 벌란 말인가?

    믿을 건 자신의 몸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말씀과 마음 잘 알아요. 하지만 선생님과 제가 살아가는 환경이 달라 생각에 차이가 있는 거 같아요.”

    지윤은 머릿속에 있는 말들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밝혔다.

    “지윤아......”

    “중학교는 검정고시로 졸업할게요.”

    학업을 다 마치지 않고 성공한 인물이 머릿속에 스쳐 갔다. 고등학교 2학년에 자퇴를 선언하고 국내 최고의 재벌이 된 인물.

    유한강 회장.

    지윤에게 있어 한강은 우상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지윤아, 중학교 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

    자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선생으로서 제자를 꼭 잡고 싶었다.

    당장 귀에 들어오진 않을 터다.

    “죄송해요. 선생님......”

    선생은 모른다. 자신의 마음을.

    지윤은 입술을 물고 고개를 숙여 보인 후 교무실을 급히 나갔다.

    “지윤아! 지윤아!”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지아가 황급히 뒤를 따랐지만, 지윤을 잡을 수 없었다.

    “지윤아......저, 박 선생님. 죄송한데 우리 반 애들 좀 맡아 주시겠어요. 부탁할게요.”

    지아는 학생기록부에 적힌 주소를 확인하고 바로 걸음을 옮겼다.

    ***

    한리버 그룹 본사.

    “엔지전자에서도 안드로이드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귀가 솔깃거리는 보고가 들어왔다.

    “엔지전자가 드뎌 나섰나 봅니다.”

    나서지 않고는 힘겨웠을 거다.

    운영체제 개발에 문제도 있고, 당장 사용하기에 안드로이드 만한 게 없었다.

    “여기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이거 보고를 듣지 않고도 배불러 터질 거 같습니다.”

    한강은 배를 내밀어 두 손으로 두들겼다.

    셔츠 사이로 뱃살이 슬며시 비쳤다.

    “회장님 선견지명에 매번 놀랍니다. 무리하게 안드로이드를 인수한 게, 이런 대박을 터트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수익도 나오지 않는 애물단지 기업을 인수해 늘 문제로 대두되었는데, 그동안 지출된 비용을 한 방에 회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장, 육성에서만 찍히고 있는 매출 규모가 엄청났다.

    덕분에 한리버의 재무제표는 모든 기업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전설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다행이에요. 이번에도 제가 맞아서. 사실 저도 쫄렸거든요. 후후.”

    장난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미래와 확연히 달라지고 있는 현실.

    어긋나는 미래가 어떤 효과로 작용해 변화를 거칠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 분 치고 무척 여유가 넘치십니다.”

    “그런가요? 하하.”

    일은 잘 풀렸고 훨씬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충분히 만족했다.

    “모레부터 이모티콘 공모전이죠?”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 한리버 메신저 이모티콘 공모전으로.

    “그렇습니다. 참 기대됩니다.”

    처음으로 보는 공모전이기에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었다.

    “그런데, 실명이 아닌 가명으로 하는 이유가 있는지요?”

    이름, 나이, 성별 등 모든 걸 비밀에 부치고 오로지 가명만을 사용해 공모전에 임하게 된다.

    “흥미를 부추기기에 위함도 있고, 무엇보다 재밌잖아요.”

    “......?”

    “기존처럼 이것저것 다 밝히고 한다면 재미없잖아요.”

    “그게 단가요?”

    “네. 다예요. 깔끔하죠?”

    싱글벙글.

    “......”

    대단한 의미라도 있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미안해요. 거기에 저도 참가를 할 거라서요.’

    진짜 이유는 꽁꽁 숨겼다. 회장이 공모전에 참가하는 경우가 어딨을까 싶지만, 여기에 있었다.

    “문제없이 준비 부탁해요.”

    “예, 알겠습니다.”

    김동진의 머쓱한 표정을 얼굴 위에 걸치고 등을 돌렸다.

    “할머님은......?”

    그때였다. 동진이 막 회장실을 벗어나려던 때, 지윤의 할머니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시선을 돌려 근방에 서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니, 꽤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실장님 맞으시죠. 안에 회장님을 뵈러 왔는데, 뵐 수 있을까요.”

    “......”

    김동진은 등을 돌려 한강의 눈과 마주했다.

    끄덕.

    한강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네, 들어가세요. 회장님은 저기 계십니다. 그럼, 전 이만.”

    김동진은 길을 비켜주었다.

    “할머니, 연락을 주시지 그랬어요. 연락을 주셨다면 모시러 갔을 텐데.”

    친절하게 지윤의 할머니를 손수 소파로 모셨다.

    “아효, 아니에요.”

    경숙은 두 손을 급히 좌우로 움직였다. 그러다 두 손을 중앙에 모아 허벅지 위로 올렸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다.

    ‘하긴, 내게 할 말이 있어 오신 거니까...... 내가 묻는 게 맞겠지?’

    “할머니, 지윤이 일로 오신 건가요?”

    지윤의 할머니가 찾아올 이유가 몇 되지 않는다. 당연히 지윤과 관련된 일이라 생각했다.

    “네... 그렇게 됐는데... 저기 그러니까.”

    “그러시다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가 직접 지윤이를 챙기기로 했으니까요. 지윤이의 일은 저의 일이기도 해요.”

    경숙이 부담되지 않게 조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저기, 그러니까...... 지윤이가......”

    경숙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경숙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한강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아, 그런 일이......”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한강은 잠시 침묵을 가졌다.

    ‘내 잘못이야. 아싸리 빚까지 갚아 주고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해줬어야 했는데......’

    자신이야 인생을 2회차를 사는 거기에 학교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하지만, 지윤은 아니었다. 여타 다른 아이돌처럼 학교의 추억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어린 시절부터 일에 치여 사는 건 바라지 않았다.

    “제가 만나 대화를 나눠 볼게요.”

    “미안해서 어쩌나.”

    경숙의 입장에서 지금의 고민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대상이 없었다.

    그래서 찾은 사람이 유한강이었는데, 선뜻 나서주겠다는 말에 감사함을 느꼈다.

    “아니에요. 제가 할 일인데요. 그런데 할머니.”

    “......”

    “지윤이의 문제를 뜻대로 풀지 못할 수도 있어요. 만약에 설득해도 안 되면 지윤이의 뜻을 존중해 주세요.”

    어른이 나선다 하여 듣는다 보장이 없었다.

    아무리 2회차 인생이라지만, 한강 스스로도 그러지 않았던가?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설득을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그래도 지윤이 뜻을 꺾지 않는다면 존중해 주기로 하였다.

    “꼭 그래야 할까요?”

    “네, 할머니.”

    거듭된 물음에 한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부모가 곁에 없어 더욱 강한 책임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이제 사춘기구나.’

    동물이든 사람이든 사춘기 시절이 매우 중요하다. 이때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성장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친다.

    비서에게 호출해 경숙을 집까지 모시라 하고, 한강은 핸드폰을 들어 지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 나 좀 보자.”

    전화를 걸자, 지윤이 바로 받았다. 한강은 장소를 정하고 몸을 일으켰다.

    “회장님......”

    한 시간 정도 지나 지윤과 약속장소에서 만났다.

    사람이 많은 장소는 서로에게 부담인지라, 한리버 빌딩 미팅실에서 편하게 자리를 가졌다.

    “네 마음 십분 이해해.”

    경숙에겐 설득을 해보겠다 말했지만, 무조건 설득을 해볼 생각은 없었다.

    “...... 회장님과 약속했었는데, 죄송해요.”

    “아냐. 내게 미안해할 일은 아니지. 너의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하지만, 나는 말이야. 최소 중학교는 정상적으로 마쳤음 해.”

    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창가로 시선을 가져갔다.

    창가 아래로 차량들과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 갔다.

    “......”

    지윤은 한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부모님 빚은 내가 갚아 줄게. 네가 내게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기숙사에서 지내도 좋아.”

    현생에 환생하고 연탄 냄새와 화장실 냄새가 풍기던 당시의 집이 떠올랐다.

    전생보다 열악했던 환경.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하는 생활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지금은 자신이 부모가 되어 재석을 돌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그 모든 것들이 지윤과 겹쳐 보였다.

    “회장님......”

    “그럼에도 네가 자퇴를 하겠다면, 너의 선택이니만큼 존중해 줄게.”

    “......열심히 갚을게요. 꼭 열심히 일해서 갚을게요. 꼭이요.”

    지윤의 어깨가 들썩였다.

    “내게 어떤 말도 하지 마. 벌써부터 네가 그런 걸 책임질 필욘 없으니까. 무대 위에 서기 전까지 열심히 레슨을 받는 것. 그게 네가 할 일이야. 그것만 생각해.”

    “......네!”

    젖은 얼굴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래, 난 이만 나갈게. 생각해보고 따로 말해줘.”

    한강은 더는 말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이 정도면 지윤도 잘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했다.

    ***

    [한리버 메신저 이모티콘 공모전 대회 개최!]

    [한리버 그룹에서 진행하는 이모티콘 공모전 대회가 당일로 다가왔다. 인원은 모두 가명으로 총 1022명이 참가했다.]

    [1등 1억 원, 2등 5천만 원, 3등 1천만 지급. 참가자 전원 모두 7대3 정산비율 계약 진행.]

    공모전 날이 밝았다.

    “나도 이걸 꼭 해보고 싶었지. 흐흐. 어디 시작해 볼까.”

    한강은 그동안 생각해온 이모티콘을 종이에 그려갔다.

    모처럼 얼굴에 즐거움으로 들어차 있었다.

    한편...

    “호호. 재석아, 엄마가 공모전에 참가한 사실 아빠한테 비밀이다. 알았지?”

    이제 세 살 된 아들의 볼을 살짝 꼬집은 윤희는 남몰래 웃으며 펜을 들었다.

    서로가 공모전에 참석을 하는지도 모른 채, 둘의 눈에 불꽃이 타올랐다.

    “이번 공모전 대상은.......”

    .

    .

    “이번 공모전 대상은......”

    .

    .

    “......내가 차지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