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41화 (141/237)

141화. 22살, 유 에스지

[유 에스지 소송에 문제 있어. 재판결 필요...]

[국내 소속사의 갑질 문제 심각, 여러 사유로 소속된 연예인들의 수입을 떼먹거나, 개인 용도로 사용. 계약서는 이를 위한 함정......]

TV 방송을 시작으로 인터넷 기사는 소속사 전체의 문제점을 다루면서 유 에스지를 콕 집었다.

[정다민의 패소 이유 납득이 되지 않아... 약 3억 원의 돈, 회사가 꿀꺽......]

동시에 다민의 이름을 다는 걸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잠잠하다 했더니, 또 이 지랄이네. 요즘 소속사 문제 심각한가 보다.”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연예계의 더러운 모습에 이맛살을 구겼다.

“아, 씨. 어쩐지 오디션에 너무 쉽게 합격이 되더라. 하아......”

얼마 전 유 에스지에서 진행하는 오디션을 본 사람은 덜컥 겁이 났다.

자신도 정다민과 같은 꼴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하아... 포기하자.”

계약을 쓰기 전.

합격을 거절한다고 문제 될 건 없었다.

남자는 문자에 적힌 ‘합격을 축하합니다’ 창을 지웠다.

크게 한숨을 쉬며 다른 기획사에 다시 오디션을 보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한편.

“뭐? 이번에도 합격을 취소한다 했다고?!”

“이대로 가다 정말 잘못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김조한은 우려를 표명했다.

연습생들은 기업의 미래요, 자산이다.

그런 연습생들이 회사를 탈출하고 있었다.

심지어 오디션을 본 사람들은 합격을 취소하기까지 하고 있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거기다 계약이 만기되는 배우들은 재계약을 피하고 있습니다.”

장기계약으로 끌고 가는 사람들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계약이 만료되는 배우들이 문제였다.

유 에스지의 주 수입원과 같은 사람들의 이탈은 위기감을 심어 주었다.

“그래서?”

차가운 냉기가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재영은 시린 눈으로 김조한을 올려봤다.

“분명 우리가 잘못은 없으나, 한리버에...... 크악.”

무언가 날아가 김조한의 이마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으으......”

김조한은 고통에 손을 이마에 가져가 문질렀다. 붉은 멍이 이마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지금 나보고 그 개무시를 다시 받아라, 이 말이야!”

마음의 안정을 찾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돈덩이라 생각했던 정다민의 이탈은 유 에스지에 있어 매우 뼈가 아팠다.

그것도 그런데, 얼마 전 한리버의 일개 대리한테서 받은 심적 타격은 이재영에게 있어 극심한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실언을 했습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게 더 남았지만 입을 다물기로 하였다.

‘내가 무슨 동네북도 아니고... 시X.’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김조한이다.

“방송국 찾아가서 돈을 주든 뭘 하든 내리라 해, 어서!”

“알겠습니다.”

김조한은 이마를 만지며 사장실을 나갔다.

“이 새끼나 저 새끼나!”

책상 위에 있는 모든 걸 바닥으로 내던지는 이재영이었다.

***

SBC.

“이 기자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도통 연락이 없습니다.”

김조한이 향한 곳은 SBC였다.

몇 번이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기자 탓에 손수 발걸음을 하였다.

“사람이 왜 이리 눈치가 없습니까?”

그러던 차 기자로부터 날 선 목소리가 터졌다.

“......”

김조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거 내가 벌인 일도 아니고, 위에서 직접 내려온 겁니다. 그리고 어떤 기자도 유 에스지와 관련해서 사적인 만남을 가지지 말란 지시도 있었어요. 계속 이러면.....”

“받을 거 다 챙겨 먹고, 이렇게 나오기인가요?”

“지금 그걸로 날 협박하려는 겁니까?”

“혹여, 유 에스지가 잘못될 시 불면 어떻게 될까요?”

“가능하면 그리해보시죠. 우리 얘기는 끝난 거 같네요. 이만.”

이 기자는 더는 볼 일 없다는 듯, 자리를 유유히 떠났다.

잡으려 하였지만, 김조한은 잡을 수 없었다.

“아니, 대체. 유 회장과 어떤 일이 있었던 거야.”

관련 기사를 접하긴 했다. 그래도 이건 정도가 지나치다 생각했다.

김조한의 걸음 또 다른 장소로 향했다.

이번엔 방송국이 아닌, 다른 장소였다.

***

“언니 정말 괜찮을까? 나도 다민 언니랑 다를 게 없는데.”

소속사가 돌아가는 게 심상치 않았다. 유 에스지에 소속된 이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괜히 소송해서 무단으로 나오면 다민과 똑같은 꼴을 당할까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게......”

고민이 참 많았다. 이러다 일이 더 나빠져 인생을 담보로 잡히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다민 언니는 왜 우리를 갑자기 보자 한 거지?”

소속사를 나가고, 그 일이 있고 나서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어느 날.

‘할 얘기가 있는데, 소속사 몰래 만나자’

연락이 왔다.

‘너네들한테 좋은 기회일지 몰라’

의미 모를 말들을 늘어놓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게, 혹시... 우리도 한리버에 꽂아 주려는 거 아닐까?”

그러다 조심스러운 의견이 흘러나왔다.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에이, 그럴 리가. 우리 같은 무명을. 다민 언니야 워낙 유명하니까 가능한 일이었지. 누가 우리를...... 게다가 우리 전속이야.”

돈도 안 되는 무명을 한리버에서 채용할 일이 없다. 심지어 전속으로 묶인 자신들을.

“그...래도 만나 보는 게 좋지 않을까?”

보통이라면 흔들리지 않았을 이들이지만, 흘러가는 분위기가 좋지 않게 바뀌니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만나서 나쁠 건 없을 거 같은데, 만나보자. 혹시 모르잖아.”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 싶었다. 요즘 연예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는 상태.

“그래 그러자. 까짓거.”

만나서 손해 볼 것도 없었고, 한리버에 대해 듣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고민 끝에 만나기로 하였다.

***

똑똑.

노크 소리가 낮게 깔렸다.

“다민 씨 왔어요.”

방 안에 도착한 이는 정다민이었다.

다민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전보다 표정이 많이 좋아졌다.

“요즘 얼굴이 좋아 보여요.”

“다 회장님 덕이에요.”

“하하, 노력하는 다민 씨 때문이죠. 치료는 잘 받고 있는 거죠?”

“네.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꾸준한 치료비용도 회사 차원에 지급해주고 있다. 다민의 돈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을 정도.

언제 이렇게 마음을 놓고 휴식을 가져 보았나 싶었다.

“방송 활동하기 전에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세요. 남자친구도 만나 보고.”

“......아, 셨나요.”

다민은 깜짝 놀랐다. 몰래 만나고 있었는데, 한강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속도위반만 하지 말아주세요. 다른 건 다 허락할 테니까요.”

한강은 가볍게 넘겼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치료에 큰 도움이 되기에 다민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허락했다.

‘아무리 연예인이라지만, 아직 20대 중반이야.’

정신이 단단한 사람도 지독한 외로움에 살게 되면 병에 걸리기 마련이다.

지금 다민에게 필요한 건 휴식과 안정, 지인들과의 만남이라 생각했다.

“회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세요. 다른 기획사나 소속사 대표들도 회장님만 같다면 참 좋을 거 같아요.”

“......그런 날이 올 겁니다.”

그건 오지 않는다. 단지 줄어들 뿐.

건달들의 성향이 기업형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처럼.

“감사한다는 말을 전한다는 게 말이 길었네요. 회장님께서 부탁하신 거... 하기로 했어요.”

지금까지의 말은 지금을 위한 마음의 준비였는지 모른다.

다민의 얼굴에 굳은 결심이 느껴졌다.

“어려운 부탁이었을 건데, 고마워요.”

한강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환자인 그녀에게 못 할 짓이라 생각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이란 생각에 부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에요. 제가 도움을 받아왔는데,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어 다행이에요.”

“......”

한강은 작게 웃었다.

“조금 이따 거기서 조금 친하게 지낸 동생들을 만나볼 거예요.”

“잘 풀리길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응원했다. 참으로 어려운 선택을 해주었다.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끝으로 둘의 대화는 종결됐다.

***

띵동!

눈길을 끄는 여성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쭉 뻗은 각선미를 자랑하며 한 장소로 향했다.

지나가던 남자들의 눈길이 쏠렸지만, 여성들은 상관하지 않고 지나쳤다.

“언니.”

“너무 늦게 연락드려 미안해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앉아 있는 여자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들 틈에 보이는 여성은 정다민. 여성들은 유 에스지의 배우들이었다.

다미의 후배이기도 했다.

“몇 년 만이지. 우리.”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동생들을 맞이해 주었다.

“그럼요. 연락해도 받지 않으시고.”

“미안......”

당시 우울증에 시달려 남자친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살았었다.

최대한 우울함을 벗어나려고 일에 집중도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요즘 한리버가 좋긴 한가 봐요.”

그러다 웨이브 머리가 예쁜 여성이 다민의 얼굴을 칭찬하며 은근히 한리버에 대해 언급했다.

“그치? 나도 매일 느껴. 한리버 회장님이 얼마나 잘해주는지 몰라. 적극적으로 나서 치료도 해주고 운동이나 여러 관리들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셔.”

다민은 쉬지 않고 한리버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와...... 그런 곳이 있구나.”

“진짜 부럽다.”

다민의 이야기를 듣는 여성들의 눈에 부러움이 스며들었다.

정말로 연예인들에게 있어 꿈의 회사나 다름없었다.

“그뿐이 아냐. 유 에스지에서 받지 못한 돈과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잃은 돈까지 전부 챙겨 주셨어.”

덕분에 힘들던 가계에 힘이 되었다.

말라가던 잔고가 풍족해지니 마음의 여유마저 생겼다.

왜, 사람들이 금융치료가 가장 좋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다민은 자신이 한리버에서 어떤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한리버가 얻는 게 뭐래요?”

노랗게 탈색한 여성이 물었다.

“유 에스지에 받아낼 거라며 걱정하지 말래. 회사에 돈도 많고 크게 문제 된 건 없다고도 하시고.”

“와... 멋지다.”

“역시 저세상 부자......”

다민의 말에 여성들은 감탄했다. 몇억, 몇십억은 돈도 아니라는 듯 퍼붓는 모습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저, 언니. 근데... 우리를 보자고 한 게... 그러니까, 언니랑 한리버랑 관련이 있는 건가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단발머리 여성이 물었다.

그녀의 얼굴엔 어떤 기대가 서려 있었다.

“응, 맞아. 실은 이번 일 회장님께서 부탁한 일이기도 해.”

다민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눈동자는 주변을 훑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슬며시 낮췄다.

“여기로 모여봐.”

주변에 기자가 깔려 있을지 모른다. 그도 아니면 유 에스지와 관련된 사람이 있을 수 있었다.

다민은 동생들을 최대한 가까이 오게 만들었다.

“너네들 강제로 계약 파기하고, 한리버로 와. 위약금은 모두 회장님이 대주실 거야. 그리고 곧 한리버에서 드라마를 찍을 거야. 한리버에 소속된 배우들로 꾸려서.”

두둔!

다민의 폭탄 발언에 주변은 조용해졌다. 여성들 중 어떤 누구도 먼저 말을 하지 못했다.

오로지 홀 안에 흐르는 음악과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쓰레기 회사에 있는 거보단, 기회도 많고... 평생 무명으로 지낼 수 없잖아. 나랑 함께하자.”

마지막 한 방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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