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37화 (137/237)
  • 137화. 22살, 아이 윤

    “뭐야?!”

    “왜 얼굴을 가린 거야??”

    “저러면 알아보기 어렵지 않나? 첫 무대를 저렇게 한다고?!”

    지윤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동일했다.

    몸을 제외한 얼굴을 가리고 등장했다.

    “얼굴 박살 났나 보지. 크크.”

    “진짜 가지가지 한다.”

    급기야 외모에 대한 지적을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저 아이가 한리버에서 내놓은 아이라. 흠. 유 회장은 참 희한한 사람이에요.”

    진경은 무대 위에 오른 얼굴을 가린 지윤을 보며 한강에 대해 생각을 하였다.

    “맞아. 나도 동감이야. 이걸 이용해 사람들의 관심을 사겠다는 전략 같은데......글쎄.”

    옆에 앉은 이만수는 지금의 모습을 좋지 않게 봤다. 하나 그것도 아주 잠깐.

    “......허.”

    “......?!!”

    전주가 시작되고 지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말을 멈추고 무대에 빠져들었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떠들던 걸 멈추고 고급진 음색의 주인공에게 시선을 보냈다.

    ***

    갑자기 서게 된 무대.

    두근두근.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무대 앞에 다다르자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하아......”

    엄청난 인파. 해일이라도 닥친 건 아닌지 싶은 함성에 물결은 정신을 굳게 만들었다.

    “이래서 립싱크를 하자고 한 건가......”

    실력을 뽐내고 싶고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에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겠다 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자신도 있었고.

    [아직 멀었어. 절대 안 돼. 그리고 무대를 버티는 것 또한 너의 실력이야. 노래가 끝나는 4분간 잘 버텨봐. 5만의 관중의 압박을 경험해서 네가 온전히 걸어 나온다면, 넌 한 단계 성장해 있을 거다.]

    그 말에 뜻을 꺾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직접 경험한 무대는 전혀 달랐다. 지금 순간만큼은 얼굴을 가린 채, 립싱크를 하는 것에 감사했다.

    “아이 윤, 나가세요.”

    스텝이 사인을 보냈다.

    “네!”

    지윤은 풀리려는 다리에 힘을 빡 주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아이 윤이 부릅니다. 좋은 날.”

    소파가 설치된 곳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곳엔 함께 춤을 추며 연습했던 댄서 오빠들이 대기해 있었다.

    파이팅.

    옆에 앉은 댄서가 작게 속삭였다.

    지윤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전주가 시작된 시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

    귀여운 원피스를 펄럭이며.

    주먹을 꽉 쥐고 노래를 부르는 연기를 하였다.

    [어쩜 이렇게 하늘은 더 파란 건지......]

    노래가 시작됐다.

    백댄서와 맞추어 춤을 추지만, 지윤은 춤보다 노래에 집중했다.

    손가락으로 포인트만 살려 세상의 시간을 조종했다.

    “아무 말 못 하게 입 맞출까.”

    귀여운 포즈를 취해 입을 맞춰본다.

    황홀한 판타지.

    동화가 있다면 지금과 같지 않을까?

    지윤의 외모를 비판하던 남자도 한강의 계획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내던 심사위원도 모두 한마음이 되어 지윤을 응시했다.

    “이렇게 좋은 날......”

    지윤은 호흡을 가다듬고 다리를 엑스자로 교차해 곡을 끝냈다.

    지윤은 조마조마한 눈으로 무대 아래와 위를 바라봤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기적이 벌어졌다.

    아이 윤! 아이 윤! 아이 윤!

    남녀 가리지 않고 지윤의 가수명을 불렀다. 새로운 가수가 세상에 등장했음을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 이미영: 와, 노래 짱 좋다.....

    └ 이미래: 이 목소리 어디서 들은 거 같은데...... 이상하다......

    └ 김소영: 지금 우리 오빠 완전 미친놈처럼 환장함.

    └ 박규태: 대체 누구죠?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 요시코: 목소리 너무 예뻐요. 완전 팬 됐어요.

    └ 아이라: 일본도 와주세요.

    └ 윌: 가창력도 좋고 정말 좋은 노래였다.

    └ 빌리: 한국 여자 너무 좋아요. 저도 그녀의 이름이 너무 궁금해요.

    └ 월정: 와우!

    └ 능미: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월드 플레이 구독자들은 채팅을 치며 지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어떤 이는 캡처한 사진을 게시물에 게시하기도 하였다.

    기대도 하지 않고 있던 무대에서 미래를 엿봤다는 듯, 지윤을 최고의 가수가 될 거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미국, 일본 등은 지윤에게 사랑을 느꼈다.

    “분명 들었는데...... 어디서지......”

    요근래 오디션을 너무 많이 봐서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들었던 목소리임을 진경은 확신했다.

    그것도 몇 달 사이에.

    진경은 레인과 동방신기가 공연을 마칠 때까지 지윤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순위가 정해졌습니다.”

    진경의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들려온 사회자의 목소리에 의하여 현실로 돌아왔다.

    “역대급 공개 오디션임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겁니다. 당장 가수로 데뷔해도 좋을 참가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둔! 두두두.

    “순위를 발표하겠습니다. 10위는!”

    사회자가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0위부터 3위까지 발표된 상황.

    “역시 두 분이 1위와 2위를 다투게 되었습니다. 이아라, 이지아 쌍둥이 팀과 조성모의 다짐을 부른 박태준...... 여기서 누가 영광의 1위를 차지할지!”

    거대한 스크린에 세 사람의 모습이 담겼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스크린으로 향했다.

    “이분이 춤을 출 줄 몰랐죠? 건반의 황제에서 댄서로 돌아온 부드러운 남자! 박.태.준!”

    퐝! 푸아아앙!

    하늘 위로 불꽃이 터지며 꽃가루가 무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처음으로 시행한 빅 프로젝트 오디션은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예상대로 된 건가. 축하한다. 애들아.”

    SN, JYB의 연습생들을 뚫고 소망 보육원 출신인 세 사람이 사이좋게 1위와 2위를 하였다.

    “실장님, 보육원에 2천만 원을 보내 축하파티를 열게 하세요. 이런 날은 기념해야죠.”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한강은 세 사람의 수상을 소망 보육원 전체 축제로 만들었다.

    개인이 기뻐하기보다 더불어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지 않겠는가.

    “응? 저 사람은 설마?!”

    아이들에게 축하 말을 전하러 가던 중 복도에 익숙한 인물이 시야로 들어왔다.

    모자를 눌러썼지만, 예리한 한강의 눈썰미를 피해가지 못했다.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멍때리고 있는 여성에게 걸음을 옮겼다.

    보통이라면 지나칠 법도 하지만, 한강은 그러지 않았다.

    미소로 가득하던 얼굴은 사라지고 굳은 표정만이 자리했다.

    “정다민 씨, 맞으시죠?”

    정다민, 옥탑방 야옹이로 큰 인기를 끌어 대세로 떠오른 귀여움의 대명사.

    그 배우가 오디션을 보기 위해 경기장에 발걸음을 한 것이다.

    한강은 다가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말을 걸었다.

    “아, 아니에요. 사람 잘 못 보셨어요.”

    얼굴을 가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체를 숨기실 거라면 목소리도 좀 다르게 내시지. 정다민 씨 맞네요. 오래 붙잡지 않을게요.”

    아무래도 축하말을 건네기 힘들 거 같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게 더 급해.’

    축하는 전화로 해도 된다.

    지금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 보기로 하였다.

    비운의 여배우를 위하여 시간을 내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전 유한강입니다. 미술가이자 피아니스트. 한리버 경영자이기도 하죠.”

    뒤돌아서 앞질러 가던 여성은 걸음을 멈췄다. 급히 몸을 일으켜 자리를 피하느라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아......”

    국내에서 이슈로 떠오르는 예술가이자 기업인인 유한강 회장이 서 있었다.

    여성은 놀란 얼굴로 한참을 바라보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아, 안녕하세요. 회장님.”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에서다.

    그리고 그녀의 정체는 모자를 벗은 순간, 확실해졌다.

    “저도 반갑습니다. 정다민 씨. 팬으로서 같은 예술인으로서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저에게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접근을 하였다.

    “무슨 일로......”

    “다민 씨의 거취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니 전.”

    “조금이면 됩니다. 부탁합니다.”

    경기장에 와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한강은 지금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놓치면 다음은 없을 거 같았다.

    ‘잡지 않아도 돼. 그녀의 생각만 조금이라도 비틀 수 있다면......’

    그래 그거면 될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숙여 부탁을 하였다.

    “아, 네......”

    그는 모두가 아는 공인.

    인품도 좋고 사람들 평판도 좋았다.

    그 부분을 떠올린 다민은 그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마침 여기 방이 비었네요.”

    “네......”

    자신보다 어리지만, 한강도 남자.

    조심해야 하지만, 웃기게도 ‘한강’이란 이름에 이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제가 마시려고 준비하던 건데, 이거라도 한 잔 드시며 긴장을 푸세요.”

    “아, 아니에요. 전 괜찮......”

    “드세요. 시간을 내준 보답입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한강의 자상함에 넋을 놓다, 음료를 받았다.

    “요즘 힘들죠?”

    “......”

    소속사와의 법적 분쟁 과정에서 친한 매니저가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거기에 이어 소송까지 패하며 1억 원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게 발단이 되어, 스스로의 선택으로 영원한 안식을 선택하게 되는 그녀.

    한강은 그 부분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세상은 말이죠. 너무 치사합니다. 더럽죠.”

    “......”

    “그래서 그걸 제가 바꿔 보려 합니다. 더럽고 치사한 연예계를 말이죠.”

    정다민을 보자, 또 한 명의 여가수가 떠오른다. 운명의 톱니바퀴가 묘하게 돌아간다.

    “당신의 억울함 제가 풀어 드리죠. 제 힘으로...”

    스스로에게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이게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리라 자신했다.

    “......저, 정말인가요?!”

    그제야 다민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축 처진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순간 조건이란 말에 다민의 안색이 좋지 않게 변했다. 동시에 두 팔을 엑스자로 교차해 방어하는 자세를 취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내 아들과 아내에 부끄러운 아빠이자 남편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불쾌합니다.”

    이해는 하지만, 한강은 확고했다.

    “아, 죄송합니다. 조건이라기에......”

    “제 조건은 한리버와 계약을 해달라는 겁니다. 설사 계약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불편한 생각을 치유하길 권합니다. 이것이 제가 내건 조건입니다.”

    스스로도 당황해 말이 정리가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자신의 뜻은 잘 전달되었으리라 믿었다.

    다민의 얼굴만 보더라도 느낄 수 있었다.

    “왜, 저를......”

    “스타로서 가치. 인지도. 무엇보다 전 당신의 팬입니다. 이게 제가 돕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입니다.”

    한강은 다민을 무감정한 얼굴로 바라봤다. 하지만, 다민은 느낄 수 있었다.

    “......도와주세요.”

    한강에게서 전해오는 따스한 온기를.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생각해오던 응어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지옥이라 느끼는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다민은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설움을 토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회장님.”

    끄윽.

    바닥에 납작 엎드려 도움을 호소했다.

    그녀가 마음의 문을 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리버에서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한강은 한쪽 무릎을 꿇고 다민을 조심히 일으켰다.

    다소 오해가 있을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스스로가 떳떳했다.

    그럼 된 것이다.

    “저는 당신의 편입니다.”

    한강은 다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웃으며.

    “보답은 사인 한 장으로 부탁드려요.”

    종이를 내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