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31화 (131/237)

131화. 22살, 이지윤 (2)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헤헤헤.”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가슴에 머물렀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기분에 하늘로 날아갈 거 같았다.

“진짜 친절하고 자상하고 멋지신 분.”

심지어 존나 잘생기기까지!

핸드폰에 찍힌 한강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불렀다.

[이번 역은.....]

“아, 내려야 돼.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죄송합니다.”

핸드폰 배터리가 닳도록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지윤은 몸을 급히 일으켜 전철에서 내렸다.

“후, 살았다.”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간신히 전철에서 내릴 수 있었다.

“할머니한테 자랑해야지. 히히.”

오늘 있던 일은 평생의 보물이 될 터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간의 고생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무겁던 발걸음은 가볍게 바뀌어 폴짝 뛰며 집으로 달려갔다.

***

[한리버 월드 플레이 오디션이 화제다. 한리버와 두 거대 기획사에서 진행하는 오디션 1차 합격자가 발표됐다. 인원은 536명으로 여기서 2차에서 100명, 3차 본선 진출자로 50명을 뽑는다.]

[50명은 두 기획사의 지원 아래 교육을 받으며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된다.]

└ 이민영: 진짜 빡세다. 1차는 역시 막 뽑은 거였네.

└ 홍아영: 응원합니다...

└ 최두식: 점점 흥미로워진다. 아,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너무 기다려집니다!!!

사람들의 기대 속에 2차 오디션이 열렸다. 각종 채널에서 응원 글이 올라오며 새로운 팬층이 형성되며 오디션 참가자를 응원했다.

2006년 5월이 접어든 달.

유고슬라비아 마지막 국가인 신유고 연방에서 몬테네그로가 분리 독립되었다.

“지윤이란 애 귀엽던데 아깝다.”

“맞아, 나이 치고 정말 잘 부르던데.”

하지만 사람들에게 있어 타국에서 벌어진 일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엄청 울더라.”

“어쩌겠어. 솔직히 다른 애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잖아.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아직 어리니까.”

결국, 지윤은 한강의 예상대로 2차 예선에서 떨어졌다.

지윤은 고개를 떨구고 울음을 토했다.

인터넷 방송은 실시간으로 이뤄져 지윤의 모습이 고스란히 화면에 노출됐다.

“그 정도면 어딘가에서 데려갈 거야. 엄마가 그러더라.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

“뭐 하긴. 걔도 따지고 보면 어디 연습생일 텐데.”

지윤에 대해 잘 모르는 덕에 사람들은 오해를 했다.

1차와 달리 2차 예선에 옷과 머리 힘껏 힘을 주고 온 탓.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다음엔 꼭... 꼭...]

지윤이 무대를 내려서기 전 뱉은 한마디는 꿈을 가진 모두에게 불씨를 지폈다.

떨어졌다 하여 포기한 인생이 참으로 부끄럽게 다가오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격려를 하였고 지윤의 성공을 빌어주었다.

“오빠, 저 2차 붙었어요!”

지윤은 떨어졌지만, 소망 보육원에서 전문 교육을 끊임없이 받았던 아이들 대다수가 2차에 붙었다.

“이야! 정말 대단한데. 축하해 모두!”

총 세 명.

이지아. 이아라 쌍둥이와 박태준 이렇게 합격을 하였다.

“너희가 될 줄 알았다.”

힘들어도 누구보다 노력하던 아이들이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열심히 노력했지만.

셋의 재능을 넘지 못했다.

“전부 오빠 덕분이에요.”

지아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맞아요. 오빠 아니었음 1차도 도전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라도 한강의 팔을 꼭 끌어안고 좋아했다.

“형한테 배운 피아노 연주가 큰 도움이 되었어요.”

여기서 엄청 놀라운 사실 중 하나.

소망 보육원에 피아노 천재가 등장했다.

뒤늦은 나이에 피아노를 배워 단 1년 만에 높은 연주 실력을 보였고, 심지어.

‘절대음감...... 정말 소름이 쫙 끼쳤었지.’

몇 번 음을 듣더니 모두 때려 맞춰 버리는 놀라운 실력에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친 기억을 떠올렸다.

만약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배웠다면 자신과 함께 콩쿠르에 나가 경쟁을 벌였을지 몰랐다.

그 정도로 박태준의 실력은 실로 대단했다.

한강은 더 가르치고 싶은 욕심을 품었으나.

[이런 비싼 교육을 평생 무상으로 받을 수 없어요. 아무리 형이라도. 이 정도만 해도 전 만족해요.]

나머지는 스스로 해보겠다는 의견을 수용해 알겠노라 답했다.

“난 너희 모두 본선에 진출할 수 있으리라 본다.”

다른 연습생도 있지만, 셋이라면 본선까지 진출하는 데 큰 문제는 없으리라 봤다.

“응원해주세요!”

“형 얼굴 부끄럽지 않게 할게요.”

소망 보육원 동생들의 화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래. 난 이만 간다.”

겸사겸사 어시스트를 둘러보고 길을 나섰다.

***

“하아......”

긴 한숨이 입으로 배어 나왔다.

그저 좋아하게 된 노래로 성공을 하고자 하였는데, 그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고, 지X도 풍년이네. 네가 가수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져. 알아 이X아.]

친척의 거친 한마디는 마음의 상처를 강하게 남겼다.

그럴수록 성공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심이 더욱 팽창해 나갔다.

“하지만......”

목표와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아등바등해 보지만 세상은 성공의 열매를 쉽게 얻지 못하도록 거대한 장벽을 쳐놓았다.

넘어서려 해보면 장벽은 더욱 높게 치솟아 있었다.

“할머니께 도움을 구하는 건 한계야...... 더는......”

그간 교통비와 용돈을 할머니가 남몰래 지원을 해주었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오디션조차 보기 힘들었을 터다.

“엄마......”

빚보증을 잘못 서 오랜 시간 보지 못하게 된 엄마가 몹시 보고팠다.

친척들의 눈치를 받을 때면 엄마의 품이 더욱 절실했다.

“아냐...... 약해지지 말자. 지윤아. 약해지면 안 돼. 성공해서 엄마 빚도 갚아주고 할머니랑 동생이랑 좋은 집 사서 살아야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축축한 눈가를 손목으로 닦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주)한리버 그룹 대표 유한강.

010-XXXX-XXXX.

한강의 핸드폰 번호가 ‘011’에서 ‘010’으로 바뀌었다.

지윤은 한강의 명함을 한참 바라봤다.

[......연락해요.]

오디션이 끝나면 연락하라던 말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친척들에게 명함에 대한 사실을 숨겼다.

또한, 할머니에게도 한강과 있던 일을 말하지 않았다.

죄송스러운 행동이지만, 친척의 귀에 들어가 한강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짤랑.

750원.

주머니에 있는 전 재산이다.

암담했다.

“전화 받으실까.”

전화를 하라고 했지만, 막상 전화를 하려니 부담이 된다.

혹여나, 기억을 못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마저 들어 주춤이게 만들었다.

“아냐...... 내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잖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고민하길 수어 번. 지윤은 어렵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지윤은 계단을 내려가 공중전화 박스가 있는 슈퍼로 향했다.

***

천천히 흐르는 듯한 시간은 어느새 재석이 태어난 지 1주년 차 8월이 되었다.

재석이만 보면 아직도 윤희의 옆을 지키지 못한 당시가 떠오른다.

“초대장은 어떻게 됐어?”

개인적인 일을 회사에 맡길 수 없는 일이기에 직접 움직여 돌잔치 준비를 하였다.

시댁에서 준비해 주겠다 했지만, 개인적인 일을 타인에게 시키면 자칫 구설수에 오를 수 있었다.

남의 입에서 입방아가 오르내리는 건 사양이다.

‘전생에 그런 경우 많이 봤지. 그리고 이게 맞는 거고.’

생각하면서 걸레를 들고 열심히 바닥을 청소했다.

“내일 택배로 올 거야. 일부는 우체국에 맡겨 달라 했어.”

직접 전달할 사람과 우체국을 통해 전달할 사람을 구분했다.

“오션월드엔 올리고?”

“응, 당연하지. 문자도 보내고.”

“잘했어. 역시 깔끔하네.”

전생 같으면 모바일 초대장으로 모든 게 해결이 되는데, 아직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 한참 멀었다.

‘2년 내지 3년이겠구나......’

1년 뒤면 아이폰이 출시한다. 하나 시장에 자리를 잡는 데 약 1년 정도가 걸리고 그때부터 여러 게임과 기능들이 생겨난다.

스마트폰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정착하는 시기를 2년에서 3년을 잡았다.

그땐 한리버도 함께 크게 성장해 있을 거다.

지이이이이잉.

전화가 왔다.

청소하던 손을 멈추고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냈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였다. 청소 중이기도 하고 받을까 말까 잠깐 고민하는 차.

“뭐 해. 안 받고. 나 모르는 애인이라도 생긴 거?”

윤희야 새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얇게 찢어진 눈이 의심으로 뭉쳐있다.

“날 뭐로 보고! 받으면 될 거 아냐.”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오던 한강이다.

당당히 전화를 받았다.

“유한강입니다.”

---여보세요. 회장님. 안녕하세요.

“여자 목소리......?”

한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뒤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것도 어린?!”

오한을 느낀 한강은.

“아니야. 절대. 기다려봐.”

윤희의 공격적인 시선을 받으며.

“누구시죠?”

제발 상대가 오해성이 다분한 말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걸리는 것도 없는데, 왜 이리 떨리는지 모르겠다.

---저 지윤이에요.

“......아? 아! 지윤이. 하하. 난 또.”

들려온 이름에 갸우뚱이던 목이 홱 바로 세워졌다.

한강은 한껏 여유로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말을 편하게 던졌다.

---오디션 끝나면 전화를 하라 했는데, 너무 늦게 해서 죄송해요.

지윤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지윤아, 잠깐만. 오디션장에서 내가 스카웃한 애야. 그만 오해 풀어. 나 못 믿어?”

“이상하다. 묘하게 긴장하던 눈치였는데. 뭐 좋아. 재석아 엄마랑 들어가자. 아빠가 중요한 전화 하신다고 비켜 달란다.”

윤희는 한강이 보지 않는 틈을 이용해 혀를 살짝 내밀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 얘기해.”

---바쁘시면 제가 내일 다시 연락드릴게요.

“아냐. 얘기해.”

---저 정말로 한리버에서 가수로 활동할 수 있는 건가요?

계약서도 쓰지 않은 상태다.

충분히 불안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 앞으로 우리 소속 가수로 활동하게 될 거야.”

댕그랑.

귓가로 동전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공중전화 박스?!’

지윤이 무엇으로 전화를 하고 있는지 알 거 같았다.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하더니. 생각 이상인가 보네.’

순간 한강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도움을 줘도... 되겠지.’

믿을 수 있는 아이다. 한강은 지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기로 하였다.

“주소 불러주면 집으로 차를 보낼게. 그거 타고 회사로 와.”

---아, 아니에요. 제가 찾아갈게요.

“내가 뽑은 사람이야. 소홀히 할 수 없지. 할머니와 함께 와.”

부모님은 지금 집에 계시지 않는다 하였다.

그렇다면 보호자로 할머니밖에 없을 터다.

그리고 할머니가 있는 자리에서 해 줄 말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작다. 아무래도 감격한 마음에 울컥한 모양이다.

한강은 모른 척 말을 이었다.

“주소.”

---주소가.......

수화기에서 들려온 주소를 다 적고.

“그래, 고생했다. 낼 좋은 얼굴로 보자.”

전화를 끊었다.

“휴우. 정말 가족끼리 챙겨주고 잘 지내면 참 좋을 텐데.”

세상이 참으로 잔인하다. 남보다 못한 가족이라니.

씁쓸함이 입가에 머물렀다.

“저예요.”

한강은 잠시 생각을 뒤로하고 다시 핸드폰을 들어 기사에게 전화를 하였다.

“낼 10시까지 제가 불러주는 주소로 가주세요. 이름은 이지윤이고 주소는......”

기사에게 주소를 남기고 연락을 끊기를 잠깐.

“저 실장님. 쉬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

한강은 다시 핸드폰을 들어 김동진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강의 전화는 그로부터 5분간 더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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