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30화 (130/237)

130화. 22살, 이지윤

“아이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강은 멍하니 지윤을 바라봤다.

고데기로 어설프게 만 머리부터 시작해 조금은 촌스러운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

“이랬구나.”

아이윤의 일화는 들은 바 있다. 엄마가 빚보증을 잘못 서 매일 빚 독촉에 시달리다 결국 흩어진 가족들.

할머니 집에서 동생과 함께 지내야 했던 나날.

식사는 오로지 감자로 대신했다는 일화는 제법 유명했다.

“그때의 과거가 있음에도 올곧게 잘 컸지...”

전생에서 몇 번 만나보기도 하였다.

늘 밝게 웃던 모습은 지금도 눈가에 선하다.

“노래 시작해 볼까요.”

생각하는 사이 이현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강은 생각을 멈추고 지윤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노래가 시작됐다.

“사랑 그 사랑이 정말 좋았네.”

주현미의 정말 좋았네가 지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린 나이임에도 구슬픈 감정이 노래에 고스란히 담겼다. 눈가에 젖은 슬픔이 노래로 엮여 공기를 축축하게 적셨다.

“사랑 그 사랑이 정말 좋았네.”

약 1분이 조금 넘어가는 시간, 지윤의 곡이 끝났다.

‘저 나이에 어떤 교육도 받지 않았으면서 저 정도면 확실히 타고났다고밖에 볼 수 없구나.’

형편이 좋지 못하니 노래방도 자주 가지 못했을 터고 따로 노래를 교육받은 적도 없을 터.

한강은 순수하게 감탄을 터트렸다.

하지만.

‘저걸로는 부족해.’

분명 뛰어난 실력이나, 이건 어디까지 일반인 학생 중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노래를 전문으로 연습생들과 비교했을 때 실력 차가 매우 컸다.

“이지윤 씨 합격입니다.”

1차는 합격을 하겠지만.

‘3차는 힘들 거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상과 현실은 너무도 달랐고, 사회는 냉정했다.

“감사합니다!”

지윤은 감사하다며 허리를 몇 번이고 숙여 보이며 인사를 해댔다.

심사위원들은 방송에서 보던 것과 달리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1차는 노래만 적당히 부를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합격하는 수준.

좋아할 정돈 아니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죠?”

지윤이 나간 방. 혜림이 짧은 감상평을 남겼다.

“분명 재능은 있어요.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목소리는 아니네요.”

이현호는 ‘대중성’을 따졌다. 아이돌 시대가 저문 2006년.

새롭게 자리를 잡아가는 음악 시장과 지윤의 목소리는 어울리지 않다 여겼다.

‘선곡이 나빴어. 어울리지 않아.’

아마 할머니의 영향이 꽤 컸을 터다.

실력도 부족한 상황에 자신의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곡을 가져왔다.

“음... 도와주고는 싶지만... 오디션 기간에 돕는 건... 좋지 않겠지.”

물론 소속사에 속한 지망생은 소속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될 테지만, 여기서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약간의 도움은 줄 수 있을지도...’

한리버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성장을 이어갔다. 그중에는 엔터 사업을 크게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자면 한리버에 소속될 연예인이 필요했다.

‘기회일지도......’

지윤은 그랬다. 당시 소속사를 잘못 들어가 사기도 많이 당했다고.

‘그 정도는......’

결심이 섰다.

“저 잠시 나갔다 오죠. 일이 생겨서. 오디션 계속 보고 계세요.”

한강은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고 지윤이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이동했다.

보는 사람이 많은 만큼 최대한 얼굴을 가리고 걸음을 이동했다.

“유명해도 힘들어.”

다행이라면 짧은 머리라는 점.

대한민국에 알려진 모습은 짧은 머리보다는 긴 가르마 머리가 잘 알려진 상태였다.

“지윤 씨.”

2분 정도 걸어 지윤의 뒤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

역으로 향하던 지윤의 걸음이 멈췄다. 지윤은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저 남자친구 있어요.”

한마디를 툭 던졌다.

***

저벅저벅.

“......”

오디션장을 나오고 집으로 돌아가 기쁜 소식을 전하고픈 굴뚝 같은 마음을 품고 역으로 향하는 길.

힐끔힐끔.

아까부터 누군가 뒤를 쫓아오는 기분을 받았다.

속도를 올리면 똑같이 속도를 냈다.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이런 관심은 몇 번인가 받아봤다.

지금도 인기는 나쁘지 않은 편.

하지만, 아무리 훈남이고 잘생겨도 이성에게 마음을 줄 만큼 여유는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걸음을 멈췄다.

“지윤 씨.”

“저 남자친구 있어요. 죄송합니다.”

지윤은 뒤를 돌아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상대방이 가장 민망하지 않을 대사를 가져와 정중히 거절의 뜻을 비쳤다.

“......”

뒤를 잡아 지윤을 멈춰 세우는 데 성공한 한강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이유 모를 패배감을 느꼈다.

지금껏 살아오며 겪어보지 못한 충격에 굳어 버렸다.

“그럼 이만.”

지윤은 상대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상대의 키가 큰 편도 있었지만, 얼굴도 확인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아니, 그게. 저기요. 지윤 씨.”

한걸음 움직일 때, 어깨를 잡는 남자의 손길.

빠직.

예의를 차리고 정중히 대했건만, 질척이는 남자의 손길에 불쾌한 감정으로 이어졌다.

“글쎄, 남자친구 있다는데 이게 무슨 짓이에요. 당장 안 가면 여기서 소리 지를.....”

“자, 잠깐만요.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전 유한강입니다. 여기 명함을!”

지나가는 사람이 힐끗 쳐다봤다. 한강은 안 되겠다 싶어 후다닥 준비한 명함을 내밀었다.

“이 아저씨가 정말 어, 네? 방금...... 헙!”

말을 막아서는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던 지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붉어진 얼굴은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시선은 명함에서 위로 향했다.

두 눈동자는 크게 떠졌다.

“유, 유, 유한강 오빠.”

아저씨에서 오빠로 신분이 상승했다.

“하, 하하......”

한강은 멋쩍게 웃었다. 어색한 기운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죄, 죄송합니다. 전 치한인 줄 알고. 정말 죄송합니다.”

지윤은 위아래로 몸이 반복해 움직였다.

입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아, 대체 날 뭐로 생각하겠어. 완전 공주병 걸린 여자라고 생각할 거야. 히잉.’

자신의 행동을 크게 반성했다. 이유도 다 들어 보지 않고 혼자 자폭하고 말았다.

그것도 이 시대 대스타에게 말이다.

시선을 급히 아래로 내렸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왜 자신을 따라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빨리 지금 자리를 피하고 싶은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충분히 오해 살 행동이었어요. 갑자기 불러 놀라셨죠.”

벙찐 마음도 잠시, 무안해하는 지윤을 달래고자 잘못의 주체를 자신으로 돌려 사과를 하였다.

분명 잘못을 한 건 맞았고, 충분히 오해를 할 만한 원인을 제공한 것도 맞았기에 억울하진 않았다.

혼자 걷는 모르는 여성을 붙잡는다면 누구라도 한 번쯤 오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디션이 끝나면 연락 주세요.”

한강은 지윤이 2차에서 떨어질 거라 내다봤다.

타고난 재능과 ‘완성된 목소리’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이건 육아 프로가 아니다.

냉정한 경쟁을 통해 프로의 무대에 서는 것이다.

그러자면 지금의 지윤은 많은 준비와 공부가 필요했다.

한강은 그걸 한리버란 이름으로 키워주어 전생과 달리 안정된 삶은 살아가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오디션은 떨어질수록 많은 걸 배우게 해주지. 포기하지 않은 근성은 더욱 빛을 내게 해주고.’

오디션에 합격한다 하여 성공을 하는 건 아니다.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네......?!”

지윤의 눈에 ‘왜’가 담겼다.

처음 보는 자신에게 전화를 해달라는 이유가 무척 궁금했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가능성을 봤어요.”

오디션 룰에 어긋난 행동이지만, 한강은 미리 선점을 하기 위해 나섰다.

‘뭐, 아직 연예 기획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문제 될 건 없지.’

한강은 자신했다. 지윤을 다른 기획사에서 성장하기보다 한리버에서 성장하는 게 가장 좋으리라고.

개인 트레이너들을 채용해 지윤에게 맞는 교육을 지원할 참이다.

보컬, 댄스, 말하기, 몸관리 등등.

그녀를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 줄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겠다 마음을 먹었다.

“직접 찾아와도 좋아요,”

“정말로요.”

“네.”

“저... 그런데 한리버도 연예기획사가 있나요?”

“우리 회사에도 있죠.”

피아노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인수한 미디어 회사가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단지 연예인이 없을 뿐이지만.

‘아니지, 나 연예인이잖아.’

아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부족한 건 채우면 그만.

한강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한강의 목적과 지윤의 목표는 같은 곳을 향한다. 그거면 된 것이다.

“정말요?”

“내가 거짓말을 한 기억은 없는데.”

“꼭! 연락드릴게요. 꼭이요!”

지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동안 우상으로 여기고 있던 한강에게서 캐스팅을 받았다.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터다.

지윤은 꼭 연락을 주겠다 다짐하며.

“저... 사인 한 장 해주시면 안 될까요? 사진도 한 장......”

사인과 사진을 부탁했다.

“얼마든지요.”

둘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지윤의 핸드폰에 한강의 얼굴이 담겼다.

***

2006년 6월.

버즈가 타이틀곡 남자를 몰라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다섯 남자가 여자에게 전합니다. 버즈에 남자를 몰라.]

TV 화면에 버즈가 등장했다.

“아, 버즈다!”

“......”

집에서 가지는 휴식시간. 윤희가 TV를 켜 가요 방송을 틀었다.

때마침 요즘 핫한 남성밴드 버즈의 자막이 올라왔다.

한강은 뚱한 얼굴로 TV를 바라봤다.

[눈 비비는 척 눈물 닦아내고...]

“노래 잘 부른다. 그치.”

재석을 안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노래를 감상했다.

화면에 나오는 가사를 보며 따라 불렀다.

“왜 강한 내 사랑을 몰라......”

[왜 널 지킬 쌈자를 몰라.]

“......응?!”

노래를 잘 따라 부르던 윤희는 노래를 멈추고 화면에 잡힌 민경훈을 바라봤다.

“자기야, 내 귀가 이상한 거 아니지?”

윤희는 놀라 한강을 바라봤다.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게 아니길 바라며.

“......큭큭.”

그런데 한강은 배를 잡고 소파 위에 누워 배를 잡고 있었다.

‘미친, 맞아 저게 있었지.’

푸하하하하하.

너무 오랜 시간이라 잊고 있었다. 버즈의 민경훈 하면 붙어 다니던 그 별명을.

한강은 오랜만에 듣게 된 전설(?)을 마주한 채 옛 감성에 젖어갔다.

“......재석이 아빠?!”

미친 듯이 웃으며 눈물까지 흘리는 한강을 보는 윤희는 당황한 눈이 되어 거리를 벌렸다.

신들린 것처럼 미친 듯이 웃는 남편이 무섭게 다가왔다.

“미안, 하하.”

정신을 차린 한강은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는 윤희를 보았다.

“들은 게 맞아. 아주 자신 있게 가사를 틀려 버렸네. 앞으로 저 가수를 예능인으로 만들어 줄 별명이 될 거야.”

한강은 자신 있게 말했다. 윤희의 심정도 모른 채.

“요즘, 많이 힘들어?”

윤희는 한강을 보며 걱정된 눈으로 물었다.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났다.

“아니? 왜?!”

“신내림이라도 받은 줄 알고......”

“......”

단 한마디로 한강을 무당으로 만들어 버리는 윤희였다.

오늘도 한강의 집 날씨는 매우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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