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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27화 (127/237)
  • 127화. 21살, 다음으로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분위기가 또 바뀌었다. 바꾼 주인공은 이건호에서 한강으로 옮겨갔다.

    “도움?”

    금세 제자리를 찾는 당당함에 ‘저것도 타고 난 게지’ 혀를 차며 도움이란 부분에 의문을 붙였다.

    “제가 저지른 일을 확실히 마무리를 짓고 싶습니다.”

    어느 때보다 눈빛이 진지하다. 오늘따라 더욱 크게 보이는 눈동자는 이건호의 눈과 맞닿았다.

    “나 보고 싸지른 똥을 치워달란 소린 아닐 터이고, 도움을 받을 게 뭐가 있을까?”

    마주한 눈을 응시하던 이건호는 한강이 원하는 게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또 무어라 나를 곤란하게 할지... 벌써부터 겁이 나.’

    한두 번 곤란하게 만든 게 아니다.

    하나, 그 모든 걸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냈다.

    그런데 도움이란다.

    괜한 일에 휘말리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부터 들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장인어른이라면 말입니다.”

    표정을 살핀 한강은 찻잔을 들어 입을 살짝 축이며 잠깐의 생각할 시간을 가지다 이윽고 입술을 떼었다.

    “김한석 소대장을 돕고 싶습니다. 장인어른께서도 소대장이 잘못이 없다는 걸 아주 잘 아실 겁니다.”

    “......”

    이건호는 한강을 노려봤다.

    “이번 일뿐입니다. 다른 건 없습니다. 부탁합니다. 장인어른.”

    다시 매서워진 눈을 보자, 생각과 달리 난이도가 제법 높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한강은 더욱 몸을 굽혔다.

    “안 돼.”

    그러나 이건호 단호하게 거절을 표했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간 어른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이나 다름이 없구나.”

    “......?”

    “내가 너를 돕는다면 내가 원하는 걸 주면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간 봐온 네 녀석이라면 분명 그럴 거야.”

    “......인정합니다.”

    틀린 말이 아니기에 속으로 감탄하며 맞음을 인정했다.

    “이번 일은 너의 전 재산을 육성에 내놓겠다 하더라도 들어주지 않을 거야.”

    “김한석 소대장이 회장님께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했습니까?”

    울컥한 마음에 목에 힘을 주었다.

    “소대장은 뭐라더냐? 도와달라더냐?”

    “그런 말은 한 적 없지만, 분명......”

    “도와달라 할 것이다. 이 말이 하고 싶은 게냐?”

    “......”

    “난 아니라 본다. 그자가 네게 녹음기를 넘긴 건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일 게다. 거기서 내가 나서면 더욱 험악하게 변하게 될 거다. 그대로 내버려둬. 어차피 징역이라 해봐야 1년 미만일 테니.”

    마치 무엇을 알고 있는 눈빛. 한강은 잠시 이건호의 눈을 응시했다.

    ‘그런 건가......’

    여기서 한강은 무언가 깨달았다.

    그리고 표정을 보고 확신을 얻었다.

    ‘장인어른이 미리 조치를 취하셨구나.’

    그게 뭔지 모른다. 하나,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정치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그 중심에는 이건호 회장이 있음을 말이다.

    “죄송합니다.”

    “알았으면 나가봐. 이야기는 모두 끝난 거 같으니.”

    축객령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한강은 등을 돌려 나가면서 생각했다.

    ‘몸이 어려졌다고 생각도 어려졌나 보구나... 너무 감정적으로 나갔어.’

    한강은 작게 후회하고 걸음을 옮겼다.

    한강의 뒷모습을 조용히 응시하던 이건호는 수화기를 들었다.

    “날세. 망할 놈의 새끼의 모든 걸 털어내게. 털기 어려우면 함정이라도 파서 더는 양지로 올라오지 못하게 만들어. 육성을 건드린 대가를 치러야 할 게야. 알았는가?”

    한강이 떠나간 방.

    이건호는 한강에게 보이지 않던 살기를 내비쳤다.

    ***

    [김한석 소장 징역 6개월 선고......]

    얼마 후, 김한석 소장의 징역 선고가 떨어졌다.

    해당 선고는 한국 사회에 충격을 주며 ‘잘못을 바로잡는 군인은 감옥행’ 이란 글들이 여기저기 게재가 되었다.

    “미안합니다. 돕지 못해서.”

    기사를 본 한강은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억울함에서 풀어주고자 하였지만, 인맥이 많지 않은 기업인은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 된 일이지? 갑자기......”

    [육군 훈련소 소장 이석인 비자금 정황 포착! 비리로 얼룩진 이석인 소장이 결국 덜미를 붙잡혔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수억이 든 사과박스를 발견한 검찰은 추가 범행이 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해당 사건은 군 검찰로 넘겨졌다.]

    이건 생각도 못 한 기사였다. 외부인과 만나는 과정에서 돈을 받은 정황이 고스란히 기사에 실렸다.

    영상 파일을 공개해도 가만히 있던 군검찰이 움직였다.

    검찰은 소장과 관련된 모든 친인척 집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증거를 모았다.

    거기서 나온 현금만 수십억에 육박하며 아들 선물로 자동차를 받았다는 정황까지 드러났다.

    심지어 소장은 업체에서 사용하는 영업 차량을 이용해 종종 골프 라운딩을 다닌 사실도 언론에 의해 밝혀졌다.

    “세상 참 요지경이야. 장인어른께 말하러 갈 필요조차 없었어.”

    한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계속 응어리가 남아있던 문제가 단숨에 풀렸다.

    이번 일로 죄를 지은 모든 자들에게 심판이 있을 걸로 보였다.

    군의 보호를 받던 중대장까지도.

    이번 문제는 너무도 허무하게 끝이 났다.

    2005년 12월도 중반에 걸쳐진 날, 한강은 그제야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

    종이 울려서 장단 맞추니 흥겨워서 소리 높여 노래 부르자 헤이!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우리 썰매 빨리 달려 종소리 울려라♪

    크리스마스이브가 찾아온 날.

    사람들의 마음은 크게 고조되어 크리스마스 밤을 즐겼다.

    “우리 재석이 첫 클스마스네.”

    재석의 볼을 매만지며 방긋 웃었다.

    “저기 봐봐. 재석아. 우리 재석이 너무 예쁘다고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저만큼 놓고 갔어요.”

    거실 한복판에 잔뜩 쌓인 선물을 바라봤다. 가족이 많으니 선물도 참 많았다.

    재석이 얼마나 사랑을 받는 아이인지 알게 해주었다.

    “나도 저만할 때가 있었는데. 재석인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언제 알게 될까? 후후.”

    아직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갓난아기인 재석을 안아 들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한강인 좋겠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도 놓고 가고. 우리 한강이 많이 예쁘다 하시고 슝 가셨어.]

    다 아는 사실을 엄마는 웃는 얼굴로 거짓말을 하였다.

    알면서 속아야 했던 그 날의 기억은 다시 오지 않을 추억으로 자리를 잡았다.

    “난 영원히 몰랐음 좋겠어.”

    윤희가 대답했다.

    “왜?”

    “알게 된다는 건 사회를 알아갈 나이가 된다는 의미잖아. 난 재석이가 그러한 부분들을 늦게 알아갔음 해.”

    일곱 살이든 여덟 살이든 아이들이 만든 사회를 경험하며 커가게 될 거다.

    거기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동시에 배우게 될 것이고 재석이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될 터이다.

    윤희도 그러한 과정을 거쳤기에 자신과 같은 절차를 밟지 않기를 바랐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힘들다는 거 알지? 그걸 가이드해 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야.”

    “그렇겠지?”

    “응. 그때가 오면 우리의 기억을 떠올려 잘 이끌어 주자.”

    아부바바바.

    재석의 웃는 얼굴을 보며 둘은 손을 꼭 잡았다.

    윤희는 한강의 어깨에 기대어 혼자 잘 노는 귀여운 아들을 바라봤다.

    한강은 그런 윤희를 팔로 끌어안아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2005년 12월 24일은 서서히 저물어 2006년의 해로 접어들었다.

    ***

    2000년대 일곱 번째가 해가 밝았다.

    5천 원권 지폐가 신권으로 교체되어 시장에 풀렸다.

    기존보다 더 작아진 신권을 보며 구권과 섞여 거래가 되었다.

    “지금이구나. 신권이 풀리는 해였지. 구릿값이 폭등해 십 원짜리 동전을 소꿉장난 동전으로 바꾸게 되는 계기가.”

    한강에겐 너무도 익숙한 구권 5천 원 지폐를 보며 크게 바뀌게 될 미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중 한 가지를 끄집어내어 다음 투자 계획을 세웠다.

    “김 실장님 저 좀 보시죠.”

    인터폰을 하였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김동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구리에 투자하세요. 최대한 많이.”

    “갑자기 구리에 투자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음, 요즘 한국은행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요. 이걸 보세요.”

    한강은 손에 든 5천 원 신권을 들어 보였다.

    “이게 왜...?”

    “우리나라 화페 시장이 곧 크게 바뀔 거란 예시입니다. 천 원도 바뀌고 만 원권도 바뀌게 되겠죠. 사이즈는 이 정도로.”

    “......그런데 구리와 이건 관련이 없지 않습니까?”

    “아뇨, 관련 있어요.”

    “관련이라 함은...?”

    “그건 바로 원자재 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겁니다. 그걸 감당하기 위해 한국 화폐는 사이즈가 작아지고 특히 구리 함유량이 많이 들어가는 10원짜리 주화에 큰 변화가 있을 거라 봐요.”

    실제로 10원짜리에 구리 함유량이 약 65% 정도 들어간다. 덕분에 어느 틈엔가 10원짜리를 만들 때마다 손해를 보며 생산하게 되었다.

    생산된 제품의 화폐보다 더 비싼 꼴.

    “특히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전기차 시대를 열 거란 사실입니다.”

    “......?”

    갑자기 전기차가 나온다고?

    김동진은 빠르게 바뀌는 이야기를 따라잡고자 모든 정신을 한강에게 집중했다.

    “이해를 하기 쉽지 않겠지만, 전기차에 사용되는 구리는 내연차보다 4배 이상 필요하게 될 겁니다.”

    내연차에 들어가는 구리는 대부분이 전선이었다면, 전기차는 전자장치로 도배가 되기에 사용 빈도가 크게 증가한다.

    “또 전 나라들은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거치게 될 겁니다. 특히 풍력 시장은 효율이 좋은 해상 풍력으로 많이 옮겨지게 될 겁니다. 육지와 멀어지는 만큼 사용되는 구리양은 엄청날 겁니다.”

    기술력의 성장은 더 많은 구리를 원하게 될 터다.

    미래에서 온 만큼 구리의 진가를 누구보다 더 잘 알았기에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었다.

    “......회장님은 대체 그걸 다 어떻게 아시는 건지요?”

    올해 나이 스물둘.

    전자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전기와 관련 일도 한 적 없다.

    그렇다고 한리버가 원자재를 사용하는 기업이냐? 그것도 아니다.

    일반인이 알아내기 어려운 정보나, 수많은 지식과 견해가 스물두 살의 어린 남자에게서 멈추지 않고 나오니 무척 혼란스럽기도 하고 회의감마저 들었다.

    구릿값이 오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변한다는 그런 확신성 발언은 하지 못했다.

    누가 있어 미래를 확신하며 예측할 수 있을까?

    시선은 한강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의 자리는 당연한 건가. 미래를 읽는 능력...... 부럽구나.’

    김동진은 그간 유한강이 밟아온 길을 되짚어 보았다.

    “제품에 들어갈 재료와 재료의 쓰임새, 왜 그게 아니면 안 되는지 접근을 하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됩니다. 지금은 오른 것도 아닙니다. 구릿값. 오히려 싸다 볼 수 있죠.”

    한강은 씩 웃었다.

    지금 시장에서는 1년 전보다 구릿값이 50% 이상 인상됐다 난리지만, 한강이 보기에 현재 거래가 되고 있는 구릿값은 아주 쌌다.

    투자가치는 충분했다.

    “그러니 20년은 본다 생각하고 꾸준히 사 모으세요. 관련 기업을 인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농담 형태로 말은 했지만.

    눈은 절대 장난이 아니었다.

    김동진은 한강의 욕망으로 득실대는 눈동자를 본 순간.

    “알겠습니다. 지시대로 이행하겠습니다.”

    모든 걸 받아들이고 따르기로 하였다.

    한리버는 또 한 번 서서히 기지개를 켜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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