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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25화 (125/237)

125화. 21살, 마무리

“방금 뭐라 했습니까? 지금 이거 하극상인 거 아시죠?”

분노의 일갈을 던지던 박종필은 크게 당황했다.

지금껏 김한석의 이러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하극상을 가장 싫어했던 참된 군인이 바로 김한석이었다.

한데 들려온 목소리는 정도를 한참 넘어섰다.

“내가 진짜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려 했는데. 너무하단 생각 안 드나? 그 잘난 빽 믿고 이러는 건가? 아니면 당신 하나 잘 먹고 잘살면 우리 식구가 뒈져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김한석의 머리가 뜨겁게 타들어갔다.

눈은 당장이라도 박종필을 죽일 듯한 눈빛을 발사했다.

“김한석 상...”

이에 한마디 던지려던 박종필은.

“박종필 대위!”

터지는 고함 속에 말을 잇지 못했다.

분노하는 박종필의 모습에 입이 다물렸다.

위험해 보였다.

“......”

박종필은 굳은 얼굴로 상대를 바라봤다.

처음으로 보게 된 성난 얼굴엔 살기가 드리워졌다.

“그동안 뭔 짓을 하고 다녀도 무시했는데 더는 못 참겠어. 빌어먹을 새끼.”

상관 모독죄, 하극상 따위 개나 줘 버렸다.

‘정말 더럽군. 이게 어찌 군인인가. 더러운 시정잡배나 다름없는걸.’

모든 국민에게 군대의 민낯을 밝혔다. 숨기고 싶었던 진짜 모습을.

그렇다고 군대의 문제를 나 몰라라 지켜볼 생각 따위 없었다.

일을 벌이기 전 한강에 대한 문제를 감춘 건, 오늘을 위한 보험이라기보다 신호탄에 지나지 않았다.

저벅저벅.

“말해 두지. 날 고소하려면 고소해. 당신들 비리를 전부 밝혀줄 테니까. 내가 모를 줄 알았지? 소장과 짜고 처먹는 그 짓거리를.”

연간 받아들이는 병력이 약 12만 명이다.

상주하는 병력은 약 1만 8천여 명.

그들이 먹는 식비 일부가 이들 주머니로 흘러들어가고 있음을 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 그걸 사람들이 믿을 거 같아! 증거도... 흡.”

당황해 실수를 하고 말았다. 박종필은 급히 입을 닫고 김한석을 응시했다.

“그렇게 많이 해 먹었으면서 내가 모를 거라 봤나. 소장에게 말해. 똥 맞고 내려오기 싫으면 절차대로 하라고. 늘어진 뱃살 도려내기 전에 말이야.”

김한석은 등을 돌려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집어 위로 들어 올렸다.

[그걸 사람들이 믿을 거 같아! 증거도...]

녹음기였다. 안에서 방금 나눈 대화 일부가 흘러나왔다.

이건 아주 간단한 의미를 부여했다.

경고.

허튼수작은 부리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다른 것도 있지만, 이 정도면 되겠지. 잘해 봐. 중대장님.”

철컥, 턱.

“......”

방 안에 혼자 남은 박종필은 생기를 잃은 눈으로 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망했다.”

방금 전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망연자실하였다.

이 사실이 세상에 퍼진다면.....

“모두 끝이야.”

박종필은 황급히 수화기를 들어 단축 번호를 눌렀다.

개인이 해결하기에 일이 너무 커졌다.

“소장님 큰일 났습니다. 김한석 소대장이......”

그의 걸음은 방을 벗어나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걸음이 급해졌다.

“이런 멍청한 새끼!”

머그컵이 허공을 날아 박종필 옆으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박종필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일 처리 똑바로 하랬어 안 그랬어!”

세상의 이목이 이쪽으로 향하는 건 좋지 않다.

군대에서 벌어봐야 얼마나 벌까?

모두 외부에서 가져오는 ‘떡’이 있기에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했다.

한데, 거기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모두 저 망할 자식 때문에.

“......”

“소대장 하나 못 잡아서......”

재수 없게 멍청한 병사 잘못 두는 바람에 모든 게 꼬였다. 거기서 수류탄 사고가 일어날 게 뭐이며, 바로 그 자리에 유한강 회장이 자리해 있던 건 또 무엇인지.

정말로 머리가 아파왔다.

“소대장... 소대장... 으득.”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게 공개가 되기 전에 잡는 게 좋았다.

소장은 이를 갈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가 김한석 소대장을 만나 보도록 하지.”

더는 중대장을 믿을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수류탄 사건은 다음 문제로 미뤘다.

그만 잡으면 다음은 쉽게 잡을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

한리버 사옥.

“군에선 아직 어떤 반응도 없던가요?”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흠......”

생각에 생각을 더 해본다. 지금 사회는 이번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뉴스란 뉴스는 전부 군을 겨냥하고 있으며 인터넷조차 군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어떠한 반응이 없다는 이유는 무엇을 의미할까?

“수도병원으로 옮겨 간 병사는 어때요?”

전생에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는 기사를 본 거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각을 해보지만 나지 않기에 일단 뒤로 미뤘다.

주제를 입원해 있는 박수호 상병으로 옮겼다.

“예정대로 의가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집안 사정은요?”

전역은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렇다면 생활 형편 부분이다.

전생에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살 수 있음에도 돈이 없어 죽어야 했던 고인들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보고하는 김동진의 표정이 좋지 못하다.

덩달아 한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느 정도죠?”

“아버지는 일찍 여위고 어머니는 지병으로 제대로 활동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인데, 이게 근근이 일하면서 생기는 수입으로 그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법이란 게 참으로 허점투성이였다.

일정 수입이 없어야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받아 나라에서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그건 알까?

그걸 받기 위해 일부러 취업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나라의 법은 바뀌어야 한다. 최소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과 노력을 하는 사람에게 주는 걸로.

그리고 박수호와 같은 집으로.

“그런 상황에 다리는 다치고 군에선 보상도 안 해주고...... 아주 가관입니다.”

돌아가는 꼴이 매우 우스웠다. 대체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들고 있는 사람이 그런 자를 위에 올렸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박수호 상병 어머니 육성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세요. 그리고 박수호 상병도 그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고.”

군에서 받을 보상과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비록 기초훈련을 받고 떠난 남남이지만, 함께한 시간이 있었다.

한강은 그 시간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짧지만, 함께했다는 전우의식이 가슴에 자리했다.

“알겠습니다. 지시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훈련소에 대해 정보를 더 모아 보세요. 분명 뭔가 나올 겁니다.”

캐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그걸 알아내는 방법도 무척 간단했다.

그건 김동진 실장이 알아서 잘하리라 믿었다.

***

터벅터벅.

“후우...... 썩었구나. 세상이.”

과거에도 군대는 썩었다. 5공화국 당시만 하더라도 군에서 발생하는 부패의 싹은 고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시대가 바뀌고 주체만 바뀌었지 그대로였다. 당시엔 대놓고 했다면 지금은 음지에서 저들만의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런다고 모를 수가 있나.

“매번 음식이 부족한 걸... 그걸 모를 수가 있냐고.”

발걸음이 멈췄다. 밤하늘을 올려봤다.

“더럽구나.”

[잘 생각해봐. 거기만 계속 있을 건 아니잖아. 더 위로 올라가야지.]

[수류탄 사고에서 손 떼게.]

[내 적당히 보상해서 돌려보낼 테니까.]

“......”

중대장실에서 떠들던 걸, 소장 앞에서 똑같이 하질 못했다.

약점을 알면서도 그걸 휘두르지 못했다 이 말이다.

그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놀아 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이 이상 선을 넘는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다’ 느껴지는 기운에 잡아 먹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새끼야.”

더러운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김한석 소대장님 되시죠.”

집에 다다랐을 때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한강 회장님의 지시로 왔습니다.”

“......”

“김동진 비서실장입니다.”

남자의 정체는 비서실장 김동진이었다. 김동진은 명함을 건네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 주변을 살폈다.

미행하거나 이쪽을 염탐하는 이는 없었다.

“잠시 대화 가능하겠습니까.”

끄덕.

김한석은 명함을 확인하고 고개를 흔들어 뒤를 따랐다.

좀 걸어가니 앞에 승합차가 대기해 있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드르륵, 턱.

승합차 문이 닫혔다.

“먼저 박수호 상병의 일은 걱정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전우로서 사비로 모든 치료비를 대겠다 말하셨습니다.”

부릅!

힘 빠진 얼굴로 있던 그의 눈에 힘이 들었다.

“회장님은 한 입으로 두말은 하지 않으십니다.”

“허허.....”

어느 누구보다 군인다운 발언이었다.

전우.

언제 들어봤는지 모를 단어다. 군가를 부를 때, 훈련병을 교육시킬 때나 입버릇처럼 나오던 단어가 예상도 못 한 이의 입에서 나왔다.

“......”

그런 자신은 어땠나.

‘나도 쓰레기였어.’

솔직히 흔들렸다. 박수호를 챙기고자 했지만, 너무 높은 벽에 가로막혀 굴복하고 말았었다.

한데...

‘대체 이걸 내가 왜 들고 있으려 했던 걸까.....’

아무래도 손에 쥔 무기를 들고 권력을 휘두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김한석은 떨구어진 고개를 들어 주머니 안에 있는 물건을 전달했다.

“이걸 회장님에게 전해주겠소.”

“이건......?”

“군에 대한 실체가 거기에 들어가 있을 거요. 그 정도면...... 되리라 보오.”

자신이 다니던 군의 더러움을 알게 될 거란 사실을 차마 본인의 입으로 하기 힘들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께 전해드리지요.”

아주 큰 소득을 얻었다. 이걸 바라 찾아온 건 아니었는데.

“아주 큰 결심을 해주셨습니다.”

생각과 달리 이번 일이 아주 쉽게 풀리게 될 거 같았다.

“미안한데, 날 집까지 데려다주시겠소. 집 가는 길이 무서워 말이오.”

막상 전하고 보니 덜컥 겁이 났다.

8, 90년대와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하지만, 당시를 경험했던 그로서는 조심스럽지 아니할 수 없었다.

당시의 용기와 당당함이 사라졌다.

‘이제 나도 늙은 게지. 그때의 마음이 단번에 꺾일 줄은... 전역해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자.’

군생활도 지쳤다. 이 정도 했으면 되었다 봤다.

“그러지요.”

김동진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옮겼다.

“출발하게.”

라이트가 켜지며 어둠을 밝혔다.

차는 서서히 움직여 장소를 이탈했다.

***

[병사들 부식요. 매번 부족해요. 부식 단가도 많이 올랐고...]

[재료가 매일 부족해요. 식사를 못 하는 병사가 있어 컵라면으로 때우기도 하는데, 그조차 부족해요.]

[그래서 요즘 국물은 물을 최대한 부어서 양을 불려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모두에게 나눠주기 전에 거덜 나거든요.]

[외주에서 단가 비싸게 후려치고 이익금 중 일부를 나눠 가지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건 들리는 말인데... 각 외주처마다 돈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대요. 그리고 그 돈은 소장에게 전달이 된다고... 전에 1호차 몰던 사람이 그걸 봤대요.]

[...그걸 사람들이 믿을 거 같아! 증거도...]

“......정말 어이없는 일이네요. 중대장이나 소대장도 문제고. 여기에 관련된 사람들 찾아주세요. 그들이 증인이 되어 줄 겁니다.”

“그런데 이 녹음 전부 공개하실 건가요?”

“소대장님도 각오하고 주신 겁니다. 이걸 공론화하는 것이 이번 일을 보다 빠르게 끝낼 수 있는 일일 겁니다. 더는 피해를 키우게 놔두도록 만들 수 없어요.”

이번 일로 군대가 변하길 바랐다.

‘수류탄 사고에서 여기까지 확대될 줄이야. 정말 요지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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