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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24화 (124/237)
  • 124화. 21살, 군대 방송

    “참, 된 사람이야. 안 그래?”

    기사 스크롤을 내리며 주경욱이 말한다. 시선은 곁에 있는 남자가 아닌 모니터에 고정을 한 채로.

    “저런 사람만 있음 우리나라 살 만할 걸요?”

    옆자리에서 의자를 끌어와 앉은 남자는 모니터 화면에 들어오는 미남자를 보며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눈에는 존경과 선망이 득실하다.

    다시 없을 위인이라 엄지를 세웠다.

    “그렇지. 그렇게 되면 경찰이든 일반 보육 시설이든 필요 없을 거야.”

    화면에 보이는 이는 유한강 회장이었다.

    짧은 머리조차 가뿐히 소화하는 외모를 감상하며 그가 벌이고 있는 선행들을 짚어갔다.

    “보육원 다니던 아이들의 기업 적응능력이 매우 우수한 걸로 나타나고 있어.”

    그러다 소망 보육원을 독립해 자리를 잡아가는 아이들에게 집중했다.

    “맞아요. 대학을 졸업한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보육원에서 졸업한 아이들은 바로 실무로 써먹는다면서요?”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사실 하나로 소망 보육원의 교육으로 주제가 넘어갔다.

    소망 보육원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은 걸 찾아 교육에 들어간다.

    실제로 실무를 보기도 하고 틀리면 혼나기도 하며 틀린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복습을 통해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 생활을 쭉 이어오는 까닭에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노는 것도 교육의 일환. 모든 걸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불편함 없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오죽하면 대학보다 보육원에 입학하고 싶다는 학생들이 늘어날 정도라고. 최근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 자기 고아라며 받아달란 사람까지 있었어. 알아보니 부모와 짜고 친 거더라.”

    해당 사건은 제법 유명했다. 또한 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는 가정집 모두 소망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고 사라졌다.

    덕분에 소망 보육원에는 아이들이 넘쳐났다.

    “참 별 또라이들 다 있어요. 그런데 전화 오는 거 아닙니까?”

    신문 위에 놓인 핸드폰이 진동에 몸이 떨며 빙그르 돌고 있었다.

    011-XXXX-XXXX.

    “누구지? 처음 보는 번호인데.”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가 액정에 떴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네!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받은 주경욱의 몸이 위로 벌떡 일어나졌다. 곁에 있던 남자는 생각 없이 있다 주경욱의 행동에 깜짝 놀라 무슨 일인가 싶어 멀뚱히 바라봤다.

    “한리버 다녀온다. 준비해.”

    모니터 화면조차 끄지 않고 바삐 움직여 짐을 챙겼다.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한리버에 불이라도 났답니까?”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남자는 눈에 진한 기대를 실었다.

    특종!

    그렇지 않아도 요즘 재미난 기사가 없어 지루하던 차였는데, 떡이 굴러왔나 내심 기대했다.

    “끔찍한 소리 말고. 가자. 가면서 얘기할게.”

    이러한 현상은 경쟁 언론사인 SBC에도 일어났다.

    국내 대표 방송사에 소속된 기자들은 황급히 한리버가 있는 청담동 사옥으로 향했다.

    ***

    13시 35분.

    추운 겨울날 임에도 사람들 얼굴에 땀이 송골 맺혔다.

    모인 사람들은 신경전을 벌이며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제가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부른 건, 훈련소에 있었던 일을 고하기 위해섭니다.”

    한차례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SBC, MBS 기자들의 눈빛이 아주 매섭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녹음기와 수첩은 무기로 변해 포탄이 되어 세상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훈련 4주차에 수류탄 훈련이 있었습니다. 제가 시범을 보이는 걸 시작으로 훈련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한 훈련병이 불안 증세를 보여 유심히 살피고 있던 중......”

    한강은 당시에 있던 일을 소상하게 밝혔다.

    두 사람을 구하게 된 내용을 시작으로 기간병의 다리가 다치게 된 일까지.

    빼놓지 않고 모두 공개했다.

    “그래서 군병원에서 치료 중입니다. 한데 문제는 이 잘못이 훈련 도중 발생한 개인과 개인의 일이므로 군에선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이러한 일을 은폐하려 하고 있단 사실입니다.”

    전역하면 다친 다리로 인해 제대로 생활도 못 한다. 그뿐이랴.

    회사에서 장애인을 우대해 취업을 시킨다지만, 장애인을 원하는 회사가 얼마나 될까?

    일하는 범위도 업종도 매우 한정적으로 변한다.

    병사가 원해서 된 일도 아니거늘, 군대는 책임을 회피했다.

    “이것은 회사에서 일하다 사고 난 직원에게 보상도 안 해주고 해고 처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전 이런 부조리한 사실을 고하고 군에서 정당한 보상을 피해장병에게 해주었음 합니다.”

    “허어, 요즘 군대가 참 문젭니다. 정말 좋은 기사를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께서 주신 내용을 잘 정리해 국민들에게 알리겠습니다.”

    기자들은 앞다투어 들은 내용 모두를 빠짐없이 세상에 알리겠노라 약속했다.

    챙겨온 녹음기와 수첩을 챙겨 들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가 기사로 작성해 올릴 일만 남았다.

    한강은 만족한 미소를 띠고 기자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유길섭 대표님.”

    “말씀하십시오.”

    “월드 플레이에 소속된 모든 비제이 분들에게 전해주세요. 기사가 나가는 대로 해당 방송을 내보내라고요. 세상이 얼마나 무서워졌는지 군에 보여줄 필요가 있을 거 같습니다.”

    아직 세상은 모른다. 비제이들 방송의 힘과 위력을.

    더욱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방송에서 벌이는 뉴스는 군을 절벽으로 밀어 넣게 될 터다.

    ***

    “내 다리... 다리가... 흑.”

    인대가 다쳐 병원에 입원한 박수호 상병은 눈물을 머금으며 소리 없이 울었다.

    절망뿐인 미래만이 남은 상황에 군에선 어떠한 보상 없이 의가사 전역을 통보했다.

    “엄마......”

    집안이라도 넉넉하면 모를까, 또 그렇지도 않았다.

    전역 날만을 기다리며 사회에 뛰어들어 집안 가계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갔다.

    어떠한 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단 사실을 알게 된 때 찾아온 두려움과 절망은 모든 걸 놓게 만들었다.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해.....”

    꿈이 많은 이십대.

    모든 꿈을 내려놓으니 살 의욕이 사라졌다.

    눈을 감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눈물은 그의 마음을 대변해 아래로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

    “박 상병.”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

    박수호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천장만을 응시했다.

    보통이라면 절대 해선 안 될 행동이나, 이제 아무렴 좋다 여겼다.

    “미안하다.”

    굽히지 않을 거 같던 굳건한 몸이 아래로 접혔다.

    그제야 박수호의 눈이 옆으로 이동했다.

    ‘김한석 소대장님......’

    김한석 소대장, 어느 누구보다 공포로 자리한 남자.

    모두는 그를 부르길 호랑이 대장이라 불렀다.

    ‘좋은 분이지......’

    하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남자였다.

    늘 부대원을 먼저 챙기고 부족한 걸 채워주려 애쓰는 마음은 부대원들 간에 있어 아버지와 같았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구나.”

    가슴을 아리게 하는 목소리가 심장을 옥죄여 온다.

    “집안일은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최대한 도와주마.”

    박수호의 집안 사정은 너무도 잘 안다. 김한석은 직접 수호의 집안을 챙기고자 하였다.

    그것이 지휘관이 짊어질 일이라 여겼다.

    “아닙니다. 말씀만 해도 감사합니다. 소대장님.”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정말 큰 용기를 쥐어짜내 말했다.

    전역해도 소대장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빈말이어도 좋았다.

    그의 말을 가슴에 새겨 늘 떠올리기로 하였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그때였다.

    가슴팍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어댔다.

    [박종필 중대장.]

    “올 것이 왔나 보군.”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 김한석은 씁쓸히 웃었다.

    “네?!”

    “또 올 테니 기다리거라. 그땐......”

    ‘좋은 소식을 들고 오마. 꼭......’

    속에 있는 말을 집어넣고 몸을 돌렸다.

    돌아서는 그의 몸에 결연한 의지가 담겼다.

    ***

    [최근 기초훈련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한 유한강 한리버 회장에게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절대 우리나라에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 벌어져 사회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박대기 기자에게 자세한 소식 들어 보겠습니다. 박대기 기자.]

    [네, 박대기 기자입니다. 이곳은 육군 훈련소가 자리한 충남 논산입니다. 유한강 회장은 이곳 육군 훈련소에서 벌어진 사건을 직접 공개를 하였습니다. 수류탄 훈련 과정에서 생긴 일로......]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어! 너 목 날아가고 싶어 환장했어. 어!”

    “......”

    이석인 중장은 눈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검지를 날리며 언성을 높였다.

    얼굴에 노기가 잔뜩 서린 모습이 성난 살쾡이를 닮아 있었다.

    남자는 어떤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바닥으로 내리고 이석인의 말을 들었다.

    “그곳에 유 회장이 있다고 왜 말을 안 한 거야. 대체 왜!”

    “......”

    사실 그도 몰랐다. 사고가 발생한 병사가 소속된 내무실 사람을.

    또한 그리 큰 문제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병사 하나 내보내면 그만이라 생각해 이번 일을 소대장에게 맡겼는데.

    “당장 수습해. 이 일 수습하지 못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알았어!”

    불똥이 튀겼다.

    ‘김한석 소대장...... 으득.’

    욕을 먹고 있는 와중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오로지 한 명.

    이번 일을 맡긴 김한석 소대장이었다.

    처음부터 탐탁지 않아 했던 그.

    이번 일의 주동자임이 확실했다.

    박종필 중대장은 밖으로 나가며 핸드폰을 들었다.

    “소대장님, 저 좀 보시죠. 당장 중대장실로 오세요.”

    치미는 화를 간신히 참았다. 지금 폭발하기에 아직 빨랐다.

    직접 마주해 지금까지 얻어맞은 모든 걸 토해내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다.

    “충성.”

    30분 후, 중대장실 안으로 소대장이 들었다.

    “시발, 당신 미쳤어!”

    들어서는 김한석을 보자마자 욕부터 흘러나왔다.

    박종필은 참았던 울화를 쏟아부었다.

    “이건 군대 내 기밀을 외부로 유출한 엄연한 범죄행위인 거 알아 몰라!”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자마자 제게 그런 모욕을 주시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김한석은 ‘어린 놈의 새끼가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생각만을 한 채,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익, 지금 내게 대드는 거요!”

    “이상한 말을 하십니다. 전 있는 사실 그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김한석은 어느 때보다 침착함을 유지했다.

    당장 날아가 주먹을 꽂고 싶었지만, 그걸로 일은 해결되지 않았다.

    일이 풀렸다면 즉시 때려눕혔을 거였다.

    “이익!”

    박종필은 이빨을 맞대어 힘을 강하게 주었다.

    당장 씹어 먹을 새끼라며 사나운 눈을 그에게 던졌다.

    “그럼 왜 유한강 회장이 그쪽 소속에 있단 말을 내게 안 한 거요. 그 일에 유한강 회장이 연루되어 있단 사실을 왜 내게 말하지 않았냐 이 말입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하이바를 쓰고 있는데다 정신이 없던 차여서 유한강 회장이 자리에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지금 그게 말이라고 내게 지껄이는 겁니까! 당신은 지금 명령 불복종에 군사기밀을 누설한 중죄를 저질렀다 이 말이야. 내 한마디면 당신 모가지야, 알아!”

    “......”

    김한석의 눈빛이 변했다.

    “어쩌다 군이 이렇게 됐나 모르겠습니다. 중대장.”

    “주, 중대장?”

    어이없어 김한석을 노려봤다.

    그러다 이내.

    “야, 박종필이.”

    “......?!!”

    뒤를 따르는 말에 두 눈이 급격히 떠졌다.

    방 안은 긴장감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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