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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23화 (123/237)
  • 123화. 21살, 영웅의 퇴소

    휘이이.

    “......”

    “......”

    하늘에 날리는 갈색 먼지를 바람이 쓸며 지나갔다.

    “괜찮나요?”

    한강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으으......”

    가장 나중에 나온 기간병에게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여기 부상자 있습니다. 수류탄 철심 일부가 다리에 박힌 거 같습니다!”

    기간병 다리가 붉게 젖어 있었다.

    두 다리를 붙들고 이를 물며 떨었다.

    “박 상병! 의무병! 의무병!”

    일대가 소란스럽게 변했다. 단 한 번을 조용하게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박 상병이라 불린 남자는 들것에 실려 군용 앰뷸런스로 옮겨졌다.

    “107번 훈련병 괜찮나...”

    무언가 할 말이 많은 소대장의 얼굴.

    많은 훈련병이 지켜보고 있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잔뜩 위축되어 벌벌 떠는 모습 때문인지.

    꾹 참는 모습이다.

    “107번 훈련병도 저 차에 타도록. 이따 나와 면담을 하자.”

    “......”

    107번 훈련병은 멍한 시선으로 기간병에게 끌려 또 다른 후송 차량에 올랐다.

    “105번 훈련병.”

    “105번 훈련병!”

    소대장의 부름에 한강은 목청껏 복명복창을 하였다.

    “어떻게 알고 거기까지 단숨에 달려갔나?”

    아무도 반응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소대장은 보았다. 일이 터지기도 전에 앞으로 내달리고 있던 한강의 모습을.

    “107번 상태가 이상하다 생각해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말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억지로라도 말렸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터다.

    후회해도 늦었지만,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렇군. 아닐세. 오히려 내가 고맙네.”

    소대장은 건조한 음성을 남기고 자리를 벗어나 기간병을 불렀다.

    “@$^%.”

    “$&*$.”

    곧 공기는 무겁게 흘러 훈련병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나머지는 군부대에서 처리할 문제이다.

    한강은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쉬어!”

    막사로 돌아온 시각, 기간병이 안으로 들어왔다.

    “105번 훈련병, 소대장이 부르신다.”

    “저를요?”

    “......가자.”

    기간병이 눈치를 주었다. 보통이라면 말꼬리를 늘린다며 한마디 하겠지만, 오늘 일이 있어 봐주기로 하였다.

    ‘아차차.’

    실수를 깨달은 한강은.

    “네!”

    곧장 씩씩하게 대답하고 뒤를 따랐다.

    “충성! 105번 훈련병 소대장실에 용무가 있어 찾아왔습니다.”

    “거기 앉지.”

    소대장이 일어나 직접 자리를 지목해 주었다.

    “넵!”

    한강은 소파에 착석했다.

    “오늘 일 다시 한번 고맙단 인사를 하고 싶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당연한 일......”

    작게 속삭였다.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선.

    씁쓸해 보이는 건 착각일까?

    “?”

    한강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꺾였다 돌아왔다.

    “부탁이 있네.”

    “부탁 말입니까?”

    “...... 군대를 떠나 인간으로서 부탁을 드리죠. 유 회장님.”

    “......?!”

    갑자기 말투가 바뀌었다. 호칭도 바뀌었다. 105번 훈련병이 아닌 ‘회장’으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리버 회장이자 육성그룹의 사위라는 건 훈련병과 일부 기간병을 빼면 다들 압니다. 편하게 말해도 좋습니다. 여기는 우리 둘뿐이니.”

    굳은 얼굴로 바라보는 유한강의 모습에 소대장은 입맛을 쓰게 다셨다.

    보통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거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소대장 김한석은 그리 생각했다.

    “상부에서 지시가 있었습니다. 해당 병사를 의가사 전역을 시키는 걸로 끝내라고. 어떤 보상적인 이야기도 없이 말입니다.”

    “......”

    한강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망할 놈의 군대나 권력 집단은 어딜 가나 문제구나.’

    그제야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이해되었다.

    분명 해당 가족은 소송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은 집단을 이기기 어렵다.

    유야무야 사라지게 될 터다.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알기에 그 부분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소대장님이 곤란하게 될 겁니다.”

    “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냥 이곳을 나가 다른 일을 찾아보렵니다.”

    정말 지친 모습이다.

    소대장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테이블 위에 종이컵을 놓아두고 안에 재를 털었다.

    하얀 연기가 방 안을 채웠다.

    “......”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한강으로서 인상이 써지는 일이지만, 그의 마음을 헤아려 참아주기로 하였다.

    “해당 병사 상태는 어떻습니까?”

    “발목 인대를 다쳐 활동이 어려워 보입니다.”

    “......”

    생각보다 심각하다. 한강의 인상이 와락 찌푸려졌다.

    “단돈 한 푼도 없이 내보내는 건가요?”

    “국군병원 치료가 끝나면 그걸로 끝입니다.”

    “아니, 그게 뭔 말인가요? 어떤 보상도 없이요?”

    “이번 일은 107번 훈련병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고라며 군은 책임이 없다 합니다.”

    “......”

    “게다가 즉각 대처하지 못한 병사의 잘못이 크다는군요. 훈련을 소홀히 하고 훈련병에 대한 제대로 된 감시가 이뤄지지 않은... 근무 태만이란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 네?!”

    귀를 의심했다. 들려온 말에.

    과연, 저 말을 병사의 가족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정말 어이없는 일이네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죠?”

    이해를 하기 힘든 조치였다. 한강은 이번 일에 대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렇죠? 사람 새끼라면 그럴 수 없는 일입니다. 제 자식놈이 그런 일에 휘말린다면 가만있지 않을 양반들이......”

    으득!

    이를 악문 이빨이 강하게 부딪혔다.

    어떠한 말도 못 하고 힘없이 고개를 떨궈야 했다.

    현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기분은 썩 좋지 못했다.

    약자는 늘 약자여야 할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아닌지 싶다.

    “제가 어떻게 힘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번 일 제가 힘을 써보겠습니다.”

    어떻게 힘을 써야 할지 그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든 생각은 어떻게든 꼭 정당한 보상을 받게끔 해주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오죽하면 훈련병인 자신에게 부탁을 할까 싶었다. 군대는 보수적 집단.

    김한석 소대장이 나섰다는 건 그만큼 군대에서 발생 문제들에 싫증을 느꼈단 의미가 되었다.

    숙인 고개를 내려보며 한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105번 훈련병이 4주간 기초훈련을 우리와 함께했다. 떠나는 전우에게 박수.”

    수류탄을 끝으로 한강의 모든 교육이 끝났다. 자리에 있는 훈련병들은 한강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집에 있을 적만 하더라도 군대는 별거 없다 생각을 했었다.

    하나, 막상 와 본 군대는 상상 이상으로 모든 것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군 생활을 버틸 수 있던 건 함께 하는 전우가 있기에 가능했는데.

    그중 가장 믿고 의지했던 소대선임 105번 훈련병의 갑작스러운 퇴소 소식은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었다.

    “앞으로 와서 하도록.”

    어떤 언급을 받았는지 기간병은 앞쪽 자리를 내주었다.

    “혹여, 이곳에 제 신분을 알면서 모른 척하신 분이 계실 거고, 아예 모르는 분도 있으리라 봅니다.”

    한강은 주위를 둘러봤다. 짐작이 맞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과 반대로 뭔 소리를 하냐는 눈빛을 던지는 이들이 있었다.

    한강의 시선이 기간병에게 향했다.

    스윽, 옆으로 돌아가는 시선.

    무언의 허락이었다.

    ‘귀여운 녀석들.’

    여기선 조교라는 이름을 들고 있지만, 아직 20대 초 아이들에 지나지 않았다.

    한강은 가벼이 웃고는 시선을 앞으로 가져갔다.

    ‘107번은 아직이구나.’

    107번 훈련병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자는 말이 나오고 있어 며칠 가지 않아 전역이 아닌 강제 퇴소 조치를 하리라 봤다.

    “내 이름은 유한강, 영문 이름은 한리버다.”

    지저스!

    누군가의 음성이다. 알고 있던 훈련병은 그저 부러운 눈으로, 몰랐던 훈련병은 눈을 부릅뜨고 입을 강제 오픈했다.

    “딱히 속이려던 건 아니었고, 벽 없이 보내고 싶어 신분을 감췄다. 내가 비록 군면제를 받아 기초훈련만 받고 퇴소하지만, 너희와 함께한 시간은 잊지 못할 거다.”

    술렁이던 분위기가 잦아들었다. 훈련병들은 한강의 입에 집중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아빠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1%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승리자다. 나는 지금 들고 있는 자존감을 심장에 들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참고 이겨낼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는 선택 받은 존재들.

    절대 꿀릴 이유 따위 없었다.

    모두가 부조리에 굴하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리기를 응원했다.

    ‘군대 별거 없다. 1년만 참고 버텨라. 그럼 된다. 애들아.’

    그리고 마지막 말은 가슴 속에 묻어두었다.

    “모두 내 말을 잘 따라와 줘서 정말 고마웠다. 이상입니다.”

    2005년 11월, 시린 추위가 하늘을 덮은 날.

    한강은 모든 기초훈련을 마치고 훈련소를 퇴소하였다.

    “자기야!”

    훈련소를 빠져나가는 길, 저 앞에 노란색 외제차가 대기해 있었다.

    “윤희야.”

    한강은 군복 입은 차림 그대로 두 팔을 양쪽으로 크게 벌려 윤희를 끌어안았다.

    약 한 달간 잊고 살아온 그리운 냄새가 코로 스며들어왔다.

    “고생했어. 여기 두부!”

    서로 간 온기를 어느 정도 느낀 시점, 윤희가 주머니에서 비닐을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해맑게 웃는 얼굴을 본 한강은.

    “......이거 출소한 사람이 먹는 거 아냐?”

    어이없는 시선을 보냈다.

    그러면서 윤희의 손에 들린 비닐을 건네어 받았다.

    “군대도 끝났고, 더는 혼자 다른 데 가서 나 혼자 두지 말라고 준비했어. 그거 먹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라고.”

    “......”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윤희의 뼈 있는 한마디에 입을 닫았다.

    콩쿠르에 이어 얼마 가지 않아 바로 훈련소에 입소를 하였으니.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아 맛있다.”

    우걱우걱.

    한강은 두부 한 모를 크게 베어 물었다.

    다른 건 필요 없었다.

    앞으로 윤희를 장시간 오래 두지 않겠다 맹세를 하며 손에 든 두부를 전부 배 속으로 넣었다.

    “아이구, 울 자기 예쁘다. 맛있었쪄?”

    “응, 겁나 맛있더라. 근데 후식이 빠졌는데. 이 정돈 괜찮지?”

    “짐승.”

    윤희는 눈을 감고 뒤꿈치를 살짝 들었다.

    한강은 슬쩍 웃고는 입술을 가져갔다.

    잠시간 둘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

    [한리버 유한강 회장, 육군 훈련소 기초훈련 수료! 퇴소하다.]

    [사격만발자 유한강 회장, 영점 표적지에 실탄으로 그림을 그리다.]

    한강의 퇴소 소식이 바로 전국에 퍼지며 저녁 아홉 시 뉴스로 다뤄졌다.

    [부부끼리 오붓하게 나누는 키스씬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해주었다. 잉꼬부부로 알려진 유한강 회장 부부의 달달한 모습을 잠시 감상하자.]

    그리고 부끄러운 사진 한 장이 신문에 실렸다.

    모자와 목도리로 가려져 이목구비는 구별되지 않지만.

    “하여튼 지독하다니까.”

    그건 분명히 한강과 윤희였다.

    한강은 혀를 차면서도 가위로 신문을 오려 스크랩철에 보관했다.

    “그럼 다음은 내 일을 해야 할 시간인가.”

    한강은 손을 수화기로 가져갔다.

    통화음이 얼마 가지 않아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김 실장님. SBC와 MBS 기자를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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