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22화 (122/237)
  • 122화. 21살, 대사건

    “뭐, 군대 간다고?!”

    “......”

    끄덕.

    한강은 지은 죄가 있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늘 긍정적으로 웃던 윤희의 얼굴에 단단히 경직됐다.

    한기로 가득한 공기를 받아들이며.

    “자기야......”

    “이노무 나라는 왜 그런대? 어?!”

    “......”

    처음 봤다. 윤희가 화내는 모습을.

    “저, 저기. 재석이도 있고. 여기서 그럴 게 아니라.....”

    근방에 재석이 자고 있기에 한강은 조용한 곳으로 이동해 대화하기를 바랐다.

    “그래, 좀 나가자.”

    윤희가 먼저 밖으로 나갔다.

    “하아......”

    한강은 재차 한숨을 내쉬며 뒤를 따랐다.

    “내가 화내는 게 이상해 보여?”

    도리도리.

    “정말 이해 안 가. 군면제를 줬음 됐지. 나라를 위해 이름을 알리며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을 왜 잡아가냐고.”

    윤희가 화를 내고 있는 포인트는 바로 ‘군면제’를 받았는데, 왜 ‘기초훈련’을 받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남편이 백수도 아니고 국내 경제에 이바지를 하기 위하여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데,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

    “내 생각이 틀려?”

    “네 말이 무조건 맞아.”

    “우리나라 남자들 진짜 불쌍하다.”

    한기로 채워진 공기가 따스한 온기로 변해갔다.

    윤희의 얼굴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그걸 다 꺼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4주래. 조심히 다녀올게. 심심하면 지혜랑 지연이 불러다 여기서 등하교하라 해.”

    혼자 있기보다 동생들과 같이 있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다.

    “아냐. 아가씨들 힘들게 하지 마. 안 되겠음 집에 가 있을게.”

    “미안해. 정말 생각도 못 했어, 이건.”

    “그게 왜 자기 탓이야. 미안해. 짜증 부려서.”

    밖에 나와서 실컷 불만을 내비치던 모습이 한 꺼풀 벗겨졌다.

    “아냐. 내 잘못이 커. 이런 걸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니. 내가 나빴어.”

    참으로 공교롭다.

    콩쿠르가 끝나 돌아오니, 군대를 가야 한다니.

    씁쓸함이 입가에 맺혔다.

    “기죽지 말고, 잘 다녀와.”

    “응.”

    어렵사리 훈련소 문제를 풀었다.

    한강은 진심으로 정부에 항의를 하고 싶었다.

    나 좀 내버려 두라고.

    ***

    [유한강 한리버 회장 10월달 논산 훈련소 입소......]

    기사가 떴다. 기사 하단에는 머리를 빡빡 민 유한강의 잘생긴 얼굴이 실렸다.

    └ 유혜나: 내 남친과 머리 스탈 똑같은데, 오징어로 만들어 버리네......

    └ 김두영: 4주 부럽다...

    └ 황비준: 군대 별거 없음, 특히 훈련소 4주는 껌임. 징징이들 그만 징징거리셈.

    한강의 입소 소식은 수백만 조회 수를 발생시켰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한강에게 관심을 쏟고 있음을 의미했다.

    “녀석이 한 달간 자리를 비운다고 주가가 떨어진 거 보게.”

    이건호는 TV 방송을 보며 내림세를 보이는 더움과 네이컴의 주가를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그만큼 유한강 회장이 경영을 잘해왔다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김종진 비서실장은 한리버에 일어나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렇지. 아주 뜻밖이야. 하는 짓을 보면 말이지.”

    열일곱 살 당시 사업하겠다고 눈가에 불을 지피던 한강의 모습이 화면 속에 나오는 얼굴과 겹쳐 보였다.

    [저의 꿈은 사업가입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죠.]

    [육성에 도움이 될 겁니다.]

    마치 미래를 알고 있다는 듯, 순차적으로 척척 해내는 모습은 늘 놀라움을 자아냈다.

    “맞습니다. 적자로 허덕이다 비싼 교육을 통해 육성으로 들어올 줄 알았습니다.”

    이재진이 그러했으니, 당연히 한강도 그러하리라 봤다.

    하나 결과는 대반전극을 썼다.

    국내 역대급 IT기업으로 성장해 이제는 자동차 사업에 나설 정도로 회사가 거대하게 변했다.

    퍼주지 않아도 알아서 가져가는 능력자.

    아니 실력자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사실 나도 그래. 참 대단하지. 유일하게 벽 없이 지내는 놈이기도 하고.”

    육성그룹 사옥에 발을 들인 순간, 가족은 철저히 직원으로 변해 사적인 호칭을 금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한강만이 공과 사의 벽을 없애고 동등한 위치로 마주했다.

    두려움은 없다는 듯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사는 세상 편한 녀석.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였다.

    “...그런데 육성 자동차 건은 어떻게 할까요. 언론에서 슬슬 터트리려 하는데.”

    증권가에서는 해당 소식이 암암리에 퍼지고 있었다. 그만한 프로젝트를 완전히 숨긴다는 건 무리였다.

    “저쪽에서도 준비는 다 됐을 게야. 알아서 하라 이르게.”

    그간 꽁꽁 묶어 둔 통제를 해제하기로 하였다.

    “전달하러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러세.”

    철컥, 문이 닫히고.

    “육성 자동차를 어떻게 키울지 지켜보겠네. 유 회장.”

    회장실을 밝게 비추던 태양이 서서히 건물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

    육성 자동차가 한리버 유한강 회장의 손에 들어간다는 보도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덕분에 한리버와 관련된 기업들의 주가 슬며시 오르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흑흑.”

    2005년 10월 입소 날이 되었다.

    주변에 함께 하는 가족들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누가 알면 24개월 아프칸으로 파병이라도 가는 줄 알겠어요. 저 겨우 4주예요.”

    까까머리를 매만지며 눈가를 적시는 미화의 모습에 볼을 살살 긁었다.

    24개월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면 대성통곡을 할지 몰랐다.

    연변장으로 모이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어머니, 흑흑.”

    덩달아 윤희도 울었다.

    “오빠, 다치면 안 돼?!”

    “오빠......”

    지연과 지혜도 뒤를 이었다.

    “......”

    한 번 다녀온 군대이다. 절대 사람이 죽으러 가는 곳도 아니고, 심지어 지금은 1950년 시대도 아니다.

    4주간 죽치면 남들 자대배치 받으러 갈 때 홀로 퇴소를 한다.

    진짜 그것이 끝이다. 더는 없었다.

    ---입소자분들은 연변장으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흘러나왔다. 각진 모자를 쓴 기간병들이 다가왔다.

    “어머니 입소 시간입니다. 아드님은 저희가 잘 돌봐드리겠습니다.”

    부사관으로 짐작되는 남자가 다가와 상냥하게 말하며 부모들을 달랬다.

    “......”

    덕화는 말없이 저들을 바라봤다.

    ‘잘 돌봐주겠다’의 의미를 너무도 잘 아는 탓이다.

    “......다녀올게요.”

    그건 한강도 아주 잘 알았다.

    “자기야, 잘 다녀와.”

    “끅끅.”

    더 있다가 분위기가 이상해질 거 같다.

    한강은 냉큼 달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뛰었다.

    “고생해라. 아들.”

    부모와 가족에게 있어 24개월이나 4주나 같은 모양이다.

    고생하게 될 아들을 보내는 마음은.

    ***

    “오와 열!”

    오와 열!

    복명복창하며 각진 모습으로 두 팔을 앞뒤로 교차시켜 걷는 장병들.

    그들의 옆으로 잘생긴 미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동 중에 군가를 시작한다. 군가는 육군 훈련소가! 군가 실시. 하나 둘 셋 넷!”

    백제의 옛 터전에 계백의 정기 맑고 관창의 어린 넋이 지하에 혼연하니♪

    어설픈 군복차림의 앳된 얼굴에서 우렁찬 군가가 흘러나왔다.

    공기를 두들기며 이동하는 그들의 보폭에 힘이 실렸다.

    “우아, 진짜 힘들다.”

    훈련소에 입소한 지 이제 2주 차.

    체력관리를 하지 않은 게 크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보름만 되면 4주 차 퇴소를 하게 된다.

    “다음 주 수류탄 던진다는데, 어떨 거 같아? 소대선임.”

    가슴에 107번이라 적힌 명찰은 단 남자가 다가왔다.

    “별거 없어. 핀 뽑고 던지면 그만이야.”

    105번, 유한강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어디서 수류탄이라도 던져 봤냐?”

    “아... 그건 아니고 형이 그랬어.”

    웃기게도 이곳에 있는 훈련병들은 한강이 한리버 회장이란 사실을 몰랐다.

    뉴스로 떠들썩했지만, 이 중 뉴스를 본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한강 스스로가 정체를 숨기기도 했지만, 삭발 머리는 한강의 이미지를 샌님에서 짐승남으로 만들어 놓은 탓이 컸다.

    또한 이게 가능한 이유는 서로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에 한강의 신분은 완벽에 가깝게 감춰졌다.

    “아, 그래......흠.”

    “소화기 있지? 그거 핀 뽑고 던진다 생각하래.”

    “소화기?!”

    “그래, 소화기. 그거 핀 뽑아야 사용 가능하잖아.”

    “아, 그래?”

    몰랐나 보다. 관심이 없다면 모를 수 있다.

    한강은 이해해 주었다.

    “괜히 긴장되네. 시청각 보니까 수류탄 엄청나던데.”

    107번은 겁이 많아 보였다. 한강은 해줄 게 없기에 그저 말없이 웃었다.

    빰빠 빠빠빠 빰빠라빰빠 빰빠빠 빰빠라밤!

    “기상! 기상! 누가 아직도 자고 있나! 다들 기상!”

    다음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 시간 기상나팔 소리와 기간병들의 외침에 눈을 감고 있던 훈련병들의 눈이 떠졌다.

    누군가 그랬다.

    기상나팔 소리는 지옥의 문이 열리는 거라고.

    천국의 나팔소리는 전역 시기라고.

    그랬었다.

    “오늘은 수류탄 훈련이 있다. 조금이라도! 조교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다면! 오늘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알았나!”

    오늘은 수류탄 교육이 있는 날이다.

    기간병들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모두 단독무장하고 모인다 실시!”

    “실시!”

    한강을 포함해 훈련병들은 방독면을 다리에 매고, 총을 들어 일사천리 밖으로 집결했다.

    “앞으로 가!”

    탁! 탁! 탁! 탁!

    훈련병들은 떨리는 마음을 누르고 줄을 맞춰 수류탄 훈련장으로 향했다.

    멋진 사나이를 부르며 걸음을 옮겼다.

    “헉헉.”

    수류탄 훈련장까지 거리는 약 한 시간 정도 걸렸나? 훈련장에 도착한 훈련병들은 오와 열을 맞춰 정면을 주시했다.

    “잘들 듣습니다. 수류탄 사용요령을 숙지하고, 조교의 시범대로 똑같이 수행합니다. 혹여 실수로 수류탄을 잘못 던질 시 초소 안에 있는 구멍으로 밀고 위로 올라와 엎드립니다. 반대로 땅 위에 떨어지면 바로 초소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깁니다. 조교 앞으로!”

    부사관은 수류탄 훈련에 대한 안전사항을 상세히 설명하고 조교를 불렀다.

    “수류탄 투척 준비.”

    “안전핀 뽑고 하나 둘!”

    양손을 벌려 ‘나이키’ 형태를 취했다. 왼팔을 쭉 뻗고 수류탄이 들린 오른손을 뒤로 뺐다.

    시선은 전방.

    “투척!”

    “투척!”

    복명복창하며 앞으로 던졌다. 조교는 자리에 앉아 전방을 주시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물가로 던진 수류탄은 엄청난 폭음과 함께 물보라를 일으켰다.

    땅과 공기가 바르르 울었다.

    “......”

    “......”

    훈련병들은 처음 보는 엄청난 장면에 넋을 놓았다.

    “알았지. 이렇게 하면 된다. 긴장할 거 없다. 조교가 보인 행동 그대로 하면 된다. 105번 훈련병.”

    “105번 훈련병!”

    한강이 벌떡 일어섰다.

    “위치로.”

    “위치로!”

    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초소 안으로 들어갔다.

    “소대선임이 시범을 보인다. 그 뒤로 106번부터 110번까지 나와 훈련에 임한다. 105번 훈련병 무섭나.”

    “아닙니다.”

    “할 수 있나?”

    “할 수 있습니다!”

    한강은 계속된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좋다. 수류탄 투척 준비.”

    “수류탄 투척 준비 하나 둘 얍!”

    망설일 따위 없었다. 안전핀을 뽑고 조교가 한 자세 그대로 자세를 잡고 던질 준비를 하였다.

    “투척!”

    “투척!”

    한강의 손에 들린 수류탄이 큰 궤적을 그리며 물가로 떨어졌다.

    하나 둘 셋, 콰아아아아앙.

    다시 한번 물기둥이 위로 솟아올랐다.

    “잘했다. 소대선임에게 박수 세 번.”

    짝짝짝.

    한강은 박수를 받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뒤를 이어 106번부터 110번까지 자리를 잡았다.

    “......?!”

    한강의 눈은 107번 훈련병에게 집중됐다.

    아무 일 없으면 좋겠다 싶지만, 위험한 냄새가 107번에게서 전해졌다.

    “너무 떠는데...”

    107번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기간병의 지시에 따라 초소에 들어갔다.

    기간병과 다른 간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수류탄 투척 준비.”

    지시가 떨어졌다.

    훈련병들은 수류탄 투척 준비에 들었다.

    한강의 시선은 107번에 집중됐다.

    “투척.”

    “투척!”

    훈련병들은 지시에 맞춰 힘껏 던졌다.

    폭음이 터지고 물줄기가 위로 솟았다.

    팅, 딩그르르.

    모두가 정면을 주시할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107번의 손에 있던 수류탄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함께 있던 기간병도 순간 무슨 일인가 땅을 바라보다.

    “시발! 위로 올라가!”

    욕설과 함께 107번을 위로 올리려 하였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몸이 잔뜩 굳은 107번을 옮기는 건 혼자선 쉽지 않았다.

    “올리십셔!”

    그때였다. 목소리가 들린 건.

    처음부터 끝까지 주시하고 있던 한강은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여 107번의 몸을 끌어 올렸다.

    기간병은 거의 본능적으로 107번의 다리를 지상 위로 던지고 위로 올라오면서 외쳤다.

    “엎드려!”

    그 소리에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어떤 누구도 얼굴을 들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잠시 후, 수면에서 느끼던 것과 비교도 안 되는 진동이 땅에서 느껴졌다.

    한강과 기간병 주변으로 흙먼지가 일며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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